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3] “위기 속에서 더 단단하게 연결되는 활동을 꿈꿔요” / 박윤준ㆍ정윤미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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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위기 속에서 더 단단하게 연결되는 활동을 꿈꿔요”

 

박윤준 ㆍ 정윤미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인터뷰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5년 3월 3일, 충북 음성군에 전국 군 단위 최초로 민간 노동상담 전문기관이 문을 열었다. 이보다 앞서 청주노동인권센터가 2010년도에 개소했는데, 음성지역 노동자들이 왕래하기엔 다소 먼 거리였다. 그래서 음성노동인권센터 개소는 지역 노동자들에게 ‘가뭄 끝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음성군은 인력과 물류 유통 측면에서 비교적 수도권 접근성이 좋거니와 공장 부지 가격 역시 저렴한 편이라 기업 투자유치와 산업단지 조성이 근래 들어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그만큼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서 유입된 사람들도 많아져서 2014년에는 음성군 인구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산업단지 및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수는 4만 5천 명에 달한다.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제성장과 인구증가의 선순환 구조가 음성군에 뿌리 내린 결과라고 봐도 무방한 걸까? 2019년 7월 ‘원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지역 노동 현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응답자(59명) 2명 중 1명은 근속기간이 2년 미만에 그쳤고 최저임금 또는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는 응답 비율도 36.4%에 달했다.

음성군은 원남산업단지를 비롯해 작은 사업장이 유독 많은 곳이기도 하다. 저임금ㆍ불안정 노동이 관행처럼 자리 잡은 이곳에서 음성노동인권센터가 할 수 있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코로나19가 뒤덮은 2020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또한 2021년은 어떻게 지낼 계획인지 박윤준 상담실장, 정윤미 상담부장 두 명의 상임활동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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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7. 음성노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박윤준, 정윤미 두 명의 상임활동가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출처: 철폐연대]

 

마스크 생산으로 떼돈 버는 공장, 등골 휘는 노동자

 

음성노동인권센터에는 상담 업무를 위해 사무실에 상주하는 공인노무사가 따로 없다. 대신 두 명의 상임활동가들이 노동 관련 법률 지원과 상담을 맡고 있다. 작년 센터는 상담 466건, 조정지원(제도적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고 센터가 직접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15건, 법률지원 38건을 진행했는데, 이는 센터가 개소한 이래 가장 많은 수치였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적중.

 

“지난해에는 유독 해고와 임금 관련 상담이 폭주했어요. 임금 상담도 주로 퇴직금 관련한 상담이 많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리해고나 권고사직이 많았던 지역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저희는 보고 있어요. 2015년 11월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음성고용복지플러스센터가 금왕읍에 생겼어요. 이때부터 실업급여 상담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작년에는 오히려 크게 늘었거든요. 이 역시도 고용불안에 처한 지역 노동자들이 많아졌음을 시사하는 변화라고 느껴져요.”

 

박윤준 실장의 대답이다. 상담 유형은 크게 유선(전화) 상담과 내방 상담으로 나누어지는데, 작년 한해는 각각 45.4%, 42.94%로 비등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대면 상담 방식이 꺼려질 법도 할 텐데, 직접 센터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소연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많았다.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좀 더 구체적인 상담 사례들을 들어 보기로 했다.

 

“코로나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지역 산업단지에 마스크 제조공장들이 부쩍 늘어났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보통 월급제나 시급제, 일당제로 임금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마스크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임금 지급 방식을 건당 보수 체계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마스크 포장 1건당 얼마씩 책정해서 결과적으로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주더라고요. 대부분의 마스크 공장들이 이런 식으로 가고 있어서 관련한 임금체불 진정이 앞으로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정윤미 부장은 작년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로 우후죽순 늘어난 마스크 제조공장의 ‘임금 후려치기’를 꼽았다. 산업단지 내 제조공장들은 대부분 조업 여건 악화로 물량이 감소했지만, 마스크 공장만큼은 코로나 특수를 한껏 누렸다. 그 이면에는 주로 중년의 여성 노동을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기업들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성 노동을 소일거리 내지 부업으로 취급하면서, 좀 하찮게 대우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인데 이렇게 공장에 나와서 돈 벌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기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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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8.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보장 및 코로나19재난 긴급지원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윤준 실장. [출처: 음성노동인권센터]

 

