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9] 코로나19 재난 상황과 ‘필수노동자’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Sep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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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코로나19 재난 상황과
‘필수노동자’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필수노동자 정의

 

코로나19 국면이 계속되면서 ‘필수노동자’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지속되지만,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면하여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나 배달노동자,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노동자, 돌봄노동자 등이 그러하다. 이 노동자들은 반드시 대면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노동이라는 의미를 담아 ‘필수노동자’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라는 락다운 상황에서도 보건의료노동자 등 대면해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를 ‘최전방 노동자(Frontline worker)’라고 부르며, ILO도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즉 대면서비스의 불가피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미국과 EU 등에서는 수행업무의 경제ㆍ사회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업무라는 뜻이다. OECD는 감염병 국면에서의 필수산업을 지정하고, 이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핵심종사자(Key worker)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20년 12월 14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필수노동자 보호 지원대책>에서 필수업무를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될 필요가 있는 업무”로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범위를 보건의료 분야와 돌봄, 운송, 환경미화, 기타(콜센터 상담원)로 명시했다. 이는 미국 등에서 사용하는 필수노동자 개념과 유사하다. ‘필수노동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사용된 개념이기는 하지만 재난상황 전반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대면 업무’로만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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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1. 민주노총은 보건의료, 돌봄, 운수, 환경미화, 콜센터 등 각 분야의 필수노동자들이 참석해 ‘필수노동자 현장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출처: 노동과세계]

 

2.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

 

미국은 연방정부가 핵심노동자의 리스트를 발표하고, 법률에 따라 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여 지원을 한다. 캐나다도 정부 지침을 통해 10개 필수종사자 분야를 발표하고 소득지원을 실시한다. 16주간 190시간 이상 종사하면서 월 소득 3,500달러 이하인 경우 종사시간과 소득수준에 따라 소득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영국도 코로나19 관련 8개 필수종사자 직업군을 발표하고 자녀의 학교 교육시설 대면 교육 허용, 백신 우선접종 계획수립 등을 시행하고, 일부 지역은 돌봄과 보건 분야 종사자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2020년 12월 14일 <필수노동자 보호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필수업무 종사자의 건강보호, 인력충원, 처우 및 제도개선 등 종합적인 대책이라고 했는데, 산재ㆍ고용보험 확대 적용도 중요 내용이다. 보건의료인력에 대해서는 의료인력 인권 보호 및 교육 강화, 돌봄서비스는 사회서비스원 확대 설치, 민간돌봄서비스체계 제도화, 방문돌봄종사자 등 지원금 지급이 포함되었으며, 운송서비스의 경우 운송기사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 환경미화원의 경우 선별지원금 인상과 노후시설 개선과 건강진단, 콜센터는 근로기준과 산업안전 감독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필수노동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이 노동자들은 사회적인 권리를 많이 누려오지 못했고, 특히 감염병 국면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세계적인 추세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이 정책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별로 없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았으며, 그 결과로 현장에서 지원에 대한 체감도는 매우 낮다.

 

 

3.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법률

 

2020년 9월 10일, 서울시 성동구에서 가장 먼저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이어받아 2021년 2월 말, 34개의 지자체에서 필수노동자 보호 관련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조례에는 필수노동자의 정의와 구체적인 범위, 지원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 재화 서비스 수당 등 자치단체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도 없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체계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법률적 근거도 불분명했기 때문에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ㆍ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1년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제정되었다. 이는 그동안 필수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리고 개선대책을 요구해온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 법률에는 필수업무 및 종사자의 범위, 지원계획의 수립, 실태조사 및 평가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소속으로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지원위원회’를 두도록 했고, 위원회에는 정부 공무원과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의 추천, 전국단위의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추천하는 사람으로 구성한다. 지자체도 지역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재난 상황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필수노동자의 범위를 일률적으로 적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재난 상황마다 필수노동자를 지정하고 지원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 구성이 의미가 있으려면,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재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동원의 대상이었을 뿐, 주체로 인정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가 제대로 전달되고, 지원과 업무의 뒷받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통로로서 심의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게 하려면, 노동자들 스스로가 대표성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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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8. 113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돌봄과 대면서비스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으로 저평가된 여성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민중언론참세상]

 

4. 필수노동자 문제에 대해

 

정부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의료노동자들은 과로와 소진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인력은 제대로 충원되지 않았다. 택배 등 운송노동자들은 급격한 노동강도 증가로 인해 과로사를 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매우 늦었다. 돌봄노동자들은 일자리로부터 쫓겨나기도 하고, 감염 위험에 시달리기도 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감염에 노출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최선을 다해 증가된 업무를 해왔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노동, 권리 없는 노동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에서 ‘필수노동자’를 법률로 지원해야 하는지 질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노동은 결국 ‘공적이며 사회적인 노동’의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들의 일상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그런데 공적인 행정력만으로 이 일을 담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역할을 사실상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노동자들이 그 역할 수행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 때의 지원이 생계지원이나 인력을 더 늘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이러한 사회적 노동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일상적으로 책임을 질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사회서비스노동은 재난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꼭 필요한 노동이며, 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노동이다. 재난상황이 그것을 환기시켜줄 뿐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노동을 시장화했고 불안정과 저임금 노동이 되도록 내몰아왔다. 필수노동자의 노동이 존중되고, 이 노동자들이 공적인 체계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와 정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