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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5|1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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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5|12|2006
선언문 속의‘인권’과 2006년 한국의 인권현실

:: 2007-01-22   조회: 1988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지 올해로 58년째를 맞는다. 항간에는 세계인권선언을 “인류가 행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부르면서 기념식이다 콘서트다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지만, 이 날을 마냥 기념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기리고자 했던 정신들, 요컨대 인류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에 대한 약속이 박제처럼 문구로 남아있을 뿐, 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한국사회의 인권현실은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날로 악화되고 있는 한국의 인권현실을 돌아본다.

신자유주의에 저당 잡힌 인권

한국의 인권현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2002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키면서, 자유무역협정, 경제특구 확대, 금융규제의 완화 등을 통해 초국적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만 보더라도 정부는 1월 신년연설을 통해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협상의 선결조건을 밀어붙이기식으로 해결하더니 2월에는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전격 개시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려 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미간에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미국이 지금까지 맺은 자유무역협정 중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농업의 파괴, 교육·의료 등 공공서비스 개방을 통한 시장화 등 그것이 한국 사회 인권현실에 미칠 파장이 크게 점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향한 정부의 공격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2년 전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기간제법 제정안, 파견법 개정안 등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을 내놓더니, 올해 11월에는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을 국회에서 전격 통과시켰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기간제 사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상시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노동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했으며, 중간착취를 합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현행 파견법은 폐지되기는커녕 파견대상 업무에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가 추가되어 노동부가 자의적으로 파견대상 업무를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법이 비정규직 확산을 통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노사관계로드맵’이다. 출범초기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에서 이른바 ‘노사관계로드맵’을 구상한 정부는 올해 9월 민주노총은 배제한 채 한국노총·경총과의 ‘합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공격은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가히 점입가경의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는 2년 전 외국인력 정책의 공공성과 투명성,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로 시행된 지 2년째를 맞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장이동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마저 제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로부터 노예와도 같은 삶을 강요당하는 실정이다. 올해 들어 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한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선정문제도 이런 상황의 연장에 있다. 정부는 올해 9월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운영방침을 세우면서, 여기에 과거 산업연수생제도 시절 각종 송출비리와 이주노동자 인권침해의 주범으로 악명 높았던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등 여러 이익집단들을 편입시키고자 시도했다. 이주노동자인권단체들은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을 두고 사실상 이전의 산업연수생제도가 부활하고 있다며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평화적 생존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군사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한미동맹의 강화와 같은 군사주의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한 빅 뉴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개시’뿐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올해 1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는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역할을 동북아시아의 신속기동군으로 변모시키고 싶어 했던 미국의 구상에 손을 들어 주었고, 이와 함께 한국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함에 있어 핵심적 거점으로 여겨진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은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저항하는 이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의 본질은 한반도를 전쟁기지로 만드는 것이며, 이로 인해 평택 주민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국가폭력을 동원해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5월 4일 행정대집행과정에 정부는 경찰병력뿐만 아니라 군병력까지 동원하였고, 이에 따라 민간인과 군인사이의 충돌도 빚어지게 된다. 5월 4일 이후에는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경찰병력이 상주하게 되면서 이 일대 통행이 전면 제한되기도 하였는데, 이에 따라 대추리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것은 군대, 경찰, 검찰과 같은 기존의 억압적 국가기구뿐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도 펼쳤다. 외부불순세력 개입론, 주민보상 해결론등을 언론을 통해 선전하면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논점을 분산시키고, 명백한 국가폭력을 국가정책 수행을 위한 합법적 공권력의 작용으로 정당화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생존권적 요구에 대한 국가폭력은 비단 평택 주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이미 집시법을 개악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집단행동을 저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완비해오고 있었다.