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달려가고 있다. 시집이나 수필집을 손에 들었던 다른 때와는 달리, 근로기준법을 뒤적이며 면접을 준비하는 나를 싣고 기차는 달려 부산으로 향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주관하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가해서, 지역연고주의(?)를 발휘하여 고향인 부산의 비정규노동자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마침 다음날이 어버이날이라 카네이션 화분을 하나 사 들었다. 언제나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은 당신들을 보러 왔느냐 조사를 하러 왔느냐고 부드럽게 다그치신다. 나는 두 가지 다가 중요한 목적이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부모님에게 미안하였다. 부모님께서는 조사를 맡았으니 잘 하라고 격려해 주신다.
그렇게 해서, 그리고 이후로 부산에 두 번을 더 내려와서 여러 명의 노조간부와 세 명의 비정규노동자를 만났다. 여기서는 실태조사를 마치고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들을 풀어내 놓고자 한다.
#1 대학 교정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으로 부산하다. 만나기로 한 건물이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어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갔다. 산 발치에 자리잡은 캠퍼스는 5월인데도 짙푸른 녹음이 우거졌고, 흐르는 시냇물이 시원함을 자아낸다. 약속한 건물 경비실이 보여 반갑게 땀을 훔치며 들어섰다. 전화 통화를 한 노조간부 한 분과 경비노동자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전화로 공문을 받으셨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알고 계시던 두 분은 국가인권위에서 나오는 줄 알고 단단히 준비를 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조사를 주관하는 단체와 조사의 취지를 다시 말씀드리자 약간 실망했다고 하시면서도 이내 자신의 처지를 거침없이 쏟아놓으셨다.
대학 경비원은 예전에는 학교에 직접 고용되어 있었으나 십여 년 전부터 용역을 맡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용역업체를 통해 대학 건물 경비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면접을 시작한 경비노동자의 일성이었다. 대학에는 청소, 행정보조 등을 담당하는 '기성회직'이라는 정규노동자가 있는데, 이들의 월급은 자신이 받는 액수의 서너 배라는 것이다. 또한 대학교가 매년 용역을 입찰할 때, 대체로 노동자는 그대로 있고 용역업체만 바뀌는 형식이지만, 고용승계가 보장되지 않아 매년 고용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휴일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 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므로 십 년을 넘게 근무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으로는 단 하루의 연차휴가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연차는 말할 것도 24시간 맞교대가 어김없고 중단없고 빈틈없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면접한 경비노동자 분이 고용되어 있는 용역업체에서는 일 년중 하루라도 결근을 하면 퇴직금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지면상 여기에 다 적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면접은 경비노동자 분께서 시종 울분을 토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는 때로는 용역노동이라는 것이 없어져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용역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작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고 한다. 노조의 세 가지 중요한 현안이 있는데, 용역업체간의 월급 상향 평준화, 고용승계 보장, 노동조합 활동에 따른 불이익 금지이다. 여기에 더하여 휴가를 용역업체와 절충 중에 있는데, 노조간부는 아마 다만 몇 일이라도 휴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피력하였다.
면접을 마치고 두 분께서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을 사 주셨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따라와 가는 방향을 물으시고는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나는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 그분들이 보내는 연대의식을 느끼며, 그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이 앞으로 좋은 결실을 맺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2 오늘도 지하철은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서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는 방금 지하철 노조간부로부터 지하철의 비정규직 현황을 설명 듣고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진솔해 보이는 남자 노조원과 함께 여성 환경미화원 분들의 면접을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처음 만난 그분들은 나에게 동행한 남자 노조원이 얼마 전 집회에서 멋지게 연설을 하였다고 추켜세운다. 나도 친절한 그의 미소가 멋져 보였다. 나는 그의 소개와 도움으로 면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환경미화노동자 분들은 회차선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회차선 청소란 종착역에서 열차가 반대방향으로 가기 위해 선로를 바꾸는 동안 열차 바닥을 닦고 휴지를 줍는 청소이다.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처럼 밀려오는 열차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는 분들과 진득하게 앉아서 면접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회차하는 열차 안에서 남자 노조원이 청소를 대신해 주는 동안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선로 옆에 있는 방에서 열차 청소를 마치고 걸레를 빨러 번갈아 들어오는 분들과 잠깐씩 얘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면접을 서로 미루었으나, 대화의 내용이 진지해지고 노동조건의 민감한 부분들을 질문하자 여러 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이곳에도 외환위기의 광풍이 몰아쳐, 외환위기 이전에는 4개조여서 조금 여유가 있었으나 지금은 3개조로 나뉘어 열차가 도착하는 것에 맞추어 빠듯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이 쉴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점심식사도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두 번, 세 번에 걸쳐 나누어 먹는 것이 기본이다. 그나마 배차간격이 넓은 일요일이 평일에 비해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한다.
