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작년 12월,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중 비수급권자에 대해서 4년후 퇴거조치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발표했다. 이에 노원구 등 영구임대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주민과 지역단체들이 모여 대책위를 구성하였다. 수급권 탈락자뿐 아니라 수급자까지를 포함한 대책위는 단순히 퇴거조치에 대한 반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대아파트제도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아래는 노원대책위에서 실시한 토론회의 발제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지난 2000년 12월 서울시는 영구임대주택 입주자격 탈락자에 대해서 2차례 재계약 후 퇴거시킨다는 내용의 '서울특별시 영구임대주택운영 및 관리규정'을 변경했다. 이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급되는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한다. 즉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기를 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들이 많은데, 영구임대주택에는 이보다 차상위계층이라 할 수 있는 수급권 탈락자 등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영구임대주택 입주자들의 걱정은 매우 컸고, 반발 또한 컸다. 영구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앞으로도 영구히 거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나가서 살 다른 방도를 찾기 어렵고, 현재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이러한 생활기반을 새로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또 나가봤자 주거빈곤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니 또 다시 정책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고 한다.
영구임대주택 수급권 탈락가구의 현황
현재 퇴거 위기에 있는 가구의 현황을 잠시 살펴보면, 2001년 현재 수급권 탈락가구는 영구임대주택 입주가구의 47.5%에 이른다. 거의 절반 가까운 가구를 물갈이하는 것이다.
2002년 1월 24일에서 26일 사이에 노원구 하계9단지에서 한국도시연구소와 한겨레신문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작위로 선정된 167가구 중에서 52가구(31.1%)가 수급권 탈락가구였다. 이들 수급권 탈락가구의 현황을 살펴보면, 가구주의 연령은 50대와 60대가 가장 많고, 가구주가 여성인 비율이 55.8%로 절반을 넘었다. 수급권 탈락가구의 가구주 연령 분포를 나머지 가구와 비교하면 50대에 집중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자녀 세대가 성장하여 18세 이상이 되어 수급권에서 탈락한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득 이외에도 가구특성상 수급권에서 탈락한 경우가 많음을 의미한다.
가구총소득은 월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부터 240만원인 가구까지 있고, 중위값은 50만원이고 평균은 57.6만원이다. 기타 가구의 소득 중위값이 40만원이고 평균은 43.1만원이다. 수급권 탈락가구의 소득이 기타 가구에 비해 조금 높은 편이나 다른 빈곤지역 즉 산동네나 비닐하우스촌의 소득 수준보다는 더 낮다
현재 영구임대주택의 주거비는 중위값을 기준으로 보면 보증금 300만원, 월임대료 5.4만원, 관리비 7만원 수준이다. 매월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와 관리비가 가구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이상인 경우는 44.7%이었다. 또한 전혀 저축을 하지 못하는 가구가 80%이고, 36.5%의 가구가 부채를 가지고 있으며, 부채액을 밝힌 19가구 중 중위값은 500만원이다. 수급권 탈락가구 중에는 10% 내외의 신용불량 가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급권 탈락가구의 가구주 직업을 살펴보면 무직의 비율이 49.0%로 매우 높다. 이것은 비닐하우스촌(29.8%)이나 산동네(35.2%)에 비해서 현격하게 높은 것이다.
주당 1시간도 노동을 하지 못하는 실업 상태의 가구주는 40.4%이고, 18시간 미만의 일을 하는 반실업 상태까지 포함하면 44.2%에 이른다.
서울시 정책의 비효율성
영구임대주택의 정책 대상은 누구인가? 가장 절실하게 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정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대상 계층"을 분명하게 하고 "가장 절실한 필요"에 대응하는 것이 정책을 잘 하는가를 기준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정부가 국민임대주택도 20만호를 짓기로 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린벨트도 풀려고 노력하지 않는가?"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 국민임대주택이라는 것을 짓는다면서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퇴거시키려 하고 있다. 국민임대주택에는 수급권자가 못 들어가고, 이들을 못 집어넣으면 문제가 있으니 있는 영구임대주택을 비워야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이나 서울 통근권에도 많은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장 절실한 필요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가장 절실한 필요를 느끼는 이들을 위한 재정 투자는 하지 않고, 그보다 상위 계층을 위한 주택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효율적인 정책, 형평성에 맞는 정책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수급권 탈락자의 대부분은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데, 이들은 집까지 비워줘야 할 것 같으면 차리리 일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수급권자로 남겠다고 한다. 갑자기 수급권자에서 제외되는 순간 생계지원뿐만 아니라 주택이나 의료, 교육 등의 지원을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되니 차리리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자활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받은 이들도 나가서 취업을 하면 수급권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취업을 못한다고 한다. 정책이 만들어낸 '디스인센티브 효과'이다.
공공임대주택법 제정 필요해
주민들의 반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수급권 탈락가구 중에는 "죽어도 안 나가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까지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4년만 살고 나가라니 막막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면 최소한 현재 보증금의 10배가 넘는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4년간 열심히 저축해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주민들을 퇴거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시는 심각한 행정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서울시의 규칙 개정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단지 현재 사는 사람들이 계속 살겠다고만 주장한다면 집단이기주의라고 여겨질 것이다. 대안은 영구임대주택, 50년 공공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으로 구분되어 각각 특정한 계층이 입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체계를 고치는 것이다. 이것은 영구임대주택이 수급권자들의 동네라는 낙인을 벗어나는 길이고, 현재 수급권 탈락자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탈락자들이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다. 또 영구임대주택에 들어오지 못한 수급권자를 비롯한 절실한 수요자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대료 체계도 주택이 공급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다른 임대료를 내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개혁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 공공임대주택이 가지고 있는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길은 공공임대주택법을 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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