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조회 수 1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철폐연대와 함께하는 2021년 동향

 

 

1. 정부 ㆍ 국회 동향

 

● 코로나19 위기 속에 부족하기만 한 정부 정책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정부 정책도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매 시기 지원 정책은 턱없이 부족하고 제도적 정비 역시 매우 더딘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권리의 보장과 확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시혜적 지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은 제도의 설계를 더디게 하며 그 한계를 긋는 것이 우선한다.

가장 먼저 특수고용, 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 등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 등으로 최소한의 생계유지 수단을 갖지 못하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고, 이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정책적 언명으로 2020년부터 사회적 이슈를 형성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예술인과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제도 개선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2021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예술인, 특수고용 고용보험제도는 사회보장으로서 기능의 충실함보다 비용적 측면이나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아 임금노동자와 차등을 두어 요건을 강화하는 것에 더 공을 들였다. 고용보험의 확대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분명 있지만, 오히려 임금노동자가 아닌 데 따른 페널티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이를 권리 확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필수업무 종사자 지원에 대한 제도적 논의도 진행되었다. 재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노동에 사회가 시선을 두면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 이른바 ‘필수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가 강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 ·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1년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해 11월 19일부터 시행되었다. 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처음 시작한 성동구 사례로부터 1년여 지난 뒤에야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지원위원회’를 통해 대상 범위 및 지원 계획 등을 수립해야 하는데, 아직 해당 위원회의 활동이나 논의에 대해 확인되고 있는 바는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무엇보다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높였고,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정치권의 논의도 시작되었다. 4월부터 시작된 논의 끝에 12월 22일 보건복지부에서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추진계획’ 밑그림이 나왔다. 2022년 상반기에 추진방향과 지자체 대상 설명 및 추진계획 마련을 통해 7월부터 시범사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그를 위해 예산 110억 원이 복지부 예산으로 편성되었고, 지원금액은 최저임금 일액의 60% 수준인 일 4만 3,960원 수준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3년에 걸친 단계적 시범사업을 통해 상병수당 도입의 실증적 근거와 사례를 축적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현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서면결의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 발표되자마자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입원을 하는 경우 수당 대기기간이 3일이지만 입원 여부와 무관한 지원 모델의 경우 대기기간을 7일, 14일로 길게 설정했고, 보장기간도 ILO ‘상병급여협약’에서 제시하고 있는 최소 52주보다 훨씬 짧은 90일에서 120일 수준이다. 무엇보다 4만 원 남짓한 보장 수준이 문제다. OECD 대부분 국가들은 이전 소득의 60%를 보장하는 데 비해 시범사업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장액을 설정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회의 여러 부분을 들추었고, 그 속에는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던 많은 노동의 모습들이 있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 등 기업 차원의 복지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은 너무도 많았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줄어드는 소득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고, 그렇게 일자리를 잃거나 자영업자가 영업을 이어가지 못할 때 생계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보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위기가 아니라,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위기인 셈이다. 그렇기에 특수한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진 문제로 생각하고 단기 처방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전부터 존재해 온 권리를 경계 짓고 배제하는 구조를 허무는 것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 보호라는 이름의 법 개정 및 제정 실태

 

