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효율성의 자기 모순에 빠진 기획예산처
정부는 1998년 이후 현재까지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화두로 '효율성'을 제시하고, 공공부문의 인력을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정책을 추진하면서 각종의 불법지침으로 공공부문의 노사관계를 악화시켜 왔다. 이제는 '효율적'인 공기업이나 정부산하기관을 '효율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억지를 넘어서 정부 스스로 효율성의 늪에 빠지는 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지침이 아닌 기본법을 만들려는 것이다.
지난 5월, 장승우 기획예산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하면서 밝힌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기획예산처가 산하기관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법(안)'을 8월 중에 관계부처와 정부산하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올 해 정기국회에서 제정하려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기획예산처가 정부 산하기관의 예산, 인력, 조직 등을 총
) 공공연맹 기관지 통권 제25호(2002년 8월 호)에 실렸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괄적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법으로 명문화하려는 것이고,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설정하겠다는 것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기획예산처가 추진하고 있는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효율성을 제고한다고 하면서도, 법(안)의 내용이 정부 산하기관의 비효율성을 조장하고 있고, 또한 정부 산하기관과 관계 부처의 효율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산하기관에 대한 효율성의 논리로 정부산하기관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키거나 인력감축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을 법제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2.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의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기획예산처
기획예산처는 이 법(안)이 추진되기 이전에도 예산에 대한 권한으로써 정부 산하기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통제해 왔었지만, 이 법(안)에서는 산하기관의 설치(제5조), 경영목표, 사업계획, 경영실적의 평가(제9∼11조), 조직.정원의 조정(제13조) 등 산하기관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기획예산처에게 보장하고 있다. 산하기관들은 예산기획처를 정점으로 한 중앙관리체계 아래에 놓이게 되고, 그 통제의 중심은 정부산하기관운영위원회가 될 것이다.
이 법(안)은 정부산하기관운영위원회가 정부 산하기관을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정·운영하는 과정에서 정부 산하기관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산하기관운영위원회는 기획예산처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여기에 주요 산하기관 주무부처 차관과 5인 이내의 전문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경영실적평가·평가저조 기관장 해임건의·예산관리기준(예산지침) 등을 의결할 수 있다. 즉 기획예산처는 예산관리기준(15조, 18조)이나 경영평가 시스템(10조, 11조) 등을 수단으로 하여 산하기관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운영은 적지 않은 폐단을 나타낼 수 있다. 특히 정부 조직의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정부 안에 또 다른 정부를 구성하는 형식적 체계, 즉 정부 조직 내부에서 옥상옥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조직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산하기관에 대한 예산, 경영평가, 조직관리 등은 관계부처가 담당하고, 기획예산처는 같은 정부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산하기관에 대한 정보를 관계 부처를 통해 공유하면 되는 것이다.
이 법(안)은 산하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자율적 운영은 보장한다(법 제4조)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산하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법 제9조∼제15조) 이러한 모순된 조항들은 산하기관의 운영에 있어서 많은 비효율성을 양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경영목표 및 사업계획 등에 대한 개입, 경영실적 평가와 연관되는 예산 배정, 조직 및 정원의 존재 여부에 대한 개입, 기관장의 해임 여부에 대한 개입 및 기존 기관들의 개폐와 조직정비에 대한 권한까지 기획예산처에게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영평가를 거쳐 기관장이나 임원을 해임할 수 있고(제11조), 기관의 존속필요성 등을 주기적으로 검토(제12조)하도록 한 조항 등은 일부 기관의 통폐합과 내부 조직 개편 등의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는 조항들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조직.정원 조정시 주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주무부처 장관은 그전에 기예처와 협의해야 한다'는 제13조는 산하기관의 경영평가, 효율성, 예산 등을 수단으로 하여 이제까지 감축된 산하기관의 노동인력을 쉽게 충원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새롭게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권한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 법에서는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효율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산하기관에 대한 기획예산처의 통제권한만을 강화시키려 한다. 만약 정부가 공기업 구조조정의 명분을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중앙집중식 통제에서 비롯된 산하기관 관료들의 부패·무사안일·정경유착 등에서 찾는다면, 이 법(안)은 자율성에 기초한 정부 산하기관의 민주적 개혁을 가로막는 수단이 될 것이다.
물론 자율적인 것과 효율적인 것과의 관계가 서로 조응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것은 정부의 중앙집중집식 통제가 곧 산하기관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업무의 성격과 내용이 서로 다른 산하기관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산하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하락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산하기관 기관장의 자율적 재량은 거의 없어지고, 산하기관은 경영평가를 주무부처뿐 아니라 기획예산처로부터 까지 받아야 하는 이중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감사원의 평가까지 고려한다면, 3중으로 평가를 받는 업무에만 주력해야 할 것이다.
