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7]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왜 필요한가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Jul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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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왜 필요한가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

 

한해에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와 직업병으로 죽는다. 왜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가? 실질적인 사용주, 안전관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천의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불이 나서 무려 40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때 원청이 받은 벌금은 2,000만 원으로 한 사람의 목숨값은 50만 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2020년 4월 30일 이천의 한익스프레스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똑같은 화재가 또 다시 발생했고, 무려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기업들은 노동재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노동재해는 반복된다. 강력한 처벌을 담은 법안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에 대한 처벌이나 기업의 책임자, 원청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수위가 높아졌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처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은 구체적인 행위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으며, 지금처럼 안전관리를 소홀하게 만드는 조직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외주화되고 관리체계가 복잡해질수록 책임은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과 최고경영책임자까지도 처벌하기 위한 독자적인 법안이 필요한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생각하면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처벌을 강화하여 예방적 효과를 높이자는 취지도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고자 하는 핵심 취지는 ‘처벌 강화’에 있다기보다는 그 동안 사법기관의 재량에 의해 처벌이 되거나 안 되는 원청과 최고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법제화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2020년 5월 27일, 136개 단체와 산재와 재난피해자들이 모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구성했다.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 노회찬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으나 이 법안은 단 한 번의 심의도 없이 폐기되었다.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이고 피해자들이 다시 모였다. 시민과 노동자가 직접 입법발의자가 되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결의를 모아, 2020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원년으로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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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충청권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대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강의하는 필자 모습 [출처: 백승호, 충남노동자뉴스 ‘길’]

 

 

2.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적인 내용

 

① 노동자와 시민의 죽음 모두에 책임을 묻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다르게 노동자만이 아니라 기업에 의한 시민들의 중대재해도 대상으로 삼는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 피해를 발생하게 한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및 공무원의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공중의 안전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의 잘못으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죽는다. 노동자들을 죽게 만드는 안전관리 체계의 부실은 시민들의 죽음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참사나 불산 누출사고,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거치면서 이런 사회적 참사에서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동안 기업들은 책임을 분산시키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것이 결국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로 이어진다.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책임을 묻고 투쟁하기도 하지만 시민들은 위험에 대해 알 권리조차 없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성도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② 기업의 최고책임자, 원청책임자를 처벌하다

 

노동재해나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효과적인 안전조치가 실행될 수 있다. 최고경영진의 과실이 입증될 수만 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형량도 매우 낮을 뿐 아니라 과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기업들은 책임을 분산시키고 경영책임자의 과실을 증명하기 어렵게 만들어놓는다. 이 법에서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에 대한 포괄적인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이것의 위반으로 인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었다.

제3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의무)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이 소유·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취급하거나 생산·제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해 종사자, 이용자 또는 그 밖의 사람이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형식적인 책임자가 있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는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법에서는 ‘경영책임자’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로 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책임주체가 책임을 지도록 만들었다.

제2조. 정의

5. ‘경영책임자 등’이란 다음 각목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법인의 대표이사 및 이사

나.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부터 제6조까지에 의하여 지정된 공공기관의 장

다. 법인의 대표이사나 이사가 아닌 자로서, 해당 법인의 사업장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그러한 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지위에 있는 자

그리고 위험을 외주화하거나 도급의 경우에도 실질적인 사용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원청의 책임을 법에 명시하였다.

 

③ 기업 자체를 처벌하다

 

‘기업’ 자체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기업의 범죄능력은 인정되지 않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기타 법률에서 ‘양벌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이 된다. 그런데 이 때에도 법인의 대표자나 노동자가 법을 위반했고, 그에 대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처벌된다. 그러나 안전조치가 미흡하여 위험이 생길 경우 그 위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특정한 개인이 아닐 때가 많다. 대부분은 기업의 조직문화로 형성된 규칙이나 관행 등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죽게 한 기업의 정책, 행동규칙, 관행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이를 처벌함으로써 이런 조직문화가 바뀌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6조(법인의 처벌)

②법인을 제1항에 따라 처벌할 때 법인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해당 법인의 전년도 연 매출액 또는 해당 기관의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의 범위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다.