음성 현대소망병원 구내식당 노동인권침해 사건

 

이 세상에 천박한 노동은 없다. 반면 천박한 자본은 어딜 가나 있다. 음성지역에도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악덕기업’이 물론 존재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음성군 생극면에는 정신질환 전문 의료기관인 음성현대소망병원이 있어요. 병원 구내식당을 한 위탁업체가 관리ㆍ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곳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끊이지 않는 사업장이었어요. 여기서 일하는 구내식당 노동자(조리원) 한 분이 어느날 저희 센터를 찾아오셨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예를 들면 신입직원 환영식을 한다는 명목으로 몇십만 원어치의 음식과 술을 단체로 먹고 나서 회식비를 아직 월급도 나오지 않은 신입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거예요. 만약 당사자가 회식비 부담을 거부하면 그 길로 관리자 눈 밖에 나는 거고요.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근무편성에서 불이익을 받는 식이죠. 여기 관리자 갑질은 워낙 오래된 관행이어서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하루는 청주에 있는 위탁업체 본사로 이 문제를 건의하러 갔어요. 이날 본사 면담을 나선 노동자들은 센터에 찾아오신 분을 포함해서 전부 네 사람이었는데요. 원래 이 분들은 ‘그래도 본사에 건의하면 시정해주겠지’ 하는 마음이셨대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면담에 응한 위탁업체 관리이사(사장 부인)가 이 분들을 냉대했고, 심지어 ‘괴롭힘 행위자인 구내식당 관리자에게는 이 이야기를 절대 비밀로 해달라’는 요청조차 수용되지 않은 거예요. 위탁업체 사장에게도 해당 사실이 곧이곧대로 전해져서 본사 면담 바로 다음날 구내식당 조회시간에 사장이 노동자들을 불러 세웠대요. 그리고는 당사자들을 호되게 질책했다는 거예요. 위탁업체 사장의 태도에 실망한 노동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고, 남은 한 분은 그 뒤에도 관리자의 보복성 괴롭힘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된 거고요.”

 

세상만사 별 일이 다 있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박윤준 실장이 전하는 현대소망병원 구내식당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실태는 정말 심각했다. 스무 명 남짓한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960명에 달하는 입원환자들의 세 끼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 주 68시간 이상 초장시간 근무를 이어가야만 했다. 이처럼 열악한 조리업무 노동환경은 신입직원 신고식 문화처럼 극심한 직장 내 괴롭힘이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당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내담자(상담하러 찾아온 노동자)는 60대의 여성노동자였는데요. 본사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의 괴롭힘은 오히려 극에 달했어요. 그나마 신입직원 신고식은 당사자의 문제제기 이후 사라졌지만, 근무편성 불이익은 물론이고 폭언과 따돌림이 계속됐습니다. 급기야 구내식당 위탁업체 관리이사라는 사람은 이 노동자를 다른 공장 구내식당으로 전보 조치한다는 내용의 인사발령서를 갖고 어느날 나타나요. 대소면에 살고 있는 사람더러 감곡면 소재 공장 구내식당으로, 그것도 새벽 근무시간조로 보내겠다니 사실상 그만두라는 말과 다름없었죠. 게다가 이 노동자는 자가운전이 가능한 분도 아니어서 여태까지 통근버스로 출퇴근했었거든요. 그런데 다짜고짜 먼 곳으로 강제전보라뇨. ”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 축사에 들끓는 와중이었는데, 당국은 식당들이 인근 축사에 잔반을 사료로 공급하는 일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문제의 구내식당도 잔반 급여 사실이 당국에 적발돼 곤혹을 겪었고, 사측은 이 사건에 대해 관리자 갑질 문제를 하소연한 노동자들 소행이라고 의심했다. 위탁업체 관리이사의 집요한 추궁이 있었고, 피해 노동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관리이사는 당시 통화내역 조회기록을 통신사로부터 직접 받아와 결백함을 증명해 보라며 피해 노동자를 등 떠밀었다. 관리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시정을 요구했더니 이제는 위탁업체 관리이사까지 가해 행위에 합세한 것이다.

