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1] ‘Music is work’, 왜 뮤지션들은 노동조합을 선택했는가? / 이씬정석

by 철폐연대 posted Nov 1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Music is work’, 왜 뮤지션들은 노동조합을 선택했는가?

이씬정석 (뮤지션유니온 위원장)

 

 

뮤지션의 현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예술활동증빙시스템에 등록한 수치를 포함해 예술인들은 총 17만 8,540명으로 통계하고 있다. 이중 순수 음악 분야에 11,408명, 국악 분야에 7,973명, 대중음악 분야에 25,547명이 집계되어 음악인들은 총 44,928명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공식 집계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5만 명 내외의 뮤지션들이 대한민국에는 활동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직업군은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국악인, 국악연주자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가수, 대중음악연주자 들이다. 어떤 이들은 뮤지션이라는 직업 외에 음악교육에 종사하는 교수, 강사의 모습을 띄기도 하고, 전혀 다른 직업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며 음악활동을 하거나, 다른 장르의 예술을 겸업하는 이도 있다. 공공 예술기관이나 예술단체 혹은 종교단체와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예술노동을 제공하거나, 연예기획사들과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뮤지션들은 개인사업자(프리랜서)의 모습으로 단속적이고 비정기적인 행사나 공연에 출연하거나 비정기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뮤지션들의 음악활동을 통한 수입은 주로 공연이나 음악저작물 판매를 통해 발생하지만 음악활동 수입이 굉장히 적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강의나 강습(음악교습) 수입에 의존한다. 공립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도 지급받는 보수는 몇십만 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개인교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공연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부정기적이고 일회적이며 그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개점휴업 상태로 1년 동안 공연수입이 0원인 뮤지션도 존재하며,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음에도 월 50만 원의 공연수입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뮤지션들의 수입에는 음악활동의 기록물인 음원·음반·영상기록물 등 상품의 범주로 거래되는 음원 및 음반의 판매수입과 저작권료 수입이 있다. 판매수입은 유통사에서 제작사로 정산자료를 보내 분배하는데 음악 제작 과정에 참여하더라도 직접 돈을 내 참여해 제작지분을 가지거나 분배 계약을 별도로 맺지 않으면 분배받지 못한다. 방송, 음원플랫폼,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에게 청구하는 음악저작권료나 실연권료는 음악저작물 신탁협회들을 통해 정산 받는다. 억대의 저작권료를 받는다는 몇몇 히트곡 작사·작곡가, 가수들과 다르게 알려지지 않은 일반 뮤지션들이 얻는 저작권 수입은 한 달에 몇천 원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소수 인기를 얻는 대중음악을 제외하면 자기 돈을 들여 음반을 만들어도 CD는 팔리지 않고 음원플랫폼을 통해 푼돈 몇 푼 돌아오는 게 전부인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본과 미디어권력의 지배를 받는 음악산업의 음악상품 제작 공정을 통과해 극소수만이 승리의 면류관을 독차지하는 무한경쟁시장의 링에서 밀려나거나 예술교육시스템에 기대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등 대다수 뮤지션들은 빈궁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뮤지션유니온의 결성

 

음악생태계의 암담한 현실을 해결해보자고 이름 없는 뮤지션들이 뭉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10일, 유데이페스티벌 기획단은 2011년 11월에 진행한 ‘청년뮤지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음악이 좋아 뮤지션으로 살고자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지만 음악으로 먹고살기 힘든 절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실태조사였다.