2021년 한 해에도 다수의 법률이 개정·제정되거나 시행되었다. 주요하게는 1월 고용보험이 특수고용 노동자에게까지 확대되는 고용보험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지위로 인해 고용보험의 적용 확대에 대한 요구가 지속되어 왔으나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피해가 큰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정장치 마련이라는 강력한 요구를 정부와 국회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1차적으로 2020년 6월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개정이, 2차적으로 2021년 1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고용보험 적용범위의 확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개정이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규모를 고려하였을 때 적용방식에 있어 아쉬움이 크다. 이번 개정은 그간 논의과정에서 고용보험의 정의규정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원칙적으로 고용보험이 적용되도록 하자던 논의를 후퇴시켜 특례규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로써 특수고용 노동자가 어디까지인지, 당연적용에도 불구하고 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할 사용자의 책임이 어떻게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을 것인지, 수입기준을 80만 원으로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저임금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등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어 후폭풍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4월에는 2020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던 유연근무제 개정사항이 시행되었다. 시행된 내용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신설, 그리고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기존 1개월이던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까지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라는 유연근무제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과 그 시행은 2018년 시행된 주 52시간 상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개정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따르면 한 주 최대 52시간 근로상한에 더해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가 가능하며, 해당 연장근로에는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특정기간 주 64시간 노동이 연장근로수당 없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법률상으로는 건강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영 시 항상 필요한 조치가 아니며, 특별연장근로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한편 현재 주당 64시간의 노동은 과로사가 인정될 수 있는 장시간 노동이다. 즉, 이번 개정법안의 시행은 ‘과로사 조장’이라고 할 수 있기에 조속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어서 5월에는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필수노동자 지원법률’)이 제정되었으며, 6월에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노동자법’)이 제정되었다. 우선 필수노동자 지원법률은 그간 필수 업무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알리고, 개선 대책을 요구해 온 투쟁의 성과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택배 등 운송 노동자, 돌봄 노동자, 보건의료 노동자, 환경미화 노동자 등에게 희생만 강요될 뿐 실질적인 지원도 대책도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해당 법률에서 특정시기 업무의 중단이 어려운 필수 업무를 지정하고 지원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상 지원을 해 줄 테니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강요로 작용될 여지 또한 충분하다. 즉, 해당 법률을 이용만 할 뿐 필수노동자에 대한 존중도 보호도 허울뿐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호라는 이름의 법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사노동자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근로기준법상 적용제외 규정으로 인해 가사노동자들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없었던 서러움을 해당 법률을 통해 일부 덜어낼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사노동의 노동관계법 적용의 문제는 근로기준법상 적용범위에 있어서 가사노동자를 적용제외했던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자성 회복이라는 원칙의 구현을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법률 제정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1년 10월 직장 내 괴롭힘 규정에 대한 일부개정이 이루어졌다. 2021년은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시행된 지 햇수로 3년에 접어드는 해인데, 이번 개정은 그간 직장갑질119를 중심으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한계를 알려 낸 성과이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인지한 경우 사용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이를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사용자가 피해 노동자의 보호 요청에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가해 행위자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이 괴롭힘이 빈발하는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은 문제, 가해자가 노동관계 외 제3자인 경우 등을 포괄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 노동자가 고용노동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여도 근로감독관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거나 제대로 구제를 받지 못하는 등 제도적 문제가 여전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개선대책이 조속히 필요한 상황이다.

 

 

2. 특수고용 ㆍ 간접고용

 

●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 계속되는 투쟁

 

2020년 7월 대리운전노조는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지 428일 만에 고용노동부로부터 필증을 발급받아 전국단위 법내노조가 되었다. 이후 대리운전노조는 당연하게도 카카오모빌리티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신들은 중개 플랫폼일 뿐 사용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지노위를 거쳐 2021년 4월, 중노위는 대리운전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낸 노동쟁의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 종료를 결정했다. 이로써 대리운전노조는 법적 절차를 거쳐 쟁의 요건을 확보,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플랫폼 노동자 최초 사례로 기록된다.

대리운전노조는 중노위의 결정이 대리운전노동자의 노조법상 권리와 카카오모빌리티의 교섭 의무를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법에 따라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벌였다. 그러다 2021년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플랫폼 기업의 갑질 문제가 다뤄지고 플랫폼종사자법안에 대한 현장의 반대와 사회적 압력에 밀린 결과, 카카오모빌리티는 장철민 민주당 의원의 중재로 1년여에 걸친 단체교섭 거부 행보를 중단하고 대리운전노조와 성실교섭 협약을 체결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플랫폼 노동자인 라이더들의 상황은 어떨까? 2021년 2월 라이더유니온은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라이더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앞서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을 위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신청서를 내면서 쿠팡이츠와 쿠팡플렉스 배달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독립계약자라고 기재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근로자라고 확인한 것에 대해 쿠팡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들은 언제든 노동자성이 부정되고,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 험난한 시간을 겪어야 했으며, 노조 설립 이후엔 단체교섭에 난항을 겪는다. 현재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이츠를 상대로, 대리운전노조는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교섭이 진행 중이다.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려면 반드시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 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 자회사라는 기업의 꼼수, 노동자에게 죄를 묻는 검찰

 

2021년 7월, 현대제철은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이 100% 출자한 3개 회사에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정규직의 80% 임금을 보장하는 대신 불법파견 소송 포기 및 이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정하는 조건이었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현대제철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선 것이라며 호평했다.

