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노동조합이 2001년 11월 10일에 출범했다. 6개월에 걸친 민교협 내부의 검토, 5개월의 추진단 사업, 그리고 7개월의 준비위 활동을 거쳐 마침내 우리의 대학사와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전국 교수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 일각에서는 교수들이 무슨 노동자냐는 식의 단순한 거부 반응도 없지 않으며, 특히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불법으로 단정하여 대학 총·학장들에게 지도를 요청하는가 하면 더욱 최근에는 교수노조 지도부 교수들에 대한 자체 징계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뜻을 함께 하고 있는 교수노조 조합원 교수들은 교수노조 결성의 합헌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교수노조의 결성이 백 번 양보해도 불법이 아니라 법외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아직도 사회 계층별 부문별 역할 분담이라는 인식이 희박한 것 같다. 어휘 및 개념상으로도 집무, 업무, 근무, 근로, 노동, 막노동과 같은 봉건적 위계가 확립되어 있으며, 교수사회 안팎의 이런 정서가 교수노조에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우선시하는 모든 집단을 불법시하고 적대시하는 권위주의적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립대학의 절반을 넘는 76개 대학과 전문대학의 90%를 웃도는 145개 대학에 아직도 교수(협의)회가 없으며, 그나마 존속하는 일부 대학의 교수(협의)회도 아무 법적 지위 없이 대개는 친목회 수준의 활동에 머물고 있다. 대학 내부적으로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통렬한 비판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교수들이 그와 정반대로 철두철미한 억압, 통제, 감시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대학교육은 정·관·학의 해묵은 유착과 교육 관료 중심의 행정편의주의로 말미암아 이미 다방면으로 기형화되었고, 더욱 최근에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의 횡행으로 말미암아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사교육비가 공교육 예산의 3배를 웃도는 나라, 대학교육의 사학의존도가 85%를 웃도는 나라, 대학등록금이 최저임금의 5-18배를 웃도는 나라, 대학운영의 공공재원이 16%에 불과한 나라, 교수 1인당 학생수가 40-78명에 이르는 나라, 교수 충원율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 그런 가운데 비전임 교원의 대학강의 담당률이 거의 50%에 달하는 나라, 그 대학강사들의 신분과 처우를 나몰라로 일관하는 나라, 강사노조 가입이 교수 채용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나라, 교수(협의)회의 해체를 종용하다가 이를 거부하는 집행부 교수 전원을 재임용 규정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해직시켜 버리는 나라, 교수들에 대한 계약제·연봉제 시행을 법령으로 강제하는 나라, 세계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교수노조의 결성은 결코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이었으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수사회 일각의 자기반성의 소산이었다. 교수들이 조직적 역량을 갖추어 대학정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고서는 대학과 교육 전반의 기형화, 황폐화를 치유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이 교수노조 결성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교수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의 권익에 앞서 올바른 대학개혁에 초점을 두었고, 교수 신분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의 현황을 더 깊이 검토했으며, 기존 교수들의 권리 확보에 못지않게 대학강사들의 진로 및 처우와 학문후속세대의 양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할애했다.
이제 교수노조는 대학의 공공성, 민주성, 진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교육의 공공재원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유럽 선진국들에서 90%를 웃돌고 일본과 미국에서마저 50%에 가까운 대학교육의 공공재원이 한국에서는 고작 16%(정부예산 대비 1%)에 불과하다. 대학교육의 85%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이 수익사업으로 인식되고 설립되는 풍토를 바로잡아 특히 사학재단이 공익적인 이념 아래 대학을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관철하는 일이고, 나아가서 온 국민과 합심하여 정·관·학의 해묵은 유착의 고리를 끊는 일이다. 교수 충원율을 높이는 일, 시간강사의 신분과 처우를 전임교원과의 연속선상에서 제도화시키는 일, 그리고 학문후속세대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공공재원의 확보가 불가피하다.
대학의 민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의 3주체인 학생, 교수, 직원이 각기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수 중심으로 언급하자면, 우선 단위 대학별 대학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모든 대학에 교수(협의)회가 법적 기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국 수준에서는 일부 관료들과 관변 단체에 의존하는 관치주의적 대학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 대학의 주체들이 배제된 대학정책은 결코 대학에 올바르게 뿌리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교수들의 전문적 역량과 현장 경험이 소중한 국가 자산으로 여겨져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교수노조가 하루빨리 합법화되어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들과 책임을 분담하는 민주적이 대학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교수노조는 교수사회 일각의 자기반성의 소산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암울한 시대에,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처지에서, 숱한 희생자들이 일구어 놓은 소중한 유산을 향유하고 있다. 이런 자기반성 아래 그 소중한 유산을 교수사회 중심으로 꽃피울 수 있도록, 교수노조는 사회 계층별 부문별 갈등을 중재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교육 및 연구의 주체로서 긍지를 살리되 그것이 역할 분담상의 신성한 노동이라는 인식 아래 다른 부문의 모든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가운데 국가권력, 자본, 사학재단을 상대로 하는 노동자의 권익 확보를 위해 당당하고 진지하게 앞장설 것이다.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불행하게도, 첫째는 교수노조의 합법화를 관철시키는 일이고 둘째는 교수 계약제·연봉제를 철회시키는 일이다. 외국에 확립된 교수노동조합의 오랜 전통과 막상 우리 헌법의 보장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교수와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권이 하위법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명백한 위헌이며, 바로 이것이 UN, ILO(국제노동기구), OECD로부터 인권후진국가로 낙인찍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교수 계약제·연봉제도 교원 지위의 법률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며, 한 직종에 대해 법령(교육공무원 임용령)으로 이 제도를 일괄 강제하는 것 또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제도가 전체 교수를 비정규직화하게 되고, 그것이 다른 부문에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점이다. 교수사회만 두고 보더라도 계약제·연봉제는 교육과 연구를 상품화함으로써, 질보다는 양, 내용보다는 포장을 우선시하는 풍토를 만연시키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교수의 신분을 교육인적자원부, 사학재단, 대학당국에 순응하는 반노예 상태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교수들이 큰 몫을 담당해야 하는 사회 비판적 기능을 압살하게 될 것이다.
교수노조는 출범과 더불어 이렇게 무분별하게 강제되고 있는 각종 대학정책에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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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제호 |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전북대 불문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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