이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선로 옆 계단 밑에 휴게공간이라고 조그마한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을 '위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따름이고, '원활한 청소업무'를 위해 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방은 통풍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있다 하더라도 역사의 탁한 공기만 들어올 것이다!-, 반은 걸레를 빨 수 있는 개수대가 차지하고 있고, 반은 몸을 누일 수 있게 장판이 깔려 있다. 야간근무시에는 이곳에서 잠을 잔다고 하는데, 이러한 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이다. 개수대에서 발생하는 습기로 인해 방안은 항상 축축한 공기에 젖어 있고, 잠을 잘 때에는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더러운 공기가 잠자는 사람의 폐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주간에는 역사 화장실을 이용하지만, 역사를 폐쇄하는 밤에는 멀리 떨어진 건물까지 혼자서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화장실을 찾아가야 한다. 지하철공단 측에서는 숙소를 지어준다고 했으나, 확실한 대책 없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여성노동자 분들은 전국의 다른 여성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낮은 것을 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조사 결과 여성연맹의 노력으로 노동조건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여성노동자 분들이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들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서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나아진 게 아니냐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이 조사가 여러분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말씀드리자 현재의 처지가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앞으로 서서히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반대편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종착역에 도착하는 열차에 올라 밀대를 밀고 휴지를 줍는 작업을 되풀이하는 그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와 씁쓸한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가 그 전보다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나도 잠시 비슷한(?)-사실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자취방에서 살아본 적이 있어, 그분들의 숙소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3 오늘은 두 번째로 지하철매표 용역노동자를 만나는 날이다. 첫 번째 만난 매표원은 행여 나중에 불이익이 돌아올 지 모른다며 면접을 거부하였다. 역사에서 다시 만난 노조간부는 구면이어서 인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얼마를 걸어가 면접을 하기로 되어 있는 전국노동자회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노조간부의 주선으로 다른 매표 용역노동자 한 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교통공단은 작년 8월에 지하철 2호선 3단계 개통이 이루어지면서,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매표업무를 민간위탁하였다고 한다. 이 매표업무 민간위탁과 관련하여 사용사업주(부산교통공단) 및 파견사업주는 부산지방노동청으로부터 불법파견으로 행정지도 및 행정처분을 받은 상태이다. 하지만 파견사업주 측에서 집행정지가처분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아직 용역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매표업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노조간부에 의하면, 정규직 노조가 완강하게 반대하는 속에서 매표업무가 용역업체에 맡겨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후 비정규직 매표원들이 정규직 노조의 투쟁에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규직 직원들의 홈페이지에 복장이나 근무태도와 관련하여 비정규직 매표원을 심하게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여 피면접자는 괴롭다고 하였다. 또한 피면접자는 1인근무체제여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이 고충인데 정규직 직원에게 화장실 갈 동안 자리를 좀 봐 달라고 하였다가 무안을 당한 일도 있다고 한다.
피면접자는 부산지방노동청의 직장폐쇄 행정처분이 있고 나서 고용에 불안을 느껴 일반노조에 가입하였다고 한다. 고용안정이 그가 지금 제일 바라는 것이다.
이번 조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매표창구는 흡사 전쟁터와 같다. 승객과 매표원간의 전투가 시시각각 벌어진다. 무임승차권 발급 문제가 대표적인 전투 원인이다. 원칙적으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는 승객에 대하여 무임권 발급을 거부할 경우 반사적으로 욕설이 날아와 매표원의 이성을 마비시키기가 일쑤이다. 취객은 말할 것도 없고, 게이트 통과가 제대로 안 되는 승객이, 십중팔구 본인의 잘못임에도, 시비를 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면접은 다소 우울하게 진행되었지만,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 개선 방안 등을 토론하고 헤어질 때에는 각자의 마음에 아주 조금은 희망의 싹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세 사례 모두에서 피면접자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나이 쉰을 넘긴 경비노동자는 자신이 평생 한 나라에서 살아온 결과가 이런 것이냐며 작금의 용역노동이라는 것은 편법이란 편법은 모조리 동원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며 분개하였고, 환경미화노동자도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인간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왔다고 말하였다. 젊은 매표노동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소박하나마 자신의 노동조건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것을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 라고 한가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조사에서 도덕적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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