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9] “힘찬 몸짓처럼 활기 넘치는 현장 만들고 싶어” / 이종성・원종만

by 철폐연대 posted Sep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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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힘찬 몸짓처럼 활기 넘치는 현장 만들고 싶어”

 

-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케이비오토텍지회 몸짓패 ‘불패의 전사’ 이종성・원종만 동지 인터뷰


 

5년 전 여름, 전직 경찰․특전사 출신을 ‘노조파괴 용병’으로 무더기 채용해 현장에 분란을 유도하는 등 신종 노조파괴 전략을 과감히 실행했던 기업이 있었다. 충남 아산에 소재한 케이비오토텍, 노조파괴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당시에는 갑을오토텍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이다. 이때 폭로된 사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신입사원 채용-제2노조 설립-직장폐쇄 단행 방안’ 등을 상세히 담고 있었고,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현 케이비오토텍지회) 약화를 목적으로 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고용노동부와 검경의 묵인비호 아래 한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광범위한 외주화를 통해 비용절감을 꾀했던 회사로서는 단결 투쟁으로 ‘비정규직 없는 일터’를 지켜온 민주노조운동이 눈엣가시처럼 성가시고 불편하기만 한 존재였다. 지회의 침착하고 의연한 대응 덕분에 노조파괴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지만, 2016년 7월부터 사측의 무기한 직장폐쇄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갑을오토텍 투쟁은 전국적인 노조파괴 분쇄 투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지난한 싸움 끝에 2018년 3월, 마침내 갑을 자본으로부터 노조파괴 중단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직장폐쇄 기간 중 맞닥뜨려야 했던 김종중 열사의 희생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지회 조합원들은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을 계속해왔다. 이 같은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지회 집행부는 무엇보다도 현장 중심의 노동안전보건 활동, 분임조 활동을 통해 자발적인 토론과 실천 역량 강화, 신입 조합원의 간부 활동 인입 등 일상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힘을 축적해나가는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16년 직장폐쇄 기간 중 투쟁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결성한 현장몸짓패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지금은 패원이 두 명에 불과하지만, 몸짓패 활동은 지회 연대와 단결의 구심으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케이비오토텍지회 현장몸짓패 ‘불패의 전사’ 패원이자 지회 11기 집행부 간부 활동도 겸임하고 있는 이종성, 원종만 두 동지를 8월 20일 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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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의 전사’ 패원 이종성 지회 교육선전부장(왼쪽)과 원종만 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오른쪽). [출처: 철폐연대]

 

몸짓패 ‘불패의 전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원종만(이하 ‘원’): 2016년 직장폐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당시 지회 집행부에서는 우리 투쟁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고민이 컸다. 마침 이 시기에 20년 동안 신규채용이 없다가 50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입사했는데, 몸짓패 활동을 통해 갑을오토텍 투쟁도 널리 알리고 신입조합원들이 결속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집행부의 구상이 있었다. 이런 시기적 상황이 맞물려서 현장몸짓패가 만들어졌고, 저도 그때 강제 편입됐다(웃음).

 

최근 현장몸짓패 활동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린다.

 

이종성(이하 ‘이’): 지회가 노조파괴 대응 투쟁을 지속했던 시기에는 몸짓패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유지돼 왔는데, 그 뒤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지역 집회 연대를 중심으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충남지역 현장문예운동이 타 지역에 비해 활기 있게 유지되는 편이라 다행스럽게도 지역 동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지금은 ‘불패의 전사’ 패원이 두 사람뿐이어서 주로 연합몸짓패 활동에 결합하고 있다. 작년에는 톨게이트 동지들의 투쟁에 연대하면서 구미에 있는 아사히글라스지회, KEC지회 몸짓패 동지들과 연합 공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지역집회 무대에 자주 오른다.

