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7] 건설노동자의 안전 보장은 ‘빨리빨리’를 근절하는 것이다 / 송주현

by 철폐연대 posted Jul 05,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건설노동자의 안전 보장은 ‘빨리빨리’를 근절하는 것이다

 

송주현 •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

 

 

 

2008년 1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40명 사망

2010년 7월 용인시 현대마북연구소 리모델링 붕괴 11명 사망

2013년 3월 여수 대림공장 폭발 6명 사망

2017년 5월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6명 사망

2020년 4월 남이천 물류창고 신축현장 화재 38명 사망

2021년 6월 광주 철거 사고로 9명 사망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건설노동자의 죽음과 재해사고….

 

나는 아침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렵다.

매일 아침마다 뉴스에서는 건설노동자의 사망 기사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하루 동안 7명의 건설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건설노동자 한 분의 사망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으며, 돌아가신 현장 앞에는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1.jpg

 

2021.4.29.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 1주기 추모 공동행동 [출처: 건설산업연맹]

 

오늘도 건설노동자 한 사람이 사망했다

 

매년 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 사망자 통계를 보면 모든 산업의 재해 중 건설업은 부동의 1위를 지켜 왔고, 타 산업 대비 2배 정도로 사망자 수가 많다. 2020년 한 해만도 무려 458명이 사망했다. 이는 매일 1명 이상 건설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한다는 말이고, 내 동료 또는 내가 건설 산업재해로 인해 언제라도 사망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건설노동자들의 매일 아침 출근 기도는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건설산업에서 유독 사망자와 재해자가 많고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설산업에서 재해를 줄일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정부도 국회의원도 위와 같은 질문을 계속해 왔다.

 

혹자는 건설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 아니냐고도 한다.

그러나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불안전한 작업을 하고 싶은 건설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위험한 작업지시를 해도 내일의 일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건설 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그럼 건설산업에서의 재해 발생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짚어봐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건설산업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건설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공사를 발주하는 ‘발주자(시행사)’가 있고, 건설공사를 위한 설계를 담당할 ‘설계자’가 있어야 하며, 건설공사 시공을 위해서는 원도급 건설업체, 하도급 건설업체, 건설노동자(건설기계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하도급업체와 불법적으로 계약하는 불법 다단계 업체(업자)도 있다. 건설공사 설계에 따라 제대로 시공하는지 여부를 감시할 ‘감리자’가 있어야 하며, 건설공사를 위한 각종 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인ㆍ허가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있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상가나 아파트, 발전소 등을 짓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구성원들이 모두 건설공사에 참여해야 한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2.JPG

 

2021.5.6.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창고 신축공사 참사 재발방지대책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건설산업연맹]

 

‘빨리빨리’ 속도전에 안전은 뒷전

 

위와 같은 구조에서 공사를 발주하는 발주자는, 공공공사의 경우 LH, 도로공사, 국방부, 교육청 등이고, 민간공사의 경우 대규모 건설업체인 삼성건설, 현대건설, 포스코, SK건설 등이다. 이 중 발주자는 ‘갑 of 갑’이며, 모든 권한은 있으되 의무와 책임은 없다.

이 발주자가 공사를 발주하여 원도급 건설업체와 입찰계약을 체결하고,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공사를 빨리빨리 끝내라고 독촉만 할 뿐,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의 임금 체불이 생기는지, 안전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주 52시간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런 복잡한 건설 현장에서 ‘갑 of 갑’ 발주자가 안전조치를 반영한 제대로 된 공사기간을 마련하지 않고, 발주자와 건설업체가 안전을 무시한 채 ‘빨리빨리’의 관행을 만연케 한 것이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근본원인이다.

 

2017년 한 해에만 타워크레인 설치ㆍ해체(건설공사 현장에 설치되는 타워크레인은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이에 맞추어 철 구조물을 이용, 인상하여 작업을 한다)를 하는 노동자가 17명이나 추락해서 사망했다. 안전하게 타워크레인을 인상하는 작업을 하려면 1팀 당 5명 이상이 5일 이상을 소요하여 작업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공사기간을 단축하라는 ‘빨리빨리’ 요구 때문에 타워크레인에 안전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3~4일 만에 작업을 끝내면서 타워크레인이 전복되어 추락하였다.

 

2020년 4월에 발생한 남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도 용접과 우레탄폼을 동시작업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두 작업은 동시작업을 하면 안 되는 공정이었다. 그럼에도 시행사인 한익스프레스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빨리빨리’를 원도급업체에 지시했고, 원도급업체는 하도급업체들 간 공정의 문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면서 심각한 화재참사를 일으켰다.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가 발생하자 건설업체는 “재수 없이 걸렸다”고 했다고 한다. 건설공사의 ‘빨리빨리’가 일상이 되어버렸는데, 재수 없이 화재가 났을 뿐이라는 건설업계의 저열한 문제인식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계는 오래전부터 건설현장에서의 ‘빨리빨리’를 근절하는 길만이 건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발주자나 건설업체는 공사를 빨리 끝내서 그만큼의 이득을 남기기 위해 ‘빨리빨리’ 관행을 근절하지 않았고, 정부는 근시안적인 대책으로 책임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건설현장에서의 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3.JPG

 

2021.5.20. 건설안전특별법 즉각 제정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건설산업연맹]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까닭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로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도, 올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발주자가 안전조치를 반영한 공사기간을 마련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 등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선제적 안전조치 의무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건설산업에 특화된 안전관련 법이 필요했다.

 

2020년 9월에 발의(김교흥 의원 대표발의)되었다가, 중대재해처벌법 등 연동한 내용을 반영하여 2021년 6월에 재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자는 설계ㆍ시공ㆍ감리자가 안전을 우선 고려하여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정한 기간과 비용을 제공하여야 하며, 민간공사는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이 적정한지 인허가기관의 장 등에게 검토를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설계자, 감리자, 시공자, 건설노동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건설공사 과정에서 각자 안전 관련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도록 하였다. 안전조치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건설사업주는 영업정지를 받거나, 업종ㆍ분야별 매출액의 3%를 과징금으로 대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건설산업에서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계시기부터 선제적 안전조치를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건설안전특별법의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를 모두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ㆍ시행된다면, 건설노동자(건설기계노동자) 등 모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하면서 공사를 진행하도록 하여 건설 현장에서의 재해 감소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와 국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건설안전특별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건설노동자 안전을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운동은 2021년 뜨거운 여름에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