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4]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와 대중투쟁의 질적 비약을 꿈꾸며 / 이김춘택

by 철폐연대 posted Apr 2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현장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와 대중투쟁의 질적 비약을 꿈꾸며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2017년 2월 5일 창립됐다. 2016년 1월,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빅3 조선소의 부실로 인한 하청노동자 대량해고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의 시민단체 및 노동조합 들과 대책위를 꾸려 활동하며, 5월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2016년 봄부터 본격화된 하청노동자 대량해고는 대책위의 활동을 통해 지역을 넘어 노동운동 진영의 큰 이슈가 됐고, 10월에는 전국의 동지들이 ‘조선하청노동자 대행진’이라는 희망버스 투쟁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조선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활동해왔던 지역의 동지들과 금속노조 경남지부 활동을 통해 조직된 초동주체들이 2016년 6월부터 준비모임을 시작해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처음 34명으로 시작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해 대우조선을 중심으로 한 세 번의 대중투쟁을 거치며 조합원이 260여 명으로 늘어났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량해고 국면은 지나갔지만, 구조조정을 빌미로 삭감된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하청노동자의 대규모 조직화와 투쟁이 아니라면 극복할 수 없는 과제로 남았다.

이김춘택 동지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임원으로 활동하며 2016년부터 조선하청 노동자 대량해고 문제 대응과 조직화 사업에 처음부터 함께했다. 경남 창원에서 오랫동안 미조직 사업을 담당하며 키워온 공단조직화의 문제의식을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2016년 거제로 삶터를 옮겨 금속노조의 전략조직사업으로 선정된 조선하청 노동자 조직화에 매진하고 있다. 3월 5일 저녁, 거제 대우조선소 서문 앞에 위치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에서 이김춘택 동지를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신순영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8 이김춘택.jpg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대중투쟁이 벌어지기까지

 

2019년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해예요. 거통고조선하청지회로 보면,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큰 조직적 과제 중 하나가 공개 활동을 하는 거였어요. 지금 우리 지회장이나 부지회장처럼, 현장 활동을 하는 동지들의 공개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가지고 지회 안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기도 했죠.

그런데 대우랑 삼성이 550%였던 상여금을 2016년에 150% 삭감하고, 2017년 하반기에는 400%를 기본급으로 전환했어요. 2016년에는 별 저항이 없었는데, 2017년에는 십여 개 업체에서 취업규칙이 두세 번 부결되기도 했어요. 한 번 모여보자 했더니 8~9업체에서 열댓 명이 모였어요. 역사상 처음이라 고무적이기도 하고 활기도 느껴졌죠. 모임을 몇 차례 하고, “되찾자! 550%” 운동을 2017년 말에 시작하면서 12월에 처음으로 촛불집회 형식의 퇴근집회를 남문에서 했어요. 2월까지 수요일마다 진행하면서 많을 때는 육십 명까지 모이고, 이걸 통해서 공개 활동에 대한 논쟁이 실천적으로 극복됐죠.

이후에는 하청노동자들의 서명을 받아 4월에 청와대에 전달하고, 노동조합 가입운동을 본격화했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어쨌든 사람이 모여야 뭘 할 수 있고, 그런데 사람을 모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게 서로 물고 물리는 거죠. 결국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투쟁해야 사람들이 모이고 그 힘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죠. 공개 활동을 시작한 조합원들이,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 사내식당 앞에서 점심 선전을 하면서 임금인상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시급 2천원, 일단 2만원 인상” 요구를 결정했어요.

 

 

2월, 파워공들의 자생적인 투쟁과 노동조합의 결합

 

그렇게 임금인상 요구를 결정하고 투쟁을 준비하던 차에, 파워공들의 임금인상 투쟁이 자생적으로 터졌어요. 배 도장 작업할 때, ‘전처리 작업’이라고 그라인더로 철판의 녹을 제거하고 표면을 고르게 해서 페인트가 잘 먹게 만드는데, 이 그라인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파워공이에요. 조선소 일 중에 제일 험하고 단가가 높고, 본인들의 자부심도 있어요. 예전에 노동조합이 없을 때도 자체적인 집단행동으로 임금을 인상한 경험이 있고요.