관리이사의 강압적 지시로 인해 피해 노동자는 원 사건 가해자였던 구내식당 관리자와 함께 통신사 방문을 위해 공장 문을 나서야 했다. 통신사까지 동행을 빙자한 관리자의 노골적인 사찰 행위에 피해 노동자는 불현듯 두려움이 밀려왔다. 더욱 기막힌 일은 그 다음이었다. 이 관리자는 피해 노동자와 공장 문을 나서면서 사직서를 들이밀었다. 겁에 질린 피해 노동자는 그 길로 도망치듯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원ㆍ하청 사업주와 경영진이 똘똘 뭉쳐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고 피해 노동자의 심리적 위축감, 고립감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피해 노동자는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 왔다.

 

“내담자의 피해 제보 경위를 듣고 나서 저희도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란 걸 직감했죠. 정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도 했지만 역시나 회사는 이 모든 가해 사실을 부인하기 바빴어요. 심지어 피해 노동자를 무단결근으로 징계해고 했어요. 더 이상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회사라고 봤어요. 그래서 내담자 말고도 추가 피해가 있는지 확인하는 등 집단적인 대응을 모색해 보기로 했죠. 원청인 현대소망병원 임원 측에게 위탁업체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해서 결국 구내식당 재직자 및 퇴직자의 피해 경험을 청취하는 간담회까지 성사됐어요. 어찌나 관리자 갑질이 심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이었는지, 위탁업체 사장도 참석하는 간담회가 센터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좀 탔나 봐요. 간담회가 열린 날, 센터 사무실을 찾아온 노동자들이 줄잡아 스무 명이 넘더군요!”

 

밤낮으로 동분서주한 센터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문제해결은 이뤄지지 못했다. 간담회 이후 위탁업체 측은 관리자에게 벌점 2점 부과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고, 피해 노동자에게는 징계해고를 철회하는 대신 부당전보 조치를 재차 처분했다. 이전과 달라진 건 새벽근무를 아침근무로 조정하고 감곡면에 기숙사를 마련해주겠다는 정도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는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이를 버젓이 행한 것이다. 그 뒤 센터는 고용노동부충주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문제 해결 노력을 이어갔다. 결국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 판정을 받아 위탁업체는 벌금형 처분을 받았지만, 원직복직한 피해 노동자는 냉랭해진 사업장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퇴사하고 만다.

 

 

누구나 근로감독 청원 할 수 있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센터는 작년 9월 현대소망병원 구내식당 위탁업체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발생 시 조치 위반’ 등 노동법 위반사항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충주지청(이하 ‘충주지청’이라 함)에 요청한다. 괴롭힘 피해 당사자가 아닌 센터 명의로 근로감독 청원에 나선 것이다. 센터가 근로감독 청원 주체로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취약계층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근로감독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근로감독청원제 시행지침’이 2008년 2월부터 제정ㆍ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뒤 충주지청으로부터 황당한 공문을 받는다. ‘근로감독 청원서 불수리’ 통보서였다. 공문에는 불수리 사유로 ‘근로감독청원제 운영지침에 의거 시민단체는 청원권자에 해당하지 않아 불수리하였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1월 근로감독청원제 운영지침을 변경하면서 청원권자의 범위를 축소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청원자격이 해당 노동자와 그 직계존속, 해당 사업장의 재직자 및 퇴직자, 노동조합에 주어지고, 종전에 포함됐던 시민단체, 동거인은 제외되었다.

 

“헌법상 청원권은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기본권이잖아요. 정부도 제도 도입의 취지를 ‘취약계층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근로감독의 현장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감독 청원제를 시행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도의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게 운영지침을 바꾼 것이죠. 그것도 저희가 현대소망병원 구내식당 문제로 청원권을 행사하려다가 충주지청의 불수리 통보를 받고 나서야 지침이 변경된 걸 안 거예요.”

 

센터 활동가들은 청원권자 자격에서 시민단체와 동거인을 배제한 고용노동부 운영지침을 ‘개악’이라고 판단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하기 어렵고, 스스로 권리를 되찾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지역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동거인을 제외시킨 것도 전통적인 혼인과 혈연관계를 넘어서 관계 맺기의 다양한 흐름 자체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박윤준 실장은 지적했다.

센터는 올 한해도 ‘누구나 근로감독 청원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지속해나갈 예정이다. 향후 현대소망병원 구내식당 근로감독 청원 불수리와 유사한 사례들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청원권을 상당히 침해한 규칙이므로 위헌소송까지도 준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국적인 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박 실장은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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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원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선전전에 참여하고 있는 정윤미 부장. [출처: 음성노동인권센터]

 

건강하게 활동하기

 

센터 활동가들은 상담 활동이 주 업무이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임금체불 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는 노동자들과 만나는 일, 나아가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일을 수없이 마주해야 한다.

