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4] 불법파견 인정하고 위장폐업 철회하라! / 고연희

by 철폐연대 posted Apr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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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불법파견 인정하고 위장폐업 철회하라!

 

고연희 •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사천지역지회 지에이산업분회 사무장

 

 

 

지에이산업은 경남 사천시에 소재한 항공기 동체 부품 표면처리 업체이다. 사천시 사남공단은 이른바 ‘글로벌 항공산업의 하청기지’로 알려져 있다. 한국항공우주항공(KAI)을 포함해서 1만3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항공산업 부품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노총 사업장인 KAI의 3천여 명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 600여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노조 사업장이다. 2019년 미국 보잉사 항공기 사고의 여파로 2020년 물량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연이어 닥친 코로나19 불황으로 항공산업 부품단지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지난해 초반부터 사천공단의 상황은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무노조 사업장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고용유지지원금 등의 혜택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했으나, 노조가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은 사측의 ‘시혜’ 같은 권고사직을 통해 공장 문을 나서야 했다. 이들은 고작 실업급여 몇 개월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다시 일자리를 찾으러 부나방처럼 떠돌아야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지에이산업분회 투쟁01.jpg

 

2021.2.16. 경남도청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에이산업분회 조합원들 모습. [출처: 지에이산업분회]

 

“코로나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

 

지난해 8월 지에이산업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와 함께 외쳤던 함성이었다.

당시 사내에 12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는데 다섯 개의 소사장업체(편집자 주-기존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공정 일부를 맡겨 제품 생산을 위탁하는 경영방식. 주로 제조업 사업장에서 원가절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일종의 ‘기업 쪼개기’ 제도이다. 소사장은 그 형식만 독립사업자일 뿐 실질적으로는 모회사의 지휘, 감독 하에 놓여 있어 불법파견 소지가 다분하다.)에 분산되어 고용되어 있었다. 원래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소사장업체가 하나 있었지만, 2016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한 사측의 상여금 삭감 등 노동조건 개악과 더불어 본격적인 아웃소싱이 진행되었다. 2018년 지에이산업은 ‘경영효율화’를 내세우며 공정 대부분을 다섯 개의 소사장업체에 쪼개어 맡겼다. 그해 소사장업체 중 두 곳의 노동자들과 원청인 지에이산업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지에이산업분회를 결성하여 고용보장 및 노동조건 개선을 이루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2020년 1월, 항공기 보잉737맥스의 작업 중단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항공제조산업에 위기가 닥쳤다. 물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소사장업체 한 곳이 폐업한 것이다. 이후 새로운 업체 대표는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으며 금속노조 조합원만 배제한 채 사업을 지속하려다가 분회 투쟁으로 조합원 모두가 고용을 승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사내 소사장업체 대부분이 폐업하면서 소속된 모든 노동자들이 해고 위기에 내몰렸다.

지에이산업분회는 ‘사내 모든 불법파견 금지’와 ‘모든 노동자들의 원청 직고용’을 요구함과 동시에 고용노동부에 사측의 불법파견 범죄를 고발했다. 고용노동부 진주지청은 불법파견 혐의를 인정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였다. 불법파견 혐의가 인정되자 원청인 지에이산업은 일주일 후 폐업을 선언했다. ‘물량감소에 따른 경영 악화’가 폐업 이유라고 했다. 분회는 회사의 어려운 경영을 함께 고통 분담하여 무급휴직도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을 하였으나, 이후 노사 간 어떠한 대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에이산업은 창립된 지 15년이 된 사업장이다. 지에이산업 법인 지분 14%를 경상남도 출연기관이자 도지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경남테크노파크가 소유하고 있다. 지에이산업이 있는 부지 역시 경남테크노파크 소유이다.

항공제조산업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경상남도는 ‘지역특화형 긴급직업훈련 시범사업’에 주요 영역 중 하나로 항공제조업을 포함시켰다. 아울러 일자리 지키기 등 고용보장에 대한 지원 사업을 경상남도와 사천시가 속속 내놓았지만, 지방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도 지에이산업은 적자를 이유로 폐업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처벌 회피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가 폐업 강행의 이유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현장에 만연한 불법파견과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건 투쟁뿐이었다. 작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회사 내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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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6. 금속노조경남지부 사천지역지회 지에이산업분회가 낮 12시 경남도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차린 후 폐업철회와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출처: 지에이산업분회]

 

다짜고짜 문 닫은 지에이산업, 본체만체 입 닫은 경남도지사

 

지에이산업은 물량의 80%를 KAI에 납품하고 있다. KAI의 발전은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의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었다. KAI 또한 하청업체들의 만연한 불법파견을 방관하고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을 외면하여 왔기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함께 살자!!’를 외쳐야만 했다.

하청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되어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천막농성과 함께 해고된 모든 노동자들의 절절한 호소를 그들에게도 들려주어야 했기에, 우리 조합원들은 KAI 정문 앞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새벽 일찍 시작된 한겨울 출근투쟁은 우리에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지에이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결국 폐업은 강행되었고, 우리는 14%의 회사 지분을 가진 테크노파크의 이사장 김경수 도지사가 있는 경남도청으로 향했다.

고용안정을 위해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경상남도의 말뿐인 선언과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방관에 우리는 경남도청 앞에 천막 농성장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천막 농성장을 설치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지척에 도지사가 있지만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출근 또한 천막 농성장이 있는 정문이 아니라 후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도지사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도지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며 투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동지들의 끊임없는 연대였다. 우리 조합원들은 지금 15명이다. 그 중 10명이 여성조합원들이다. 2명씩 5개조로 나누어서 철야농성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주말에는 남성 동지들이 철농을 하고 있다. 모두가 동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다.

가정도 돌봐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다. 납기일을 맞추느라 늦은 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우리가 일구어낸 삶의 현장을 이렇게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투쟁하여 우리가 일구어낸 삶의 노동현장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모두가 노동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우리 15명의 조합원들은 천막 농성장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제조업이 위기라고들 한다. 바야흐로 컴퓨터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투쟁이 얼마나 전진할지 모르지만, 불안정한 노동의 미래 때문에 생존권을 위협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보잘 것 없는 우리의 투쟁이 노동이 존중받는 미래에 한 걸음 다가서는 투쟁의 시작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