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10] 4년째 희망고문, 문재인 정부는 약속을 지켜라 / 박기춘

by 철폐연대 posted Oct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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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4년째 희망고문, 문재인 정부는 약속을 지켜라

 

박기춘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사무국장

 

 

 

지난 2016년~2017년 무능한 적폐 세력에 대한 분노는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 민심으로 타올랐습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적폐청산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가자고 외쳤고, 그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우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1호 공약으로 발표했고, 1단계 전환 대상인 가스공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우리들도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원청인 가스공사와의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시 환호했던 이유는 일부 언론에서 왜곡하는 것처럼 월급이 몇 배로 뛰어오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재계약 때마다 눈치 보며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환호했고, 조금씩이나마 매년 물가가 오르는 만큼 내 월급도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용역사는 계약을 수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전체 계약 금액의 15프로 이상을 꼬박꼬박 가져가고 있었기에 정규직 전환이 되면 그 15프로로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너진 기대감, 흐지부지 흘러간 4년

 

처음에는 노사전협의회도 활발하게 열리고 뭔가 조만간 가닥이 잡힐 것처럼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 9월 가스공사 사장이 느닷없이 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되자, 사측은 “결정권자 부재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발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사전협의회는 1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2019년 7월 가스공사에 새 사장이 왔고, 이제야말로 전환 절차가 마무리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가스공사는 “정규직 전환 방식인 직접고용과 자회사 방안은 선택의 문제”라며 모든 협의 자리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꿨습니다. 원청과 노동자들이 협의하여 정규직 전환을 하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조차 무시하였고, 직접고용하려면 공개경쟁채용을 해야 하고 대량으로 해고자가 나올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압박했습니다. 더욱이 자회사로 간다고 한들 2017년 7월 20일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공개경쟁채용 할 것이며 처우 개선 역시 보장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났습니다.

가스공사가 아무것도 안 한 4년 동안 정년퇴직과 주52시간제 교대제 개편, 제주생산기지 신설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400명이나 늘었는데 이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겠다고 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도리어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다다른 것입니다. 공공기관인 한국가스공사는 어째서 정부 정책을 이행하지 않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애꿎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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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사 정문 앞에 설치된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천막 농성장 현수막. [출처: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가스공사 원ㆍ하청, 수수방관하는 정부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비단 정규직 전환에 따른 고용 불안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지난 4년 사이 가스공사 비정규직들의 삶은 어처구니없게도 정부가 공약을 발표하기 전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소방 직종 노동자들은 주 52시간제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 3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업무가 1.5배 늘어 식사시간도 따로 없어 알아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일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대신 근무 설 동료가 없으면 휴가도 못 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원을 충원해 달라고 용역사에 요구했지만, 언제나처럼 용역사는 원청인 가스공사에서 예산을 안 주면 불가능하다 했고, 가스공사는 정규직 전환 정책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인원 충원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대했던 처우 개선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것입니다.

시설 노동자들은 ‘투쟁 주도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어 시중노임단가 기준을 급작스레 변경하여 임금 인상률을 낮추더니, 심지어 같은 용역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종과 달리 시중노임단가 인상분도 임금에 반영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사측의 노동자 갈라치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회에까지 전달했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앞세우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그쳤습니다. 그로 인해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처우가 나빠지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비참한 삶보다 더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보도자료(2020.8.27. 고용노동부 발표)를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성공적이라며 자화자찬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4년간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는 우리 1,400여 명의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자회자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결자해지하라!

 

그래서 우리는 지난 6월 300리 길을 걸어 청와대로 갔습니다. 코로나도 무서웠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 삶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할까봐 더 두려웠습니다. 약속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500원짜리 동전보다 큰 물집이 터져 피가 나도록 걸어서 갔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모두가 지치고 힘든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 멀리 지나친 차량에서 뛰어오신 시민 분이 “비 오는데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십시오!” 이 한마디와 커피 몇 개를 주시고는 가셨습니다. 그 커피 몇 개를 손에 받아들고 왈칵 쏟아질 뻔한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결자해지!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그 정책으로 인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와대 앞에서 목청 높여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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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대구에서 청와대까지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100리 자전거 행진”. [출처: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그 뒤로 약 3개월이 지난 8월 30일, 1년 만에 노사전협의회가 열렸지만 가스공사는 또 다시 빈손으로 협의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정당하게 요구했던 그 어떤 요구사항에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스공사는 우리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가스공사와의 협의는 무의미할 뿐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또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든 염원을 자전거에 싣고 두 발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1,100리 길을 비바람을 뚫고 갔습니다. 문재인 정부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기에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희망고문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라”고 다시 한 번 외쳤습니다.

 

우리는 계속 청와대에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청와대에 요구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이 보장될 때까지,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우리 삶이 개선될 때까지 계속 외치고 요구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