그러나 자회사 채용이라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불법파견 문제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불법파견 소송자는 제조업 내 최대 규모인 3,228명에 달한다. 2019년 순천공장 157명은 고법에서 승소하여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2020년과 2021년 고용노동부는 순천공장과 당진공장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정부의 시정명령과 법원의 판결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회사라는 ‘간판만 바꾼 하청사’를 카드로 내놓은 것이다.

2021년 10월엔 검찰이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아사히글라스, 자동차판매대리점 등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총 징역 22년 6개월이라는 형량을 구형했다. 2004년 현대·기아차, 2005년 한국지엠, 2017년 아사히글라스는 고용노동부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불법파견을 저지른 회사가 아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죄를 물은 것이다. 법원의 판결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대로 고용노동부는 즉각 직접고용 시정명령하라고, 수십 년 동안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해서 막대한 이익을 본 재벌 총수들을 처벌하라고,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을 뿐인데 돌아온 건 형사처벌이었다.

이렇게 재벌은 자회사라는 꼼수로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을 피해 가고, 검찰은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죄를 물리고 있다. 이제 불법파견 문제는 몇몇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접고용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고용의 구조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간접고용 철폐, 파견법 철폐라는 익숙한 구호가 답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근무했던 이재학 PD는 자신을 비롯해 프리랜서 PD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강제로 하차당했다. 부당해고를 당한 이재학 PD는 근로자지위확인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당한 뒤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년여 뒤 2021년 5월, 법원은 이재학 PD가 CJB청주방송의 노동자였으며 부당한 해고를 당한 것을 모두 인정하였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투쟁한 결과였다.

이재학 PD가 노동자로 인정받기 두 달 전, 2021년 3월 중노위는 코너 개편을 이유로 10년 동안 일하던 프로그램에서 해고당한 MBC 보도국 작가 두 명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최초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2021년 12월에는 YTN과 프리랜서 계약을 한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와 편성 PD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었다. 방송사들의 프리랜서로 위장한 고용의 문제가 지역과 방송국을 가리지 않고 전면화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2021년 8월에는 지상파 3사(KBS, MBC, SBS) 동시 근로감독에 대해 방송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2021년 8월에는 공영방송인 KBS와 MBC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KBS와 MBC는 교섭이 아닌 협의체를 통해 해당 사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전달해 왔을 뿐이다. 특히나 MBC는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판정이 잇따르자 계약이 끝났다는 명목으로 해고를 일삼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이제 작가, 스태프, 아나운서, 피디 등 프리랜서로 호명되는 방송 전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사례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과제는 소송을 통한 개별 노동자성 인정을 넘어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노동자성 인정으로 확대하는 것, 그리고 이들 노동자들에 대해 방송사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질 수 있게끔 투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3. 공공부문 비정규직

 

● 자회사 전환에 맞서 계속된 투쟁

 