 

몸짓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서울 종로구 미대사관 인근에 있는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에 연대했던 2016년 겨울이었다. 현장몸짓패 활동을 하면서 어딘가에 연대를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처음 했던 투쟁사업장이기도 했고, 차디찬 길바닥 위에서 패원 세 사람이 얼기설기 마음만 앞서 공연을 망쳤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몸짓패 활동이 활력소가 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몸짓이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몸짓을 할 때에는 항상 진중한 각오로 임하려고 한다.

: 무기한 직장폐쇄 당시 공장 사수 투쟁을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선후배 할 것 없이 조합원들 모두가 지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불패의 전사’ 몸짓 공연을 공장 안 결의대회에서 자주 펼쳤었는데, 그럴 때마다 엇박자를 내며 능숙하지 못한 율동을 선보였던 것 같다. 우리들의 어설픈 몸짓에도 전 조합원이 장단에 맞춰 함께 율동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때 동지들의 눈빛에는 후배 조합원들을 바라보는 뿌듯함, 파업투쟁 중 동고동락하며 다져진 서로에 대한 끈끈한 믿음, 동지애가 가득 서려 있었던 것 같다.

 

몸짓패 활동만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현장에 있다 보면 사업장 현안에만 매몰되기 쉽다. 간부든 조합원이든 현장 활동을 제대로 일구어나가려는 노력을 지속했을 때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몸짓패 활동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지역,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둘러보고 찾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공장 안으로 좁혀서 보았을 때도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몸짓패 활동이 자연스러운 매개 역할을 했다.

: 작년 12월에 충북 음성에 있는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동지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동지들도 몇 년 전 우리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사측의 노조파괴, 직장폐쇄에 맞서 장기간 투쟁 중이었다. 비록 이 동지들과 구체적으로 소통한 적은 없었지만, 몸짓 공연을 통해 동질감과 연대의 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단결 의식을 고취하는 데 몸짓패 활동이 기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은 없었는지.

 

: 일단 몸짓패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물론 지역적으로는 함께하는 동지들이 여럿 있어서 지회 내적인 어려움들이 당장 활동하는 데 문제로 다가오지 않지만, 지회 자체적으로도 패원이 확대된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평소 몸짓 공연을 통해 연대 활동을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지회 일정상의 문제나 다른 이유 등으로 마음먹은 대로 성사되지 않을 때가 많아 아쉽다.

: 앞서 종성 동지가 말씀한 대로 두 사람만의 활동으로는 버거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패원이 좀처럼 확대되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간부 활동을 하는 시간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쪼개 몸짓패 연습을 하고 있는데, 다른 동지들도 이런 부담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공연에서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주력하는 부분이 있나.

 

: 현장문예패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고유한 형식이 있는 것 같다. 가령 노래패는 노래를 통해, 몸짓패는 몸짓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아마도 전문적인 몸짓패라면 그 몸짓이 투쟁의 선봉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행동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서 고민할 것이다. 그렇다고 제가 몸짓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투쟁하는 동지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우리의 몸짓으로 대신한다는 심정으로 무대에 서곤 한다. 그러다보니 몸짓보다는 짤막하게 주어지는 발언 시간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 ‘몸짓 선언’ 동지들이 몸짓 공연을 할 때 보면 저 몸짓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절절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워낙에 그런 표현이 서툴다보니까 자꾸만 발언으로 그 느낌을 대신하려는 것 같다. 아직도 그 부분이 쉽지 않지만, 호소력 있는 몸짓이 될 수 있게끔 노력하려고 한다.