3. 노사관계의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기획예산처
정부 산하기관 노동자들은 이제까지 노사관계의 '이중적 질곡'에서 고통을 받아 왔다. 노동관계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산하기관의 경영진들은 필요에 따라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교섭'을 즐겨 사용하였다. 문제가 되는 사안들에 대해 경영진들은 권한이 없으니까 정부에 요구하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정책에 관여하지 말고 노사관계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이 법(안)은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삼중구조'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 법(안)은 산하기관에 관한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제3조)고 규정하고 있지만, 산하기관의 노동자들은 관계법률뿐만 아니라 이 법(안), 그리고 산하기관의 정관과 사규 등 3중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사측, 정부의 주무 부처, 그리고 기획예산처의 관리와 통제를 동시에 받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권익이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된다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과 투쟁의 대상이 더욱 불명확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 교섭과 투쟁의 대상이 산하기관의 경영진, 소속된 정부 관계부처, 그리고 기획예산처 등으로 분산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안에 따라 혹은 투쟁과 협상을 진행하는 국면에 따라 대상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교섭과 투쟁의 역량이 약화되거나 노사관계 자체가 무력화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노사관계의 효율성이 교섭과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해가 보장되고, 그것을 토대로 질 좋은 공공재화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법(안)은 노사교섭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거나 노사관계를 악화시켜 산하기관 노사관계의 효율성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현재 산하기관 기관장의 재량권을 거의 보장하지 않고 오로지 노사관계의 효율성을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 노사관계의 삼중구조를 구축한다면 노사관계의 비효율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한 권한이 거의 없는 기관장들에게 경영실적만을 독려한다면, 노사관계의 비효율성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4. 비정규직을 효율적으로 양산하려는 기획예산처
이 법(안)이 제정된다면, 기획예산처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산하기관에 대한 경영평가의 잣대를 자의적으로 만들고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이 법과 관련된 정부산하기관은 약 200여 개 사업장인데, 이 사업장에 대한 경영평가의 기준을 기획예산처에서 만들고 그 기준을 산하기관에 강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업무의 성격이 다양한 관계 부처의 산하기관을 기획예산처가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예산처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한 업무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사람을 많이 줄였느냐, 조직을 많이 축소시켰느냐' 등의 잣대만을 가지고 산하기관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98년 '정부출연연구기관육성에관한법률'이 제정되고 난 이후에 기획예산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지침을 제시해 왔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3년 동안 노사간의 단체협상조항과 관련된 내용만을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지침으로 사용하였다. 인원축소의 규모, 연봉제수용 여부, 성과급제 수용 여부, 주요 업무의 외부위탁 여부, 각종 수당의 폐지 여부, 학자금 보조문제 등을 경영실적의 평가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대표적인 경우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관 |
97년 말 |
2001년 9월 |
2002년 8월 |
정규직 |
비정규직 |
정규직 |
비정규직 |
정규직 |
비정규직 |
교통개발연구원 |
91 |
80 |
88 |
81 |
90 |
64 |
노동연구원 |
78 |
- |
69 |
18 |
81 |
24 |
보건사회연구원 |
|
|
103 |
42 |
96 |
63 |
통일연구원 |
94 |
6 |
53 |
27 |
54 |
19 |
KISTI |
179 |
28 |
156 |
26 |
234 |
123 |
노동교육원 |
75 |
6 |
48 |
37 |
52 |
17 |
정신문화연구원 |
222 |
32 |
|
|
126 |
38 |
세종연구소 |
61 |
10 |
61 |
14 |
60 |
15 |
위 표에서는 KISTI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기획예산처의 경영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정규직을 축소하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렸다. 통일연구원, 노동교육원, 정신문화연구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교통개발연구원의 경우, 2001년 9월에 정규직(88명) 대 비정규직(81)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였다. KISTI도 1997년 말의 정규직(179명)에 비해 2002년 8월 현재 정규직(234명)이 55명이 증가하였지만, 그 시기에 비정규직은 28명에서 123명으로 확대되었다.
기획예산처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정부산하기관이나 전체 공공부문으로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정규직의 축소와 비정규직의 확산을 보편화하여 공공부문 노동시장의 유연화 혹은 노동권리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중심에 정부산하기관운영위원회가 서 있다. 정부산하기관이 기획예산처의 경영지침이나 노사간의 단체협약을 약화시키는 평가지침을 따랐는가의 여부만을 확인하는 장치가 바로 정부산하기관 운영위원회이기 때문이다.
5. 사회적 공공성의 권리를 노동자에게
정부 산하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그것을 토대로 한 사회적 공공서비스의 질과 양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법(안)은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효율성'의 증진이라고 강조한다 하더라도, 공공서비스의 주요 수혜자들인 사회 구성원들이 비효율적이라고 하면 비효율적인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공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또한 공기업이 세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 공공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노동자로서 혹은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수혜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산하기관 노동자들의 생산권리와 소비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다면, 공공서비스의 효율성은 증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락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소위 '고객헌장'을 마련하는 것밖에 없는데(제17조), 이는 효율성 중심의 경영평가라는 통제 앞에서는 선언적 규정(제12조 참조)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동자들은 단지 공공정책의 피해자로 전락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공공서비스의 질과 양은 곧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산권리과 소비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과정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생산권리는 바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안정적 노동권리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구성원들은 공공서비스의 공급주체이자 소비주체로서 공공서비스를 누려할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보장되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의 제정으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공공부문의 사회적 효율성을 부정하는 정책이야말로 불안정한 자본주의 체제의 현상과 그 궤를 같이 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회체제의 주객을 전도시키는 대표적인 악법이기도 하다. 노동의 권리가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불안정해질 경우,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사회적 통합성도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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