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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자동차검사원도, 정비사도 금속노조!

 

송민영 •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략조직부장

 

 

 

지난 4월 10일, 금속노조는 전국의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하는 자동차검사원과 정비사를 조직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자동차검사정비지회(준)’를 건설했다. 이날 서울, 인천, 경기북부 등 수도권 지역, 대전과 충북 청주 등 경향 각지의 자동차 검사정비 노동자 10여 명이 모여 대표와 총무를 선출하고, 올해 전념해야 할 주요 활동 방향을 결정하였다. 2018년 말부터 자동차검사원을 주축으로 해서 여러 어려운 조건을 헤쳐 가며 유지해 온 자동차검사정비 노동자 모임은 이로써 권리 찾기에 새로운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강렬했던 첫 만남

 

지회(준)를 건설하기에 이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자동차검사정비 노동자와 첫 만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이뤄졌다. 2018년 초, 산업단지에 내건 노동조합 현수막을 보고 연락해온 자동차검사원. 사실 현수막을 내걸 때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노동조합에 연락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산업단지 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겠다고 움직이면서도 막상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딱히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자동차 공업사의 노동자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래서 같이 활동하는 이들과 술자리에서 한두 번 그런 얘기를 꺼낸 것 같기도 한데, 그 이상으로 생각이 나아가지는 않았다. 대개는 자동차 공업사 조직하는 일이 잘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정비 노동자들은 기술을 익힌 후에 자기 이름으로 된 정비소를 차리는 게 꿈인 사람들이라서 노동조합같이 앞에 나서는 일을 꺼릴 것이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 뒤로는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처럼 가리개 바깥의 것은 보지 않았다. 보고 듣고 인지하지 못하면 고민이 생기지도 않을 터, 딱 그 정도 상태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첫 만남에서부터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선, 우리가 흔히 ‘1급’, ‘2급’으로 기억하는 자동차 공업사는 이제 5톤 이상 차량을 다루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동차 종합정비, 자동차 소형정비 등으로 명칭을 바꿔 분류한다는 것부터 교통안전공단에서 하는 자동차 종합검사를 마찬가지로 민간 자동차 공업사에서도 하고 있는데, 그런 사업장을 ‘자동차 종합검사 지정정비사업소’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상담하러 나간 자리에서 오히려 자동차 검사정비 업계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많은 이야기, 내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자동차 검사정비 업계의 불법적 관행과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환경에 대해 울분을 토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담자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이랬다. 원래는 교통안전공단이 담당하는 자동차 종합검사1) 업무 일부를 민간 자동차 공업사, 즉 지정정비사업자에 위탁하여 담당케 하는데, 여기 고용된 자동차검사원은 관련 법령2)에 따라 그 업무 영역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정정비사업자, 즉 자동차 공업사의 사주들이 어떻게든 검사 대수를 늘려 수익을 높이려는 욕심으로 불법-부적격 판정이 마땅한 검사 대상에 합격 판정을 내리도록 종용하고 압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부당한 업무 지시에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경우 은근한 압박부터 노골적인 사직 권고, 심지어 일방적인 해고까지 자행하는 사업주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이야기였다. 내담자 역시 상담 시점에 그런 상황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초기 몇 차례 만남 이후 수개월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사업주의 괴롭힘을 견디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다른 업체로 이직한 상태였다.

 

1) 정기검사+배출가스 관련 검사. 자동차관리법과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등에 따라 수도권과 6대 광역시, 인구 50만 이상인 도시 중 일부 지역(청주, 천안, 포항, 창원, 전주) 등 대기 환경 규제지역에 등록된 차량을 대상으로 함.