공공부문 자회사 전환에 맞선 투쟁이 2021년에도 이어졌다. 2021년에는 4년째 투쟁을 이어 오던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7월 중순 시설, 경비 직종 등을 중심으로 파업을 진행했고, 8월 초에는 가스공사 생산기지를 지키는 소방대원의 투쟁이 진행되었다. 소방직종의 경우 정규직 전환뿐만 아니라 용역회사를 상대로 한 임금인상, 교대제 개편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52시간 상한 노동시간제에 따라 교대제를 변경하면서 인력 충원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청인 한국가스공사는 갑자기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요구하며 파업권을 위축시키려 들기도 했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환협의는 지지부진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생명 안전과 직결된 분야만 일부 직접고용을 하고 다른 업무 노동자들은 자회사로 전환하며, 전환에 있어서도 직접고용은 공개경쟁채용을, 자회사 전환은 제한경쟁채용을 하고자 했다. 대량해고가 발생하는 방식이기에 노동자들은 그에 맞서 계속 투쟁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 무려 다섯 번의 파업을 진행해야 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결국 1,4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막아 내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투쟁의 의미들을 남길 수 있었다. 직접고용 요구를 관철하지 못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탈락 없이 전원이 자회사로 함께 전환될 수 있었고, 소방직종에서 일방적으로 삭감되었던 월급을 회복하는 것과 처우개선 논의 틀도 마련하는 성과를 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도 소속기관 전환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2021년 2월부터 8월까지 세 차례에 걸친 파업투쟁을 전개했고, 그 주된 요구는 직접고용 전환이었다. 1단계 전환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한 타 공단과 달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민간위탁이라는 이유로 전환을 배제했었다. 노동자들의 대응은 우선적으로 민간위탁사무협의회에서 직접고용 전환 결정을 이끌어 내는 것에 맞추어졌지만 그에 이르지는 못하고 소속기관 전환으로 논의가 마무리되었다. 소속기관의 경우 자회사에 비해 형식적으로 원청에 책임이 더 부담되어 있는 것으로 보지만, 분리 운영이라는 점에서 간접고용 구조의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전환을 요구했던 가장 큰 이유가 일원화된 조직 운영을 통해 공공성을 갖추는 것에 있었던 만큼 소속기관 전환이라는 결과는 아쉽다. 하지만 이제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절차들을 밟아야 하기에 남아 있는 투쟁의 과제에 더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두 기관 모두 정규직 전환을 위한 구체 논의가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사공동태스크포스에 대응해야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전환 논의 과정에서 고용승계와 처우개선, 노동강도를 악화시키는 인센티브제 폐지 등의 주요 과제를 풀어야 한다. 큰 산은 넘었지만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 공무직이 차별적 지위의 다른 이름이 되지 않게 하는 투쟁이 필요

 

2020년 3월 출범한 공무직 위원회는 공무직 등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및 처우, 인사노무관리 기준 등에 대한 통일적 기준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여러 쟁점을 확인하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3월 2일 중앙행정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과 공무원 간 임금격차가 해소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임금 기준과 재원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각 부처는 공무직위원회 산하 발전협의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의견서를 보냈고,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권고 불수용’으로 판단, 7월 15일 재차 권고의 이행을 촉구했다.

공공부문 공무직으로 일하는 현장노동자들과 공무원 간에는 직무, 임금, 수당에 있어서 차별이 큰 상태이다. 공무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9급 공무원 대비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며, 공무직 임금은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편성되어 사업이 축소되거나 없어지면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재입사하는 형식이 되기도 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공무직위원회 임금협의회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계 보장 및 차별 해소를 위해 직무와 무관한 수당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지급하고, 격차 해소를 위한 예산 반영, 인건비 예산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정작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무급이 도입된 결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설계된 직무임금체계로 인해 저임금 상태에 놓이고, 임금격차도 더 확대되고 있는 상태이다.

공무직위원회는 8월 31일 「공무직 인사관리 가이드라인」 및 「공무직 임금 및 수당 기준 마련 계획」 등을 심의·확정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했다. 그러나 노정합의를 통해 첫 성과를 도출했다는 정부의 자찬과 달리 노동자들은 정부가 차별을 해소하기는커녕 직무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의도하며 공무직위원회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를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실질적인 처우의 개선은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데, 2022년 정부 예산에서 차별을 해소할 만한 충분한 예산반영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권고한 차별 해소를 위한 예산 배정도 없다. 또한 2021년 말까지 임금, 수당 및 담당업무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이를 통해 ‘공무직 임금 및 수당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나 정규직에 대해 일정 정도 차별화된 임금을 공무직의 임금으로 설정하는 저임금화의 바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무직위원회 출범 후 정부가 얻은 성과는 명확하나, 노동자들이 찾을 수 있는 개선의 여지는 너무도 적다. 공무직은 겉으로는 안정된 일자리로 여겨지지만 차별과 인력 부족, 저임금화에 바탕한 직무임금 도입 시도로 실질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이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노동자들이 공무직의 법제화를 통해 권리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조건 차별에 기인한 공공부문 노동자로서의 지위 자체의 차별에 보다 주목하고 권리 상태를 개선해 나가는 투쟁이 이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간접고용 확산 속에 잇따른 해고

 

