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불안정노동의 확산과 심각성은 이미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진단과 해결책은 각각이다. 혹자는 경제가 회복되고 성장이 가속되면 일자리의 질은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논자들은 불안정노동의 법률적·제도적 보호 미비를 지적하며 보호 입법에 주력하고자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탓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로 불안정노동자의 일자리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점들은 현상의 일면을 지적하고 있지만, 불안정노동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도 해결책도 아니다.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새로운 축적구조에서 기인한다.
자본의 세계화 즉 초국적 금융자본의 세계적 지배 구조의 수립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오고 있었으며, 한국은 IMF 시기를 거치면서 급속하게 이 구조에 거의 완전히 편입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 단기주의의 확산과 구조조정의 상시화이다. 화폐적 증식이라는 금융자본의 속성은 이제 주식시장을 무대로 관철되고 있으며, 주주에게 최대의 수익을 남기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정확히 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단기 수익일 수밖에 없다. 이 단기 수익을 올리기 위해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감행되고, 이때 노동에 대한 공격과 불안정노동의 도입은 가장 손쉬운 방편이다. 금융자본은 경영진을 고임금과 스톡 옵션 등으로 직접 포섭하여 단기 수익에 집중할 것을 압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주식 시장을 통한 이른바 '시장의 처벌'로써 구조조정 상황을 상시화하도록 만든다. 이에 따라 노동의 불안정화는, 끊임없이 또 전면적으로 진행된다.
둘째, 초국적 금융자본이 활동하는 정책적 기반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성’이라는 원리 위에 공공성은 무시되고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투자는 기피된다. 일자리 없는 성장(또는 일자리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 성장)은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에서 특징적인데, 경기회복 또는 활황의 시기에조차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보다는 금융자본 및 그와 관련된 자산가들의 이익을 더하는 쪽의 방향이 훨씬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게모니 국가가 아닌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에서 신자유주의의 채택은, 초국적 자본의 단물 빨아먹기만 남겨두고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킬 위험성이 더욱 크다. IMF 이후 한국 경제가 경험하고 있는 투기 거품 형성과 붕괴의 주기적 순환은 이의 한 현상이며, 이 위기는 물론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노동의 불안정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세계화라는 자본 축적 전략 및 지배 구조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 법적 보호, 정규직의 ‘양보’ 등의 논의는, 자본의 이와 같은 지배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또는 이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그 효과는 대단히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안정화의 양상
현상적으로 노동의 불안정화란,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불안정화와 빈곤화 경향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내 분할의 심화 양상을 지칭한다. 즉,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 불안정노동자들이 기간노동력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더불어 다양한 자본의 전략으로 인해 불안정노동의 형태들이 세분화되는 동시에 그 격차가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우선 불안정노동이 노동력의 기간을 이루도록 확산된 경로를 보자. 1) 기업들이 신규 노동력을 비정규직으로 충원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났다. 자연감소분은 물론이고 특히 IMF 시기 대량 발생한 정리해고 후 노동력을 다시 고용하면서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왔다. 이에 따라 정규직이었던 일자리에 비정규직이 도입되었고, 심지어는 같은 기업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하청, 용역, 분사화 같은 외부화가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끊임없이 수많은 직무 또는 공정이 통째로 외부화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직접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매우 불안정하고 열악한 위치로 전락했다. 3) 새롭게 부상한 산업·업종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전면화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대자본의 장악으로 급격히 팽창한 유통·음식·숙박·레저·교육 등 민간서비스산업이나 IT산업 등지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확산 경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정규직-핵심 / 비정규직-주변’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사실 현재 비정규직의 업무는 거의 모두 이전에 정규직 고용으로 충원되었던 일자리이다.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는 자본의 전략 때문이지 노동의 성격이나 숙련도와는 별 관련이 없다. 이는 불안정노동자의 숙련 향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불안정노동의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가는 경유지도 아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 중 일부를 정규직화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 노동자 내부 위계화를 조성하고 노동통제를 용이하게 하려는 자본의 의도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일자리 자체를 정규직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규직을 끊임없이 축소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정규직화를 노동통제의 방편으로 삼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사용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동시에 노동의 분할·통제를 실현할 수 있다. 1) 계약직(임시, 일용직 등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고용)의 경우, 계약 해지의 위협은 자본의 손쉬운 무기가 된다. 자본은 재계약을 거부함으로써 쉽게 수량적 유연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반면, 계약갱신을 해야 하는 노동자로서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할 뿐 아니라 저항이나 조직화가 극히 어려워진다. 2) 간접고용(하청, 파견, 용역 등)을 통해 자본은 고용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력 비용을 절감하며 동시에 노동의 분할·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일석삼조를 누린다.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하청·파견·용역 업체끼리 경쟁을 시킴으로써 비용을 줄이는 것이 가능한 반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비용삭감에 더해 중간업체까지 개입된 이중착취를 감내해야 한다. 원사용자인 자본은 고용책임에서 면제될 뿐 아니라, 계약해지의 위협(업체와의 계약 해지는 사실상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 효과)을 사용하여 손쉽게 노동 통제를 달성할 수 있다. 3) 특수고용은 고용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를 개별화하는 극단적인 방식이다. 노동자성을 부인당한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얻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능력과 실적에 따른 수입’이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경쟁하고 스스로 노동강도를 강화할 것이 강요된다.
