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11] 노동조합 23년, 5년 4개월 만에 쟁취한 재능교육 다섯 번째 단체협약 / 여민희

by 철폐연대 posted Nov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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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노동조합 23년, 5년 4개월 만에 쟁취한 재능교육 다섯 번째 단체협약

 

여민희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지부장

 

 

 

 

2016년 6월 28일, 재능교육과 단체교섭 상견례를 시작해서 2021년 10월 1일 제80차 단체교섭을 마지막으로 전문과 85개 조항 그리고 부속합의서까지 잠정 합의를 했고, 조합원 총회를 거쳐 10월 29일 조인식까지 5년 4개월이 걸렸다. 재능교육의 다섯 번째 단체협약이 완성되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재능교육지부01.jpg

 

2019.11.07.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창립20주년 집회-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1999.11.07. 설립). [출처: 재능교육지부]

 

노동조합이지만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고, 단체협약이지만 단체협약이라 할 수 없다!

 

2004년 9월(28개월), 2007년 5월(22개월), 2014년 6월(73개월) 그리고 2021년 10월(64개월).

2000년 7월 특수고용 노동자 최초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로부터 네 번의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한 때와 단체교섭을 했던 기간이다.

 

1999년 11월 7일, 재능교육의 학습지교사들이 노동자임을 선언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22년가량 흐른 2021년 10월까지 2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단체협약을, 정상적이라면 열한 번을 체결했어야 할 단체협약을 2000년, 2004년, 2007년, 2014년, 2021년 다섯 차례만 체결한 것이다.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한 횟수에서 알 수 있듯이 재능교육은 학습지교사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에서 단 한 차례도 성실하게 임한 적이 없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를 노동자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하여 노조라 할 수 없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여 단체협약이라 할 수 없다”던 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판단도 재능교육 회사에 힘을 실어 주었다.

 

파업 투쟁, 도곡동 사옥 점거 투쟁, 단식농성 투쟁, 국회 앞 송신탑 고공 투쟁, 삭발 투쟁, 2076일 혜화동 본사 농성 투쟁, 202일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 농성 투쟁 그리고 매주 금요일 혜화동 본사 앞 투쟁.

노동조합을 만든 1999년 그해 12월에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1천여 명이 33일간의 파업 투쟁으로 우선협상안을 합의하고 지금까지 한 번의 임금협약과 다섯 번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했던 투쟁이다.

그 투쟁 동안 재능교육은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폭행과 미행을 일삼았고, 민ㆍ형사 소송을 하고, 가압류를 하고, 해고를 하고, 급기야 단체협약까지 파기하였다.

조합원의 집에는 압류딱지가 붙었고 노동조합 사무실의 집기는 경매되거나 폐기 처분되었다. 단식을 했던 전 위원장은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성투쟁 중 해고된 조합원들은 투쟁 중 구속이 되기도 했고 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기도 했다.

 

2013년 8월 26일, 2076일의 농성투쟁과 202일간의 종탑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고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조합은 회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파기 후 원상회복하였던 단체협약을 2014년에 갱신 체결하였다. 현장 교사들이 가장 크게 고통을 받았던 (-)월 순증수수료 삭감제도와 자동충당제도가 폐지되었고, 휴가비를 지급받는 등 성과를 남겼다.

이는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현장을 재조직하는 기반이 되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은 이렇게 일상을 포기하고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서만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특수고용 노동자 중 최초, 유일한 단체협약을 가진 재능교육지부는 이렇게 노동조합을, 단체협약을 지켜 왔다.

 

그리고 얼마 후 2015년 3월, 회사는 수수료제도 변경을 위한 교섭에서 회사가 제시한 개악안을 노동조합이 수용하지 않자, 합의의 원칙을 깨고 일방적으로 수수료 제도 변경을 공지하였다. 교사 각 개인에게 개별동의서를 받고 그것을 근거로 회사 측의 일방 변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2015년 7월, 노동조합과 합의하지 않은 채 개악된 수수료 제도를 변경, 시행하였다. 이는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었다. 다수가 동의했으니 노동조합에게 개악된 수수료 제도를 수용하라는 협박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였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단체협약을 위반해도, 부당노동행위를 해도 회사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노동조합이 직접 그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사 앞 농성투쟁을 정리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피켓을 들고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출근 선전전과 집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장을 다니며 재능교사들에게 수수료제도 개악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2021년 단체협약

 

단체협약 전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다. 회사는 첫 교섭부터 이 문구의 삭제를 요구하며 ‘관계 법령’으로 바꾸기를 요구했다. 이후 교섭 때마다 각 조항에서 이처럼 ‘노동자성’과 관계되는 모든 문구는 삭제를 요구하거나 민법상 용어로 변경을 요구했다. 2016년 교섭을 시작했던 당시에는 ‘재능교육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에 대한 재처분’ 재판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기 때문에 현행법상 학습지교사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회사는 “현행법에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회사는 어쩔 수 없다. 법이 바뀌거나 판결이 바뀌면 그때 이야기하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회사는 재능교육지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교섭을 한다고 했지만, 모든 교섭마다 노동자성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고, 그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조합은 늘 팽팽하게 맞섰다.