공공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고용, 특수고용의 확산이 2021년에도 계속되었다. 그로 인해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불안정해지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2020년 5월 11일 ‘코로나19 위기’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강행한 아시아나케이오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증발된 대표적인 해고 사례이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 자회사인 아시아나에어포트로부터 기내 청소와 수하물 분류 및 운반 업무를 재하청받아 수행하는 지상조업 2차 하청사이다.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곳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이사진으로 재직 중인 공익법인 금호문화재단이다.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사태는 2020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측이 최소한의 해고 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당해고라고 판정한 데 이어, 2021년 8월 서울행정법원에서도 중노위 재심판정을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아시아나케이오는 경영위기가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복직 이행을 줄곧 거부하고 있다. 실질적 사용자인 금호문화재단이 나 몰라라 하는 동안, 아시아나케이오는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1월 4일자로 농성 투쟁 600일을 맞이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도 부당해고 사태가 있었다. 경남 김해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는 15명의 청소년 상담사들이 단기계약직으로 일해 왔는데, 재작년 12월부터 작년 4월까지 총 4명이 계약연장을 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해 온 노동자들이었다. 공공운수노조 경남지역본부 등에 따르면 이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 2단계에 해당하는 전환 대상자였다. 더구나 같은 도내 창원, 진주, 사천시 상담사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 절차를 마친 상황이었는데도, 김해시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강행규정이 아니며 지자체 재량사항임을 내세웠다. 지자체가 절차상 위법한 것이 없다는 명분을 앞세워 청소년 상담사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자행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산하기관인 우체국물류지원단에서는 2021년 3월 기간제 노동자들의 집단해고가 예고되었다. 우체국물류지원단은 2008년 8월 사업 개시 이후 전국 우편집중국 및 수도권 4개 물류센터에 도착한 소포 우편물을 행선지별로 구분, 발송하는 업무를 우정사업본부에서 수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체국물류지원단이 전국 물류센터 기간제 노동자 115명 중 만 24개월 근속에 다다른 노동자 27명에게 3월 말 계약만료를 통보한 것이다. 그동안 우체국물류지원단은 우정사업본부의 택배 물량 수급 정책에 따라 가용 인력을 신축적으로 운용해 왔다. 소포 우편물 분류 작업에 1개월 혹은 2개월, 3개월 단위로 계약연장하는 기간제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사용하다가, 비수기에는 대거 계약해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시 채용과 해고를 되풀이하는 식이다. 이처럼 우정사업본부 산하기관이지만 소포구분업무 수수료를 통한 인력운용만 하고 있는 우체국물류지원단은 사실상 용역업체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 우체국물류지원단지부는 사측과의 면담을 통해 계약만료를 2개월 보류하고 노사 합동으로 물류센터 소요 인력을 산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쪼개기 계약 등의 꼼수로 고용불안을 반복적으로 초래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도록 만드는 간접고용 구조를 바꿔내는 과제를 우체국 물류노동자들은 안고 있다.

 

 

4. 노동안전

 

●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사고 가장 많아

 

고용노동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산재 사고사망자는 총 790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질병 사망자를 포함하면 2021년 한 해 동안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는 1,961명에 이른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이 401명으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이 174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사고 사망의 대부분은 떨어짐, 부딪힘, 깔림, 끼임과 같은 물리적인 충돌이 일차적 원인이었다. 이는 충분한 예방과 예측을 할 수 있는 사고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안전관리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규모가 50인 미만 사업장(42.9%)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사고사망자의 다섯 명 중 네 명은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고,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더하면 전체 사망자의 80%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2021년 산업재해 예방사업 예산을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리면서 산재 사고 사망을 700명대 초반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도 2022년까지 산재 사고사망자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본부까지 신설하면서 요란했던 정부의 감축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이는 근본적 원인을 알면서도 외면한 결과라는 비판이 크다. 정작 가장 많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책이 크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도 50인 미만 사업장을 2024년까지 적용 유예하고 있고, 5인 미만은 아예 제외했다. 이처럼 법과 정책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는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 대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수십 년째 중소영세자본의 앓는 소리에만 귀 기울인 채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해 왔다. 기업이 스스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며 관리·감독보다는 지도·지원을 핑계로 사실상 방치해 왔다. 그러면서 거의 해마다 획기적으로 산재를 줄이겠다고 정책을 발표했지만, 현실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50인 이상 사업장이 스스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자율점검표를 보급하고, 50~299인 기업을 대상으로 민간 전문기관을 활용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진단·컨설팅 지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이 산재 사망 감소를 위해 어떤 실효를 거둘지 알 수 없다. 새로울 것 없는 재탕 성격의 대책을 그래도 믿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먼저여서는 안 된다는 말은 수천 번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체 산재 사고사망자의 80%가 죽어 나가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진짜 대책이 절실하다.