따라서 자본이 불안정노동을 확산시키는 이유는 단지 비용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자 분할과 통제의 목적 또한 매우 강하게 존재한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의 불안정화는 노동자의 빈곤화와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대와 단결을 해체하는 경향을 보이며, 그 역시 자본의 명백한 목표인 것이다.
또한, 자본이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방식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노동과정의 성격에 따른 제한은 어느 정도 존재하나, 이는 가변적인 것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피하고 분할하기 위해서는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계약직 관련 투쟁이 성과를 거두자마자, 간접고용으로 대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간에도 위계가 발생할 수 있으며, 특정 고용 형태와 관련된 목전의 사안에만 매몰된다면 자본의 이러한 분할·통제 전략은 더 쉽게 실현된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운동의 상황
노동의 불안정화 양상이 노동운동에 의미하는 바는, 이른바 핵심 노동자군(대기업 정규직)을 더 이상 노동운동 주력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조는 방대한 불안정노동의 바다에서 섬처럼 고립되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불안정화의 위협 속에 그 섬이나마 지키겠다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기 쉽다. 즉, 전체 노동자계급의 전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기존 노조의 활동은, 그러한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지속적인 불안정화의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IMF 당시 노동에 대한 전격적인 공격의 경험과 그에 대응한 노조의 피해최소화 논리는, 악순환을 형성하는 트라우마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실패한 후,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논리로 양보교섭이 진행되면서 고용을 일정정도 보장받는 대신 소수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노동조건 악화를 용인하였다. 그러나 이 양보교섭의 경험은 “다음은 내 차례일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을 더욱 확산시켰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조에 헌신하거나 연대적 관계를 확장하는 대신, 개별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즉, “일단은 내가 살아남으려고” 또는 “언제 내 차례일지 모르므로 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벌어두려고”, 자발적으로(?) 노동강도 강화를 수용하거나 자본의 노동자계급 분할 전략에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노조의 역량을 위축시키면서 노조가 수세적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기존 노조들에서 지난 수년간 이러한 악순환 과정이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고용을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완화와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정규직 노조의 이러한 태도와 불안정노동자와의 관계는 노조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 번째는 노골적인 노노갈등의 양상으로, 정규직 노동자-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노조가 상호비난하게 되는 상황이다. 물론 불안정화의 원인이나 해결책으로서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은 초점이 빗나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은 물질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정규직과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노동자들 사이의 노동조건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체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정규직 노조의 방어적 태도를 보면서 더욱 강화되기 마련이다. 반면 정규직 노조의 입장에서는, 자기조합원의 불안정화를 막기도 급급한 상황에서(또는 이런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을 위해 ‘할만큼은 했다’고 느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는 무리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자생적인 상호불만과 서운함이 심화되면 노노갈등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노노갈등이 상급조직과 단위노조간의 갈등으로 나아가는 사례들도 보이는데, 이는 민주노총이 불안정노동 문제에 직면하여 어떠한 지도력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노노갈등의 양상이 전부는 아니다. 두 번째 경향은 정규직 노조의 시혜적·대리적 태도로 나타난다. 불안정노동의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로 내걸고, 실제 많은 부분을 쟁취해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처우개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행동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정규직 노조가 대리교섭을 하여 자본으로부터 수혜를 주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더욱 부추킨다. 또한 정규직 노조가 대리교섭을 해준 처우개선은 많은 경우, 정규직(즉 조합원)과 비정규직간의 격차를 줄이기보다는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시혜적·대리적 태도는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관리’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우리가 대신 나서서 처우개선을 해 줄 테니, 그 이상의 요구나 투쟁으로 교란(?)하지 말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는 뜻이다. ‘관리’의 관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일부 개선해 주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차별과 격차를 승인하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앞으로 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즉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주의 기제에 참가하여, 산하 조합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의 섬을 보호·방어하면서, 불안정노동자에 대해서는 ‘처우개선’에 노력하되 그 차별과 격차는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하다면 이는 노동자계급 내 분할과 격차의 심화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 되어 버린다.
