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6] 공공부문 정규직노조 운동의 희망 찾기 / 황철우

by 철폐연대 posted Jun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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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공공부문 정규직노조 운동의 희망 찾기

 

황철우 •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 철폐연대 회원

 

 

 

27년 전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노조운동을 시작했다. 입사 전부터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라는 노동조합가를 먼저 알았고 "옥포의 조선소에서 서울 철로 위로"라는 노랫말이 자랑스러웠다. 그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이 된 게 너무도 뿌듯했다.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활동한 덕분에 노조활동으로 구속·수배·해고 그리고 복직이라는 숱한 경험을 치렀다. 긴 해고 생활 동안 비정규직 운동에 복무하기도 했지만 복직 후 정규직노조 운동, 특히 공공부문 정규직노조 운동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시 노조 중앙간부로 선출돼 2년 동안의 임기를 마쳤다. 이 글은 <질라라비> 179호(“서울교통공사노조 출범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쓴 글을 토대로 2년 동안의 활동을 되돌아 본 글이다. 공공부문 정규직노조 운동의 희망 찾기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정규직노조의 현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또 다시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공공부문 정규직노동자는 고용불안만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IMF경제위기 때도 정리해고의 위협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구노력과 일 더하기로 버틸 수 있었다. 현재 공공부문 노조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조는 민주노총 내의 최대조직이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질시와 반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연대와 실천은 축소되고 있는 반면에 사회적 임금과 복지의 차이는 확대되고 있다. 높은 입사 문턱과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고용안정성은 부러움을 넘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화에 대한 연대투쟁도 엷어지고 있으며, 청년조합원의 집단적 반발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2016년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서 집단적 파업을 전개한 바 있으나, 이 또한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이러한 공공부분 정규직노조의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조활동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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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6. 구의역 참사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종의 차별해소를 위한 노조의 활동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노조 주최로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진행된 차별실태 폭로 기자회견 사진. [출처: 서울교통공사노조]

 

그동안 노조활동을 통해 직접 확인한 공공부문 노조의 현실을 짚어본다.

첫째, 일상적인 현장투쟁이 사라졌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만과 차별에 대해 현장투쟁이 조직되지 않고 있으며, 늘 노조 중앙이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한다. 자판기노조의 오명을 씻기 힘든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장을 책임지는 노조간부 발굴이 쉽지 않고, 그나마 있는 전․현직 현장간부도 지쳐서 한 발 물러서 있거나 자신만의 완장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중앙도 이러한 현장의 요구를 쉽게 외면하지 못하고 수용하고 있다.

 

둘째, 투쟁이 통제되고 있으며 파업이 제도화되었다. 일상적 투쟁이 사라지면서 투쟁보다는 사측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투쟁의 한계와 성과를 미리 예단하고 노조 스스로가 투쟁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의결서에서 뚜렷한 성과를 못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 해 농사인 임단협 투쟁 때는 파업의 배수진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파업도 이미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도화되었다. 필수유지업무 협정서에 따라 파업을 준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노조의 실무준비만 힘들어졌다, 파업의 파괴력도 거의 없으며 사측한테 위협적이지도 않다. 필공파업을 위반할 경우 각종 징계와 벌금 등의 피해 또한 엄청나다. 지하철이나 철도 등은 출퇴근시간대에 정상적으로 열차가 운행된다. 하지만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파업 돌입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으나, 파업 돌입 이후에는 파업참여자 임금 보존 등 노조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고 조합원 사이의 갈등으로 현장복귀 시기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노조는 직권중재 대신 필공파업을 확보는 했지만 사실상 단체행동권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단체행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을 시급히 전개해야 한다.

 

셋째, 노조활동의 근본적 지향이 무력화되고 있다. 노조활동의 기본인 임금인상과 복지향상, 근무형태개선 등의 요구가 절박하지도 치열하지도 않다. 또한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실천은 축소되고 산별노조 참여나 진보정당 활동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공공부문 노조는 정부 지침에 따라 수년째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이 설정되고 총액인건비제과 임금피크제 등이 강제되고 있으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움직임은 전무하다. 신입사원을 제외하고 임금인상의 요구가 높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임단협의 요구사항은 많지만 정부의 지침과 통제로 실현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의 지침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론과 기본적인 기업복지가 확보되고 근무형태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우리 사회 상위 10% 기득권층의 대접을 받는 것도 원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실천은 노조 현안투쟁의 ‘바쁨’을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고 있으며, 같은 사업장 내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투쟁도 조합원 사이의 뿌리 깊은 차별의 고착화와 사업주의 분할지배전략을 깨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산별노조 참여와 진보정당 활동도 임단협 중심의 실리주의 경향에 발목이 잡혀서 조직 내의 체계적인 준비와 논의,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넷째, 노동조합 ‘교육’이 사라졌다. 노조간부 사이의 학습은 찾아보기 힘들며, 집단적 토론과 실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개개인의 경험만이 우선시 되고 있다. 조합원 교육은 전혀 진행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으며 신입조합원을 대상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