 

올해 들어서는 간부 활동도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 평소 간부 활동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온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작년 10기 집행부에서 대의원으로 간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대의원 활동을 처음 접하면서 앞으로 배우고 익히면서 채워가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11기 집행부에서 교육선전부장 역할을 제안해왔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역의 일이라 이걸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기존 몸짓패 활동은 그럭저럭 익숙했었는데, 선전 활동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큰 고민꺼리였다. 결국 고심 끝에 지회 교육선전부장을 맡게 되었고, 이제 8개월째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 어렵고 부족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활동을 하면서 여기저기 다녀보고 많은 동지들과 관련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한뼘 한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 잠깐 배경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노조파괴 분쇄투쟁 시기에 입사한 신규조합원과 기존 조합원들 사이엔 20년이라는 터울이 있었기 때문에, 지회에서도 세대교체가 시급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후배노동자 층을 대상으로 신임간부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지회 간부의 70%가량이 이 신규조합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 과정에서 제게도 활동 제안이 와서 10기 집행부 때 노안위원으로 2년간 활동할 수 있었고, 지금은 노동안전보건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렇게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도 비록 어깨 너머긴 했지만 2년간의 노안위원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이 됐고, 또 선배노동자들이 먼저 닦아놓은 길이 있어 해볼 만 하겠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던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겠다는 우려도 있지만, 올해가 처음인 만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각오다.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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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0. 아사히 투쟁 5주년 금속노조 결의대회 장소(경북 구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농성장)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불패의 전사’ 이종성, 원종만 동지 [출처: 케이비오토텍지회]

 

간부 역할과 몸짓패 활동을 병행하느라 만만치 않은 조건일 것 같다.

 

: 교육선전부장을 맡으면서 현장몸짓패 활동 또한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일단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인데, 아직까지는 스스로 중심을 잡고 활동을 배분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둘 다 내가 책임감을 갖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나를 소모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 우선 지회에서 부여된 간부 활동을 충실히 하면서 그 속에서 몸짓패 활동도 열심히 해볼 참이다. 몸짓패 활동은 지역에서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불패의 전사’ 패원 두 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연대 활동을 그동안 지속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 두 사람만 하는 몸짓패 활동이었다면 금세 위축되고 지쳤을 것이다. ‘함께’라는 시너지 효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이 동지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전국의 많은 사업장에서 휴업 또는 감원 소식이 파다하다. 케이비오토텍 현장은 지금 어떤가.

 

: 일단 가시적으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휴업을 총 세 차례 실시했다. 현장에서는 IMF 경제위기 때나 옛 만도기계 시절에 흑자부도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 때보다 지금이 더 불안한 것 같다는 의견도 더러 있다. 현재 케이비오토텍 공장은 노조파괴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당시에 뚝 끊겼던 거래처 문제가 회사 매출에도 직결돼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조합원들의 피부로 체감할 만큼의 상황은 아직 아닌 것 같다.

: 코로나발 경제위기의 영향이 조금씩 쌓여가는 양상이라고 본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자본이 노골적으로 책임전가를 한다거나 고통분담을 요구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미 회사는 관리직 대상으로 갖은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고 있는 상황인데,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질라라비>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이따금씩 이런 고민이 든다. 왜 항상 우리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기치 아래 하나 된 싸움을 만들자면서 현실은 정반대로 가는 걸까. 물론 정규직노조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공동투쟁을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조직적으로 함께하는 모습은 날이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투쟁 현장에서 정규직 단위가 하는 몸짓, 비정규직 단위가 하는 몸짓이 따로 있을 정도다. 혹여라도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를 긋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철폐를 말 그대로 전체 노동자들의 사활적인 과제로 안고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연합몸짓패 활동부터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지금보다 더 자주 만들어가고 싶다.

: 제가 신입사원이던 시절에 한 선배노동자에게 이런 질문을 대뜸 던진 적이 있었다. 보통 타 사업장에선 식당이나 경비 업무는 외주로 사용하고 있던데, 우리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닌 말로 노조 있다고 죄다 정규직화 하는 건 과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선배노동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본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수도 없이 빼앗고 억누른 결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뿐이지, 처음부터 비정규직은 아니었다고.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이 동지들의 투쟁 또한 부당하게 빼앗긴 몫과 억눌린 목소리를 되찾는 의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싸움에 케이비오토텍지회와 현장몸짓패 ‘불패의 전사’도 함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