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구지역 이주노동자 투쟁은 한편으로 성서공단노조, 대구외노상담소, 근로자선교센터 등을 통해 조직화된 공동체 중심의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의 구심을 형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분쇄와 전면합법화 쟁취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이주공대위-'를 중심으로 한 대구지역 제 단체들의 지지엄호투쟁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강제추방반대와 전면합법화 쟁취, 노동비자 쟁취라는 구체적 슬로건과 목표를 걸고 투쟁하였던, 2004년 이주노동자 투쟁과 관련하여 이주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서는 과정이나 조직화되어가는 과정 등은 각 단체의 내부사정으로 공개적 평가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보류하였다. 다만 2004년은 그 어느 해보다 이주노동자 투쟁이 치열하였고, 그 와중에 대구지역에서도 나름의 실천적 투쟁을 열심히 했다는 자평과 함께 그 투쟁이 이주노동자들의 조직강화에 상승효과를 일으켰다는 일반적 평가 정도를 언급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헌신적으로 투쟁에 복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지원연대의 대오를 더욱 더 굳건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이주공대위가 모범적 실천을 하게 되는 계기가 형성되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 글은 2004년 이주노동자 투쟁과 관련하여 주로 이주공대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며, 이주노동자 조직이나 이주노동자 내부의 문제 등은 일반적인 언급 정도로 그칠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주공대위의 결성배경
2003년 12월 들어 자진출국기간이 마무리되고 단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주노동자들이 속출하고, 명동성당 들머리 등 각 지역별로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이 시작되면서, 대구지역에서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지엄호가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일정 정도 형성되었다.
한편 2003년 하반기부터 '초동모임'이라는 형식의 비공식적 모임을 이어오면서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하여 정세인식을 공유하는 정도의 모임을 하던 몇몇 단체들이 12월을 기점으로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지역의 제단체에게 '공동대책위원회'를 제안하자는 결의를 하게 되었다.
기왕에 나름대로 이주노동자 운동을 해오던 지역의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도 공대위라는 틀을 통해 강제추방 국면을 돌파할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공동대응을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주공대위의 결성 및 초기 활동
이런 정세 인식 하에 이주노동자 관련 공동투쟁 및 대책활동에 동의하는 대구지역 제단체는 1월 26일 출입국 앞에서 발족기자회견을 하기로 하고, 단체의 명칭도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분쇄와 전면합법화 쟁취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원회'로 하여 당면활동을 강제추방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발족식 이후 첫 행사인 공개토론회도 '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분쇄와 전면합법화 쟁취를 위한 토론회 "이제는 어깨 걸고 싸웁시다"로 하였다. 이후 2월 29일 공대위 발족 후 첫 연대집회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대구시내에서 개최하고 강제추방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약 2달에 걸쳐 각 단체가 돌아가면서 대구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강제추방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전면합법화조치를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이후 투쟁 및 활동경과
그러던 중 3월 10일 성서공단 2차 단지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무리한 단속을 진행하고 있는 출입국 단속반 직원들에게 공대위 집행위원장이 항의를 하고 이 와중에 상호간에 심각한 마찰이 생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공대위는 출입국의 불법단속을 규탄하는 수위를 높이는 한편, 항의 면담 등을 통해 단속자체를 자제할 것을 촉구하는 활동 등으로 그 폭을 넓히게 되었다.
또한, 대시민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매주 수요일 대구시내 대구백화점 앞에서 '이주공대위 수요선전전'을 진행하였고, 강제추방반대를 위한 서명, 이주노동자투쟁 지지서명, 이주노동자 투쟁성금 모금, 강제추방 반대/전면합법화 쟁취지지 1인 1만원 후원단 조직 등의 행사를 통해 광범위하게 지지층을 넓히는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후 성서공단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작업 중 과로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한 공동대응, 사업장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중국인 여성노동자의 지하철 투신사건에 대한 공동대응 등을 해 나가면서 강제추방정책이 야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대응활동으로 그 활동의 폭을 넓혀나갔다.
6월 10일 김헌주 공동집행위원장이 3월 10일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되자 공대위참가단체들의 공동투쟁의 결의는 더욱 더 높아졌고,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투쟁의지도 상승하여 매월 1회 대구시내에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매주 수요일 시민선전전을 출입국규탄집회로 전환하여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였다. 연말까지 출입국규탄집회는 19차,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는 6차를 진행하였다.
이런 공동투쟁, 공동대응의 기조 아래 9월에 대구지역 차별철폐대행진 행사 중 '이주노동자의 날' 행사를 공대위의 이름으로 치렀고, 12월 18일 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공대위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한마당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으로 행사를 치루었다.
간단한 약평
대구 이주공대위의 투쟁은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의의는 거두었다고 보여진다. 우선 강제추방을 중단시키지는 못했지만, 참가단체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부각시키고 일정하게 지역전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공대위'라는 틀이 있는 곳은 더러 있었지만 이 틀을 공동투쟁, 공동대응의 틀로 만들어내고 실제로 활동한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고 여겨진다. 이는 공대위 활동의 모범적 사례라는 점에서 이주노동운동과의 관련성 이외에서도 나름의 의의가 있는 활동의 사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2004년 한해동안 이주노동자 관련사업을 자기 단체의 내용으로 안고 고민하려는 단체가 조금씩 늘어났고, 이것이 공대위 활동과 직접적 상관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공대위 활동이 그 고민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의 기획·조직과 관련하여 '이주노동자 대표자모임'을 구성하여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등 이주노동자 주체화에 대하여 일정정도 기여하였다. 이후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투쟁에 대하여 흐름을 같이 하기 위해 '전국투쟁단 관련 이주노동자 투쟁의 주체와의 간담회'를 가지는 등 이주노동자 주체화를 고민하고 조력하는 역할도 나름대로 수행했다.
그러나 활동 중에 드러난 문제점도 많이 있었다. 어느 대책위 못지 않게 파견 집행위원들의 활동은 헌신적이었으나 각 참가단체별 내부적 쟁점화나 혹은 조직화, 독자적 사업화를 고민하고 만들어내지 못함으로 각 참가단체가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 투쟁에 결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분쇄라는 지역적인 공동전선이 형성되었음에도 이를 확장시켜 공세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공대위의 기본 동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진행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지난 하반기 지역적인 투쟁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공대위 성과'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현재의 동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후의 전망과 과제
이 주제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므로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평가가 이루어진 2004년 활동을 토대로 몇 가지 제안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주공대위 활동은 이주노동자를 주체로 세우는 문제가 늘 그 중심에 있어야한다. 이주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는 일을 중심에 놓고 이를 통해 연대를 조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아울러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를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강제추방단속이 일상화되어 버린 지금의 현실을 고려해서 더욱 더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동투쟁을 유지하고 강화함으로써 공대위를 강화해야 한다. 다만, 그 투쟁활동의 내용은 다양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강제추방반대라는 슬로건 이외의 강제추방정책이 유지하고자 하는 산업연수생제도, 고용허가제 등과 관련한 대책활동, 이주노동자관련활동 프로그램 개발 등도 중장기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결국 이는 공대위의 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인 바, 2005년 상반기를 거치면서 대책활동 중심의 공대위를 중장기적 과제를 받아 안는 이주노동자운동 지원연대체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지원단체 몇몇의 고민을 중심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 차원의 공동대응과 과제발굴, 모색 등으로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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