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7] 대구 도시가스 검침원ㆍ기사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 / 장영대

by 철폐연대 posted Jul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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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대구 도시가스 검침원 ․ 기사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

 

장영대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대구지역지부 사무국장

 

 

 

 

우리는 왜 싸우는가.

흔한 말로, ‘사람 대접 받기 위해서 싸운다’. 대구 도시가스 노동자들은 참혹했다. 검침원으로 20년을 일해서 받은 한 달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120원 더 많다. 시간급이 아니라 월급이 그렇다. 일을 하다가 다치면 자기 돈으로 치료하거나, 산재처리를 하고 싶으면 퇴사할 각오를 해야 했다. 기사들도 다를 것 없다. 기사들은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일종의 ‘기금’을 조성한다. 도시가스 연결, 수리 등을 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크고 작은 화재가 난다. 그러면 화재로 인한 피해를 기사 노동자가 온전히 물어야 하는데 그것을 기사들끼리 돈을 모아 두었다가 서로 돕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지원은 전혀 없다.

 

20년 가까이 검침원으로 일한 노동자가 말했다.

“예전에는 회사에 불평을 하는 동료에게 ‘회사가 일자리를 주고 꼬박꼬박 월급 주는데 우리 같은 아줌마들이 고마워 해야지 무슨 불만을 늘어놓느냐’고 했다. 내가 바보였다.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다쳐서 일을 못할 지경이면 그만둬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는 사람 대접 받기 위해 투쟁한다.

 

센터장의 갑질과

비상식적인 이중 하도급 고용구조

 

‘내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역을 바꾸겠다’

신임 센터장이 출근 첫 날 검침원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수도든 도시가스든 ‘검침’은 담당구역이 바뀌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량기 위치도 새로 파악해야 하고, 집집마다 이동하는 동선도 새로 알아내야 하고, 어느 집에 ‘요주의 인물’이 사는지도 알아야 하고, 집주인들과 안면도 새로 터야 하고…. 구역이 바뀌는 것은 정말 큰 일이다. 그런 구역 변경을 순환근무라는 원칙 때문도 아니고, 어떤 구역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철거되거나 신축되어서 검침량에 변동이 생긴 것도 아닌, 단지 ‘센터장인 내가 얼마나 힘이 센지 보여주기 위해서’ 검침원들의 담당구역을 바꾸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곳이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라는 곳이다.

 

필수공익사업인데 2중 하도급이다.

대구시가 ‘대성에너지’에 도시가스 사업 인가를 내주고, 대성에너지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라는 자회사에 다시 하도급을 준다. 노조법은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면 공중의 생명, 건강,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고 그런 사업장은 노조가 쟁의를 하면 ‘합법적으로’ 대체인력도 투입할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중요한 업무가 두 번의 하도급으로 이루어진다. 대구시는 시가 인가를 하고, 인가를 받은 업체가 하도급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2중 하도급’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그게 그거다.

필수공익사업은 하도급을 주면 안 된다. 또는 하도급을 주었다면 그 사업은 필수공익사업일 수 없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01.jpg

 

2021.5.7. 파업 집회에 참여 중인 대구 도시가스 검침원ㆍ기사 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50년 묵은 이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곳이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다. 근로계약서에 ‘간주근로시간제’라는 표현이 한 줄 나온다. 그 한 줄을 근거로 새벽에 일해도, 밤늦게 일해도, 휴일에 일해도 그에 따른 수당은 없다. 최저임금 보다 월 120원 더 많은 월급에 그 모든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검침을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처음 입사할 때 운전면허가 있느냐고 묻고, 차가 있느냐고 묻고, 매년 초가 되면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는지를 확인한다. 차가 없으면 일을 못하니까. 회사 일을 하는데 내 차를 쓰지만 기름값은 주지 않는다. 사고가 나면 내가 가입한 보험과 내 돈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차량에 대한 감가상각비?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검침하다가 개에 물려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붕대를 칭칭 감고 일을 해야 한다. 치료비? 산재? 그런 거 없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지. 회사 일에 개인차를 쓰면 차량유지비를 줘야지. 일하다가 다쳤으면 산재처리를 해야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런데 기계도 쓰다가 고장 나면 수리하는 동안 세워두지 않던가. 우리는 기계만도 못한가?