 

● ‘기업’이 빠진 ‘중대재해처벌법’, 제대로 된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27일 시행된다. 노동계를 비롯해 산재 피해 유가족들이 수년간의 투쟁으로 만들어 낸 성과이지만 정작 국회 논의 과정에서 온갖 구멍이 뚫린 누더기 법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시행 전이지만 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김영배 의원은 각각 5월과 6월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정의당도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거대 양당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모양새다.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볼멘소리도 높다. 보수언론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최고경영자(CEO) 개인을 형사 처벌한다”라며 과잉 입법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엄벌 위주로 처벌한다고 해서 산업 현장 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업 경영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경총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해설과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구축 방안 등을 담은 ‘안전 경영 가이드북’을 발간해 부분별 대표를 세우는 방식의 ‘우회 경영’을 제시하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들이 말하는 것처럼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제정 이유만 보더라도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 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기업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게 하고, 경영의 중심에 안전을 두게 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주된 배경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 사고 비율은 해외 주요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사고사망 만인율을 보더라도 2019년 기준 일본과 독일은 0.14, 영국은 0.04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0.46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 책임에 대한 처벌은 매우 낮다. 산재 사망 사고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 징역이나 금고형으로 이어진 경우는 2.93%에 불과하고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쳐 왔다. 이처럼 오랜 기간 기업 운영에 있어 불가피한 희생으로 인식되면서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던 낮은 안전 인식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그마저도 중대재해처벌법이 담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너무 많다. 직업성 질병은 급성중독이 아니면 처벌 대상이 아니고,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의 문제도 다루지 않고 있으며, 발주처에 대한 처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업’이 빠진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산재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까지 적용이 유예됐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법 개정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보이는 행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일축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있는 법부터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말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책임은 엄격해야 한다. 특히나 생명과 직결되는 책임이 무겁지 않다면 참사는 반복된다. 사람이 계속 죽는다면 그 시스템이 문제이고, 그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그것은 분명 살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일터에 내재한 구조적 위험을 집어내고 예방대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법을 더 단단히 정비하고, 기업들이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 다시 발생한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현장실습제도 존속해야만 하는가

 

2021년 10월 6일, 전남 여수 홍정운 학생이 현장실습 중 잠수 작업을 하다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현장실습 중인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첫 사고가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파견형 현장실습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매년 발생하고 있음에도, 그 대책은 빈약하고 모든 슬픔은 오롯이 유족에게 전가된다. 학생을 파견시킨 교육당국과 학교는 책임을 회사에 전가한 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며, 회사나 책임자는 미미한 처벌을 받을 뿐이다.

2021년 10월 20일 교육부는 전남교육청·고용노동부와 함께 홍정운 학생 사망사고에 대한 공동조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 과정에서 관련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역시나 책임을 회사에 떠넘겼다. 사고 당시 고 홍정운은 잠수 자격면허나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따개비를 제거하는 잠수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단순히 회사에서 자격증이나 경험도 없는 현장실습생에게 위험한 작업을 시켰다는 실수가 아니다.

학생을 현장실습장으로 파견시키는 교육부나 학교는 현장실습생이 하여야 하는 업무에 대한 기초적인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았으며, 업무를 어디까지 시킬 수 있으며 업무의 숙련을 위해 필요한 실습 시 어떠한 제한과 보호가 필요한지 점검한 바도 없다. 현장실습을 시키는 회사는 현장실습생을 실습시킬 능력이나 여력도 없었고 부족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 값싼 노동력을 고용했을 뿐이었다. 이는 비단 이번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현장실습이 이번 사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점검이나 대책 없이 값싼 노동력으로만 치부된다.