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권한과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개악집시법의 칼날은 주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청주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동자,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대구경북건설노조 등 노동권을 주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정부는 개악 집시법이라는 악법과 살인적인 경찰폭력으로 일관해오더니 급기야 포항건설노동자 하중근씨를 백주에 살해하는 야만을 저지른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신고된 집회에 참석했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 현실이 작년 농민대회에 이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이처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비단 노동자 민중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또한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는 국가폭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해 제압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경찰을 비롯한 억압적 기구들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경찰의 권한과 집행력 강화가 법적 규범의 정비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저항과 불만에 대한 경찰력의 작동이 ‘법치주의’에 조응하는 것으로 포장되곤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는 경제적 격차의 증대가 가져오는 계층 간의 소통 단절, 한 사회를 묶어주는 공통규범의 소멸과 같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의 파괴가 위험과 범죄의 원천임에도, 이의 해결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회 안정을 해치는 위험요소들로부터 안전하게 도시와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수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해 일상적인 사회규범을 대신할 법적 규범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데에 골몰한다.
하지만, 새롭게 정비되는 법률적 규범들은 국가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보다는 국가가 더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기반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전에는 전혀 법적 규율이 되지 않던 부분들이 법적으로 규율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가 강화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법적 규범의 정비는 경찰권한의 확대와 집행력의 강화로 드러나고, 또 사회적 저항과 불만, 갈등에 대한 경찰력의 작용은 이제 준법과 법치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입법과제로 제시된 여러 인권관련 법안들이 표류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배경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각종 입법은 서둘러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반면, 노무현 정권 시기 인권관련 법안들의 개폐는 단 한건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예컨대, 대표적인 반민주 반인권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물 건너간 지 오래고, 사법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의 필요성 때문에 추진된 민주적 사법개혁의 요구도 결국 누더기 법안으로 좌초되고 있는 중이다.
사형제도의 폐지,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과 민주적 운영, 그리고 시설생활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사회복지사업법등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인권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을 수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으로 추진되었던 사회적 차별금지법도 결국엔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좌초되었으며, 재계를 비롯한 자본의 반격은 장애인인권운동이 5년여에 걸쳐 준비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인권옹호자들의 투쟁만이 희망이다.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는 인권현실이지만, 이에 저항하는 인권옹호자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평택에서 자행된 엄청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권옹호자들은 인권운동의 한 방식으로서 불복종투쟁의 전형을 형성해갔고, 또 그 과정에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권리를 인권담론의 영역 안에 위치시켰다.
차별에 저항하는 여러 사회적 약소자들의 투쟁도 인권운동의 영역과 인권담론의 범위를 한층 넓혀나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남 함안의 한 중증장애인이 방 안에서 보일러가 터졌는데도 움직일 수 없어 얼어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촉발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는 서울·대구·인천·충북·울산·경기 등 전국으로 확대됐다. 장애인들은 노숙농성·단식농성·집단삭발과 함께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국 지자체로부터 활동보조인을 장애인의 권리로 인정받았고 조례를 통한 제도화와 예산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으로 낙인찍히면서 질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을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HIV/AIDS 감염인들의 인권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그동안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왔던 감염인 단체들은 올해 에이즈에 사회적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는 에이즈예방법 개정운동을 벌이면서 에이즈인권운동을 본격화시키기도 했다. 감염인단체와 보건의료단체, 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에이즈예방법대응 공동행동은 감염인들에 대한 격리와 통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예방정책을 비판하면서, “감염인 인권증진이 바로 에이즈 예방”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이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도“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추구와 차별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고 외치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운동에 함께 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제정운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성전환자 인권모임이 만들어진 것, 학교 안 권력구조 안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학생인권법’이 발의되게 된 점 등 사회적 약소자들의 여러 의미 있는 투쟁을 올 한해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선언문 속의 ‘인권’이 아니라 현실의 싸움으로

요즘 들어 부쩍 12월 10일을 세계인권선언 제정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진 듯하다. 정부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하는 수많은 기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사회가 인권선진국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러나 과연 세계인권선언에 수록되어 있는 그 무수한 권리들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권리들, 단지 최소한의 권리들만을 모아놓은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는 사람의 수는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 회의적인 생각이 앞선다.
세계인권선언이 액자 속의 권리, 그래서 잠자고 있는 권리가 아니라 부단히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최소한의 지침으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은 현실의 벽을 뚫는 여러 인권옹호자들의 투쟁이 존재할 때 만 가능한 것이다. 2006년 한국의 인권현실은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지만, 자신의 요구를 보편적인 ‘권리’로 정식화하고 투쟁하는 여러 인권옹호자들의 투쟁이 꺼지지 않고 있기에, 그래서 이야기할 수 있다. 오직 민중투쟁의 현장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손상열 |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심포지엄 초청 2008/12/08
  :: [소식]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를 중단하라! 2007/09/18
  ::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비정규법안 관련 의견서 200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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