대우조선 파워공 수백 명이 일당 2만 원 인상을 요구하고 작업을 거부했는데, 막상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침에 공장에 모였다가 나와서 길거리 방황하거나 술 먹거나 집에 가거나 하는 거예요. 길에서 그들을 붙들고 내용 파악하고 함께 얘기하면서, 다음 주부터 아침 출근집회, 현장을 휘젓는 집회 같은 걸 했어요. 많을 때는 300명까지 모였고 투쟁이 확 올라갔죠. 15일 정도 파업투쟁하고 일당 2만 원 올렸는데, 조직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임금인상 성공하고는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어요. 파워공들은 일당제다 보니까 이미 열흘 이상 일을 못했고 타격이 컸던 거죠. 주말부터 알아서 들어가기 시작해서, 다음 주 수요일에 마지막 50명 정도가 집회하고 복귀했어요.

파워공 투쟁하면서 처음부터 노동조합 가입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조직화의 타이밍을 놓친 거죠. 그래서 실제 하청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앞에서 주도했던 사람 서너 명에 그쳤어요. 그렇지만 최초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대중투쟁이고, 자생적인 투쟁이 노동조합과 결합하면서 상승한 사례였어요.

 

 

5월 10일 하청노동자 총궐기, 꿈처럼 모였다가 흩어진 2,000명의 조선하청노동자

 

대우조선 정규직노조의 임‧단협 요구에는 늘 협력사 처우개선이 들어가요. 항상 ‘노력한다’로 끝나지만, 유일하게 하나 합의해주는 게 성과금이에요. 대우조선이 쭉 적자였기 때문에 3~4년간 없다가 2018년 임금인상 합의를 하면서 하청 성과금도 100%를 합의했어요. 보통 4월에 주주총회 끝나면 돈을 주는데, 언제 준다는 얘기도 없다가 5월 초에 정규직에게만 성과금을 지급했어요.

하청노동자들이 열을 받기 시작했고, 분노가 표출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해서 5월 10일을 디데이로 잡고 하청노동자 총궐기를 준비했죠. “성과금 안 준답니다, 한 번 모입시다!” 현수막 쫙 걸고, 현장 동지들이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녔어요. 5월 10일에 2천 명이 민주광장에 모여서 집회하고 본관으로 쳐들어가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돈 내놔라 요구했죠. 다음 수요일을 2차 총궐기로 잡았는데, 그 전날 지급됐어요. 사실 운도 좋았던 게, 실제로 사측이 돈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채권단이 태클을 걸었던 거였어요. 돈을 받으니까 동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2차에 천 명 넘게 모였고, 2주 동안 꿈같은 시간이 흘러갔죠. 다음으로 우리가 원래 준비했던 하청노동자 임금인상 투쟁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7월 17일을 3차 총궐기로 잡았는데, 그때는 250명 정도 모인 것 같아요.

사실 앞의 2천 명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폭발적인 사안으로 모인 거고, 실제로 우리가 조직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하청노동자의 수준이 그 정도였던 거죠. 5월 10일에 2천 명 모였을 때는 연락처를 받고 5월 17일에는 직접 노동조합 가입을 받았는데, 160명 정도가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이후 한 달 정도 동안 또 50명 정도가 가입했어요. 7월 17일 이후는 여름휴가에 추석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침체기가 됐고, 원래 휴가 끝나고 원‧하청 공동파업 계획을 잡았었는데, 하청노조의 주체적인 계획이 없다 보니까 사실상 아무것도 못했어요.

 

 

축적되는 현장 경험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투쟁

 

그러다가 11월 말에 삼광피앤씨라고, 붓으로 도장을 하는 터치업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어요. 투쟁을 한 40여 명이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인데 4대보험이 9개월 정도 체납되던 차에 임금까지 한 달 체불되니까 싸움을 시작한 거죠. 11월 말부터 16일 동안, 아침 출근집회부터 낮에는 원청 협력사 운영팀이 있는 지원센터 건물에서 농성하고 저녁에 퇴근집회하고, 노조사무실에 와서 정리하는 식으로 파업 투쟁을 힘차게 했어요. 파워공 투쟁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투쟁 동력을 보존한 상태로 현장에 돌아가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너무 잘 싸워서 애초에 1주일 파업을 계획했다가 2주 동안 파업하고 현장에 복귀했어요.