 

‘조합사무실의 관리유지비 지원’, ‘조합 전임’의 경우는 현행 노조법을 위반하는 내용이라며 노조법 적용을 할 수 없다던 때와 달리 노조법을 운운하며 삭제를 주장했다. 현행에서 ‘협약이 갱신 체결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된다’는 조항도 노조법에 따라 ‘효력이 경과한 후 3개월만 효력이 유지된다’는 안으로 축소를 주장했다. 이 조항으로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더라도 재능교육의 학습지교사들에게 단체협약의 효력은 지속되었다. ‘위탁계약서도 단체협약에 준하여 만든다’라는 조항도 삭제를 요구하며 회사의 입맛대로 위탁계약서를 바꾸고 싶어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단체협약에는 ‘교사 계약해지’에 관련한 내용이 있어서 타사처럼 계약해지를 쉽게 할 수 있거나 재계약 심사제도 등 노동조건을 하락하는 위탁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다.

 

그렇게 64개월, 80차 교섭에서 2021년 단체협약 잠정합의를 하였다.

회사가 노동자성과 관련하여 삭제 또는 변경을 요구했던 모든 문구는 기존대로 유지했다.

‘인정퇴회’, ‘계약해지’, ‘휴업’, ‘휴업자의 처우’, ‘외곽관리교실 교통비 지급’, ‘건강검진’, ‘자녀회비 지원’, ‘경조금 지급’, ‘하절기 지원(휴가비)’, ‘표창’, ‘소득세 원천징수 환급 처리’, ‘기념일 지원’ 등 타사에서는 지원하지 않거나 축소시킨 학습지교사 지원제도를 노동조건 하락 없이 단체협약으로 지켜냈다. 다만, 하절기 지원(휴가비)’, ‘표창’, ‘자녀회비 지원’에서 노동조합의 요구(조건 인상)를 관철하지 못하고 기존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조합사무실 관리유지비 지원’과 마지막까지 쟁점이었던 ‘조합 전임’, ‘협약의 효력 지속’도 회사가 요구를 철회하고 기존안을 유지하고 관리유지비와 전임 활동비 지급을 합의했다.

또 쟁점이었던 ‘수수료 지급’과 ‘부정영업진상조사위원회-신설요구’는 노동조합이 요구를 철회하였다. 이 두 가지 조항은 쟁점이었던 만큼 노동조합도 관철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이후 과제로 남기기로 했다.

쟁점과 더불어 노동조합의 현장 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신입교사 노동조합 교육, 현장 사무실 내 홍보활동 보장 등의 조항도 끝내 관철하지 못하였다.

 

긴 시간 단체교섭을 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법원의 노동자성 인정 판결로 20년 동안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더니 하룻밤 자고 나니 ‘노조법상 노동자’가 되었고, 그 후로도 많은 직군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회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또 대면 학습이 주류였던 학습지 시장에서 코로나19로 비대면 학습이 급증함에 따라 학습지의 현장 상황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2016년 요구안으로 2021년에 교섭을 하고 있었다. 타사의 수수료 제도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재능교육은 여전히 2015년 수수료제도로 노동조합과 교섭을 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판단이 필요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며 교섭을 하기보다는 현장과 소통하며 현재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요구를 준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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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6.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 출근 선전전 모습. [출처: 재능교육지부]

 

노동자성 인정, 단체협약 파도타기

 

현재 학습지 업계 1, 2위를 다투는 대교와 구몬의 학습지교사들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요구에 각 회사들은 “대법원의 노동자성 인정 판결은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만 해당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교섭을 회피하고 있지만, 대교의 경우 1심, 2심 재판에서 ‘노동자성 인정’으로 연이어 승소하고 있다.

이제 곧 대교에서, 구몬에서 또 다른 학습지 회사에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이 만들어질 것이다.

재능교육 단체협약 투쟁의 성과는 학습지 현장을 넘어 더 많은 특수고용 노동조합의 노동조합 인정과 단체교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특수고용 노동자인 우리는 여전히 노동기본권을 외치며 투쟁해야 한다.

‘특수고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노동’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고

‘특수고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노동기본권’을 빼앗았고

‘특수고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최저근로기준법에서 ‘소외된 노동’을 만들었다.

ILO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여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도 여전히 문구로만 존재하는 노동 3권은, 재능교육을 비롯한 수많은 자본이 노동자들을 기만하게 만들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은 더 이상 소외된 노동이 아니어야 한다.

재능교육지부는 이후 250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2조 개정을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