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7] 계급 없는 노동자들에게 유니온을 “권유하다” / 정진우

by 철폐연대 posted Jul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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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계급 없는 노동자들에게 유니온을 “권유하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집행위원장, 철폐연대 회원)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계급전쟁

 

계급전쟁이라는 용어를 최근에 자주 접한다. 노동운동 진영보다는 언론과 제도권에서. 미국의 경우, 2009년 초, 당시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증세 정책을 발표하자 미국 언론들이 내건 제목이 “계급전쟁의 시작”이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던 살벌한 용어를 그들이 즐겨 써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계급간의 전쟁이 그럴 때마다 갑자기 시작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용어가 낯설지 않을 때가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가족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리기 시작한 때. 어제까지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이들 중 살아남을 자들의 명단에 들어간 이들은 글자 그대로 ‘산 자’로 불렸고, 그렇지 못한 2,646명은 ‘죽은 자’가 되어야 했던 곳. 2009년 여름, 한국의 평택이야말로 전쟁터였다.

 

때로는 국가가 직접 지휘하는 폭력에 의해, 때로는 사법부와 권력자들의 부당거래에 의해, 저들은 그렇게 전쟁을 벌인다. 뉴스에 나올 정도의 전쟁은 대체로 저들이 시작하고, 저들이 일단은 승리한 전쟁이다. 물러설 곳도 없이 절박한 상황에 몰린 이들은 소리 없이 해산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굴복하지 않고 저항의 목소리를 만들며 맞서 싸운다. 저들이 시작한 전쟁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되고, 때로는 투쟁의 당사자가 된다.

 

저들이 지휘하는 계급전쟁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직접고용, 단결권과 같은 노동법의 핵심어들이 이 전쟁터의 고지에 걸린 이름들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노동과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주제이기에 노동과 자본의 공방은 거세질 수밖에 없고, 정치권과 언론도 주목한다. 한편, 이러한 뉴스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들도 많다. 휴가도 없고, 초과근로수당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근로기준법이 근로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이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산업 전반이 수직 계열화되면서 대기업 정규직에서 하청노동자, 노동법조차 적용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 내부의 서열과 갈등을 드러내는 분석은 이미 익숙해졌지만, 조금 더 들어가 생애주기 전체로 말해보자.

노동자 내부의 분열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분리이기도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죽은 자가 되어 추락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분리와 추락은 필연적으로 해체의 연속이 된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과 제도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자본이 노동을 부리는(쓰고 버리는) 경영의 지침이다. 계급전쟁에 임하는 자본가들의 기본 전략은 계급의 해체다.

   

권리 없는 노동자, 단결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결국 계급 없는 노동자가 된다. 등급조차 무의미해지고, 단결할 계급도 없다. 무등급과 무계급의 의미로서 ‘계급 없는’은 중의법이다. 우리의 권리 없음과 단결 못함은 각각에 대한 원인이자 결과로 연결된다. 계급전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대다수의 계급 없는 노동자들에게 이 전쟁은 이름조차 없다. 끝없이 빼앗기고 있지만, 찾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지에 걸려 있는 저 깃발이 나의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

 

 

계급 없는 노동자들에게 ‘유니온’이란?

 

‘유니온’은 본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유행어다. ‘노동조합’을 영어로 번역하면 ‘(labor) union’이 일반적이지만, ‘union’의 한국어 뜻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협회, (동업)조합,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근래에 노동조합(한자어)을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고, 유니온(외래어)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갖는 거리감이나 부정적인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노동조합 본연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언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한 사례다.

 

‘유니온’은 새로운 뜻이 더해진 다의어다. 현행 노조법은 노조법의 규정에 의해 승인된 노동조합이 아니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반면에 법외노조 또는 노조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헌법상 단결체를 ‘유니온’으로 칭하는 데 법적 제재는 없다. 한국어로서 ‘유니온’은 노동조합으로서 형식적 (법적)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인 조직을 부르는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유니온은 (형식적 요건으로) 노동조합이 아닐 수 있고, (실질적 의미에서) 노동조합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유니온’은 여전히 뜻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조어다. 이 신조어는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갖는 긴장 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이러한 약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어떤 이들은 노동조합을 직역했던 언어를 이용해 노동조합 본연의 뜻을 되찾고, 확장해나간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은 언어의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상황이다.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노동조합이라는 단어조차 법전에 가두고 금지하는 나라. 노동조합이 가장 필요한 이들일수록 노동조합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 ‘유니온’은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언어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되찾는 언어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약속과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다. 노동조합이 없는 이들, 계급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빼앗긴 언어다.

 

‘유니온’은 빼앗긴 이들이 만나는 장소의 이름이다. 노동자로 살아갈 권리, 계급으로 단결할 권리 그리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부를 언어조차 빼앗긴 이들. 우리가 되찾아야 것들에 대해 말하고, 따지는 곳. 또 다른 우리를 만나 우리의 이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곳.

 

2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행동 플랫폼(유니온크래프트) 예시 화면 [출처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JPG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행동 플랫폼(유니온크래프트) 예시 화면 [출처: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권유한다는 것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때때로 무언가를 권유하곤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권할 때, 이럴 때야말로 권유하다는 말은 제대로 어울린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이 글의 제목을 내세워 무언가를 권유하는 것도 이런 의미이다. 권유한다는 것은 결국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언가를 권유한 그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천 일 넘게 감옥에 갇혔던 그는 이렇게 권유한다.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더 크고 강한 우리들의 계급을 만들어내자고. 쪼개져 일하기에 분노마저 쪼개진 노동자들이 또 다른 자신을 만나 희망을 돛을 올릴 수 있도록. 같이 뱃길을 정하며 운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우리들이 탑승할 우주선을 함께 만들자고 호소한다.

 

권리 없는 노동자,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소통하고 참여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수만 일 넘게 하던 이야기여서 솔깃하지 않았다. 권리행동 플랫폼이라고 신조어도 만들어 보았으나 역시 허전하다. 그래도 그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이유는 다른 이들과 비슷하다.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글자 그대로 권유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동자 누구나 쉽게 접속하고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소통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협력 네트워크. 사회적 대안과 우선 과제를 직접 선정하며 함께 실현해나가는 권리행동과 단결의 장. 계급 없는 노동자들이 만나는 장소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문이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솔직히 말한다. 패배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노동자들, 권리라는 걸 꺼내기 힘든 이들이 모이는 것. 누구나 상상할 수 있지만, 계획으로 정하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아서 이 판을 뒤집어 볼 진짜 판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권리도 없고, 계급도 없는 우리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제야말로 진짜 ‘판’이어야 한다. “죽기 전에 단결투쟁 조끼 입고 ‘우리도 노동자다’ 외쳐볼 수는 있을까요?” 어쩌면 그가 갇혀 있던 감옥으로 전해진 이 절규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유니온이든, 노동조합이든, 또 어떤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든.

 

 

권유한다는 것은 함께하자는 것이다. 진짜로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길을 우리가 정하며 나아가자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권유한다.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계급전쟁에 함께 나서자고. 우리를 더 크고 강하게 연결하자고. 진짜로 판을 만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