삼광피앤씨 투쟁은 파워공 투쟁과 비교하면 커다란 진전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노동조합하고 조직적으로 결합했고, 현장 활동가들도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경험이 쌓였죠. 삼광피엔씨 노동자들도 같은 도장업체여서 파워공들이 투쟁하는 걸 봤고, 5월 총궐기에 참여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고요. 이런 것들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투쟁 자체는 이전에 비하면 훨씬 더 조직적이고 강고하게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4대보험 체납투쟁이 일단락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 유지하는 게 어려웠어요. 조선하청지회는 본래 하청과의 교섭은 하지 않는데, 예상되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조합원을 보호하고 조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했죠. 투쟁하면서 노동자들이 보여준 모습과 변화가 워낙 감동적이기도 해서 우리가 많은 기대를 한 측면도 있어요. 그런데 투쟁이 끝나자 조합원들이 급속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오히려 회사와 단체교섭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단체교섭 시작하면서 조합원이 반 정도 탈퇴하고. 회사가 일 없다고 일당제 노동자들 잘라내는데 시급제 노동자들은 관심을 안 보이고…. 해고 통보를 받은 일당제 노동자와 시급제 노동자 몇 명이 2월 중순부터 다시 투쟁을 시작해서 결국 이번 주 월요일에 3명에 대한 고용 보장으로 마무리했어요.

 

 

자본이 가른 이해관계, 고용형태와 임금체계가 다른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기 위해

 

조선소 노동자들은 시급제나 일당제, 물량팀 등 고용형태가 다르고 임금체계도 달라요.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고 함께 묶어내는 게 어려워요. 우리 조합원들도 시급제 본공들이 대다수고, 아직은 시급제 투쟁이 중심이죠. 작년 총궐기 때 성과금도 시급제 8천 명만 받은 거예요. 우리는 모든 하청노동자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지만 먹히지 않죠. 우리가 따낸 게 아니라 정규직 합의의 결과였고요.

올해 임금투쟁은, 설‧추석‧여름휴가 상여금을 각각 100%씩 지급하라는 것을 핵심 요구로 정하기로 했어요. 일당제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없기 때문에 자기랑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정규직의 합의가 아니라 우리의 요구니까 하청노조가 책임지고 끝까지 요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도 시급제 노동자들이 먼저 조직이 되기는 하겠지만, 현장에서 투쟁할 때 우리가 어떤 요구를 내걸고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지에 대해서 대상을 미리 나눌 필요는 없다고 봐요.

상여금이라는 단일한 요구로 모으되,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하라는 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일당제 노동자들의 믿음을 얻어내는 게 대단히 중요한 거죠. 객관적인 정세는 좋지 않아요. 올해 대우조선이 적자가 난다고 하면서 정규직은 잔업 통제,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하청은 돈줄을 죄고 있어요. 그렇지만 작년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의 상여금 문제를 내세워서 대규모 투쟁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이 현장은 안전합니다.” 하청이 조직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위험한 조선소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조선소도 노동안전 문제가 매우 중요하죠,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요.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하청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개선이나 변화는 힘들 수밖에 없어요. 직접생산현장의 70~80%를 하청노동자가 담당하고 있고, 그들이 그 현장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전달될 통로가 전혀 없으니까요. 하청노동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과 제도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일단 제도가 없고 힘도 없는 게 현실이죠.

노동안전에 있어서 특히 원‧하청 공동대응이 중요하다고 봐요. 작년 1월에 추락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정규직노조가 공동대응을 제안해서 함께한 적이 있어요.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쉬운데, 이 같은 원‧하청 공동대응이 계속 필요해요. 올해는 원‧하청 노조가 함께 산재 은폐를 근절시키는 것을 중점사업으로 같이하려고 하고, 정규직노조에는 분기별로라도 하청업체 산보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하도록 요구하려고 해요. 그래야 실제로 현장의 위험요소와 개선이 필요한 요소가 뭔지 정규직노조를 통해서라도 반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현실화될지는 아직 미지수예요.

문재인 대통령이 중대재해로 인한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할 때 노동자의 의견을 듣겠다고 말한 이후, 지금은 고용노동부에서도 회사에 이를 요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작년 1월 사망사고에서 대우조선이 고용노동부에 작업중지명령 해제하는 요청서를 보내면서,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약 160명의 동의서명을 첨부했어요. 현장에 고쳐진 게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죽음의 위험이 있는데, 하청노동자들은 “이 현장은 안전합니다.” 라고 자기가 사인을 하는 거예요.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죠. 그거 보고 되게 참담하더라고요. 제도화라는 게, 조직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그들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투쟁의 주체가 운동을 주도하지 못하는 현실,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

 

저희 조합원들 노동운동사 교육할 때 그런 얘기를 해요. 70년대에는 산업의 중심이 경공업이었고 그 공장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주력이었다. 80년대에 들어 중화학공업으로 바뀌면서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역이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에 섰는데 노동운동의 권력은 여전히 대공장 정규직이 잡고 있다. 이 불일치를 극복하는 게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고, 지금 노동운동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요.