이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을 살펴보자. 기존 노조운동이 점점 드러내보이는 한계와 대비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을 주목하게 되었다. 실제로, 불안정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골간을 구성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들의 문제와 투쟁이 현 시기 자본 축적의 모순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따라서 계급투쟁의 구조적 수준에서 보았을 때, 불안정노동자들은 노동운동 나아가 계급투쟁의 돌파구를 열 새로운 주체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이며,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에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교착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1) 지금까지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박탈의 벼랑에 몰려 분출되었다. 그런데 생존권 투쟁은 그 절박함 때문에 격렬한 전투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야를 자기 사업장으로만 국한시키고 현안문제 해결에 집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전투적 실리주의’로 나아가기 쉬운 것이다. 2) 이러한 절박성과 실리주의 때문에, 불안정노동자들 스스로가 정규직 노조나 민주노총에 매달리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3) 현안문제 해결에 집착하는 경향으로 인해, 투쟁이 일정정도 성과를 획득해내었을 때조차 그것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자본은 이제 구조조정을 항상적으로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현안문제에서의 약간의 성과에 만족하는 순간 쉽게 다시 칼을 빼들 수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자체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일시적인 성과는 곧바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자본의 대응 또한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자본은 구조조정의 상시화와 비정규직의 확산에 관한 한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탄압으로 일관했던 초기에 비해, 자본과 국가의 대응 양식이 달라질 가능성은 많다. 물론 이것은 끊임없이 강력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과 국가는 비정규직 노조의 존재 자체는 일정정도 승인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대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과 세력화를 무력화하려 한다. 1) 우선, 노조는 인정하되 구조조정과 고용형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허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내에서의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은 용인할 수 있으나, 구조조정의 본질에 저항하거나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를 이슈화하는 투쟁에 대해서는 철저히 탄압하는 것이다. 즉, 노조 인정이라는 카드를 내밀고, 대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을 강요한다. 2)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보호’라는 제스쳐를 쓰는 대신, 노동의 불안정화를 확산·심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파견법, 기간제법, 고용허가제법 등 불안정노동자와 관련한 최근의 제·개정 법안들은 전형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제도적·법률적 ‘조치’의 양상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이에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자본 전략의 핵심이라는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불안정노동자의 문제를 ‘취약계층의 보호’로 파악했던 몇몇 시민단체들과 노동운동 일부의 대응도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3) 노동자계급 내 경쟁과 위계화를 통해 노동자계급을 분할하고 불안정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한다. 이때 위계의 상층부에 있는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의 하위파트너가 되어 위계와 경쟁 시스템을 수용하며 하위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정규직 노조의 ‘관리적’ 태도의 징후는, 이러한 포섭 전략이 먹힌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불안정노동 투쟁의 과제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저항이 현 시기 자본의 축적구조와 지배구조에 반대하는 함의를 갖고 있다. 물론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주의의 폐절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진행되는 노동의 불안정화는 현 시기 자본주의 구조의 모순을 집약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한 전체 구조를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불안정노동 투쟁이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거의 대부분의 투쟁이 설령 다른 문제(열악한 노동조건, 정규직과의 차별 등)로 인해 촉발되었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문제로 가게 된다. 그러나 고용형태의 문제는 단순히 제도적·법적 조처를 통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현재 자본의 축적 및 지배 구조가 필연적으로 귀결하는 지점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안정노동 투쟁은 자연히 정치적·사회적 투쟁으로 승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자본의 대응 전략(노조를 용인하되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정상화, 보호 조치를 강구하면서 불안정화를 더욱 확산·심화, 노동자계급 내 경쟁과 위계화 구조를 통한 분할·포섭)이 성공을 거둘수록, 불안정노동 문제는 ‘노사관계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갇혀 버릴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불안정노동 투쟁이 각각 현안문제적 쟁점으로만 협소화되는 것을 막고 정치적·사회적 대항 전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기획과 조직적 기획이 발전해야 한다.
