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06] 노조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새로운 시도 / 김요한

by 철폐연대 posted Jun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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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새로운 시도

김요한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와 연동되어 요즘 언론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직업이 하나 있다. 바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다. 물론 좋은 쪽이라기보다는 나쁜 쪽으로 오르내린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의 직접적 가해자, 또는 잠재적 가해자로 말이다. 다 떠나서 자신의 노동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심지어는 네트워크 카메라(학부모의 실시간 시청이 가능하다)로 감시당하는 노동자가 대한민국에 보육교사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아동학대를 막겠다는 뜻이야 누가 반대할 수 있겠냐마는, 과연 그것이 보육교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치지도외(置之度外)한 채 오로지 감시의 눈길을 제도화하는 것만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앞뒤가 뒤바뀐 일이 아닌가. 아기를 낳아도 믿고 맡길 데가 없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한 원인이라면, 당연히 보육 최일선에서 분투하는 보육교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자신의 인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보육교사가 과연 영유아들의 인권과 행복은 지켜줄 수 있겠냐는, 너무도 당연한 질문에 이 사회는 제대로 답을 한 적이 없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언제나 엇비슷하다. ‘당신 같은 사람은 보육교사 자격이 없으니 떠나라’, 이것이다. 보육교사는 아무리 처우가 열악하고 업무가 고되어도, 아이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 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교사의 노동

보육교사들이 가장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9시 출근, 18시 퇴근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근로계약서 상으로는 중간에 1시간의 휴게시간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보육교사는 업무 대체자 없이는 휴게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통의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사용하지만, 보육교사들에게 점심시간은 영유아들에 대한 급식 지도시간으로 하루 중 노동강도가 가장 센 시간이다. 낮잠 시간에 쉬라는 것도 터무니없다. 아이들이 로봇처럼 정해진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보육일지 작성 등 각종 행정잡무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휴게시간은 무급 처리되는 시간이므로, 보육교사들은 매일 1시간씩 공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공짜 노동은 가짜 휴게시간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집 평가인증 시간이면 강요되는 무제한 야근, 평상시 오전·오후 당직근무 등에 대해서 시간 외 수당이 지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용이 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육교사의 상당수가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설령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년 1~2월은 어린이집의 해고 시즌이다. 3월 신학기 반 구성을 앞두고, 어린이집 사용자들은 갖은 핑계를 대가며 보육교사들을 해고한다. 보육교사를 어린이집에서 내몰기 위해 학부모를 동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학부모들에게 어느 보육교사는 문제가 많은 교사라는 식으로 소문을 내돌리면, 날마다 학부모들과 얼굴을 맞대야 하는 보육교사가 자리를 지키긴 어렵다.

노동 현실이 이렇다 보니, 보육교사들은 어린이집 원장들의 갖가지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민간어린이집에서는 ‘페이백’이라 하여 고작 최저임금을 월급 통장으로 보낸 다음 그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일도 왕왕 있고, 그나마 처우가 낫다는 국공립어린이집에서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연차 높은 보육교사를 해고하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는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체가 보육교사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일마저 심심찮게 벌어진다.

말이 나온 김에 정확히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도봉구의 어느 국공립어린이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공립어린이집의 질이 좋은 것은 선생님의 처우와 신분을 보장한 것이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사실이 있다. 틀린 얘기다. 실제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의 갑질 신고는 끊이질 않는다. 국공립어린이집 3,034개소 중 국가·지자체가 직영하는 곳은 고작 84개((2016년 12월 기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법인이나 개인과 같은 민간에 위탁되어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2014년∼2017년 6월까지 재위탁 심사에서 탈락한 곳은 심사대상 927곳 가운데 1%(10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공립어린이집이 사유화되어 있다 보니, 보육교사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어린이집 원장에 의한 갑질은 민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노조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노조 가입률은 대단히 낮다. 보육교사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23만 명 수준이지만, 가입률은 100보다는 0에 훨씬 가깝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보육교사에게도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보육교사가 대부분이다.

보육교사의 노조 가입이 저조한 이유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전반적으로 노조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와 다를 게 없다. 전국에 어린이집은 4만 1천여 개소인데 보육교사는 23만 명 선이니, 산술적으로 어린이집 한 곳에 보육교사가 5~6명 근무하는 셈이다. 이런 자그마한 사업장에서 노조에 가입한다는 것은,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사용자와 직접 대립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노동조건이 참을 수 없이 열악할 경우 이직을 택했으면 택했지, 굳이 사용자와 얼굴 붉히며 관계를 극단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겠냐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단 한 번도 노조를 통해 무언가 이득을 취해 본 경험이 없다. 노조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다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작은 사업장에서 노조를 하면 회사가 문을 닫거나 쫓겨난다는 얘기만 들어봤을 뿐이다. 어린이집은 한층 더하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단체인 어린이집연합회만큼 조직이 잘 돼 있는 사용자단체도 드물다. 어린이집에서 입바른 소리를 낸 보육교사는, 사용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어린이집에 취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자들 스스로의 경험으로 노조를 하는 것은 손해 보는 짓이란 확신을 갖고 있는데, 여기다 대고 노동3권이 어떻고, 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어떻고를 설교해봤자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노조가 부담스러운 것이라 하여, 어린이집에서 일상화 된 노동권 침해와 인권 침해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촛불 이후, 2~30대 보육교사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쉴 새 없이 토로하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1일 출범한 직장갑질 119 오픈채팅방은 그 주요한 경로였다.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조직화 방안

