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7] 국정원이 주도한 노조파괴 공작의 실상과 이후 과제 / 최은실

by 철폐연대 posted Jul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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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포커스

 

국정원이 주도한 노조파괴 공작의 실상과 이후 과제

 

최은실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 공인노무사

 

 

 

 

1. 제6회 노동법률가대회

 

2021년 6월 11일,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는 ‘제6회 노동법률가대회’가 열렸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약 반년 정도 일정을 늦춘 행사였으며, 온라인 동시 진행 요청이 있었으나 노동법률가대회의 기획의도 자체가 함께 활동하는 법률가들이 얼굴 한 번 보자는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 중계 없이 오프라인 행사로만 진행되었다.

노동법률가대회에서는 통상 각 소속단위 활동 공유 외에 토론회를 기획해왔다. 때문에 토론회를 메인 행사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사실 본 행사는 각 단위 활동 공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법률활동가로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환기하는 의미에서 토론회를 함께 진행해 왔는데, 이번 법률가대회에서는 이명박 정권 시기 노조파괴 실상에 대해 충격적인 자료가 확인된 만큼 이를 주제로 토론회가 준비됐다.

발제는 현재 관련 사안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인 민주노총 법률원의 하태승 변호사가 준비해주셨으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오동석 교수,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양현 노무사(전국철도노동조합 법규국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의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가 토론자로 나섰다.

 

2. 국정원이 주도한 노조파괴 공작의 실상

 

1) 국가배상청구소송을 통한 자료의 확보

 

해당 사건은 노동조합 사건들에 있어 익숙한 부당노동행위 또는 부당해고에 관한 사건은 아니다. 해당 사건은 국정원과 같은 유관기관들이 정부의 돈, 즉 국민의 세금을 이용하여 노동조합을 파괴하고자 공작을 하였다는 점에 대해 국가가 정당한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이 손해를 입은 사실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2018년 6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시 언론에서 국정원이 내부감찰을 통해 노조파괴 공작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보도가 이루어지고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이 기소가 된 시기였던 만큼, 관련하여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소송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원세훈에 대한 형사재판(2019고합13) 수사기록과 추가 정보공개 요청문서를 통해 그동안 의심만 하였던 노조파괴 공작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은 지시체계(회의체계)를 통해 노조파괴의 구체적인 공작내용을 지시했는데, 지시체계는 ① 정무직 회의 → ② 모닝브리핑 회의 → ③ 전 부서장 회의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은 회의 시 대공수사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조합의 비위행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정원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한다. 특히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전교조를 불법적인 노조로 만들어야 하고 민주노총도 소속 노동조합들을 탈퇴시켜야 한다고 직접 말한다. 이는 발제자나 관여자가 각색한 내용이 아니며, 회의자료 및 회의참석자, 당시 수사자료에 직접 작성되어 있는 내용 그대로의 사실이다.

이러한 국정원장의 발언뿐만 아니라 자료에서는 노조파괴 공작의 구체적인 내용들도 확인되었는데, 민주노총에 대한 직접적인 파괴 공작으로써 산하 하부조직의 탈퇴를 유도하고, 선거·총회 등 각종 투표에 개입하였다. 또한 전교조를 핵심 척결대상으로 삼아 보수단체를 활용한 전교조 규탄활동, 전교조 소속 교원들에 대한 탈퇴 권유 서한 발송, 법외노조 통보 처분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졌고,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해서도 투표에 개입하거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조탈퇴를 유도하고, 보수단체를 활용한 규탄이 이루어졌다.

아래에서는 수사과정에서 자료로 확인된 노조파괴 공작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확인하고, 이러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한계가 있는지와 당시 토론회에서 어떠한 의견이 나왔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2) 민주노총에 대한 노조파괴 공작의 내용

 

- 산하 하부조직의 탈퇴 유도

국정원 내부 감찰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국정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KT노동조합,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등 민주노총 산하 21개 노동조합에 대해 민주노총 탈퇴를 유도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방식은 노사 대표자를 만나 회사에 대한 추징금의 납부시한을 연장해 주는 대신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거나(영진약품), 공공기관의 경우 주무부처를 통해 압박하여 노조탈퇴를 강요하고 탈퇴하지 않을 경우 장려금 지급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그랜드코리아레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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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노조탈퇴 관여 정황

 

이러한 민주노총 하부노조의 탈퇴 유도는 국정원의 접촉이나 압박만으로 끝나지 않고 고용노동부와 협업해 법률적 오류가 있는 행정해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된다. 즉, 법률상 상급단체 탈퇴는 조직형태의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조법 제16조 제2항에 따라 재적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고용노동부에 지시해 과반수의 찬성만으로도 상급단체 탈퇴가 가능하다는 식의 행정해석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민주노총 탈퇴 결의를 한 것은 무효라고 한 바 있다.

 

- 각종 투표개입

국정원과 고용노동부는 KT노동조합의 선거와 민주노총 탈퇴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8년 12월 KT에서는 노조 위원장 선거가 있었는데 온건한 후보에게 강성 후보의 정보를 제공하고, 강성 후보의 낙선을 위한 노무관리 강화를 회사에 독려하였다. 이후 새로 선출된 위원장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하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노사를 압박했다. 이에 대한 전 과정을 청와대가 보고 요청하여 국정원이 네 차례 동향을 보고한 정황도 확인되었다.

