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8]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의 교훈 / 장현수

by 철폐연대 posted Aug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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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의 교훈

장현수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장)

 

 

현재 울산의 408명 레미콘노동자들이 운송비 5천 원 인상안을 주장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2개월여 동안 레미콘지회는 각 분회별로 각 레미콘제조사와 교섭을 해왔지만 사용자들은 늘 “다른 공장에서 올려주면 우리도 올려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왔습니다.

그래서 7월 1일 총파업을 하고 각 공장별 순환 또는 불시 파업을 하기로 하였지만, 레미콘공업협회는 운송비 동결과 408명 전원 계약해지를 담합했습니다.

   

지난 10년간 한 회전당(레미콘공장에서 건설현장까지 레미콘을 운송하는 횟수) 운송비를 동결 혹은 삭감하였고, 인상을 하더라도 30원, 50원을 얘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1개월, 1년으로 보면 담배 한 보루 값 수준입니다. 이런 모멸감을 견디다 못해 지난 시기 레미콘노동자들은 상조회로 뭉쳐 싸웠지만, 싸우는 즉시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계약해지를 당해서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습니다.

지난 2001년 수도권 레미콘노동자들의 투쟁 요구가 운송비 인상에서 노동자성 쟁취로 발전하고, 여의도 국회를 차량으로 에워싸면서 공권력의 도끼만행 사건을 당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습니다. 10여 년이 넘게 노조를 하려고 하는 레미콘공장의 노동자들은 6개월 직장폐쇄를 당하거나, 노조를 탄압하는 공장에 레미콘공업협회가 수억 원을 지원하는 등의 탄압을 당했고, 수많은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울산에서도 2005년, 2008년 레미콘공장에서 노조 가입을 위해 찾아 왔지만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한 개 회사, 한 개 공장만의 싸움으로는 힘이 듭니다. 방송차는 빌려드릴 테니 노조 가입하면 몇 달씩 싸우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마음 단단히 먹지 않을 거면 상조회로 싸우고, 연락은 하며 지내봅시다.” 이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고, 그분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찾아왔던 분들 외에도 상조회장들과 만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울산에서 펌프카노동자들이 ‘일요일은 쉬고 싶다’는 일요휴무 요구를 중심으로 노조로 조직되었습니다. 2개월여 만에 일요휴무가 거의 정착되면서 레미콘노동자들도 원했던 일요휴무가 자동적으로 성사되었고, 레미콘노동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펌프카노동자들의 승리 소식에 레미콘노동자들도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고, 펌프카지회 한 간부가 레미콘상조회장들과 간담회를 추진해보겠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큰 가능성을 보지 않았지만 울산의 16개 공장 중에 13개 상조회장들이 모였습니다.

회의적이었던 당시 집행부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조에 대한 두려움, 패배감이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노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레미콘노동자연합회’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으로 13개 공장이 하루 총파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운송비 3천 원 인상을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에 일부 공장부터 노조 가입이 시작되었고, 2013년 3월부터 운송비 협상을 앞두고 9개 공장이 노조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한 공장만의 노조 가입과 투쟁으로는 절대로 레미콘사측을 이길 수 없다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울산의 16개 공장이 100% 가입하게 된 것도 그런 정신이 반영되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13년 울산의 대원그룹 3개 레미콘공장이 계약기간 만료일에 집단계약해지를 통보하게 되었고, 이에 9개 공장이 동맹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당시는 운송비가 주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인정과 집단교섭, 14시간 장시간노동에 대한 해결이 관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선별 복귀, 노조 탈퇴 강요 등 노조 파괴를 시도하였던 것이 확인되었고, 우리는 끝까지 한 사람도 배제하거나 노조를 탈퇴하고는 못 들어간다는 것으로 운송비를 합의하고 공장으로 전원 복귀하였습니다. 당시의 치열했던 투쟁 과정은 결국 노동조합과 지도부 사수였습니다. “지금 노조를 버리고 들어가면 다시 20년은 우리 노조 못 한다”던 한 노선배의 절박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2 2019.7.3. 쌍용레미콘 본사 상경투쟁 결의대회 [출처 건설노조].jpg

2019.7.3. 쌍용레미콘 본사 상경투쟁 결의대회 [출처: 건설노조]

 

 

그렇게 73일 투쟁을 통해 노조를 지켜낸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했고, 매년마다 운송비를 2~3,000원 올렸습니다. 울산의 운송비가 전국의 기준이 될 정도로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의 선도적인 투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울산에서 5천 원 인상을 하면 전국이 들썩거리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의 운송비 인상투쟁은 전국의 레미콘노동자와 레미콘공업협회와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울산의 공장이 100% 멈추고 전국 최초로 5천 원대 인상안을 건 투쟁에 놀란 사측은 이번에는 ‘노조의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며 제조사 집단휴업 등 자본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울산레미콘노동자들은 그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전국적인 투쟁, 희생적인 투쟁, 선도적인 투쟁의 힘겨움이 없을 수 없겠지만 모두 영웅적인 투쟁, 선봉투쟁을 긍지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울산레미콘지회의 집행부는 늘 레미콘 전국조직화에 울산의 역할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투쟁에서 우리가 너무 나서서 피해를 보는 게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추스르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 정신이 또한 울산 레미콘노동자들이 조직화와 투쟁에 강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산레미콘지회는 울산의 73일 투쟁과 16개 공장을 가입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장동기 전 지회장 동지를 부산으로 파견하는 결정까지 하면서 조직 확대에 매진했고, 그 덕분에 지금 부산·경남에서 3천여 명의 레미콘노동자들이 조직되었습니다. 이 투쟁이 승리적으로 끝나게 되면 레미콘지회장과 각 공장 분회장들은 제주도에도 가고, 대구·경북 지역도 돌면서 조직화를 하겠다고 결의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5천 원 인상투쟁이 승리적으로 결속되면, 레미콘노동자 전국 조직화의 불길이 될 것입니다.

레미콘노동자들의 힘은 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합니다. 어느 기종보다도 현장을 멈추면 연쇄작용이 큰 기종입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레미콘노동자들이 멈추면 해상바지선배치플랜트를 동원하더라도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울산의 5천원 인상투쟁이 전국 레미콘노동자들 100% 조직화의 불길이 될 것을 간절히 기원하며, 투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