2) 자동차관리법 제46조(기술인력의 직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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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가입 선전물(카드뉴스) [출처: 금속노조]

 

뿌리 깊은 불법 관행, 심각한 권리 침해

 

초기 상담부터 이후 이어진 노동자 모임 내내 자동차검사원, 정비사 대부분이 심각한 권리 침해 상태에 놓여 있음을 수차례 확인해왔다. 근로계약서, 연차휴가와 수당, 휴게시간, 토요일 근무 등 근로기준법의 조항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아 고통 받는 노동자의 사례를 꾸준히 확인했다. 영세사업장이라는 이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회사 문을 닫아버리면 어떡하느냐는 이유로 노동자들 스스로 입을 닫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정은 2020년에 금속노조와 <직장갑질 119>과 함께 벌인 실태조사를 통해 더욱 자세하게 확인한 바 있다. 자동차검사원과 정비사, 총 335명의 유효 응답을 기준으로 확인했을 때, 응답자 평균 업종 근속기간이 14.2년인데 반해 직장 근속연수는 ‘3년 미만’이라는 답이 53.7%를 차지했다. 67.5%의 응답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받지 않았다.’라고 응답했으며, 54%의 응답자는 ‘연차휴가를 못 쓰고, 수당도 없다.’라고 답했다. 연차휴가 시기 지정권을 침해당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80%가 넘는 응답자는 법정휴가를 사용할 때 제약을 겪고 있었다. ‘업무상 과실이 있을 시 급여가 삭감’된다고 응답한 비율도 15.2%로 드러났다. 왜 그렇게 불법-부적격 검사가 근절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업주들이 어떻게든 수익을 남기려고 불법을 감수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62.8%에 달했다. 이렇듯 모든 질문에서 자동차검사원이고 정비사고 가릴 것 없이 자동차 공업사에 소속한 노동자들이 겪는 심각한 수준의 권리 침해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춧돌 놓자마자 맞닥뜨린 걸림돌

 

사실 첫 상담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노동조합 외에 달리 무엇을 택할 수 있었을까? 95% 넘는 응답자가 ‘무노조’ 상태라고 답한 만큼 노동자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은 집단적 힘을 갖추지 못한 데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했다. 기술 정보 공유를 주요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정도로는 그 어느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참여자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노동자 모임은 그렇게 애초부터 노동조합으로 결집을 목표로 구성했고, 그에 맞춰 움직이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는 2019년 초에 모임을 시작한 이후 2020년 말까지 생각한 대로 일을 풀어나가지 못했다. 조직 건설 계획이 무산되기를 두 번, 모임 참여자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나마 계속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자괴감과 무력감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업계 동료들에 대한 불신과 원망, 더는 무언가를 도모할 수 없을 거라는 패배의식. 따지고 보면 모임 참여자들이 이런 심정을 느끼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자동차검사원들, 특히나 업종 근속기간이 긴 검사원들의 경우 과거 사업주의 탄압으로 노동조합이 무력화되었던 2000년대 초반의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운 심리가 강하다. 지역별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내에서 소위 ‘블랙리스트’가 돈다는 의구심도 강해서 더더욱 앞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사정이 있었다. 사업주로부터 불법-부적격 검사를 강요당하는 처지에 공분하면서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그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47.4%로 드러난 작년의 실태조사 결과는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이렇다 보니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조차도 선뜻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활동에 나서기 어려워했다. 적극적인 조직화에 나서야 함에도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주·객관적 상황이 그동안 조직 건설을 어렵게 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 상황 역시 조직 건설을 방해해온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2020년 실태조사에서 67.2%의 응답자들이 ‘직장생활 중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는 <직장갑질 119>가 같은 시기에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3.8%의 응답자가 ‘안전하다.’라고 답한 결과에 비춰 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노동자 모임 참여자들은, 자동차검사원이든 정비사든 간에 고객 차량을 살피려면 운전석을 드나들 경우가 잦은데, 고객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상태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기 힘들다는 게 문제라고 증언했다. 이렇게 일터로까지 파고든 코로나19의 공포는, 그래서 그만큼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주저하도록 했다. 어렵사리 잡은 약속이 급작스럽게 취소되기도 하고, 때때로 노동자 모임을 연기해야만 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악조건 가운데 어떻게 하면 사람을 모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그 공포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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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검사원 교육장 앞 선전전. [출처: 금속노조]

 

