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6] 성장하고 있습니다 / 조윤희

by 철폐연대 posted Jun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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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조윤희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 철폐연대 후원회원)

 

 

저는 2017년 7월 민주노총 법률원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2018년 2월부터 서비스연맹 법률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차 노무사입니다. 컴퓨터 자판을 치열하게(ㅎ) 두드리며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연맹 법률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노동조합의 생리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데 개인적 역량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지만 그만큼 새롭게 알게 되고 깨닫는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귀한 지면인데 쓸데없는 글이 될까 걱정이지만 노무사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시행착오 1

 

일을 하다보면 법 규정과 판례, 행정해석만 찾아보아서는 노동조합에서 필요하고 원하는 답변을 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사안들에 부딪힐 때마다 당황스러웠고 몇 시간이고 법 규정, 판례, 행정해석을 찾아보고 유사 사례를 검색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주장에 대하여 마땅한 근거를 찾지 못했을 때에는 괴로운 마음으로 안 된다는 의견을 드리며 속시원하게 답변을 못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사무처 조직활동가에게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노동조합도 질문을 할 때 어느 정도 찾아보고 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노무사님에게 원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최대한 자신감을 갖고 싸울 수 있도록 법 해석을 해달라는 것이다. 어차피 노동조합은 법이 보장하지 않고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힘으로, 투쟁으로 쟁취하는 조직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판단하고 법적 근거를 찾는 데에만 매몰되어 내가 일하는 곳이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은 원래 법이 아니라 단결해서 투쟁으로 권리를 찾고 변화를 만드는 조직이라는 곳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사안도 노동조합이 조합 활동 등으로 요구하여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뒤에는 명확히 법적 근거나 사례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실을 말씀드리되, 무리한 해석 또는 비합리적인 해석이 아닌 선에서 최대한 법 해석을 노동조합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리한 해석 또는 비합리적인 해석인지 여부는 동료들의 의견을 구하며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근무지가 노동조합 법률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 2

 

노무사가 되고 노동조합과 조합 활동에 대해 대충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생리도 모르고 개별 조합마다 상황, 특성이 다 다른데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 채 추상적으로 책이나 판례만 조금 보고 알고 있다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맨 처음 단체협약·임금협약을 검토할 때 저는 사업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책과 판례만 찾으며 소위 모범단협에 가까운 수정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단협에 있는 ‘협의’ 문구를 모두 ‘합의’로 수정한다든지, 징계위원회 위원 구성을 노사 동수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든지, 병가 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든지 등 최대한 노동조합에 유리한 문구들을 제안하면서 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교섭을 시작하는 노동조합 위원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이런 것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 “조합이 사업장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라는 식의 당위적인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위원장님이었다면 그 당시 제가 한 상담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걸 얻어내는 게 문제인 거지.’

 

이후 몇 번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검토해보고 교섭 과정을 지켜보고 조정에 들어가보니 그동안 노동조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얘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범단협이 왜 모범단협인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재 단협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으로 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고, 사업장 현실과 특성, 노동조합의 사정·힘·단결력도 고려해야 하며, 회사는 생각보다 ‘단호박’인 경우가 많고 교섭은 누가 더 관련 판례를 많이 제시하고 누가 더 논리적인지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크지 않은 노동조합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번에 꼭 쟁취해야 하는 사항을 정리하고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단체교섭에서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면 단결력과, 조합원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되면서 책에서만 봤던 노동3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현실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제반 사정들을 고려해서 노동조합에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의견을 드리는 능력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 노동조합이 교섭에서 요구사항을 많이 규정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과거처럼 터무니없는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2 우황청심원과 함께한 법률학교 교육 [출처 필자].jpg

우황청심원과 함께한 법률학교 교육 [출처: 필자]

 

 

시행착오 3

 

현 근무지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1년 정도는 제가 담당하는 노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적어도 경험 없는 1년차 노무사가 배정되어 법률지원이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이 되었고 열심히 일했지만 매번 저의 역량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교육은 가장 큰 고민 지점 중에 하나였습니다. 성격상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편하지 않고 더구나 그 앞에서 말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했던 첫 교육은 근로기준법 기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주어진 시간은 40분이었으나 긴장한 탓에 말을 빨리 해서 15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교육을 들었던 조합원 분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서비스연맹 법률원 개소 이후 개최한 첫 법률학교에서는 모범단협에 관한 교육을 맡게 되었는데 우황청심원을 먹고 오로지 빨리 그 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각한 나머지 왜 꼭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현장발표식으로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세미나 형식으로 같이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건가, 인터넷 동영상 강의로 찍어서 배포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하며 교육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이 법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신감과 힘을 받는 계기이며, 현장발표식 교육이 효율성과 효과성이 높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전히 교육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격은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고 노무사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기에 좀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최근에 기뻤던 일

 

 

최근에는 여러 일들로 인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뭐 하나 쉽게, 산뜻하게 해결되는 일이 없고, 법에 대한 공부와 노무사로서 능력도 부족한 것 같고,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사회나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고……. 조잡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생겨나던 중 콜센터 노동자들로 구성된 지회와 함께 연차휴가와 휴게시간을 보장받기 위한 대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콜센터가 그러하듯 이 사업장도 연차휴가와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소화불량을 겪는 사람들이 많고 연차휴가를 원하는 시기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연차휴가 및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진정을 제기하고 언론 제보를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짧은 경력이지만 그동안 해왔던 진정 사건들을 볼 때 솔직히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성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지회였음에도 조합원님들이 매일 출근시간, 휴게시간을 쪼개어 사업장 내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며 진정을 한 결과 언론보도가 되었고 해당 업체로부터 휴게시간과 연차휴가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며 그동안 휴게시간과 연차사용에 있어서 갑질을 했던 센터장이 대기발령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사자분들도 너무 좋아하셨지만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조합원들의 조합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교섭단위 분리나 원청(고객사)으로의 정규직 전환 요구 등 해당 지회와 같이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이 작은 결과물은 지회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값진 경험이었고 오랜만에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처리하다보면 퇴근하고 잠자리에 누워서야 오늘 하루가 보이고 제가 보입니다. 잠자기 전 그날 했던 일들과 말들을 곱씹으며 부족한 부분이 떠오를 때마다 이불을 걷어차고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지만 그리고 조금 뻔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되는, 괜찮은 노무사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