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3]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 박연수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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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박연수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정책국장

 

 

 

 

생산과 소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대사회에서 더 많은 상품을 빠르고 싸게 운송하는 것은 이제 기업들의 필수 과제가 되었다. 1997년 IMF 이후 화물운송산업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먼저 도입되고 전면화된다. 운수사업법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나누어지면서 화물운송산업은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는 ‘지입제 양성화’, ‘노동기본권 박탈’, ‘운임제 개악’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어 노동3권이 박탈되고 자본의 무한 착취에 노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화물노동자의 밑바닥 운임 고착화로 이어진다. 노동기본권 박탈과 지입제 등으로 인한 다중착취구조 속에서 자본의 비용·책임 전가는 점점 더 심화되는 반면, 화물노동자의 집단적 대응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물노동자의 운임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화물운송산업을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중요한 과제이다.

 

실제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003년 이후 안전운임제의 전신인 표준요율제를 대정부 공식요구로 걸고 투쟁을 해왔다. 이후 안전운임 투쟁과 요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호주 운수노조와의 교류를 통해 화물노동자의 운임이 사회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대기업 화주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요구를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표준요율제(운임제)는 안전운임제로 이름이 변경된다. 그리고 2018년 3월 30일 안전운임의 내용을 포함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안전운임제는 정식으로 법제화되었다. 3년 한시적 시행과 일부 품목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안전운임을 시행하는 국가가 되었다.

 

 

안전운임의 구성

 

안전운임은 크게 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안전운송운임’과 운수사업자가 화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안전위탁운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적용대상은 특수자동차로 운송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특수자동차로 운송하는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된다.

 

화물노동자가 받는 안전위탁운임은 화물노동자 원가비용 조사를 통한 이론운임 산정을 원칙으로 한다. 기존 화물운송산업에서 소위 ‘시장의 자율’에 따라 운임이 결정되었다면, 안전운임은 ‘아래로부터의 운임 결정’이 가능하다. 화물노동자가 운송을 하면서 필요한 직·간접 비용과 시간당 인건비를 결정하여 운임에 반영하고 부대조항을 통해 대기시간에 대한 대기료, 심야·공휴일 운행 할증 반영 등 화물노동자의 노동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정당한 방식의 임금 보장이 가능하다.

 

또한 안전운임제에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이하 안전운임위원회)를 주목해야 한다. 안전운임위원회는 공익위원 4인, 화주대표 3인, 운수사업자 대표 3인, 화물노동자 대표3인으로 구성되는 위원회로, 안전운임을 결정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노동자가 운임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결정한 안전운임을 화주나 운수사업자가 지키지 않을 시 처벌을 받는다. 안전운임제가 단순히 상징적인 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 변화와 적정운임 보장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이다.

 

 

안전운임의 의의

 

화물운송산업은 신자유주의적 재편 이후로 다단계 하청구조와 중간착취가 심화되고 대기업 화주들의 공급사슬에 대한 통제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안전운임을 통해 그동안 공급사슬의 정점에서 책임을 은폐·회피해온 대기업 화주와 물류 자회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 부여가 가능하다. 안전운임의 상향식 결정 구조는 화물노동자의 운송에 필요한 직·간접적 원가는 물론 ‘안전운행을 위한 보조비’까지 화주가 지불하게 한다. 이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궁극적인 사용자와 책임 주체가 대기업 화주임을 제도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실제 안전운임제 실시 이후 안전운임 적용품목은 산재보험이 확대적용되었으며 고용보험 확대적용도 2021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안전운임은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에 있어서도 주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특히 안전운임제를 통해 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운임까지 정하게 되면서 화주의 비용전가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다단계로 인한 중간착취 근절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안전운임 지급능력이 없는 약 30%의 다단계 업체들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화물운송시장 구조를 편법적으로 이용하여 기생하던 악덕 운수사업자들이 정리되면서 화물운송산업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되는 것이다.

 

풀어쓰는비정규운동01.png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화물노동자 결집과 단결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안전운임위원회라는 노사정 교섭구조를 보면, 교섭의 대상이 정부와 사용자단체(무역협회, 대한상의 등)인 초기업적 구조이며 교섭의 결과가 (대상 품목의) 전체 화물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화물노동자의 집단적 운임 결정과 권리 보장이 가능하다.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로 파편화돼 있던 화물노동자가 바닥으로의 경쟁을 지양하고 전국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 실제로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을 활용한 조직확대사업을 통해 컨테이너 2,000여 명, BCT의 경우 2배 이상의 조직화 성과를 확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안전운임 도입은 화물노동자의 운임인상(노동조건 개선)이 도로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인정받은 사례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요구와 노동자의 권리 확대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맞닿아 있음을 알려낸 것이다. 화물노동자들은 열악한 운임수준으로 할부금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운행을 감행해왔다.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 원인 중 41.9%가 졸음운전, 8.2%가 과속이라는 통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고가 압도적임을 말해주는 수치이다. 소위 ‘3과(과속, 과적, 과로)’라고 불리는 위험한 운송행태는 사고로 인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 휴식시간을 충분히 갖고 안전하게 운행해도 생계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운임수준을 확보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 절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풀어쓰는비정규운동02.png

 

전체 영업용 화물자동차 41만 6천여 대, 특수자동차 6만 2천여 대 중 안전운임 적용 대상은 약 2만 6천여 대(수출입컨테이너 2만 2천여 대, 시멘트 3천여 대)에 불과하다. 화물차의 위험한 운송행태를 줄여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제도의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전 차종·전 품목 확대를 위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은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법률제정이 제도화의 최종 종착지는 아니다. 기존 화물운송시장의 관행을 뛰어넘어 안전운임제가 새로운 현장의 질서로 자리 잡기 위해서 많은 현장의 투쟁과 사회적 지지가 함께 필요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배달, 배송을 포괄하는 운송 영역은 더 이상 기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개인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부각되고 있는 택배, 배달 등 라스트마일 배송부분과 플랫폼 노동에서도 안전운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전략과 고민을 통해 안전운임의 사회적 전선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마주하게 될 사회에서는 화물노동자들이 외치는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이라는 구호가 더 많은 부분에서 함께 외쳐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