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3] 20년 만에 받은 노조설립필증, 우리에게도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 오세중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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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20년 만에 받은 노조설립필증, 우리에게도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오세중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보험설계사지부 지부장

 

 

 

 

보험설계사는 대표적인 특수고용 직종으로 현재 약 40만 명이 전국에서 일하고 있다. 2000년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처음 시도한 이후 2019년 9월 18일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지 471일 만에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최초 설립신고서 제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20년 만에 법내노조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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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은 후 투쟁 결의를 다지는 사무금융노조 및 보험설계사지부 간부들의 모습. [출처: 사무금융노조]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보험설계사들

 

그동안 보험설계사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니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촉계약서’, ‘프리랜서 계약서’, ‘위수탁 계약서’ 등 여러 이름으로 대체된 계약서를 작성하고, 건당 수수료 혹은 판매계약당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노동자로서 지위가 명백한데도 단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보험설계사 특수고용 노동자들인 것이다.

이렇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보험설계사들의 취약한 상황을 사용자들이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방적 수수료 삭감, 관리자의 갑질, 부당 해촉, 해촉 이후 보험판매 수수료의 미지급 등 각종 부당행위가 난무했지만 대다수 보험설계사들은 항의의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웠다.

 

보험설계사 권익 보호와 고용안정을 위한 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험업법에는 설계사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금지․예방하는 규정1)이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보험업계에 만연한 불공정행위, 부당행위는 여전히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위촉계약서가 아닌 ‘내부규정’을 근거로 마음대로 해촉(해고)하고, ‘정착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선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몇 년간 노예계약으로 묶어 놓은 뒤에 관리자의 부당함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니 해촉하고, 잔여 유지 수수료2)의 경우 이직하면 당연히 지급하지 않지만 이직 후에도 고객이 보험을 해약하면 해약에 따른 수당 환수는 당연하다고 하고, 고객 관리를 위해 고객이 담당 설계사 변경을 요청해도 거부하는 회사….

 

이러한 여러 부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2000년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보험설계사들을 결집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결국 반려당하고 행정소송까지 갔었으나 법원에서도 패소하여 무산이 된 사례가 앞서 있었다.

그 이후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은 법외노조로 활동을 해왔었고, 2013년 수수료 환수 관련 대책위 카페가 생긴 후 대책위로는 부족하다 생각하여 ‘대한보험인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후 2017년 ‘대한보험인협회’가 노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과 합쳐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산하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을 만들게 된다.

 

2017년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방과후강사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등이 설립신고필증을 받았고, 이에 탄력을 받아 2019년 9월 18일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도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2020년 7월 14일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 소속으로 조직을 전환하면서 지금의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20년 12월 30일 설립신고서 제출 471일 만에 필증을 교부받아 합법적 노동조합이 되었다.

 

1) 보험업법 제85조의3(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 행위 금지) 1항.

2) 설계사의 경우 보험판매에 따른 수수료(수당)를 모집수수료와 유지수수료로 구분하여 지급을 하고 있다. 1건의 보험을 판매하면 최초 모집수수료와 일정기간(보통 36개월)동안 보험이 유지되는 조건으로 유지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이 유지수수료는 해당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에만 지급하도록 대부분 회사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준비

 

올해 우리 노조의 목표는 단체협약 체결이다. 법외노조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단체교섭을 요구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법적으로 노동3권을 보장받은 만큼 단체협상 관련 교육과 실무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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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설립총회 [출처: 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의 경우 ‘제판분리’(보험상품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것)라는 미명 하에 제대로 된 설명이나 관련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채 설계사들을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3)(GA)으로 강제 이동시키려고 하고 있고, 이 문제 때문에 현재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를 설립하고 단체교섭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회사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나 학습지노조, 대리운전노조 등의 사례에서처럼 단체교섭권이 있다고 해서 쉽게 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투쟁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조합원 교육을 통한 권리 의식 고양과 조직력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3) 법인보험대리점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보험대리점 등록을 한 후 여러 보험회사와 판매계약을 하고, 그 소속 설계사들은 계약을 맺은 개별 보험회사의 상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보험대리점이다. 하이마트나 이마트 같은 종합 판매 대리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부당해촉에 맞선 싸움

 

또한 노조가 해결할 문제 중의 하나가 부당해촉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보험업계에는 보험설계사 부당해촉 문제가 만연해 있다. 별다른 사유도 없고 관리자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만으로 해촉되는 경우도 잦다. 사실 대부분의 부당해촉 문제 발생의 배경은 관리자의 갑질 때문이다. 출퇴근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심지어 머리를 염색하지 않았다고 꼬투리 잡아 해촉한다. 영업실적 압박은 당연한 상황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동료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채가려는 시도를 알고 문제제기를 했더니, 회사는 영업 분위기를 해친다며 해촉을 하기도 했다.

 

부산의 경우 회사 관리자의 부당행위(출퇴근 강요, 복장/외모 지적 등)로 인해 설계사와 분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상황이 와서 이에 화가 난 설계사가 짐을 싸서 귀가하자 어떠한 사과도 없이 설계사를 해촉하고, 지원금 환수를 통지하고 재산을 압류하였다. 노조의 집회에 대해 사측은 맞불 집회를 통한 집회 방해4)나 소음신고, 불법주정차 신고로도 부족했는지 11월 말에는 노조를 상대로 집회금지 및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였다.

 

4) 회사는 7월 중순경부터 회사 정문 앞에서 노조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노조는 회사 옆 건물 앞에서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노조가 집회를 시작하면 회사는 내근 직원 1~2명이 앰프를 갖고 나와서 노조를 비방하는 피켓을 들고 노조 집회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같이 집회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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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 부산지역 집회 모습. [출처: 보험설계사지부]

 

서울의 경우 타 설계사가 멀쩡하게 다니고 있는 설계사의 고객을 빼가기 위해 퇴사하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기존 보험을 해약시키려는 것을 알게 된 설계사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직원 사기저하”라며 설계사를 해촉하는 사례가 있었다.

 

부당해촉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금융감독원에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지만,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자 ‘보험사에 대해 검사를 할 때 참고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검사는 언제 될지 예정에도 없는 현실이다.

 

보험설계사에게 부당해촉은 일자리를 잃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일종의 임금체불이 발생한다.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수입을 얻는데, 이 수수료를 보험사는 3년에 걸쳐 나눠서 지급한다. 이 수수료를 유지수수료(수당)라고 하는데 만약 설계사가 회사를 나가거나 해촉을 당하면 남은 수수료는 받지 못하게 된다. 이 수수료가 잔여(유지)수수료이다. 이 수수료를 거의 대다수의 회사가 지급을 하지 않고, 회사는 이러한 잔여수수료를 계속 늘려가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보험회사의 경우 설계사들의 보험 판매가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 금액만큼 회사 수익으로 남기 때문에 회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 쟁취를 향해

 

이처럼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차별을 받고 있고, 합법노조가 되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에 나서기 힘든 현실에서 올해 7월부터 산재보험, 고용보험의 의무화가 시행된다. 이것은 무엇보다 보험설계사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회사가 자영업자·개인사업자라고 강조해 보험설계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특수고용직 지원금을 비롯해 고용보험 확대를 계기로 특수고용직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커졌다.

이제 보험설계사들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합법화는 노동자로서 자기 인식을 더욱 확대하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보험설계사. 우리에게도 노동조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