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12] “청원경찰도 당당한 노동자로 목소리 낼 수 있는 세상 …” / 박대근

by 철폐연대 posted Dec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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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청원경찰도 당당한 노동자로 목소리 낼 수 있는 세상 … 우리가 투쟁의 밑불 되고파”

 

박대근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우조선산업보안분회 분회장 인터뷰


 

“청원경찰법을 지켜라!” 이 당연한 요구에 대우조선해양은 집단 정리해고 통보로 답했다. 지난해 4월 1일의 일이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주요 시설 보안경비를 맡아온 청원경찰 노동자들은 그렇게 1년 8개월째 복직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이들은 ‘청원경찰은 청원주가 임용한다’는 청원경찰법과 ‘청원경찰 임금은 청원주가 직접 지급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을 근거로 원청(청원주)인 대우조선해양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청원경찰법상 지도, 감독, 명령의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남지방경찰청과 거제경찰서는 청원경찰 노동자들에게 기약 없는 법원 소송 결과를 기다리라고만 할 뿐이다.

투쟁 초반에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의미를 담아 해고자 전원이 상복을 입고 출근선전전과 천막농성을 지속해왔지만, 상복시위가 불편하다는 공장 안 몇몇 노동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지금은 노동조합 조끼를 착용한 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 혹은 불쾌감을 초래했을 상복을 벗었지만 ‘해고는 살인’이라는 점은 그 뒤에도 변함없었다.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과 모멸감도 맛보았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큰 환대의 기쁨과 노동자로서의 긍지도 느꼈다고 말한다.

지난 11월 19일, 대우조선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우조선산업보안분회 박대근 분회장을 만났다.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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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우조선산업보안분회 분회장 [출처: 철폐연대]

 

먼저 청원경찰 업무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청원경찰은 국가중요시설에서 경찰관을 대신해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다.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역시 국가중요시설로 분류되어 청원경찰을 배치해왔다. 청원경찰은 경찰 직무가 필요한 시설이나 사업장에 부족한 경찰 인력을 보완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국가공무원에 준하는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우리는 작년 4월 1일 해고되기 전까지 옥포조선소의 각 출입문과 특수선공장, 오션플라자, 하모니센터 등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시설물에 대한 방호 및 경비 업무를 맡아왔다.

 

청원경찰의 임용 절차(채용 방법)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청원경찰을 배치 받으려는 자(청원주)는 청원경찰법에 따라 관할 경찰서장의 승인을 받아 임용하도록 돼 있다. 배치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청원주가 시설이나 사업장의 보안경비를 신청하면 관할 경찰서장이 청원경찰 배치를 승인하거나, 반대로 관할 경찰서장이 청원경찰 업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설․사업장의 경영자에게 청원경찰 배치를 요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청원경찰 50명의 배치를 청원주가 신청하면 청원경찰로 임용할 노동자들의 신상명세 기록 따위를 관할 경찰서로 보내게 된다. 결격사유가 없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할 경찰서장의 승인 허가가 나면 이때부터 청원경찰 업무를 배치 장소에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청원주인 대우조선해양에서 직접고용 해야 함이 맞지 않나.

 

근무 당시 우리는 웰리브라는 자회사 소속으로 있었다. 웰리브는 식당, 통근버스, 설비유지보수, 보안경비 등 생산부서를 제외한 각종 지원 업무를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위탁 받아 수행해왔다. 그런데 청원경찰법에 따르면 청원경찰은 청원주, 즉 대우조선해양이 임용해야 한다(청원경찰법 제5조). 또한 시행규칙 8조에서는 ‘봉급과 각종 수당은 청원주가 청원경찰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고 돼 있다. 명백한 청원경찰법 위반이다. 이처럼 자회사 간접고용을 통해서 ‘진짜 사장’ 대우조선해양은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줄곧 회피해왔다.

 

대우조선해양의 청원경찰 업무는 언제부터 외주화 된 것인가.