 

다섯째, 새로운 노조활동가의 발굴이 힘들어지고 있다. 높은 입사문턱을 뚫고 들어온 신규직원의 노조 가입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탈노조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세대’라고는 하지만 노조의 역할과 필요성에 둔감하고 연애, 결혼, 육아에 집중하기 때문에 청년노조간부를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새로운 노조간부를 발굴하지 못함에 따라 전·현직 노조간부가 돌아가면서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노조간부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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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 승무분야의 일방적인 운전시간 개악 맞서 88체육관에 개최된 '부당업무 거부 투쟁' 돌입을 위한 야간조합원 총회 사진. 이 투쟁을 통해 운전시간 일방변경을 원상회복시켰으며 노조에 대한 청년조합원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출처: 서울교통공사노조]

 

공공부문 정규직노조 활동 사례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도시철도노조가 통합돼 출범한 서울교통공사노조 초대 집행부 2년 동안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초대 집행부의 기풍을 바로 세우고 화학적 통합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쉽게 타협하거나 거래하지 않고 투쟁할 때 제대로 투쟁하는 노조 건설에 매진했다. 공공부문 정규직노조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다만 문제의식의 공유와 초석을 다졌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아 활동 사례를 소개한다.

 

첫째, 투쟁하는 집행부의 기풍을 새롭게 만들었다. 출범 이후 합의사항을 미이행하는 사측의 도발에 맞서 100일 동안의 시청 앞 농성과 33일 간의 위원장 단식으로 합의사항 이행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온 무인역사와 무인운전 정책을 저지시켜냈다. 또한 두 번의 임단협 투쟁 때도 철저한 파업투쟁의 준비와 조직력 확보로 4조2교대 근무형태 확정, 안전인원 충원, 정부 지침의 일부 변경, 통합단체협약서 체결, 조합원 인권보장과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임기 말 승무분야의 운전시간 일방적인 변경이라는 사측의 계획된 도발에 맞서 노조 전체 투쟁으로 받아 안고 비타협적인 끈질긴 투쟁을 통해 원상회복을 시켜놓았다.

 

둘째, 노조의 미래인 청년조합원을 바로 세우는 데 매진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쌓인 청년조합원의 이탈과 반감을 극복하고 청년조합원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청년브리핑’이라는 제목으로 청년소식지를 만들어 사내메일로 발송했다. 또한 청년조합원을 대상으로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고 분야별 간담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다양한 청년사업과 청년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주체 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는 매우 더디다.

 

셋째, 사회적 연대와 실천투쟁을 복원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서울시 자치구 노동복지센터에 제안해서 주요 환승역 통로에서 ‘지하철 무료 노동상담소’를 운영했다. 강동노동권익센터를 비롯해 10개 자치구 센터가 14개 주요 역사에서 격주 수요일 퇴근시간에 진행했다. 그 결과 두 달 만에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임금체불, 해고, 실업급여 등 550건의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노조는 재정적 지원과 안정적인 공간 제공뿐만 아니라 시민홍보와 안내도 함께 진행했으며, 코로나 이후 중단되었지만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또한 국립오페라지부의 해고자복직투쟁 집회와 마사회 저녁문화제 때 정기적으로 참여했으며, 277개 역사 내의 투쟁사업장 집회나 민주단체 행사를 안내하는 대자보를 지속적으로 부착했다. 파인텍과 콜트콜덱 등 장기투쟁사업장 지원과 꿀잠 지원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조의 희망 찾기

공공부문 정규직노조의 희망 찾기는 쉽지 않은 숙제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주체역량이 취약하고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부정적 인식과 정서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우선 단위노조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노조활동의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다양한 모범사례를 만들어내자. 현안문제 해결과 임단협 중심의 노조활동을 극복하고 사회적 연대와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한 노조활동의 모범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초대 집행부에서 진행한 세 가지 사례를 비롯해서 전국적 모범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위노조만의 개별적 노력으로 현실을 극복하기에는 대내외적 상황이 심각하다.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 공공부문 노조의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중장기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가칭)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포함시키고 국제적 상황과 사례도 수집해야 할 것이다. 정규직노조의 성향과 임기 때문에 좌초되지 않기 위해서 조직적인 강제방안 또한 포함시켜야 한다. 정규직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현장활동가들 사이의 정기적인 만남을 추진해서 교육과 학습, 집단적 실천과 평가도 이끌어내자.

 

결국, 조직된 노동자의 우직한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노조 활동가의 역할과 과제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은 ‘모든 해고를 반대하고 함께 살기’ 위한 사업장 내의 연대와 실천부터 시급히 조직해내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존립 근거인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그리고 계급성을 다시 복원하는 길이 세상을 바꾸는 노조운동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공공부문 사업장 내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손 맞잡고 더디고 힘들더라도 이 길에 함께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