이 조사를 통해 음악과 다른 부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월평균 소득이 69만 원이라는 열악한 실태를 발표하면서,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겠다며 ‘뮤지션유니온 준비위원회’ 발족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준비위원회 활동을 거쳐 2013년 9월 8일 라이브클럽 ‘타(打)’에서 뮤지션유니온 창립총회를 열고 뮤지션들의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이후 4년여 임의단체로 운영하다가 2017년 ‘서울음악인노동조합’으로 노동조합 필증을 교부받아 공식적인 노동조합이 되었으며 2019년 ‘뮤지션유니온’으로 명칭변경신고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뮤지션유니온의 3대 지향

 

· 음악노동자 선언

우리는 ‘Music is Work!’라는 슬로건을 들고 음악노동자 선언을 하였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와 같이 뮤지션은 음악을 만드는 노동자라고 뜻을 모았다. 우리 사회는 창작과 연주 등을 주된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이 인디로 활동할 경우, 독립제작자 혹은 프리랜서로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창작을 하고 연주를 하는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노동을 제공하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뮤지션유니온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노동자 지위’ 규정에 함몰되지 않고, ‘음악활동’ 즉, 자신의 노동을 통해 생계를 영위하는 뮤지션들의 노동자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대출을 받아 화물차를 구입한 화물노동자가 아스팔트 위에서 장시간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듯이, 건설노동자가 위험천만한 아파트 건설현장 비계를 오르내리며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듯이,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직업인 음악을 매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음악기술을 익히고, 오랜 기간의 교육을 통해 음악적 숙련도를 쌓아온 뮤지션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직업적 영역을 선택했을 뿐이지 단지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뮤지션유니온은 음악 창작과 공연, 음악 제작 등의 음악활동 과정에서 투입되는 음악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뮤지션의 직업적 안정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 음악의 사회적 가치

 

뮤지션유니온은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주장한다. 기존 음악생태계는 크게 사회적 차원에서 문화자본 축적 및 관리, 문화복지 차원에서는 기본권 향유의 측면에서 공적 지원의 확대와 투명성 확보, 음악산업 시장의 차원에서 음악공연, 음악저작물 거래의 룰과 분배의 공정성만을 논의해 왔다. 문화예술의 공적 지원 확대와 투명성, 음악시장의 규칙과 분배의 공정성 확보는 음악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술을 매개로 한 자본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생산자/향유자’는 소외되고 예술상품으로 거래되면서 발생하는 돈의 흐름만이 주목받는 음악산업 진흥의 논리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예술은 본래,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즐기고 만들어내는 감정정서 행위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사람의 감정, 기호, 관계망까지 돈으로 치환하는 현실이 되었으나 예술은 상품으로 거래되기 이전에 ‘생산자/향유자’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현상이자 인류와 사회의 맥락이 집적된 결실이며 사회문화적 도구이다.

뮤지션유니온은 공공기관의 문화예술지원체계, 음악산업 시장에서 음악 거래의 패러다임에 대한 의견 제시 및 비판적 대안 활동과 더불어 생활문화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과정에서 기여할 수 있는 다중심성(다양성)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활동하려 한다. 뮤지션유니온을 통해 조합원 스스로 각각의 위치, 각각의 준위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음악활동을 성과를 공유하고,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을 통해 음악공연·창작활동을 도모해 사회적으로 교류하며 음악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거듭 발견해 갈 것이다.

뮤지션유니온은 음악생산과 음악활동의 당사자로서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창출하기 위한 주체적인 활동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다. 뮤지션유니온은 2015년 세월호 1주기에 즈음해 조합원들이 직접 만들고 녹음한 곡들을 모아 ‘세월호 기억음반’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즈음해 블랙리스트에 올려주어 고맙다고 풍자하는 감사잔치를 열기도 했다. 2016년부터 3년 동안 성동근로자복지센터와 협력해 ‘뜨락공연’으로 성동구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어왔으며 2018년과 2019년에는 민주노총과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거리문화제를 함께 진행했고 2019년에는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와 연계해 구로·금천 지하철역 인근에서 거리공연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공연에는 뮤지션유니온의 조합원들이 공연자로 참여해왔다. 그동안의 활동에서 큰 아쉬움으로 제기되는 단순 섭외 수준을 극복하고 음악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발양할 기획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일 과제를 가지고 있다.

