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2] 현대모비스 김천공장에 민주노조를 세웠습니다 / 노승삼

by 철폐연대 posted Feb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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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현대모비스 김천공장에 민주노조를 세웠습니다

노승삼 (금속노조 구미지부 현대모비스지회 교육선전부장)

 

 

현대모비스 김천공장은 경상북도 김천시 응명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의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으로 주요 생산 품목은 램프와 에어백입니다. 200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램프와 에어백을 합쳐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생산팀, 지원팀, 품질관리팀, 생산관리팀 등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천공장 안에는 램프(L&H TECH)와 에어백(SA TECH)을 생산하는 두 회사가 있는데, 현재 금속노조 구미지부 현대모비스김천지회를 설립한 곳은 에어백을 생산하는 SA TECH입니다. 주요 생산품은 운전석 에어백, 조수석 에어백, 커튼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무릎 에어백 등입니다.

 

 

권리 없는 현장

 

우리는 현대·기아 자동차의 에어백을 만듭니다. 차량 충돌 시 충격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는 장치를 만드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중요한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입니다.

CT(cycle time)를 회사 마음대로 조정하여 네 명이 하던 공정을 세 명이 하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생산 수량을 늘리며 우리를 마치 기계처럼 취급했습니다. 연차도 마음대로 못 썼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날, 쉬고 싶은 날이 아니라 회사가 정한 날 강제로 쉬게 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몸이 아무리 아파도 당일 연차는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전염병인 눈병에 걸려도 근무를 해야 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근무를 다 마친 후에야 가볼 수 있었습니다. 4개 하청업체가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고 바뀌어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습니다.

우리는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해 아무 권리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회사는 대놓고 2년 미만 직원들은 계약직이라면서 재계약을 못해준다고 했습니다. 설비는 멕시코,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고, 수주를 못 따서 전년 대비 자동차 생산량이 해마다 줄고 있다면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시도로 성공한 민주노조 설립

 

그래서 우리는 일어섰습니다. 더 이상 회사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운영에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일념으로 초동주체 6명이 비밀리에 잦은 모임을 갖고, 우리만의 규칙과 약속을 한 후 지난해 11월 6일 구미지부 최일배 교선부장님을 만나 저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우리의 나아갈 방향과 향후 일정 등 조심해야 할 부분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보통 노동조합 상담 후 총회까지 최소한 서너 달이 걸린다고 하는데 저희는 두 번 실패한 사례가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 달을 목표로 주야간 근무를 마치고 교육을 진행하였고 주말에도 만나서 교육을 받으면서 쉴 틈 없이 달려왔습니다.

창립총회를 12월 8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총회 이틀 전, 노동조합을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고 회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측은 야간근무라서 자고 있는 지회장 후보 집에 찾아가고 주간근무 중인 노동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강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야간에 전 라인을 20분가량 가동중단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회유하고 협박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회사가 폐업할 수도 있다’, ‘전임자의 월급을 조합비로 줘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자식까지 어렵다’, ‘2년 이하의 직원은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면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 만들지 않아도 다 들어주겠다’ 등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설비 이전 문제까지 철회하겠다고 하고, 불평불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며 회사 측에서 들어줄 수 있는 문제는 모두 들어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 금요일 야간근무(20:00~07:00)였는데 사무실 관리자들은 그 다음날 저희가 퇴근할 때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철야근무를 하면서까지 분열을 조장하고 근거 없는 말들을 유포했습니다. 회사의 그런 방해에도 저희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조합원들에게 회사의 거짓을 설명해주고 한편으로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조합 가입 대상자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회사의 탄압을 뚫고 2019년 12월 8일, 드디어 현대모비스김천지회 창립총회를 힘차게 진행하고 김천 모비스에 민주노조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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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 설립 보고대회 [출처: 지회]

 

2019년 12월 11일 7시, 회사 내에서 설립 보고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가입서를 쓰고 처음으로 전 조합원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런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퇴근하는 조합원과 출근하는 조합원이 자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처음으로 회사 앞에서 당당하게, 회사가 울리도록 쩌렁쩌렁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측은 정문을 막고 경찰을 동원하고 몰래 사진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힘차게 설립 보고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준 전국의 모비스·위아지회 동지들과 구미지부 동지들이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현대모비스 울산지회장은 “2017년 모비스에 첫 민주노조 깃발을 세웠다. 그 이후 전국에서 줄줄이 들불처럼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김천 동지들을 너무나 기다렸다”며 환영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따뜻하고 강렬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변화의 시작, 달라진 현장 분위기

 

설립 보고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매일같이 조합원들이 출퇴근 선전전을 진행하며 우리의 각오와 결의를 사측에 표출했습니다. 모두가 처음 겪고 알지 못하는 게 더 많기에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앞섰지만, 조합원들끼리 서로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며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회 임원과 간부 들은 매일 회의를 진행하여 현장의 상황을 서로 공유하고,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튼튼하고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운영하기 위해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향후 운영 계획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근무 시간 전후의 조회와 종례, 개인 휴대폰 강제 수거를 거부했습니다. 주간 근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인데 근무 시작 10분 전에 조회를 시작하고, 7시 퇴근 시간에 라인 청소를 해야 하고 청소가 끝난 뒤에 종례도 해야 했습니다. 개인 휴대폰은 휴대폰 수거함에 두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긴급한 전화가 와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임에도, 회사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규제와 탄압에 지금까지 누리지 못하고 일만 해왔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이지만, 시행과 동시에 현장 조합원들은 전보다 표정이 밝아지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민주노조와 노동조합에 대한 기본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직 단체협약 체결이 안 된 상태라 근무 시간 중 조합원 교육 시간을 보장 받지 못해 퇴근 후에 교육을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교육에 임해주셨습니다.

회사에 요구할 지회의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의 초안을 지회 임원과 간부 들이 작성하여 전 조합원 임단협 요구안 설명회와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회사에 제출했습니다. 노동조합을 이끌어나갈 대의원들도 전 조합원 투표로 선출했습니다.

 

 

앞으로 현대모비스김천지회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처음으로 김천 지역에서 힘차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바로 한국도로공사에서 직접고용을 위해 투쟁하는 톨케이트 수납원 동지들이었습니다. 같은 김천 지역에서 투쟁하는데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장기투쟁 중인 동지들에게 연대하러 갔는데 힘든 조건에서도 웃으며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힘을 받고 왔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창립총회, 설립 보고대회, 기본협약 체결, 조합원 교육 및 임단협 요구안 설명회, 임단협 요구안 제출 등 쉴 틈 없이 달려왔습니다.

아직 걸음마 중인 신생 노동조합이지만 저희 현대모비스김천지회는 조합원들이 당당하게 일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퇴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민조노조를 지켜낼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와, 합당한 대우,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끊임없이 개선해서 최우선의 품질과 경쟁력을 자랑하는 에어백을 만들겠습니다. 연대하고 투쟁하는 노동조합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