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5] 트랜스젠더는 당신 곁에 있다 / 박한희

by 철폐연대 posted May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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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트랜스젠더는 당신 곁에 있다

- 트랜스젠더의 인권 현실과 과제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21년, 연초부터 들려온 잇따른 비보에 많은 이들이 슬픔과 애도에 잠겼다. 이은용, 김기홍, 변희수,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은 트랜스젠더이자 동시에 작가, 정치인, 군인 등 다양한 면면으로 일상을 함께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또한 이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있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며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었기에 비극적인 소식 앞에 더 많은 이들이 애도와 추모를 보내며 또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곁에 있다, 트랜스젠더는 당신의 곁에 있다” 성소수자 운동의 오래된 구호처럼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는 일상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작년의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의 입학취소나 올해의 비보들처럼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며 답답해지는 요즈음이다.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것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변화를 외치며 나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성차별적이고 성별이분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떠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마주하는지, 그리고 이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별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트랜스젠더의 삶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에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트랜스젠더를 이야기하곤 하나 이는 엄밀히 말해 잘못된 서술이다. 트랜스젠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갖는 자신의 성별에 대한 인식인 성별정체성이 곧 생물학적 성별을 구성하는 중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를 비트랜스젠더와 구분 짓게 만드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외부성기를 기준으로 출생 시에 여와 남, 두 가지 성별로 인간을 나누는 바로 그 성별이분법이다.

 

그렇게 성별이분법적인 세상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정체성과는 달리 외부성기를 기준으로 한 법적 성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 지정 성별은 단순히 주민등록번호상의 1과2, 3과 4와 같은 숫자를 넘어 개인의 행동양식, 성역할, 학교, 직장, 일상 모든 것을 구분하고 규율하며,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 세상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배제와 차별, 낙인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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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제도의 공백 속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악순환 [출처: 박한희]

 

위 그림은 트랜스젠더가 성별이분법 속에서 마주하는 차별의 악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지정성별과 다른 성별정체성을 갖고 이에 따라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는 법적성별과 외관, 정체성 등의 차이로 여러 일상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적성별을 성별정체성에 맞게 변경하는 성별정정이 필요하지만, 대법원은 성별정정에 있어 성기수술을 포함한 외과적 수술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술에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성전환) 관련 의료는 모두 국민건강보험 비급여로 되어 있어 개인이 모두 이를 부담해야 한다. 한편으로 성별정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더라도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이거나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 등으로 오래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 이로 인해 빈곤한 상황에 놓이고 결국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는 관련 연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20년 트랜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자 중 법적 성별정정을 한 사람은 8%(47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성별정정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508명 중에 58.9%인 229명이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 때문에 성별정정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별정정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부담으로 21.5%(119명)가 ‘의료기관 이용’을, 14.3%(74명)이 ‘은행 방문 및 상담’을, 10.5%(58명)가 ‘선거 투표 참여’ 등의 일상 업무를 포기했다.

 

또한 고용 영역에 있어 구직 경험이 있는 참여자 469명 중 57.1%(268명)이 직장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직장을 다니는 참여자 156명 중 43.6%(68명)이 정체성을 이유로 부당한 이유나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고용 영역에서의 차별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빈곤의 문제를 겪는다. 실제 위 연구에서 참여자 중 23.9%가 무직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2016년 동성애자·양성애자 2,3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무직의 비율이 12.5%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국내외 다른 연구들을 보아도 성소수자들이 전체 인구집단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가운데 특히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더 많은 실직, 구직포기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 트랜스젠더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렇게 이분법에 따라 성별을 나누고 이에 대한 횡단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삶의 경계로 밀려나곤 한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연결된 과제들

 

이러한 트랜스젠더의 인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제들이 필요할까. 앞서의 악순환의 고리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인다. 먼저 출생 시 외부성기에 따라 성별을 나누고 이를 신분증에 숫자로 표시하는 이분법적인 성별표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2020년부터 주민등록번호 뒤의 6자리는 신규발급이나 변경 시 임의번호화 하는 걸로 제도가 개선되었는데 이를 확대하여 주민등록번호 전체를 임의번호화한다면, 적어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할 때 트랜스젠더가 경험해야 하는 어려움은 크게 완화될 것이다.

 

또한 법적 성별을 본인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성별정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국제인권기준은 트랜스젠더는 다양한 인간 존재의 일부라는 분명한 전제 아래 누구나 법 앞에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어떠한 제한 없이 법적성별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아르헨티나, 덴마크, 아일랜드 등의 국가에서는 복잡한 서류나 심사 없이 본인의 신청만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구체적인 법률도 없이 법원의 허가로 성별정정이 가능하며 그조차도 생식능력이 없을 것, 성기수술을 받을 것, 혼인 중이 아닐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등의 까다로운 요건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을 만들어 트랜스젠더가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호르몬요법, 성전환수술 등 트랜지션 관련 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트랜지션 관련 의료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신체적 특징 등을 변경하는 일련의 의료적 조치들을 말한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별정체성과 신체적 감각과의 차이에서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을 겪는 트랜스젠더에게 이는 필수적인 의료적 조치이다. 그럼에도 현재 건강보험체계에서 이는 모두 비급여로 되어 있어 비용부담이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적 의료체계에 편입되지 않음으로써 관련된 의료교육이나 체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개선 역시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

 

그 밖에도 성중립화장실의 설치, 학교나 직장 등에서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괴롭힘에 대한 방지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트랜스젠더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인 과제들은 무수히 많다. 이러한 과제들은 어찌 보면 하나하나가 다 거대해 보이고 쉽사리 달성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는 과제들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인식이 바뀌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지금의 공고한 성별이분법이 흔들리고 트랜스젠더가 시민으로서 일상 속에 함께 하는 존재들이며 이들의 온전한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이루어진다면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출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위의 과제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변화야말로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삶을 드러내고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변화를 위한 투쟁을 해나가는 가운데 조금씩이나마 변화해가리라는 희망은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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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앞두고 퀴어들의 일상을 모아 만든 트랜스젠더 플래그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어디에나 있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들로서

 

“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걸 모르더라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자 나의 일부이다. 무심코 잊혀지기엔 오늘만큼은 나의 일부를 드러내고 지하철에 타고 서울시청에 갔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인 나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시스젠더 청소년들과 함께.”

 

“퀴어하게 산다. 나대로, 다르게 살아간다. 이해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대로 나름대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간다.”

 

위 이야기들은 2021. 3. 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앞두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수집한 성소수자들의 한 줄 일기 중 일부이다. 어디에나 있고 우리의 곁에 있지만, 그럼에도 가시화되지 않는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지금도 다양한 면면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상을 특별한 무언가로 만들고 감추게 만들며 때로는 삶의 경계로 밀어내는 것은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성별이분법적인 사회구조이며, 바뀌어야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사회구조라 할 것이다. 그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며, 그렇기에 최근의 일련의 비극 앞에 추모와 애도를 했던 수많은 이들이 더 이상 아픈 추모가 없어지는 그 날을 위한 투쟁에도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와, 그리고 내 곁의 여러 트랜스젠더 동료들을 위해 한 마디를 하고 싶다. 고 변희수 하사의 소식이 들려온 날 여러 사람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았고 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지금의 슬픔과 아픔이 결코 없던 것으로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다시 한 번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트랜스젠더들 모두가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며, 모든 이들에게 간절한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