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3] ubc울산방송과 싸우는 이유 / 손민정

by 철폐연대 posted Mar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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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1) 

 

 

ubc울산방송과 싸우는 이유

 

 

손민정 • ubc울산방송 CG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ubc울산방송에서 CG 일을 하고 있는 손민정입니다. 지금 ubc울산방송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5년 8월 대학 교수님의 추천으로 방송국에 지원 입사한 이후 뉴스를 포함한 방송국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 일을 해 왔습니다. 근무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상사의 업무지시를 받았으며, 휴일과 주말에도 교대로 돌아가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계약서도 없이 일했는데 이유 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ubc울산방송 이산하 아나운서의 소송 승소 이후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흔적 지우기를 시작합니다. 입사 후 계속 기재돼 오던 사내 비상연락망과 사내번호 목록에서 이름이 빠졌습니다. 

 

2021년 7월 회사는 갑자기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자고 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 않다고, 프리랜서라고 언급된 부분을 다 빼 달라고 했으나 회사는 방송프로그램 제작스태프 업무위탁으로 말 바꾸기식 수정을 하여 계약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2022년 6월 회사는 무기계약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제가 앞서 일한 7년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급여도 적어지고 근무시간도 더 늘어나 계약서를 안 쓰겠다고 하니 알았다고 했지만, 회사의 본격적인 괴롭힘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사인할 수 없다고 프리랜서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니 주급으로 주던 급여를 갑자기 단가별로 책정하고, 일을 점차 줄였습니다. 부당하다고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평소 받던 인수인계를 못 받아 상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인수인계 못 해 준다고, 7년 차쯤 됐으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기에 대한 수당도 따로 받는데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삿대질하며 소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일을 점점 줄이다 나중엔 오직 새벽뉴스 근무만 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새벽뉴스가 끝나고 평소 일하던 대로 다른 프로그램의 수정 작업을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왜 퇴근하지 않냐고, 일 끝나면 퇴근하라고 어제도 말하지 않았었냐며, 수정도 다른 일도 하지 말고 퇴근하라고, 이건 업무지시라며 몇 번이나 퇴근을 지시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하루 2시간씩만 새벽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홀로 보도국 복도의 불을 켤 땐 쓸쓸함과 허무함이 함께 밀려옵니다. 이산하 아나운서처럼 해고하면 부당해고가 염려돼서인지 해고는 하지 않고 근로시간을 계속해서 줄이고, 임금을 줄이고, 생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태 회사에서 일한 저의 시간들은 무엇이었나 허무함과 자괴감 속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소송 중 가장 힘든 건 제가 했던 일들에 대해 부정당하고 거짓으로 대응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을 제가 증명해야 하는 것들이 괴롭습니다. 회사의 대응을 보며 법정에서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소송을 건 게 아닙니다. 당연한 권리를 찾고 싶었고, 회사에선 저렇게 일을 줄여 가는데 마치 나가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일했던 시간들도 인정받지 못하고, 이렇게 강제로 일을 줄이니 마치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삶을 통째로 위협받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한테는 모두 포기하는 것, 싸우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송을 진행하며 겪고 있는 일들은 저만의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ubc울산방송 내부의 이산하 아나운서의 문제와 제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불행하게도 이곳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반복됩니다. 일을 시킬 때는 직원처럼 막 부려 먹고, 필요 없다고 마음대로 자르고, 경력을 전부 인정하지 않고,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계약을 강요하고, 부당하다고 말하면 너는 프리랜서니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법으로라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으려고 했지만 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보복갑질을 합니다. 악의적 유언비어와 괴롭힘으로 정당한 권리와 저항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ubc울산방송의 문제는 현재 전국의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 문제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이 정당한 권리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며 싸우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과거는 부정당하고 현재와 미래는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저도 제 자리에서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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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6. ubc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출처: 엔딩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