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다고들 했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구조조정의 칼바람과 함께 그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더하면 더했을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탄압이었다. 그러나 우리 동지들은 그 정도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시민의 지팡이라는 경찰과 1001부대니 어쩌니 하는 전투경찰들에게 옆의 동지들이 개같이 맞고, 질질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분노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더욱 강고하게 싸워온 것이다. 이에 자본과 정권은 역시나 점점 더 교묘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노동자투쟁을 탄압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가압류나 민형사상 손해배상, 집회금지 가처분 등의 간접적이면서도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직접적으로 분노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며, 법적인 문제가 되어버리므로 사측과의 관계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쟁의행위를 하다가 생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가압류나 손해배상 청구가 개개인에게 들어오기도 한다. 이는 당연히 투쟁을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위로 보지 않고 불법적 행위로 매도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결속력을 저해하기 위함일 것이다.
더구나 그 천문학적인 액수라니... 노동자들은 폭력탄압을 받고도 폭력범으로 잡혀 들어가기도 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게 됐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은 가압류 당하고 천문학적인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파업은커녕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만 보여도 바로 해고되고 불법이 되어버리는(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이므로) 비정규직들에게는 더욱 큰 문제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경우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갈 현장조차 없어진 채로 장기투쟁사업장이 되어가기 때문에 유인물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어서 정말로 치명적이다. 집회금지 가처분판정도 비정규직 투쟁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가까운 예로 방송사 비정규노조나 안산의 대성산소 용역기사 노조의 투쟁이 그랬다. 몇 년 몇 십년 씩 일해온 일터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근래에 힘들게 싸움을 정리한 한진면세점 투쟁도 그랬다. 불법파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과의 직접적인 노사계약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합당한 투쟁으로 볼 수 없고 하기에 대한항공 관련 건물 등의 근처에서 집회를 할 시 1인당 100만원씩 물리겠다라는 식이다.
이렇게 자본과 정권과 법원이 하나되어 사방에서 노동자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투쟁 같은 걸 하면 이렇게 된다. 3대 1이니 너희가 불리하다.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고 나가라면 또한 조용히 떠나라.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쪼들리고 강도 높은 노동으로 산재로 인정도 안되는 근골격계니 뭐니 하는 질환에 시달리고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해 4대 보험은커녕 일하는데 드는 각종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해가면서도 숨죽이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되어간다. 자본가들은 “맘에 안 들면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돼지 왜 난리냐”라고 한다지만 좀더 나은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설사 운 좋게 구한다 해도 결국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 굴레를 어찌하지 못하고 한 노동자가 산화되어 갔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감당 못할 가압류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다시 새 정부가 들어서고 DJ와 다름없이 그러나 더 교묘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고 비정규직을 늘려가고 노동강도를 강화시켜가고 실질임금을 줄여갈 것이다. 이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더 극심한 탄압을 할 것이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파견법을 확대한다고 하고 경제자유구역이란 곳에서는 쟁의행위를 아예 못하게 하겠다고도 한다.
이런 것을 현장에서부터 막아내야 하는데 우리의 현장은 숨죽어 있다. 어용이 판을 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전히 두산의 문제는 어느 지역, 어느 사업장의 문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각각의 투쟁들과 현장의 움직임들은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각개격파 당하고 말 것이다. 또 한사람의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려하고 있는가!
노동3권은,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한 투쟁, 생산수단을 멈추고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혼을 대가로 한 투쟁의 결과이다. 투쟁과정에서 생기는 자본의 손실들을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가압류와 같은 탄압 방식은 결국 이러한 노동기본권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는 한 노동자의, 한 노조의 재정적 어려움의 문제이거나 단순히 사측과 법원의 부당한 처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 대한 총자본의 노동탄압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단 하나이다. 노동자의 단결! 노동자들이 단결된 모습으로 언제나 일어설 준비가 되어있다면 자본은 감히 이렇게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노조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서, 혹은 코앞의 것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내주고 마는,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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