 

네 번에 걸친 파업,

우리는 잃을 것도 없다

 

매월 1일~8일의 검침기간 동안 네 번의 파업을 했다. 3월, 4월, 5월, 6월. 월급이 잘려 나갔다. 파업은 8일 밖에 하지 않았는데 월급은 절반 가까이 잘렸다. 검침율과 점검율이 떨어져서 비율대로 삭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에는 점검율이 떨어져도 월급을 깎은 적이 없다. 센터장들의 집요한 괴롭힘과 갈굼이 있었을 뿐. 물론 점검율이 높다고 해서 월급을 더 준 적도 없다. 이 점을 지적하는 조합원들에게 회사는 아무런 답이 없다. 그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했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돌아온다.

최저임금보다 월 120원이 더 많은 월급. 잃고 싶어도 잃을 것이 없고,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설 곳이 없다. 적어도 노동조합이 생긴 후 이제는 산재처리를 한다. 이제는 ‘내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역을 바꾸겠다’는 센터장은 없다. 노동조합 덕분이며, 우리가 힘을 모아 투쟁을 한 덕분이며, 뭔가 잃을 것조차 없는 노동자들이 단결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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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7. “저임금ㆍ장시간 노동 철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파업 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공공운수노조 대구지역지부]

 

대구시가 진짜 사장이다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라

 

검침원, 기사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파업을 이어가자 센터장들은 ‘이러다가 회사 망한다’, ‘당신들 다 실업자 된다’고 협박한다. 아직도 모르시나 본데, 우리는 회사 문 닫으라고 투쟁하는 거다. 필수공익사업이라면서 2중 하도급을 주지 말고, 대구시로부터 인가를 받은 대성에너지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대구시가 직영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 제발 문 좀 닫아라! 두 번의 하도급을 하면서 중간에 빼먹는 돈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안 된다.

대구시는 상수도 사업을 상수도사업본부라는 사업소를 설치해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여 년을 용역업체에 위탁하다가 2019년 7월부터 직접고용으로 전환했다. 상수도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도시가스도 할 수 있다. 용역업체 두 곳이 이윤으로 빼먹는 돈을 검침원과 기사 노동자들의 인건비로 돌리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다. 상수도가 그랬다. 용역업체 시절에 200만 원 남짓이던 월급이 직접고용으로 전환되고 난 후 50여만 원이 올랐다. 중간에 인건비를 빼먹는 용역업체의 중간착취가 없어졌으니까.

도시가스도 대구시가 직영하면 노동자들의 처우를 비약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의 투쟁은 용역업체를 향해 있지만 궁극적인 투쟁 대상은 대구광역시다. 기다려라 대구시.

 

조합원들의 의지가 굳다

희망을 본다

 

5월 말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3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의 파업으로 인한 임금삭감이 있었고 통장에 찍히는 돈이 70만 원인 조합원도 있었다. 이렇게 얼마를 더 갈 수 있는지 정말 고민스러웠다. 6월 검침기간에는 파업을 보류하자는 말이 나왔다. 당장 조합원들에게 이슬만 마시면서 버티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었다. 조합원 총회에서 이 말을 꺼냈다가 욕만 먹었다. 우리는 더 버틸 수 있는데, 더 싸울 수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금 파업을 멈추면 회사가 우리를 얕볼 것이고 우리가 힘들어서 포기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이구동성이었다. 그래서 다시 6월 검침기간 파업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의 의지가 굳건하다. 군대로 치면 개마무사들이고 막강한 화력의 기갑부대다. 이런 의지와 전투력을 가진 조합원들이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그냥 직진이다. 조합원들의 투지에서 희망을 본다. 이길 수 있고, 개판인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이제야 노동조합에 가입한 자신들이 바보라고 하면서 노동조합을 믿고 가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직진이다. 좌고우면 할 것 없이 투쟁으로 돌파한다. 우리는 그럴 만한 힘과 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