 

- 여론조작

국정원은 이미 알려진 댓글조작 외에도 보수단체에 대해 금전적 지원을 하며 민주노총을 상대로 여론전도 전개하였다. 그 방식은 민주노총 비난 책자를 국정원이 집단 구매하거나 단체에게 활동비를 지급하여 민주노총 탈퇴 활동에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조파괴 공작은 대부분 청와대에 보고됐던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특히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 보고문건에 따르면 민주노총의 도심집회 시 시민불편을 이유로 무조건 불허하고, 경총은 회원사 대상 노조가 합법적 쟁의를 벗어나 파업 시 무조건 업무방해로 사법처리 하도록 주지시키고, 개별기업 노조의 투쟁에 회원사 노조가 동참하는 것을 차단시키라고 지시한다.

 

3) 전교조 및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노조파괴 공작

 

- 전교조에 대한 반감과 보수단체 지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특히 전교조에 대한 적대적 입장이 강했다.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를 ‘3대 종북좌파세력’으로 지칭하면서도 특히 전교조를 핵심척결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교조에 대한 대응을 위해 국정원은 보수단체를 앞세운 전교조 규탄 및 피케팅 등을 활용했는데, 이를 위해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게 최소한 1억 9,700만 원가량의 예산을 사용하였다. 예산을 받은 단체의 주요 활동은 전교조 퇴출여론 확산 1인 시위 개최, 전교조 대상 탈퇴 권유 서한 발송, 전교조 교사 검찰 고발, 전교조 실체 폭로 간담회 개최, 전교조 비판 세미나 개최 등이었으며, 어용 집회의 대가로 활동비를 지급했으며 ‘가격표’를 운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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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어용 집회에 대한 가격표

 

-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대한 개입

국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과정에도 일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24일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앞서 세 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했다. 1차 시정명령(2010.3.31.) 당시 국정원은 청와대에 전교조 불법단체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무력화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고용노동부에는 전교조 설립취소 검토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보수 학부모단체에는 전교조의 교원노조법 위반 규약에 대해 비판 여론을 조성하는 부탁을 한다. 아울러 전교조 노조설립 취소 이후에는 전교조가 불법단체임을 강조하며 전교조 집회 참석자를 중징계하고, 사무실 보조금 회수 및 조합비 이체를 포기하도록 압박할 것을 지시한다.

 

- 전국공무원 노조에 대한 파괴공작

국정원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전신인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의 출범 및 민주노총 가입 과정에서부터 방해와 개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속 정보담당관을 동원해 기관 및 단체장을 접촉해 투표 불참 및 반대 투표를 유도하고, 보수단체를 동원해 민주노총 가입을 규탄하는 집회의 개최를 유도하는 동시에 여론전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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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3> 공무원노조 민주노총 가입 저지 대책회의 결과

 

국정원은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이후에도 소속 정보담당관을 통해 개별 조합원들의 탈퇴를 유도하거나 보수단체 규탄 집회 개최, 민주노총 가입 비판 e-콘텐츠 제작 등 적극적인 노조개입 및 노조파괴 공작을 전개한다.

 

4) 제3노총 설립 지원

 

원세훈이 처벌받은 죄목은 노조파괴 공작과 관련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직권남용 내지는 정치관여) 정도로 생각되지만, 실제는 특가법 위반죄(특가법 제5조 국고 등 손실)이 유일했다. 즉 위법하게 권력을 남용하여 국고에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노동조합을 이용해 제3노총을 조직하기 위해 국고를 남용한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 예산 중 1억 7,700만 원을 유용해 제3노총(국민노총) 설립 과정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에 대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3. 해당 판결의 한계와 향후의 과제

 

민주노총 법률원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관련 사건에서 국가, 특히 국정원 등이 노조파괴에 직접적으로 관여·지원하였고 여론전 및 보수단체 지원 등을 행하였다는 점이 확인되었으나, 이를 통한 우리의 결과물은 그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첫째, 다행히 이번 소송과정에서 밝혀진 자료를 통해 그동안 의심만 하고 있던 내용들이 눈으로 확인되었고, 우리의 세금으로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세운 노동조합이 탄압받고 파괴되고 있었음을 확인받았다. 그러나 그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으며 자료의 보전 여부를 입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둘째, 현재는 2010년 전후의 몇 년 치 자료만이 밝혀지고 있을 뿐 그 전후로 지속되었을 노조파괴 관여 공작에 대하여는 대책이 없다. 아직까지도 국정원이 건재한데, 현 정부에서도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리라는 점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이번 소송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자료를 통해 해당 노조파괴 관여 당사자들이 직접 처벌받은 것도 아니며 피해 당사자들이 어떠한 구제를 받은 것도 아니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들은 일부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이 잃어버린 10년의 세월과 고통, 가족의 분열과 동료들과 멀어진 관계들은 회복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의심으로만 짐작하던 내용들의 실체는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냉담하고 충격의 여파도 적은 것 같다. 수십 년에 걸친 국정원의 반노조 여론전과 대응은 이미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시민들의 노조에 대한 불신과 노조 혐오 정서는 뿌리깊은 상황인데다가, 언론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여 이러한 사실을 시민들이 알 기회도 거의 없다.

이에 당일 자리에 모인 법률가들은 국내적으로 이를 여론화하거나 국내의 법원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국제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국제기준에서 이러한 행위가 얼마나 악질적인지 확인하고 국제사회를 통해 국내의 관심을 환기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UN 인권이사회 및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해당 사안을 제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문제를 국제적 기관에 제기하고 국내적으로 대응을 포기할 것만은 아니다. 해당 사안의 진실 확인을 위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고, 이명박 정권 시기만이 아니라 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구체적인 대응방법과 시기는 이후 추가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이 글을 읽는 철폐연대 회원들도 해당 사안을 한 번 더 찾아봐 주시고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