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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 비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

 

고용노동부에서는 2018년 6월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이하 ‘가이드’)를 제출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유연근로시간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 활용을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잠시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유연근로시간제는 1996년 12월 노동개악 당시 정리해고제, 파견제와 함께 도입된 제도이다. 악법은 국회에서의 날치기 통과, 이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법안의 폐지 등의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1997년 3월, 또 이듬해인 1998년 2월 모두 처리되었다. 그렇게 악법은 노동법 내에 자리를 틀었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이드는 유연근로시간제가 사용자에게는 노동시간의 유연한 활용을 통해 기업 운영을 원활하게 하고, 노동자는 일과 가정의 양립, 그리고 휴식권 확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듯이 설명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에 내세웠던 이유와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에게 유리 혹은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더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졌다. 도입 당시 이 제도의 목적은 명확하게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덜어주는 것’에 있었다.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여 고용관계 및 근로시간제도를 현실에 부합되도록 한다’는 1997년 당시 법안의 제안이유는, 법정근로시간의 범위를 벗어난 노동을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정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해, 연장 및 휴일근로 등 시간외 노동에 대한 사용자의 수당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했다.

 

유연근로시간제를 설명하는 뉘앙스가 달라진만큼 제도의 본질도 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여전히 유연한 근로시간제도란 사용자의 유연한 노동의 활용을 뜻하고, 노동자에게는 임금의 저하와 노동시간의 불안정성 확대, 그로부터 기인되는 생활의 불안정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여전히도 이 가이드는 유연근로시간제의 활용을 통해 주 52시간 노동제 하에서도 추가적 고용없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똑같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이드에 등장하는 사례를 통해 잘 드러난다.

 

‘정상’노동시간의 범위를 고무줄로 만드는 제도 활용 사례

 

<그림1>의 사례는 주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제한되더라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을 통해 동일하게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수기가 4~6월, 8~11월 두 시기 형성되는 사업장에서 1년을 네 단위로 나누어 3개월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경우, 정상근로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으므로 추가적 부담없이 기존의 노동력을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사례(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 26쪽)

 

noname01.jpg

 

<그림2>는 격일제 교대 근무 사업장에서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경우에 대한 예시이다. 여기서는 분명하게 동일한 노동시간을 일하게 하면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정상근로의 범위를 확대하고 연장근로의 규모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설사 이러한 방식이 실제 적용 가능한 사업장이 소수라 하더라도 이 예시는 유연근로시간제를 활용해 추가적 비용 부담 혹은 고용없이도 법정근로시간 제한을 뛰어넘어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간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이다.

 

<그림 2>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사례(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 28쪽)

 

noname02.jpg

 

심지어 해외 파견 등의 사례를 들며, 아예 근무하지 않는 기간과 장시간 노동이 집중되는 기간을 섞어 최대한 장기간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근무시킬 수 있다는 사례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주 52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반복하는 말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만 문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해설에서는 인력난으로 장시간 근로가 지속되고 영업직 대해서는 근무시간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장근로수당이 거의 지급되지 않는 기업의 사례를 예시로 들고 있다. 이 사업장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고, 미지불된 연장근로수당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인원을 늘리지 않고도 연장근로를 없애고 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사례로 보여준다. 이러한 마법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하고, 필요한 시간에 노동력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불되지 않았던 연장근로수당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고, 강화되는 노동강도와 불규칙한 노동시간은 숨겨진다.

 

그 외 간주근로시간제나 재량근로시간제 역시 마찬가지다. 가이드의 일관된 설명은 법정근로시간을 신축적으로 가동하면서 연장근로수당의 부담도 덜고, 추가 고용의 필요도 사라진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유연근로시간제 하에서 발생하는 연장근로 역시 사용자의 승인이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수당 지급의무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이다. 결국 일의 책임은 노동자에게 돌아오고, 수당없는 무료노동은 사용자는 원치않는 노동자의 일방적 노무공급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를 통해 감추고자 하는 것

 

사실 이 가이드가 이전보다 유달리 문제적 내용을 더 담고 있다고 볼 것만은 아니다. 유연근로시간제라는 것이 앞서 말했듯, 애초에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더는 것에 주 목적이 있기에 이것은 이 제도-악법 자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보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나온 이 ‘가이드’가 가진 문제점이다.

 

이 가이드를 통해서 고용노동부는 52시간 노동이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거짓을 다시금 강요한다. 주 52시간제로 변화되었다고들 말하지만, 명백히 현행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 1일 8시간이다. 연장근로라는 것은 예외적으로, 노동자의 동의하에 수행될 수 있다. 그런데 주 52시간제라는 언명은 그 자체로 연장근로를 상시적인 것으로 전제해 버리는 동시에, 애초 노동부의 그릇된 행정해석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주 68시간까지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없었던 것인양 못박기를 한다. 그래야만 주 52시간이 노동시간 ‘단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런치 모드’와 같은 장시간 노동의 부정적인 부분을 드러내면서도, 그에 대한 대안으로 안내하는 것이 고작, 크런치 모드에 이를 지경의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 해주는 유연근로시간제인 것이다.

 

이에 더해 여전히 52시간 노동이 유예된 사업장에서는 ‘68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위법이 아니라고 계속적으로 강조한다. 심지어 유예 사업장에서 탄력적 노동시간제를 시행할 경우 주 최대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노동 16시간을 더해 최장 80시간의 노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덧붙인다. 그래서 실제 현장의 노동시간은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지켜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법정’근로시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경계도 없이 무너진다. 제조업 하청 사업장에서는 물량이 없으면 날아가버리는 것이 노동시간이고, 영업직은 선택적 근로이든, 간주근로시간이든 상관없이 실적을 위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이 노동시간이다.

 

제대로 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자면, 이 가이드가 전제하는 노동시간이라는 핵심적 노동조건에 대한 ‘대등한 노사관계 하에서의 결정’은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연근로시간제의 도입은 제도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동의 합의에 의한 결정’으로 도입될 수 있다. 최소한 취업규칙 또는 그에 준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의견수렴 또는 동의를 거쳐야 하거나, 노동자 과반수 혹은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함의하는 제도적 조치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수준이고, 노사협의회는 사용자에 의해 노동자들도 모르는 사이 페이퍼로만 존재하는 것이 다수인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이러한 전제는 추상적 균형일 뿐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별적으로 빼앗기고 있을 뿐이다.

 

유연근로시간제가 처음 도입된 당시보다 산업구조는 더 복잡화되고,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노동형태 또한 다양해졌다. 그런 지금, 유연근로시간제가 이전과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20년 전 제도가 도입될 때 제기된 비판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노동강도는 강화된다. 노동시간은 불안정해 지고, 노동자는 더 저임금으로 내몰린다.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침범한다. 유연근로시간제로 인해 주어지는 휴식이란 고된 노동의 피로를 겨우 풀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에 대한 보상 역시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거짓을 내세우고, 자본은 마음껏 활용해 왔던 장시간 노동을 차차 빼앗기게 될 것에 저항하고, 그에 대해 정부는 다시 유연근로시간제라는 마술봉을 쥐어 주려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오로지 법정근로시간의 제대로 된 단축만이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조금씩이나마 줄여왔다는 것, 그것이다. 노동자 결정권이 없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만들어 내는 삶의 유연성이란, 노동자에게는 삶과 노동의 불안정성을 의미할 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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