어쨌든 이런 현실은 비정규직 주체의 힘이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극복되어야 하는 건데 현실은 여전히 어렵죠. 그래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중요하다고도 생각해요. 서울 중심이어서 여의치 않을 때도 있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가능한 열심히 참여하려고 하고요. 비정규직 주체들이 스스로 운동을 돌파해나가는 것, 운동의 주체로 어떤 흐름과 투쟁을 만들어나가려는 노력, 전국적인 사안들의 투쟁 전선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지난 톨게이트 투쟁도 마찬가지고, 2000년대 이후 노동운동과 노동자 투쟁의 전국 전선을 형성하고 이끌어왔던 건 비정규직 투쟁이었는데, 노동조합운동에서 전체운동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죠.

한편으로는 운동의 역사가 오래 되고, 관성화 내지는 관료화되면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있잖아요. 예전에 금속 구미지부나 경기지부에서 일어난 일들도 그렇고, 운동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용인되는 문제가 산별노조운동 안에서 발생하고 있죠.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잘 해결해야 운동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사안이 있을 때는 작은 목소리라도 하나 보태려고 지회 차원에서도 노력하고 있어요.

 

 

‘훗날 언젠가’로 간직한, 공단조직화의 꿈

 

2000년부터 2016년까지는 창원에서 활동하면서 미조직 사업을 주로 담당했어요. 천직이고 행운이라고 여겼지만, 내가 하는 활동이 전체 미조직 노동자들한테 어떤 의미가 있느냐와 더불어서 전체 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중소사업장 조직화 사업을 하다보면 30명 사업장이나 3천 명 사업장이나 노동조합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는 데에 드는 품은 비슷해요. 금속노조 산하의 지역지회가 다 상황이 열악하고, 부침이 심해요. 그러면서 이 활동이 공단의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직화는 전체적인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위사업장을 넘어서야 된다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사실, 조선하청지회는 처음부터 지역적인 접근을 고민했는데 업종의 성격이 같이 있어서 다른 공단조직화보다는 좀 수월한 측면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지역 단위의 접근이기는 하지만 거제의 경우 큰 조선소 두 개가 딱 있기 때문에 사업을 하다 보면 여기에 집중하게 되는 측면이 있어요. 고성이나 통영의 중소공단이나 이런 데를 많이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거죠. 조선은 크게 빅3 중에 어느 한 군데라도 하청노동자 대규모 조직화에 성공하면 다른 조선소로 확산되는 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쨌든 대우조선에 집중해서 대규모 조직화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선소는 애초에 가지고 있던 공단조직화의 고민이랑 비교하면, 연장선에 있기는 하지만 포인트가 달라요. 그래서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공단조직화의 문제의식을 실제 현장에서 한 번 실천하면서 뭔가 답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하는 거죠. 조합원 5천명만 넘으면 미련 없이 조선하청 조직화를 끝내고, 공단조직화하러 간다고 우스갯소리처럼 하기도 하고요.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와 대중투쟁, 비상을 준비하는 2020년!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2017년부터 쭉 온 궤적을 보면 어렵지만 잘해왔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고 활동을 이어오면서 제가 하는 역할은 일종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건데, 우리 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함께 고민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힘든 측면이 있었어요. 투쟁을 하면서 제대로 판단했다고 느끼는 상황도 있었지만 헛발질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 동지들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처음이고 경험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함께 토론하면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고, 올해도 그렇게 조직화와 대중투쟁을 확대해 나가야죠. 조선하청 조직화의 역사가 현대중공업부터 시작하면 15년인데, 아직은 질적인 비약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디든 한 군데가 뚫리면 다른 데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봐요.

그리고 비정규직 운동으로 보면, 한계는 있지만… 자동차 비정규직 운동이 10년 넘는 투쟁을 통해서 정규직화를 어느 정도 이뤄냈죠. 철강도 수천 명, 부품사 노동자들도 수천 명 조직화 됐어요. 역사는 오래됐는데 조선에서 안 되고 있는 거죠. 우리가 늘상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얘기지만, 규모로 보면 조선소 하청의 규모가 제일 크기 때문에 이 조직화가 전체운동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노동조합이라는 게 조직화만 됐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얼마나 건강하게 계급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건데, 지금 걱정할 일은 아니고. 어쨌든 그런 것에 대한 끈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대규모 조직화가 가장 우선적인 계획이자 목표고 또 꿈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질라라비200호엽서_1-장소수정.jpg

 

질라라비200호엽서_2-장소수정.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