 

처음부터 청원경찰 업무가 자회사 형태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듣기로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대우조선해양에 직접고용 된 업무였다. 그러다가 김우중 회장 시절 옥포공영이란 자회사를 설립해 편법적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옥포공영이 김우중 회장의 비자금 사태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 회사를 폐업시키고 2005년도에 설립한 게 지금의 웰리브다.

지난 2017년에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경기침체 여파로 회사가 어렵다면서 웰리브를 ‘베이사이드PE’라는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주요 시설관리 업무를 자회사에 넘긴 것도 모자라, 단기적인 수익창출에만 혈안이 된 사모펀드에 웰리브를 매각하면서 웰리브 소속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간접고용 된 대우조선 청원경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땠나.

 

청원경찰의 노동조건과 관련해서는 청원경찰법이라는 특별법이 있어 근로기준법보다 우선 적용이 된다. 그러나 국가중요시설을 방호함에 있어 고도의 긴장 태세를 유지하며 업무를 하는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은 일부 시설의 청원경찰이 감시·단속적 근로자성이 인정된 판례를 이용해 우리를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편법 적용시켰다. 결국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이나 휴일, 휴게시간에 관한 규정이 적용 제외된 채 보안업무를 해온 것이다.

그래서 24시간 근무를 한 적도 있고, 보통은 13시간 이상씩 근무한다. 이렇게 장시간 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비해 적정임금 보장을 위한 사용자의 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희미해졌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웰리브와 도급계약을 할 때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를 적용하면 청원경찰 노동자들의 임금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임금동결 상태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웰리브의 보안경비 사업 철수와 함께 2019년 4월 1일 해고되었다. 자세한 경위를 듣고 싶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웰리브가 사모펀드에 매각된 시점이 2017년 7월경이었다. 이때 웰리브는 자회사 지위를 상실하면서 협력업체가 되었는데, 웰리브를 인수한 사모펀드는 수익을 우선시하는 경영방침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에 따라 웰리브는 보안경비 사업에서 적자가 난다면서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하라고 우리 청원경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특히 청원경찰 노동자들은 청원경찰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청원경찰법 제10조의4 “청원경찰은 형(形)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신체상·정신상의 이상으로 직무를 감당하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아니한다”)되어 있다 보니 타 업종에 비해 근속이 긴 편에 속한다. 근속기간에 따른 호봉 상승분이 있음에도 지난 10년간 임금동결 수준의 금액만 받고 살았다. 급기야 36년을 일했건 지금 들어왔건 상관없이 모두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라고 하니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측의 임금삭감 요구를 거부하자 웰리브는 보안경비 업무를 대우조선해양에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2019년 4월 1일자로 청원경찰 노동자 전원(32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동조합 가입은 대우조선해양의 청원경찰 집단해고 문제가 직접적인 계기였나.

 

우리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청원경찰의 노동3권을 전면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2017년 9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노동2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2018년 9월 청원경찰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우리는 일단 거제경찰서에 ‘청원주인 대우조선해양은 청원경찰법이 정한대로 청원경찰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시정명령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2019년 1월에 넣었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신청에 의해 경남지방경찰청장의 승인을 얻어 청원경찰에 임용되었기에 청원주 소속의 청원경찰이 맞다”는 경남지방경찰청의 답변을 같은 해 2월 16일에 받아낼 수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청원경찰법을 35년 넘게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청원경찰이 대우조선해양 소속이 맞다고 자백했던 경남지방경찰청의 태도는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대우조선해양이 임금을 직접 지급하라는 시정명령만 통지하고, 청원경찰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명령에 대해서는 법적 권한이 없다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관할 경찰서장의 임금지급 시정명령에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웰리브는 청원경찰 노동자 전원에게 최저임금을 받지 않으면 보안경비 업무를 (대우조선해양에) 반납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윽고 청원경찰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통보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대우조선해양과 웰리브 경영진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해고통보를 받은 인원은 총 34명이었는데, (노동조합) 집단가입을 결의하고 싸우기로 한 노동자들이 26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9년 3월 20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대우조선산업보안분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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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30. “대우조선은 청원경찰을 직접 고용하라” 부당해고 1년을 앞두고 원청 대우조선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대우조선산업보안분회 조합원들과 지역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앞서 말씀하신 청원경찰법 제5조에 따르면 ‘청원경찰은 청원주가 임용’하게 되어 있고, 시행규칙 8조에서도 ‘봉급과 각종 수당은 청원주가 청원경찰에게 직접 지급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처럼 대우조선해양의 청원경찰법 위반이 명백한데도 2019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을 뒤집었다.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중앙노동위원회의 각하 판정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청원경찰 노동자 수가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이라고 한다. 워낙 소수인데다가 노동기본권 제약으로 인해 그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표출되기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청원경찰 업무는 행정부처와도 많이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국가행정기관들에서 사용자 편향적이었던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여건이 밑바탕이 돼서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대기업의 눈치만 보며 정치적으로 판단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노동조합은 청원경찰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청원경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린다.