센터를 찾는 노동자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때로는 활동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진 않을까? 한편으로는,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소중한 일인 만큼 활동가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는 것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박윤준, 정윤미 두 동지의 생각이 궁금했다.

 

“언젠가 한 번은 제가 내담자한테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그 땐 제 얘길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한다는 느낌을 자꾸 받아서 울컥했던 것 같아요. 막상 그이는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온 건데…. 퍼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쉬어야겠구나. 내가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활동해야 내담자에게도 좋은 거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겠구나.” (윤준)

 

“활동가들이 활력이 있어야 상담도 투쟁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센터는 주 4일 근무제를 이미 1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주 4일제를 선도하는 시민사회단체라는 뿌듯함도 나름 갖고 있답니다!^^” (윤미)

 

“상담업무라는 게 실은 감정노동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활동가들이 받는 심리적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조건을 갖추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활동가들이 왕왕 도구적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이 있거든요.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도 느꼈다시피, 아프면 쉴 수 있는 게 당연한 권리여야 하죠. 그걸 두고 ‘왜 하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아프냐’는 둥 다른 잣대를 들이대선 곤란하다고 봐요. 저희 근무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실제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어요. 특히 정윤미 부장님의 경우에는 육아를 하시잖아요. 육아시간과 노동시간이 기계적으로 분절된 것도 아니고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센터 운영진들도 활동가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분위기라서 저희도 마음 놓고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윤준)

 

노동과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

 

센터는 상담 활동 외에도 공론화 활동, 교육 및 회원ㆍ문화사업, 연대 활동 등 다양한 사업들을 해 나가고 있다. 특히 지역 연대 활동도 활발히 벌여나가고 있는데, 앞서 잠깐 언급했던 ‘원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은 2019년부터 음성지역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원남산업단지 노동자 권리증진 운동과 산단지회(노동조합) 건설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이 밖에도 센터는 ‘안전하고 친절한 택시 만들기 충주시민연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충북운동본부’, ‘차별금지법제정 충북연대’,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론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등 폭넓은 연대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고 정윤미 부장은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두 동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제가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음성군보건소에서 근무했었어요. 그 때가 2018년도였는데 정부에서 공공부문 정규직전환 정책을 펴면서 제가 일했던 현장에서도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었거든요. 그런데 음성군보건소는 정부 정책 취지와는 다르게 정규직 전환 절차를 신규채용 기회로 악용했고, 그마저도 채용자격을 터무니없이 높여서 기존 노동자들을 배제하려고 했어요. 멀쩡하게 일하던 제가 부당해고를 겪었을 때에는 너무 화도 났고 의지할 곳도 없어 힘들었어요. 센터의 상담과 지원이 당시 많은 위로가 됐었죠. 저처럼 소외되고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단체가 바로 음성노동인권센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센터가 지역 노동자들 편에서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벗으로 남을 수 있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또 후원도 해주세요!” (윤미)

 

“지역에 있다 보면 서울의 활동이 잘 안 보이고, 거꾸로 서울에서는 지역의 활동이 (눈에) 잘 안 들어오게 마련이잖아요. 저희가 지역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체감한 문제의식들은 이런 거였어요. 가령 급여명세서 교부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의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 내가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데 이 돈이 어떻게 계산되어 나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어요. 근로자대표 선출 방법도 마찬가지죠. 현행법에 따르면 근로자대표는 경영상 해고의 협의, 탄력근로제 도입 등 사업장 노동조건의 변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주체인데도 선출 절차와 방법은 따로 명문화돼 있지 않거든요. 당장 노조가 없고 고용이 불안정해서 권리에 취약한 노동자들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많이 울려 퍼졌으면 좋겠어요.” (윤준)

 

충북 음성지역 노동인권 지킴이 음성노동인권센터의 두 활동가 박윤준 상담실장, 정윤미 상담부장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면상의 한계로 함께 나눈 이야기의 절반도 채 담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못다 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를 통해 차차 채워 넣으려 한다.

머지않아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 ‘누구나 근로감독 청원할 수 있도록’ 같은 활동에서 음성노동인권센터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의 ‘콜라보’가 멋지게 어우러질 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