   

· 음악인 노동조합다운 활동

음악노동자들의 자주적 노동조합은 사회적 정책 의제를 제안하고 공적 체계의 개선안을 쟁취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2011년 굶어 죽은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사연이 보도된 이후 우리 사회는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예술인 복지정책, 예술인 사회보험 도입 등)을 예술인복지정책의 새로운 정책대안으로 제시해왔다. 문화예술의 주요 당사자인 예술인에 대한 시혜적 관점으로 도입된 정책들은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투쟁으로 쟁취한 게 아니라 정치권에 의해 시혜적으로 추진되었기에 현장에서 드러나는 자극적인 문제만을 표면적으로 다루게 됨으로써 예술노동자들의 사회적 처우와 직업적 안전망에 대한 근본적 아젠다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인들을 도와주자는 긴급구제의 목적으로 도입된 ‘창작준비금’ 제도의 경우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술활동증빙을 갖추지 못한 신진예술인들은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예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2017년 예술인고용보험 도입에 대해 문화예술 단체들과 노동조합들이 연대해 대응하면서 만든 ‘문화예술노동연대’에 뮤지션유니온도 함께하고 있다.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입법계류중인 고용보헙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서부터 법률안에 대한 실제 예술노동현장의 실정에 맞게 시행령을 준비하는 것까지 예술노동현장의 요구를 담아내려 애쓰고 있다. 이외에도 예술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경제적 문제와 함께 직업능력개발(예술 외적 업무 역량, 예술적 기량이나 새로운 기술의 습득 등)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3 2019.6.19. 멜론의 조직적 저작권료 편취 범죄 의혹에 대한 뮤지션유니온 기자회견 [출처 뮤지션유니온].jpg

2019.6.19. 멜론의 조직적 저작권료 편취 범죄 의혹에 대한 뮤지션유니온 기자회견 [출처: 뮤지션유니온]

 

 

뮤지션유니온은 음악산업 내에서 뮤지션들이 당해왔던 불공정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조직이다. 음악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탈법에 대한 고발과 뮤지션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활동이 너무나 절실하다. 최근 우리나라 최대의 음원플랫폼 ‘멜론’의 조직적인 저작권료 삥땅사태가 드러나 관계자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으며, 역시 우리나라 최대의 콘텐츠 미디어그룹인 CJ가 Mnet미디어를 통해 오디션프로그램의 순위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JTBC에 납품된 드라마 <송곳>에 사용된 음악이 저작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송되었다가 해외에는 그 음악이 들어간 씬 자체가 삭제된 채 판매되기도 했다.

원곡자가 따로 있음에도 동의를 받지 않고 기획사 사장이 자신이 만들거나 저작권을 양도한 것 마냥 서류를 꾸며 저작권료를 가져가 2015년 검찰에 고발된 사례처럼 실제 법적 책임을 다투는 일들이 음악계에서 빈번하다. 이 사례들에서 드러난 직접적 피해자들이 바로 뮤지션 당사자들임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종속적 관계에 매여 있기도 하거니와 업계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관계를 이유로 피해를 감수하는 뮤지션들이 많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뮤지션들의 노동조합인 뮤지션유니온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음악산업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야하는 조직이다.

 

 

6년이 되었으나 아직 먼 미래

 

뮤지션유니온이 창립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거나 뮤지션들을 조직화하는 데에 기대만큼의 성과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분산성, 관계망의 부재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상정하더라도 아쉬움이 있다. 뮤지션들의 이익을 대변해 권리 침해에 공동대응하고 직업적 안전망을 위해 뮤지션들이 힘을 모아내기에 200여 명의 조합원은 어쩌면 미미한 역량으로 보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사회적 경제’는 사회의 주체인 사람과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뮤지션유니온의 활동은 음악과 음악산업, 음악노동자들의 관계와 각각의 성격에 대한 현실적인 조망에서 과제를 도출할 것이다. 뮤지션유니온을 창립하며 사회에 던진 화두는 음악종사자들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뮤지션유니온이 음악산업 내 소수 의견그룹에 머물지 않고 뮤지션들의 자주적 대중조직으로 든든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뮤지션유니온이 가진 비전과 미션을 공감하는 사회적 지형을 만들어감과 동시에 조합 운영역량의 전문성을 키워 안정적인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중기적 과제를 실천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