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6] 「일터를 바꾸고 내 삶도 바꾸는 운동, 지속가능한 토대 만들어나갈 것」 / 오진호

by 철폐연대 posted Jun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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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일터를 바꾸고 내 삶도 바꾸는 운동, 지속가능한 토대 만들어나갈 것

- <직장갑질119> 오진호 총괄스태프 인터뷰

 

 

<직장갑질119>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비영리 공익단체이다. 현재 140여 명의 변호사․노무사․활동가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한 노동법률 상담과 여론화 사업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쏟아지는 저마다의 사연들은 노동조합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울분과 불안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직장갑질119>에 함께하는 스태프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의 노고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작년 7월16일부터 시행됐지만, 갑질 없는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직장갑질119>는 5월 27일 사단법인으로 재출발해 일터의 민주주의를 바로세우는 직장갑질 추방 운동을 보다 안정적이고 짜임새 있게 진행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사단법인<직장갑질119>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될 <직장갑질119> 총괄스태프 오진호 동지를 지난 5월1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연대운동상황실(<직장갑질119> 상근 스태프들은 이곳에서 4년째 더부살이로 지내고 있다)에서 만났다.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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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제76조)이 시행된 지 10개월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직장 내 갑질문화의 개선이나 법제도의 정착 측면에서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갖는 가장 큰 사회적 의미는 이전까지 제도적으로나 절차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웠던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법으로 인입시켰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사내 교육을 실시한다든지 사내 규정을 바꾼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시적인 변화 측면에서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우선 작년 10월에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나?’ 라는 질문에 39.2%, 대략 10명 중 4명이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응답했는데, 적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제보를 접하다 보면 이전에 비해 욕설이나 막말을 하는 제보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역설적으로 따돌림, 은근한 괴롭힘 등의 사례 제보들은 다소 늘었는데, 가령 직원들에게 잡일을 시키고 폭언하고 이런 비상식적인 괴롭힘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사업주를 비롯한 가해자 처벌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닌 한계나 제도적 보완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제도적 보완, 즉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은 피해당사자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회사에 먼저 신고하도록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에 신고했을 때, 회사가 조사를 해태하거나 늑장처리하거나, 혹은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 조치를 하는 상황들이 일어난다. 이 경우 피해당사자가 노동부에 바로 신고할 수 있게 해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노동부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들을 고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원청과 하청 기업 간 불평등한 구조 문제도 있다. 원청 사업주나 직원이 하청 노동자 등에게 갑질하는 경우에도 노동부에 바로 신고할 수 있게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시정 조치 기한 설정의 문제가 있다. 노동부 내부 지침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왔을 때 피해자 보호조치를 비롯한 개선지도는 3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돼 있다. 담당 근로감독관의 판단 하에 30일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결국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처리하는 데 최대 60일이 소요된다는 얘긴데, 피해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 오래 걸린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재직 중인 직원에게 60일이나 참고 있으라는 건 가혹한 조치이다. 따라서 사건 처리 기한을 현행보다 더 줄인다거나, 근로감독관들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 전환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규정들이 상당히 많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법률적 미비점에 대해서는 사실 꽤 많은 개선 과제가 있지만, 크게 다섯 가지 사항만 짚어 보겠다. 첫 번째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현행법에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가해자가 사용자일 경우, 또는 피해자를 악의적,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사업주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의 처벌 조항이 법에 포함돼야 한다. 두 번째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 3항(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을 보면 사용자의 조사 및 조치 의무에 대해 잘 정리돼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처벌 규정은 부족하다. 미이행 시 처벌조항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교육인데, 현행법은 의무교육을 강제하고 있지 않다. 이 역시 바뀌어야 할 지점이라고 본다. 네 번째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이 굉장히 제한적인데, 이런 것들도 개선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현행법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데 제한된 정보, 권력관계에서 불리함 등 현실적인 문제로 피해자가 이 같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 경우 사용자가 입증책임을 질 수 있도록 바꾸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와 관련한 피해 상담 제보가 폭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나?

<직장갑질119>에서 지난 3월 한 달간 접수된 제보를 통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관련한 갑질, 괴롭힘 내용이 전체 제보의 35%가량을 차지했다. 3월 들어온 상담․제보 가운데 코로나19 직장갑질 유형에 해당하는 건수는 총1,219건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들만 간추려 소개하면 대략 세 가지 유형을 꼽아볼 수 있다.

