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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먹태에 진심이었던 만큼

철폐연대에도 진심이었던 밤

 

 

정인열 • 월간 <작은책> 일꾼 / 철폐연대 회원(감사)

 

 

 

철폐연대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 서른 살 창창했던 나는 이제 푸근한 아지매가 됐다. 덧붙여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급속히 퇴보하고 있어서(냉장고에 식재료 꺼내려다 그마저 까먹어 돌아서는 지경) 다짐했다.

 

“그래! 절대 서빙은 하지 말자. 분명히 주문 까먹을 거야. 주방에만 있어야지~”

 

철폐연대 창립 20주년이 되도록 철폐연대에 기여(?)한 게 한 톨도 없으니, 이날만은 내 ‘몸빵’하겠다 작정하고 연차휴가를 냈다. 그러나 전날 밤부터 둘째 애가 갑자기 아파서 뒤치다꺼리하느라 오후 3시쯤 ‘슘’에 도착. 이미 사무처 동지들 및 절친(?) 동지들 십여 명이 재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할 거 없나~ 휘휘 둘러봐도 주방은 인원이 가득 차서 내가 낄 자리가 애매했다. 마침 먹태가 가득 든 봉지들을 발견. 순간 평소에도 먹태에 진심이었던 나는 먹태 담당이야말로 내가 적격이라 생각이 들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먹태를 다듬기 시작했다. 지느러미, 수염은 떼야 손님에 대한 예의니까. 먹태는 총 40마리였던 것 같다. 나랑 같이 어떤 남성 동지(미안해요. 끝내 이름을 못 물어봤어요)가 거들어 줬다. 이 남성 동지는 훗날(?) 주문 및 서빙에서 나와 환상의 호흡을 맞춘다.

 

 

8. 본문사진1.jpg

2022.10.07. 먹태 다듬는 정인열 동지.^^ [출처: 철폐연대]

 

 

오후 6시쯤 되자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먹태 주문이 안 들어와서 하는 수 없이 주문도 받고 서빙도 했다. 주문을 주방에 전달하는 동안 까먹을까 봐 긴장했다. 다행히 아직은 테이블 여유가 있어 눈누난나~ 소싯적 호프집 알바 경험이 되살아나나 하면서 흥겹기까지 했다.

 

주방에서는 김용균재단의 김미숙 대표님이 골뱅이소면을, 물류센터지부 강민정 사무국장님은 훈제오리, 나경훈 동지는 어묵탕, 카스 동지와 권미정 동지, 조혜연 동지, 김혜진 동지(그밖에 이름 빠진 분 미안합니다. 이름을 몰라요.ㅜㅜ)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서빙도 도왔다. 안명희 동지는 치즈구이와 나초를 준비하면서 홀에서 들어온 메뉴를 순서대로 체크했다.

 

이날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샐러드와 채소구이’. 때문에 이미숙 동지는 쉼 없이 불 앞에 서서 채소를 구웠다. 후원주점 기획·총괄을 맡은 임용현 동지는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자 핼러윈 머리띠를 하고 인사하느라 바삐 다녔다. 슈퍼컴퓨터 못지않은 계산 실력을 갖춘 엄진령 동지가 카운터를 맡으며 들어오는 티켓, 현금, 주문 현황까지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7시쯤부터였나, 갑자기 손님들이 시간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실내는 가득 차서 야외에 테이블을 추가로 놓아야 했다. 문제는 새로 추가된 테이블에는 번호 배정이 안 되어서 급기야 혼란 가중. 어디가 H 테이블이고 I 테이블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다행히 20~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회원들이 서빙을 더 도왔다. 야외에는 안경 쓴 여성분이었는데 그분이 서빙을 맡아 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실내에도 이름 모르는 남성 변호사 한 분이 더 투입됐고, 조금 더 지나자 박주영 노무사, 정은희 동지도 합세했다.

 

“18번에 채소구이, 두부김치, 어묵탕이요.”

“3번에 아까부터 골뱅이 시켰는데 아직도 안 나왔대요.”

“야외 F에 두부김치랑 훈제오리 안 나왔대요. 언제 나와요?”