정치적 기획으로서, ‘노동의 보편적 권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망을 제출하고 이를 위해 투쟁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노동의 보편적 권리란, (고용 여부나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삶의 존엄성을 지키고 살 권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빈곤하지 않을 권리, 노동형태와 노동조건에 대해서 자기결정권을 가질 권리를 포함한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것들이 전적으로 실현될 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상정하는 한, 노동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란, 자본의 통제와 지배력을 잠식하고 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재 자본의 축적 및 지배 구조가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면서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더욱 급격히 침식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에 의해서 노동자의 삶이 결정되고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상을 확대하는 과정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정노동 투쟁의 목표는 ‘완전고용’이나 ‘정규직화’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서도 현재 자본의 지배구조를 잠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투쟁이 운동의 의제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전망 하에서 투쟁이 조직되고 배치될 필요가 있다. 우선 불안정노동 철폐란 자본의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자본과 국가의 전략을 제대로 폭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앞서 말한 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말려들면서 불안정화를 더욱 확산·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존재한다. 이와 더불어 ‘노동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요구와 투쟁들을 조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불안정노동자들의 노조 쟁취 투쟁은, 단순히 기존 노조처럼 활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핵심적인 것은 이를 수행할 주체의 문제, 즉 조직적 기획이다. 물론 기존 노조 운동의 혁신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자본의 분할 전략에 조응하는 것은 결국 불안정화를 더욱 심화시켜 스스로 불안정노동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조합원들의 반발 때문에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단결에 주력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결국 자본의 분할 전략이 그만큼 성공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조란 조합원들의 의식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활동 자체가 조합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명심하고 자본의 분할 전략을 정면돌파해 가야 한다. 게다가 이는 노조운동의 와해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 ‘피해 최소화 논리의 악순환’은, 노조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며,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연대적 계급성을 확고히 표명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안정노동 투쟁의 독자적 주체 기획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비정규직 노조의 의미에 대해서는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중조직으로서 노조는 그 안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의식화하고 주체화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조가 보여왔던 한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의 활성화는 노동운동 전체에 대해서도 매우 핵심적이다. 정규직 노조나 노동자들의 포섭 가능성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조가 주체화되고 활성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기획의 역할을 하는 활동가 조직이 필요하다. 노조 조직화는 자본의 노동 분할과 그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문제점을 경계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노조라는 시야에 갇히는 순간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을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노조와 함께 하되 폭넓은 시야의 정치적 문제의식과 기획을 제출하고 그것을 투쟁에서 소통하고 결합하는 활동가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 노동자들의 대중적 풀을 꼭 노조로 한정할 이유는 없다. 수많은 불안정노동자들이 노조 조직 바깥에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든 노조 결성이 가능한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은 오히려 극소수이다. 따라서, 노조를 조직할 조건이 못 되더라도 노동의 불안정화와 자기 노동의 존재조건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무수한 노동자들을 묶어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기반 조직일 수도 있고, 회원 중심의 단체일 수도 있다.
--------------------
1) 비정규운동대토론회 '전체토론-비정규운동 5년의 평가와 과제'의 발제문 가운데 철폐연대가 제출하는 발제문이다. 토론회 때 제출하는 발제문은 내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형식이나 분량에서 수정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