첫째, 연차휴가를 쓰도록 강요하는 사례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다. 둘째, 무급휴직 또는 무급휴업을 강요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마지막 셋째로는 해고 관련 상담 사례이다. 권고사직, 계약해지, 명예퇴직 등 그 무엇으로 불리든 근로관계가 해지(종료)된다는 측면에서 해고라고 통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이 제보 사례로 가장 많이 들어오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점차 해고 관련 문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면 현장은 지금 어떤 상황이냐. 코로나19 경제위기 초반에는 연차휴가 사용(소진)을 강요한다거나, 그 다음엔 무급휴직을 시키거나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내몰다가 이제 더 어려워지니까 해고를 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은 항공산업 등 이동 및 대면 서비스가 이뤄지는 직종에서 주로 나타났다가 최근에는 전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고나 무급휴직으로 이어지는 피해 사례의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고용위기를 개별 기업이 온전히 책임지라는 이야기는 사실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코로나19 상황이 기업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 자체가 인적 구조조정 대신 휴업을 실시한 사업주를 대상으로 휴업수당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직장갑질119>에 관련 상담이 들어오면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해고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해고 문제에 대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해고 사례들은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가 꽤 많은데, 우리나라 법에서 경영상 이유에 따른 해고는 사실 매우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해고 요건을 절차적으로 갖춘 해고인지 등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법률적 다툼, 대응을 조언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정부 지원대책의 빈 틈을 속속 확인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모아서 정부에 요구하고 세상에 알리는 활동들도 함께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코로나19 대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하다.

우선 지원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특히 지금 정부의 고용 관련 대책은 당장 벌어지고 있는 해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대통령의 ‘고용총량 유지’ 약속도 이행 강제 방안 등 세부적인 해법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소득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이들에 대한 정부 대책이 아쉽고 한계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코로나19 고용위기가 드러낸 교훈이 무엇인지, 그를 통해서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정부가 이 상황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외주화, 민영화에 매달린 결과 노동자들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구조가 공고해진 것 아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할 때 비용 절감 논리, 이윤 제일주의가 낳은 폐단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총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유의 재난 상황 속에서 특히나 권리에 취약한 파견직, 계약직, 프리랜서, 특수고용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속수무책 빼앗기고 쫓겨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느꼈던 고충이 있으시다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하는 것이 부실하다. 일례로 우리가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고용보험이라는 것은 단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나니까 의외로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제도가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제도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이 허다하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원청회사가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 파견회사들은 해당 원청회사 말고도 다른 회사들에도 인력파견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견회사들의 경우에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업종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항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애초 정규직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자회사 정규직으로, 종국에는 자회사의 파견직으로 내몰리는 고용형태의 변화를 겪어왔다.

이렇게 끊임없이 간접노동으로 내몰렸던 과정이 있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불안정노동의 열악한 실상이 새삼 확인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코로나19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변화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면, 그 시작은 고용안정망에 대한 확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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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린다.

앞으로의 계획은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코로나19 관련 대응 사업이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4월27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 모든 해고 금지 △‘아프면 쉬자!’ 상병수당 제도 도입 △모든 취업자에게 고용보험 보장, 이 세 가지를 요구했는데 지속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가 단기적인 위기가 아니라, 언제든 또 다시 발현할 수 있는 위기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요구에 대해 보다 집중적인 캠페인을 해나갈 예정이다.

두 번째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해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제도적 한계와 법안의 문제점, 그리고 법 개정까지 요구하는 것이 아무래도 주된 활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세 번째로는 우리 사회에 여태껏 드러나지 않았던 갑질의 영역들을 재조명하는 작업 또한 앞으로 <직장갑질119>가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고용유지지원금 말고도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정부의 지원금 대책들이 여러 종류 있다. 그런데 지원대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회사가 정부 지원금을 보조받고 있어서 직장갑질이나 부당한 피해를 겪고도 일을 그만두기 어렵다는 호소를 많이 한다. 혹은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쓰고자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참고 일하다가 유산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정부 대책이나 법제도의 한계에 짓눌린 노동자들의 사연을 드러내고자 한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직장갑질119> 운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게 좀 더 체계를 가다듬고 보완해나가려고 한다.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사단법인을 출범하고 후원회원 확충을 통해 재정적 안정성도 기하는 것, 이런 일들을 앞으로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질라라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어쨌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노동운동이 어떠한 전략과 실천을 갖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 시작은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삶 속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그로부터 대안적인 정책과 제도를 내놓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직장갑질119>의 시스템, 형식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대응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데, 모든 사업의 귀결이 당장 노동조합이라는 그릇으로 담겨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 정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직장갑질 상담을 하다보면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만의 지점이 예전처럼 임금, 노동시간에만 국한하지 않더라. 갑질이나 괴롭힘, 혹은 기타 노동과정에서 느끼는 모멸감들…. 이런 부조리한 경험에서부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생긴다고 보는데, 당사자들이 지금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이야기 듣고 그들이 처한 현실적 조건을 점검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다양한 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모이고 목소리를 내는 운동을 만드는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폐연대 회원 중 <직장갑질119>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계신 스태프 분들이 참 많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특별히 전하고 싶고, 참고로 <직장갑질119> 활동은 의욕과 열정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