 

청원경찰법을 위반했을 때 청원주에 대한 처벌규정이 현행법에는 없다. 법을 어기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임용절차를 밟은 청원경찰, 승인을 완료한 청원경찰에 대해서는 청원주가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 청원경찰법에 명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이런 문구가 없는 허점을 악용해서 원청 사용자들은 오로지 비용절감을 위해 청원경찰 업무를 외주화 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 도급업체 노동자로 전락해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원경찰 노동자들의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려면 허점투성이 청원경찰법부터 고쳐야 한다.

그리고 청원경찰은 업무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하여 복무상 규정의 많은 부분에서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한다. 이 때문에 청원경찰법에는 ‘임용’ 또는 ‘면직’처럼 공무원법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직접고용이라는 용어 대신 등장한다. 국회가 법 개정에 착수하면 가령 “임용이라 함은 직접고용을 의미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노동조합의 투쟁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일단 청원경찰법이 너무 낡은 법이고 당사자를 위해 개정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급적용을 받지 못하더라도 법 개정을 통해 청원경찰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국회의원을 만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다. 10월 초에 있었던 경찰청 국정감사 시기에는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과 함께 우리 문제를 알리고 대우조선해양의 청원경찰법 위반사항에 대해 확인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당시 청와대와 국회 앞, 서울경찰청 본청 앞에서는 청원경찰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지금은 작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와 함께 연대활동을 더 강화해서 우리 문제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일상 활동으로는 정문 앞 출근선전전과 거점(천막농성장) 사수 투쟁을 하고 있고, 서문이나 오션플라자 앞에서도 선전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1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투쟁하면서 가장 보람이 되는 순간은 언제였나.

 

청원경찰은 어찌 보면 사용자 편, 자본 입장에 서서 노동자를 핍박하는 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고되었을 때 노동조합의 문을 흔쾌히 열어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역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연대해주신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이 가슴 뭉클할 정도로 반갑고 고마웠다.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힘들었던 부분도 실은 같다.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우리들을 향해 그동안 ‘사용자의 개’처럼 지내다 해고당했다고 집단행동을 하느냐며 힐난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또 한 가지 힘들었던 점은 국가행정기관들의 무관심한 모습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근로기준법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 우리 문제가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는 식으로, 경찰청에서는 청원주의 책임만 강조하면서 자기네들은 잘못한 게 없고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서로 떠넘긴다. 우리를 ‘외부인’으로 취급하며 홀대하는 국가행정기관의 태도에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앞으로의 각오와 다짐을 들려달라.

 

우리 복직 투쟁이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크게는 법 개정 활동과 함께 청원경찰, 경비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쟁취를 위한 활동에도 보탬이 되고 싶다.

그동안 사용자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던 우리가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 내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과라고 본다. 우리의 한 걸음을 통해 청원경찰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고 또 사용자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미조직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알리고 싶다. 나아가, 우리의 투쟁이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에 맞서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