공공운수노조는 현재 보육교사 조직화 사업을 노조의 전략조직사업으로 선정하여 조직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보육교사 조직이 전략조직사업으로 선정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금 밝힌 바와 같이, 직장갑질 119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보육교사의 상담이 크게 증가한 점이다. 이들에게 단순히 상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주는 것을 넘어 노조를 실질적인 대안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이다. 앞으로 사회서비스공단이 보육교사를 직접 고용하고 국공립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게 되면 대규모 조직화의 전망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보육교사를 조직화 하여 주체를 양성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조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두 가지 방향을 잡았다. 첫째는 노조 가입의 문턱을 낮춰주는 것이다. 노조 준비위원회 몇 달 돌리고 과반수 되었을 때 노조 깃발을 띄우는 방식,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식으로는 노조가 불가능하다. 준비가 되었을 때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노조에 가입부터 해놓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무언가 ‘결의’(?)가 필요한 일, 독립운동(?)을 하듯이 끝장을 보아야 하는 일로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입이 쉬운 노조라는 것은 탈퇴가 쉬운 노조와 같은 뜻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부담 없이 가입하고,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노조이면 된다. 예를 들어 노조에 가입하면 변호사, 노무사들로부터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또는 일을 하면서 겪는 직업적 고충에 대해서 경험 많은 동료들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유용성이어도 충분하다.

둘째, 가입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노조란, 노조 가입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를 노동자가 직접 결정하는 노조이기도 하다. 가입 이후의 활동을 노조 간부가 관료적으로 결정하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해야 한다. 노조 간부는 경험이 풍부한 조언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아주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결정이라도 신규 조합원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노조 가입 사실을 어린이집에 공개할 것인지 여부가 대표적이다. 노조 가입 사실을 밝힌 이후에 할 수 있는 활동, 노조 가입 사실을 비밀로 한 채 할 수 있는 활동들의 장단점을 스스로 비교해보고 자기의 조건에 맞춰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 원포인트 단체협약

노동조합은 보육교사의 상담 수요가 집단화 된 지역에서 노동조합 설명회를 개최했다. 노동조합 설명회를 통해 노조에 대한 이해를 높인(정확하게는 편견이 깨진) 보육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면, 이제 이들의 자신감을 북돋우며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차례이다.

지불능력이 취약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원포인트 단체협약 체결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아주 기초적인 요구안 하나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해보는 것이다. 어느 노조든 이른바 ‘모범 단체협약’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보통은 백수십 개 조가 넘는 단협안인데, 이걸 일상적 시기에 중소영세사업장에서 관철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무리한 경우가 많다.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노동자들 스스로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요구안을 단체협약으로 관철해내는 것은, 노동자들이 노조의 유용성을 확신하고 자신감을 얻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단체협약은 오로지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실례를 보자.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차휴가는 노동자가 지정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인력이 없는 어린이집에서 노동자의 휴가 시기지정권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어린이집에서는 휴가를 쓰게 되는 경우 원장과의 관계에 따라 사용 시기에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장에 잘 보인 보육교사는 휴일 앞뒤로 붙여 휴가를 쓸 수 있고, 밉보인 보육교사는 애매한 날에 강제로 휴가가 지정되는 식으로 말이다. 노조가 이 어린이집과 체결한 단체협약 조항 중 하나는 휴가 사용 기준을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평하게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걸 단체협약으로 체결할 일이냐고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기초적인 단체협약이 노조 가입을 몇 달이고 주저하던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얼마나 드높였는지는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단협이 체결되자 신규 조합원들이 제일 먼저 했던 얘기는,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노사가 대등한 지위로 마주앉게 되는 단체교섭의 진행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는 역력하다. 이 어린이집에서 1차 단체교섭은 어느 예의 없는 사측 노무사 탓에 파행으로 치달았는데, 정작 조합원들은 밤늦게까지 단체교섭 녹음파일을 함께 들으며 통쾌함을 느꼈다 한다. 적어도 단체교섭 자리에서는 원장과 자신들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니었다는 점만으로도 노동자들은 해방감을 만끽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업장 조건에 맞춘 원포인트 단체협약 체결은 어린이집과 같은 작은 사업장에서 노조를 안착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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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1. 노동절,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 [출처: 필자]

 

자그마한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지난 5개월 동안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적지 않은 신규 조합원을 가입시켰다. 물론 영업비밀이라 정확한 숫자는 지면에서 공개할 수 없으나, 조합원 증감율은 2017년 연말 대비 +25% 수준이다. 신규가입 조합원들의 어린이집은 전국 곳곳인데, 계산을 해보니 어린이집 한 곳 당 평균 조합원 수는 2.7명 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원포인트 단체협약을 몇 군데 어린이집에서 체결하고, 노동위원회 조정을 통해 종교를 강요하던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체를 날려버리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현재 어린이집에서는 휴게시간 사용을 둘러싸고, 보육교사들과 어린이집연합회(그리고 보건복지부)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어린이집의 가짜 휴게시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어린이집 사용자들과 보건복지부가 2018. 7. 1. 근로기준법 특례업종 축소 때문에 어린이집에 휴게시간 의무가 생긴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6월 말, 어린이집의 가짜 휴게시간 실태에 대한 신문광고를 준비 중이다. 또 그동안 가짜 휴게시간을 운용해 온 어린이집들을 대상으로 근로감독 청원에 나설 계획에 있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노동조합은 보육교사 당사자 조직으로서의 대표성을 획득해 나가는 한편,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독려할 생각이다.

오랜 시간 분투해온 보육교사 노동조합의 역사는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여러 동지들의 격려와 연대를 기대하며 부족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