무엇보다도 금속노조가 자동차 검사정비 노동자 조직화의 전망과 계획을 탄탄히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조직 건설을 어렵게 했던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지난 이 년 동안 금속노조가 노동자 모임 참여자들과 함께 이것저것 벌여온 일은 분명히 있다. 선전전도 펼치고, 실태조사를 벌이고, 결과를 모아 언론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280여 명 회원이 가입해 있는 <자동차검사원119> 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 이것저것 시도하며, 움직여 왔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는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자동차 검사정비 조직사업을 2기 전략조직사업의 주요 계획 중 하나로 공식화했다. 사실 지난 이 년 동안의 활동은 다분히 분절적이었고, 조직화 계획과 전망은 추상적이었다. 고백하건대 지난 이 년 동안 최초 상담자라는 이유로 노동자 모임에 함께하며 안내자 역할을 분담했던 필자조차도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조직해 들어가야 할지 그 상을 뚜렷이 정하지 못했었다. 아니, 어떤 계획은 있었으나, 그것을 금속노조의 체계 안에서 충분히 다듬지 못했다. 사업보고는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조직화 전망과 계획 논의는 충분하지 못했다. 사견임을 전제로, 사실상 이것이 조직 건설을 어렵게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짚어 본다.

 

지역 단위 조직화와 법제도 개선 투쟁 병행

 

한계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금속노조는 올해부터 전국사업장 제조서비스 조직화 영역의 한 부분으로서 전담 전략조직부장을 배치하여 사업 기획과 집행에 집중하고 있다. 예산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직사업의 위상이 공식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금속노조 자동차검사정비지회(준)는 당연히 조직확대를 당면한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전국 곳곳에서 영세 규모 사업장에 잘게 나뉘어 있는 수만 명의 자동차 검사정비 노동자들을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조직하고자 한다. 지역마다 사업조합이 존재하고, 이들이 지역의 임금·고용조건의 평균을 좌지우지하며, 영세사업장의 사업주들을 대리해 일정하게 노무관리 역할을 맡는 점 등을 살펴 노동조합 역시 지역 단위로 조직하려 한다.

 

또 하나, 자동차 검사정비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기타 환경 모두는 사업주의 강한 통제권 밑에 놓여 있음과 동시에 정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또는 환경부 등)가 법령과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에 정부 주무 부처의 법령 개정 및 정책 시행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개입을 강화하여 사업주 일방으로 치우친 흐름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도 금속노조 자동차검사정비지회(준)의 주요한 과제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정비산업기사 자격 취득 방식으로 2019년에 새로이 도입한 ‘과정 평가형 자격 제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개선 또는 폐지의 요구를 집단적으로 관철해내기 위한 투쟁을 펼쳐내고자 한다. 국토교통부가 주도하여 도입한 ‘과정 평가형 자격 제도’는 ‘현장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사업주들의 민원을 전적으로 수용한 제도이다. 기존의 자격 취득 기준보다 완화하고, 자격 취득에 필요한 기간도 단축하여 더 많은 이들이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사업주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 사업주들이 기존보다 낮은 임금 수준으로 구인광고를 내고, 불만을 드러내는 노동자들에게는 ‘맘에 안 들면 나가라. 사람은 많다.’라는 식으로 겁박한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법제도의 변경으로 노동자들은 임금과 고용에 있어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와 맞서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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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투합’ 자동차 검사정비 노동자 지역 모임에 함께한 노동자들의 인증샷. [출처: 송민영]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재 금속노조는 전국 곳곳의 지역지부와 함께 주요 지점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자동차검사정비지회(준)의 출범을 알리고, 노동조합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다. 다행히도 현수막을 보고 문의해 오는 노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불안한 시선과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들이 금속노조를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노동조합’으로 여기게 할 수 있을까? 하반기에는 노동권 사각지대인 현장을 바꾸기 위해서 근로기준법 준수 캠페인도 펼쳐 볼 생각이다. 잘 될까? 뭘 준비해야 하지? 질문은 길어지고, 그만큼 답을 찾기 위한 걸음 역시 오늘도 이어진다.

 

그야말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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