2021년 11월 1일 국민권익위원회도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사고 현장 점검 결과’ 발표를 통해 현행 현장실습제도의 문제로 △기업들이 현장실습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 △근로감독관이 실습기업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점, △관리 대상 기업 수가 많아 1인 영세업체는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린 점 등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신규 또는 영세업체일수록 사전 교육과 사후 점검을 통해 중점관리하고 현장실습 기업 정보를 고용노동지청과 공유해 교사와 근로감독관이 주기적으로 합동 현장점검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교육 일선과 현장을 아는 대부분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도 무용지물인 상황에서 현장실습생이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난 20년간 수많은 현장실습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현장실습제도에 대해 수많은 일선 교사와 노동조합, 노동자들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여 왔다. 그러나 현장과 당사자의 목소리와 달리 학교나 자본, 회사에서는 제도를 조금 손봐서 사용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직업계 고등학교의 존치라는 교육청의 입장과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고자 하는 자본의 입장이 손잡은 결과이다. 그 피해는 현장의 현장실습생이 오롯이 부담한다. 교육청은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팔지 말고 다양한 직업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며, 회사는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채 허드렛일 또는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공석이 된 위험 업무에 투입될 값싼 노동력으로 노동자를 취급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파견형 현장실습 없이도 직업계고의 존치는 가능하며,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노동자를 보호하는 회사가 제대로 보호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실습이라는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며, 현장실습제도가 폐지되어야만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도 멈추게 될 것이다.

 

 

5. 기타 노동자 투쟁

 

●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빌미로 침해된 집회시위의 권리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앞세운 집회시위 권리의 제약이 지속되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방역 조치는 필요 불가결했지만, 그를 이유로 한 기본권 제약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면접촉이 코로나19 확산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집회시위를 엄금하는 등 시민들이 함께 모여 말하고 행동할 권리를 억제해 왔다. 그리고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생존권 위기에 처한 이들이 도심 집회를 개최하면 어김없이 불법 딱지를 붙여 감염병 확산의 주범인 양 몰아갔다.

지난해 7월 3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7월 22일 건강보험고객센터 직영화-직접고용 쟁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3차 결의대회에 대한 전면금지와 탄압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9월 2일 서울경찰청은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하고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불법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기습적으로 강제연행하여 구속시키기까지 했다.

이처럼 집회시위 권리와 생명ㆍ안전의 권리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대치시키면서 일체의 대중행동을 금지하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노동계와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숱한 비판을 받아 왔다. 집회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과 차별 상태의 시정을 요구하기 위한 의견 표출의 장이기도 하다. 이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능사가 될 수는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안전을 지키면서 집회시위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2021년 끊이지 않고 외쳐졌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0만 행동으로 국민동의청원 시작 22일 만인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 명 동의 요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국회는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는 말로 심사기한을 11월 10일까지로 연기했고, 이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전국 16개 지역 순회 토론회, 온라인 농성, 오체투지, 부산에서 서울을 잇는 500km 도보 행진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쳤고, 지금은 국회 앞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지난 14년 동안 네 차례의 임기만료폐기와 두 차례 철회라는 수난을 겪으며 나중으로 밀려난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나 국회는 도보행진이 서울을 향해 오던 11월 9일, 다시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만료일인 2024년 5월 29일까지로 연장했다. 사실상 법 제정을 외면하고, 회피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결정이었다.

최근 12월 17일(현지시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언론브리핑노트를 통해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는 모멘텀을 활용해 국제인권법이 보호하는 다양한 (차별 금지) 이유를 포괄하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평등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히며, 대한민국 국회에 포괄적인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특히 “포괄적 평등법안의 채택은 시급하며 이미 오래전에 그 기한을 넘겼다.”고 강조하며, 국회의 책임 방기를 비판했다.

언론브리핑노트에서 언급하듯,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취약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을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이 외면되어서는 안 되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모두를 위한 권리가 되지 못하고 특정 주제로 협소화되거나 왜곡되는 것이 현 실태이며,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하고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 속에 책임 방기를 감추어 온 국회의 탓이 다분히 크다. ‘연내 제정’을 외쳐 왔던 목소리가 부디 온전히 그 답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요구

 

현행 근로기준법은 제11조(적용 범위)에서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하며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일부 규정만을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상한제 및 해고 제한을 적용받지 못해 장시간 노동과 상시적 해고의 위험에 처해 있고, 연장·야간·휴일 근무에도 수당을 지급받기 어려우며, 직장 내 괴롭힘에도 보호받지 못한다.