1.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을 범한 행위자에 대하여 법인의 경영책임자 등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경우

2. 법인 내부에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조장·용인·방조하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경우

 

그런데 이 법에서도 법인의 처벌을 독립적으로 하지 못했고, 조직문화의 문제가 있을 때 법인을 가중처벌하는 것으로 담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 과정에서 양벌규정을 넘어 기업의 형사책임을 가능하게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지금은 개인의 처벌과 연계된 기업의 처벌이지만, 적극적으로 기업을 독립적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➃ 공무원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다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가 있었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진 사고였다. 인허가가 나서는 안 되는 곳에 공무원이 인허가를 해줌으로써 사고를 불렀음을 알 수 있었다. 춘천에 봉사활동을 갔던 인하대 봉사단도 산사태로 사망에 이르렀지만 결국 허가가 날 수 없는 곳에 펜션 허가를 내준 공무원의 잘못을 제대로 묻지는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다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관리감독을 해태함으로써 위험을 방조하기도 하며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안전보건의무에 대한 감독의 책임을 지는 공무원이 감독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에 대해 책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법안에 담았다.

제7조(공무원의 처벌) 다음 각 호의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유기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상 3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안전관리와 보건관리 의무의 준수 여부와 감독

2.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의 건축 및 사용에 대한 인·허가

 

➄ 징벌적 손해배상의 내용을 담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내용에 담았다. 엄중한 손해배상 책임이 예방에서도 핵심이기 때문이다. 배상액의 산정에는 고의나 손해발생의 우려에 대한 인식 정도,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 규모,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수준, 위반행위 기간과 횟수, 가해자의 재산 상태 등으로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제10조(손해배상의 책임) ①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여 해당 법인 또는 기관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경우 그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진다. 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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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참여 및 입법발의자 모집 홍보 웹포스터 [출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3.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만들자

 

법이 만들어진다고 노동자와 시민이 바로 안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험난하겠지만 법이 만들어져도 법망을 피해가려는 시도는 계속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법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이다. 노동자의 죽음이나 시민의 죽음은 기업 이윤활동의 부작용이 아니라 범죄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즉 노동재해나 사회적 참사로 인한 죽음은 형사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살인’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것이 ‘범죄’임을 강조하는 것은 ‘처벌’을 각인시킴으로써 기업들이 예방에 더 힘을 쏟도록 하기 위함이며, 노동자들이나 시민들도 이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기업에게 제대로 된 예방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법률을 논리적으로 잘 만들어서 입법을 하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 아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보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이제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이런 죽음에 대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업에 보여주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지만 죽음을 당한 이들의 유가족과 동료들이 그대로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문제제기하고 함께 싸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질 때 이 법도 실효를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라고 부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 법안을 시민들의 힘으로 발의하고자 했다. 지금은 ‘입법발의자’를 조직하고 있다. 내가 직접 입법발의자가 되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법안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 10만 명이 서명을 하면 바로 상임위원회로 법안을 올릴 수 있게 만든 ‘국민입법동의 청원 제도’를 활용하고자 한다. 더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지금도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죽음에 대해 이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법이 만들어져도 현장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날 수 없고 최고책임자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에서는 고 김재순 노동자 죽음에 대해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투쟁하고 있고, 동해 삼표시멘트에서 발생한 죽음에도 노동자들이 나섰다. 현대제철과 현대중공업, 덕양산업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도 동료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렇게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은 힘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 때에만 이 법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대중적인 입법운동임과 동시에 지금도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하청구조를 만들어서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며 노동자들 사이에 안전을 위한 소통을 단절시키고, 안전에 대해 말할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기업의 구조,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겨 안전관리를 소홀하게 만드는 기업문화, 권한은 위에 있지만 책임은 아래로만 쌓이도록 해서 하위직만 징계되도록 하는 만드는 제도와 관행이 위험을 만들어내고 이 안에서 사람이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투쟁할 것이고, 그 투쟁의 결과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