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6] 고용허가제와 이주노동자 / 최정규

by 철폐연대 posted Jun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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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고용허가제와 이주노동자

성공한 이주노동자 관리제도인가? 현대판 노예제인가?

 

최정규 •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

 

 

 

1. 시작하며

 

4년 7개월 일했지만 3년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캄보디아 출신 A씨.

- 4월 9일 MBC 보도(수천만 원 떼먹고도 ‘당당’...빈손으로 울며 귀국).

 

5년간 이주노동자 8명이 다친 공장에서 안전센서가 작동되지 않는 기계에 왼쪽 팔이 끼어 산재사고를 당한 네팔 출신 B씨.

- 11월 19일 KBS 보도(한 공장에서 8명 사고 났는데...“사장님 고마워요”).

 

3주 후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비행기표까지 사 놓았는데 한파를 막지 못하는 숙소에서 안타깝게 숨진 캄보디아 출신 C씨.

- 12월 23일 SBS 보도(한파 속 비닐하우스서 자던 이주노동자 사망).

 

 

2020년 언론보도를 통해 세 명의 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가 공중파 방송3사의 뉴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조명된다는 건,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로 주요 인권침해 사례에 등극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2004년에 도입된 고용허가제도는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한다. 고용허가제도에 대해 정부는 성공적 이주노동자 관리제도라고 평가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는 ‘현대판 노예제’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우리는 앞의 뉴스에서 보도된 세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에서 겪은 일을 살펴봄으로써 그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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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8.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에 대한 부실수사와 관련해 전국 이주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공개 요청하고 있다. [출처: 지구인의 정류장]

 

2. 4년 7개월 일했지만 3년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캄보디아 출신 A씨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임금체불(滯拂)이라고 부른다. “체불”의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을 미룸’이다. 이 “체불”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국가는 매년 노동청에 신고된 체불임금의 액수를 파악하며 그 액수가 이미 1조를 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1조가 넘은 금액 중 끝끝내 받지 못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파악할 의지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언젠가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또 다른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는 2015년 6월에 한국에 입국해 4년 7개월 동안 한 농장에서만 일했다. 그 농장은 한국정부(고용센터)가 알선해 준 사업장이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시작된 임금체불은 결국 3년 치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농장주는 임금을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땅을 팔아서라도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농장주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그 땅은 2017년 7월경 이미 경매가 시작되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 상황이다.

A씨가 현행 제도를 통해 체불임금을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사소송을 통해 승소 판결문을 얻는다고 해도 농장주의 집행재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판결문은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임금채권 보호를 위해 최대 1,000만 원까지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액체당금제도’도 상시 5인 미만 농업종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루어진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A씨의 희망은 그저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지정알선한 사업장에서 3년 치 임금을 받지 못한 A씨에게 어떤 대책을 마련해 주었을까? 언론보도가 나온 후 고용노동부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체불임금을 확인해 주는 서류 한 장을 발급해 주는 것 이외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는 작년 10월 한국의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라고 하며 A씨의 체류기간 연장을 허가하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신청 등을 통해 가까스로 체류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A씨를 지원하고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 등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지정알선된 사업장에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피해를 입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임금체불 전액을 먼저 지급하고 사업주에게 구상을 하는 방안(이른바 ‘전액 체당금제도’)과 체불된 임금을 전액 사업주에게 받을 때까지 합법적으로 일하면서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정부는 시민단체가 제안한 이 두 가지 방안에 대해 아직도 아무런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2020년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청에 신고한 금액은 1,500억 원을 넘어섰다.

 

3. 산재다발사업장에서 팔 하나의 기능을 잃은 네팔 출신 B씨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그 날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구호는 2019년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 그들이 외친 절박한 목소리이다. 출근한 노동자 중 3명은 퇴근을 하지 못한 채 사망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산재발생율이 6배 높은 위험천만한 사업장에 놓여져 있다.

 

네팔 출신 B씨는 2017년 12월 기계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본인이 산재를 당하기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은 노후된 기계에 손가락이 끼이고 절단되는 사고를 목격했고, 산재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KBS ‘일하다 죽지않게’팀이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2016년 3월 네팔/3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끼임

2016년 9월 베트남/3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끼임

2017년 3월 네팔/3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끼임

2017년 10월 중국/2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절단

2017년 12월 네팔/30대 이주노동자 팔끼임

2018년 6월 중국/3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베임

2018년 6월 네팔/30대 이주노동자 손가락 끼임

2019년 5월 베트남/30대 허리부상

 

노동자 스무 명이 안 되는 작은 공장에서 5년 동안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가 8명이나 되는데, 2014년 4명, 2015년 3명, 2018년 1명, 2019년 2명의 이주노동자를 새로 고용한 것이다. 다친 노동자가 치료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빈자리를 새 이주노동자로 채우는, 이런 반복이 가능한 것이 현행 고용허가제도다.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로 사망재해 발생 시 감점은 기존의 최대 2점에서 10점으로 상향조정 되었지만 현재도 부상 재해에 따른 감점은 아직 없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알선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알선하는 사업장의 산재발생 건수와 발생이유에 대한 정보는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결국 아무런 정보 없이 지정받은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직전에도 사고를 일으킨 위험한 기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산재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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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9. ‘열악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대책 온전히 수립하고 이행하라!’ 청와대 앞 기자회견 모습. [출처: 이주노동자 기숙사산재사망 시민대책위]

 

4.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 사 놓고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출신 C씨

 

“향후,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에게 적합한 시설을 갖춘 기숙사가 제공되도록 주거시설에 대한 지도점검을 강화해 나가겠음.”

 

이주노동자 기숙사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고용노동부(외국인력담당관실)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뉴스소식’ 난에는 그간 언론에 보도됐던 숱한 기사에 대한 보도설명자료가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약속한 지도점검 강화는 공염불에 그쳤다.

 

작년 12월 20일,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C씨는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직접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이었지만, 열악한 기숙사 환경이 사망원인 중 하나로 조명되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고용허가를 금지시키겠다는 대책을 내 놓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은 그대로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임시가설건축물이 노동자의 기숙사로 적합하지 않다는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이 있었음에도 고용노동부는 지자체 신고필증과 현장점검으로 안전한 기숙사를 책임지겠다고 한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이런 입장에 시민사회단체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 고용노동부가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도 문제다. 월 30만 원 정도의 월세방을 5명의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제공하며 농장주는 1인당 월 28만 원씩을 임금에서 공제하는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내용이 지난 5월 14일 ‘이주노동자 숙소대책’ 국회토론회에서 폭로되기도 하였다. 기숙사와 관련한 실비를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는 것과 별론으로, 상계가 금지된 임금채권에 이런 공제(상계)합의의 효력을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장려하는 지침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5. 마치며

 

고용허가제도는 정부의 주장대로 ‘성공적 이주노동자 관리제도’일까? 아니면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처럼 ‘현대판 노예제’일까?

 

현행 고용허가제도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선택과 변경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박탈하고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주노동자는 취약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일부 사용자는 그런 취약한 지위를 악용하여 한국정부로부터 알선받은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세 명의 이주노동자는 그런 착취의 피해자들이다.

 

한국은 2015년 UN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로서, UN인신매매방지의정서는 한국에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인신매매방지의정서상 인신매매의 정의는 아래(그림1 참조)와 같다. 아래 정의에 의거할 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일부 사용자의 행위는 ‘인신매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신매매 사실을 알고도 방조한 대한민국 정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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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인신매매 방지 안내서(국가인권위원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