 

이 와중에 나는 테이블 번호 ‘20’을 빌지에 써냈는데 ‘0’을 작게 써서 서빙 보는 동지가 2번 테이블로 갔다가 그냥 왔다. 그래서 엄진령 동지한테 혼이 났다. 엄 동지 무서버~ㅜㅜ

 

피크 타임부터는 이제 먹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가장 인기 없던 메뉴라서 먹태만이 완판을 못 하고 열 마리가 남아 버렸다. 마요네즈+간장+청양고추 넣은 건 술꾼들이 다 아는 ‘마약 소스’인데 왜들 안 먹냐고! 왜 진심을 몰라 주는지.ㅜㅜ 피크 타임 때는 나도 먹태 굽느라고 어떤 손님이 오고 가는지도 몰랐다. (안명희 동지가 <질라라비>에 현장스케치 원고를 써 달라고 했는데 먹태만 구웠던 기억뿐이 없어서 후원주점 마치고 좀 난감했다.)

 

주방은 급기야 주문이 뒤엉켜버려 잠시 주문을 차단하고 내부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문서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음식이 나간 테이블, 안 나간 테이블 등 확인했다. 안명희 동지 아마 머리가 폭발 직전이었을 듯하다. 다행히 손님들이 음식이 늦게 나오고 실수가 많아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즐겁게 놀다 가셨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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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7. 철폐연대 후원주점에 와 주신 동지들. [출처: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이영민]

 

 

주점 마감 시간은 10시로 공지했는데, 너어~무 성황을 이루어서 양한웅 대표가 “10시에 마감 하겠습니다.” 하고 마이크 잡고 얘기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들이 안 나가고 유쾌하게 떠들고 웃고 계셨다. 10시쯤 됐나, 이제 대부분 메뉴들도 다 완판되고 남은 먹태들이 눈에 밟혔다. 이를 보다 못한 박주영 동지가 “제가 테이블 돌면서 팔아 볼까요?” 하며 영업 최고 난이도인 ‘방판’을 시도, 엄청 팔았다. 정은희 동지도 많이 팔았다. (나도 용기를 내서 방판을 시도했지만 한 마리도 못 팔았다.-_-;;)

 

10시 30분이 넘어가고 주방과 카운터에 있던 엄 동지와 나는 이제 한라산 한 병 까 보자며 한 잔씩 홀짝홀짝 마실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뒷정리를 시작했다. 주방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12시경 됐나 보다. 남은 식재료들을 동지들과 함께 나누고 뒷정리 끝. 홀에 나와 보니 슈퍼컴퓨터 엄진령 동지가 슘 사장님하고 계산을 맞추고 있었다. 택시비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택시비를 주셔서 감사히 받고 집에 무사히 들어왔다.

 

철폐연대 감사를 맡고 있어 연초가 되면 엄진령 동지와 다른 감사 동지와 함께 만나 재정 상황 등을 확인하는데, 감사 보고서에 항상 빠지지 않은 의견이 있었다. 바로 상임·반상임 활동가 동지들의 임금 문제다. 비정규직 조직 및 투쟁 사업장을 돌면서, 그리고 해마다 5월에는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활동해 왔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늦은 시각까지 활동하고, 비정규직 조직·사업을 위해 전국 어디든 다니는 동지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최저임금 수준이라도 맞추기 위해서 ‘회원 확대’를 하자고 결의하였다. 하지만 또 우리 같은 인간들 특징이 ‘후원해 주세요.’ 말 한마디를 잘 못 꺼내는 성격인지라 회원 확대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임금마저 못 줄 만큼 재정이 바닥을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요즘 세상에 월급이 제때 안 나오면 큰 곤란을 겪는다. 활동가들이야말로 임금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못 주는 현실이 안타깝다.

 

철폐연대 활동가 동지들은 여전히 유쾌하다. 사람을 사랑하고, 공감하고, 그리고 유쾌해서 좋다.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항상 보고 싶은 동지들이다. 그러면서 일은 또 잘해서, 능력치 최고 레벨로 비정규직 사업에 매진해 왔다.

 

후원주점으로 몇 달 치 월급은 모았을지 모르겠다. 불안정 임금을 해소해야 할 텐데, 잠시 한숨 돌린 것일 뿐이라서 걱정이 놓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모친상을 당하시고 받은 조의금을 철폐연대에 후원해 주신 내 일터 <작은책> 유이분 대표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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