또한 근로기준법뿐 아니라 공휴일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배제당하고 있다. 지난 6월 공휴일법이 제정되면서 주말과 겹치는 모든 공휴일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게 되었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휴일을 적용받지 못한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재해 사망 비율이 전체의 20%나 되는데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못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 전체 노동자의 25%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사업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업장의 영세성과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들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단계적 확대 적용을 권고했고, 2018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관련법 적용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TF를 주문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은 폐지되어야 하며, 근로기준법 단계적 확대 적용이 아닌 전면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폐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전태일법’으로 입법청원되었다. 2021년 노동시민사회는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을 구성해 모든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여전히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점점 더 공고화되고 있다.

 

 

6. 이주노동 ㆍ 고용허가제

 

● 고용허가제 시행 17년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2021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17년을 맞이한 이주·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제한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열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주·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이하 ‘추진모임’)에서는 “이주노동자를 강제노동 시키는 고용허가제를 없애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고용법’)에 대해 조속히 위헌 결정을 하라”고 촉구했었다.

이미 헌재는 2011년 고용허가제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었으나, 추진모임은 2020년 3월 이주노동자 5명을 청구인으로 해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등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용허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다시 내렸다.

먼저 고용허가제부터 살펴보자. 고용허가제란 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소규모 제조업이나 3D 업종 부문의 사업체에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이주노동자를 산업연수생으로 데려와 활용했던 산업연수생 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일하러 오지만, 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다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사용자가 사업장의 이동에 동의하지 않는 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으로 인해 부당한 노동환경과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부당한 상황’은 단순히 장시간 노동, 휴가/휴식 제한에 한하지 않으며, 상시적인 무시와 괴롭힘, 폭언, 폭행까지 발생하고 임금체불도 빈번하다.

물론 법률상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사업장 휴업이나 폐업, 사용자가 계약한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위반한 경우, 사용자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하려 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등에 한한다. 또한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산업재해 우려,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이유로 일터를 옮기고 싶다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나 ‘노동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노동자가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업장이 휴·폐업 시 근로계약 해지, 갱신거절이란 회사가 없어지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므로 새 사업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타의 임금체불, 근로조건 위반, 산업재해 우려, 열악한 노동환경 등이 주요 사업장 변경사유가 될 것인데, 이러한 사유로 인한 사업장 변경을 위해서는 노동자가 해당 사유를 “입증”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해야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자가 위의 사유를 전면 부정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주장만으로 산업재해 우려, 근로조건 위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입증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임금체불도 사용자가 계산하고 지급하는 만큼 입증이 어렵다. 또한 일손이 부족한 사업장에서 노동자 이동을 사용자가 동의할 리도 없다. 즉, 해당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은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 특정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강제근로” 규정이며,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제근로와 헌법상 권리의 박탈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

그럼에도 헌재는 “이주노동자에게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주노동자의 원활한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취업활동 기간 내에는 장기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 사유는 그 자체로 강제근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강제근로가 맞지만 어쩔 수 없다고 시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를 ‘관리’하겠다는 발상, 잦은 변경을 억제하겠다는 논리가 바로 노동자를 강제근로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의 해고사유 제한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이주노동자에게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강제하는 것. 자본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강제근로를 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논리는 매우 일관된 자본의 요구이고 헌법재판소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근무는 강제근로가 아니라 노동환경 개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안전한 작업환경, 적정한 임금을 통해 노동자가 스스로 머물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지 사업장을 바꾸고자 하는 노동자의, 인간의 의사를 제한하고 묶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노동자의 의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 자체가 강제근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2011년 결정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위상의 변화와 정주화를 전제로 한 제도개혁이 언급되고 있는 점,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10년간 확연히 달라진 점, 2021년 ILO의 기본협약 중 강제근로에 대한 협약(제29호)을 체결한 점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헌법재판소만이 지난 10년간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퇴행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결정은 2021년 최악의 판결로 뽑힐 만한 판결문이라고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