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가족’입니다?
얼마 전 이런 공익광고가 있었다. 빨래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목도리를 건넨다. 아내는 그 목도리를 할아버지께 건네고,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건네며, 추운 겨울을 따뜻한 가족의 마음으로 보낸다는 내용의 광고 말이다. 그리고 광고는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가족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광고를 보며 가슴이 따뜻해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보란 듯이 이 광고를 패러디하며 조롱을 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쇼킹패밀리>가 그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가장 큰 고통이다. 국가는 체제유지를 위한 하부단위로 ‘가족’을 선택해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가족은 국가 권력의 희생물이 되었다. 하기에 누구는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하고, 고통을 참아야만 한다. 아니,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는 것은 조금만 의심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아니라 ‘가장 끔찍한 말’이다.
경순 감독의 영화 <쇼킹패밀리>가 바로 이 ‘혈연중심의 가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가족’에 대한 반대를!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 중 감독인 경순, 카메라를 담당하는 세영, 사진을 담당하는 경은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순감독은 혼자서 딸 수림이를 키우며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수림이는 ‘혈연 중심의 가족’이 아니고서도 경순감독의 친구들(수림은 이들을 이모라 부른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빠 없는 가족’도 가능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와 탐탁지 않은 직업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세영은 독립을 하지만, 영화를 찍고 난 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가족과의 관계형성을 새롭게 한 것이다.
경은은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을 죽을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결혼 뒤에는 자해를 할 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야 했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경은은 희생만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다. 경은은 이혼 뒤 오히려 더 멋진 삶을 살고 있다.
끊임없이 국가가 정해놓은 가족이라는 제도에 저항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는 ‘가족’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또한 이 세 명의 이야기 말고도 호주제, 입양 문제 등에 대해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감으로써 국가가, 그리고 가부장제가 ‘가족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형성하고,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
언제부터인가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한편으로 이러한 주제는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닌 것이 되었다. ‘4인용 식탁’,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가, 직접적인 소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가족 해체’를 이야기했고, 가장 최근 영화 ‘가족의 탄생’이 그나마 가장 직접적으로 ‘가족의 해체, 혹은 재구성’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가족의 탄생’에서는 혈연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구성만을 이야기했을 뿐, 가족이 국가와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은 말하고 있지 않다.
한편, <쇼킹패밀리>는 ‘호주제’, ‘입양 문제’, ‘자식에 대한 과다 교육열’ 등의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풍자하며 ‘가족’의 이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호주제폐지 철폐 집회, 반대집회를 찾아간다. 호주제폐지 반대 집회에서 수염을 잔뜩 기른 한 할아버지는 “호주제가 없어지면 남자들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호주제 폐지의 의견을 전한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호주제가 없어지면 이 자식이 내 자식인지, 저사람 자식인지 모른다”는 등의 자식타령만을 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쇼킹패밀리>는 가족이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수단임을 유쾌하게 그린다.
소위 ‘정상가족’이 아니면 모두 ‘쇼킹패밀리’
가족이 나의 안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이제 이 영화의 자막이 올라갈 때 쯤,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사생활을 고백할 수 있었던 그녀들의 용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말하는 ‘쇼킹패밀리’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자신 역시 ‘쇼킹패밀리’는 아닐런지.
굳이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들의 삶을 통해, 내 주변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 조금만 비틀어 보면 ‘가족’이 그리 ‘따뜻한’ 말이 아님을 깨들을 것이다. 영화에서 경순은 수림에게 묻는다. “너는 이모들이 왜 좋아?”, “가족이니까” 수림이가 말하는 이 ‘가족’,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말처럼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상적인 세계를 한번쯤 뒤집어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요구된다. '가족의 사랑'이라는 말에 숨어 있는 다른 뜻은 없는가 의심해 보는 것이다. (중략) 가족은 당연히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생각 때문에 가족'주의'가 탄생하고, 가족주의의 마법에 걸려 가족을 위해 애국애족(愛國愛族)하려고 온 몸을 바치다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유기당한 것이 결국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인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중략) 가족은 국가 권력의 희생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 가족의 사랑 때문에 가족이 국가 권력의 희생물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왜냐하면 가족 내의 사랑과 애정이라는 것이 워낙 원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이 직장을 잃어도 가족끼리 보듬어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 줄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의 경우 국가 권력이 가부장제 뒤에서 하는 일이다. 이것은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공적인 책임을 가족에게 완전히 전가시키는 국가 체제다. 이것을 우리는 가국체제(家國體制)라고 부를 수 있다.
- 이득재, [가족주의는 야만이다]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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