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12] “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입니다” / 유빛나

by 철폐연대 posted Dec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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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입니다”

 

유빛나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한국방송회관분회 조합원

 

 

 

저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의 시설관리 자회사 ‘코바코파트너스’ 소속으로 잠실 한국광고문화회관(이하 ‘문화회관’)에서 안내 데스크 업무를 해 오던 노동자입니다.

저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입니다. 2019년 1월 입사 이래 계속된 상사들의 비리, 횡령, 짐승보다 못한 대우, 금품 갈취 및 괴롭힘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회사 관리자들의 주도 하에 3년째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코바코 직장 내 괴롭힘01.jpg

 

2020.04.27. 서울 잠실 한국광고문화회관 앞에서 현수막 시위 중인 필자 모습.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직장 내 괴롭힘을 없던 일로 하자구요?

 

제가 언론에 이러한 사실들을 알리게 되자, 그동안 “자회사로 전환되기 전 용역업체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던 코바코 정직원은 제가 피해망상이고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다며 악플을 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초지일관 말해 온 회사(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일방적인 조사를 진행하고는 별 일 아니라며 성급히 결론지었습니다. 그것도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인 저의 참여를 배제한 채 말입니다. 오히려 회사는 저를 괴롭힘을 한 가해자로 지목해 사측 노무사로부터 무려 9시간에 걸쳐 가해자 조사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저를 이토록 잔혹하게 압박한 회사가 그 어떤 반성이나 개선 조치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 측의 억측으로 점철된 조사 이후 “지난 일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겠다”는 무책임하고 공허한 답변만이 돌아왔고 2차 가해는 지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제 편이 되어주신 직장 동료와 팀장님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며 회사는 이 사건의 은폐를 시도하였습니다.

모회사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자회사 직원들을 관리하겠다는 명목하에 정규직 직원들을 자회사 운영팀에 파견했고, 코파코파트너스의 사장도 임명했지만 결국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위계와 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근본 원인입니다

 

제가 문화회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 1월이었습니다. 앞서 열거했던 회사 내 부조리를 문제 제기했지만, 시정은커녕 같은 해 말부터 집단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직장 내 괴롭힘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근무 현장은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남성 직원들은 안내 데스크 업무를 하는 로비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통해 제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관여했습니다. “로비는 건물의 얼굴”이라고 “가만히 꼼짝 말고 정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며 종일 CCTV로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지난해 2월에는 인대가 끊어져 발목에 깁스를 대고 목발을 짚은 상태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는데, 관리자는 의자를 비치해 달라는 제 요구를 무시하고 내내 선 채로 일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안내 데스크 업무에 더해 엘리베이터 의전 업무까지 시켰습니다. 제가 로비 반경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게 보이면 장난 전화를 걸어 서둘러 전화를 받게 만드는 등 꼭두각시 취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성 직원들의 일상적인 감시와 따돌림, 성희롱, 잔혹한 괴롭힘이 계속되면서 다리 부상은 쉽사리 낫지 않았습니다. 4주 정도면 풀 수 있는 깁스를 1년 넘게 해야 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다 보니 결국 안면 대상포진까지 왔습니다. 관리자들은 그런 제 얼굴을 들춰보며 웃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주도한 인물은 중간 관리자인 현장 소장이었습니다. 소장의 일자리 소개로 들어 온 구내식당 여사님은 지난해 2월 20일 제게 누군가 먹다 남긴 감자탕 뼈를 배식했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잔반 배식 사진을 현장에서 촬영하고, 그동안 식당에서 눈칫밥 먹는 신세였던 제 절박한 심경을 편지글로 담아 구내식당 여사님께 전해드렸습니다. “먹는 것 갖고는 장난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양해도 구했지만, 문제제기는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피해당사자인 제가 도리어 구내식당 이용금지를 당했습니다. 이런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겪고도 그 누구도 제게 이유를 물어보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관리자들은 저에 대한 갖가지 유언비어들을 퍼트려 저를 철저히 고립시키려 했습니다. 동료 직원들 역시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며 상사들의 지시에 따라 집단 괴롭힘에 동조하였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고령층이거나 사회초년생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런 일자리는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상처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대개는 그만 둬 버리던가, 침묵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이 고질적인 관행과 갑질의 악순환이 계속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관리자들 눈 밖에 나거나 명령을 거부했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전부 잘려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치심을 느끼며 동료들이 잘려 나가는 것을 목격한 이들 모두가 피해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근무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공익광고를 만드는 공공기관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어느 회사보다 청렴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하질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희 직원들은 ‘성의 표시’라는 명목하에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 관리자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모멸감을 느껴 가며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용자(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고용주(용역업체)-노동자로 구성되는 이 ‘삼각 고용구조’는 노동자를 “동네북”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순간 원청의 불법행위, 용역업체의 방관은 표백되었고, 이 간편한 책임전가는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부조리가 되풀이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공공기관의 운영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민주적인 사회관계가 작동하는 공동체 안에서는 구성원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감시망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걸 막아내기 위해 서로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수차례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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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KOBACO 서울 목동 방송회관 로비 안에서 선전전 중인 필자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거짓과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용역업체가 자회사로 전환된 시기가 지난해 1월 1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 소속 자회사인 코바코파트너스는 오로지 돈만 보고 운영해 온 용역업체 시절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공론화되자 가해 행위를 주도했던 현장 소장은 친기업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관리자가 직원들의 업무 평가를 수행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직원들은 그 관리자를 따라 친기업 노조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 역시 그런 괴롭힘 주도 가해자를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대우해주며, 저를 또 한 번 무너트렸습니다.

힘 있는 자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도 필요했지만, 현실적인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하는 문제라 쉽게 움직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를 위해 함께해 준 동료들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2016년 소장의 횡령과 직원들의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저희 팀장님 또한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지금까지도 겪고 있습니다.

코바코파트너스는 사건의 아무런 해결도 없이 마녀사냥을 통해 저를 계속 몰아가기만 하다가, 결국 올해 9월 1일 회사의 발전을 위함이라며 저와 저희 팀장님을 양천구에 위치한 ‘코바코 방송회관’으로 인사발령 냈습니다. 잠실 문화회관에 있던 저와 팀장님의 자리는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공공기관 코바코는 한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버릴 수도 만들어줄 수도 있는 이렇게나 위대한 회사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노예처럼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감히 저희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라는 회사의 방만한 경영 상태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한 저희 팀장님은 의정부에서 목동까지 4시간 30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을 감내하며 일해야 합니다.

 

코바코파트너스는 자회사가 된 지금도 자신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을 감추기 위해 회사에 복종하지 않는 직원들을 이렇게 제거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경직성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제가 용역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이 없어 참고 견뎌야만 했습니다. 저 같은 용역 계약직은 노동조합을 가입하면 재계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은 정규직에게만 주어진 혜택인 줄로만 여겨 왔습니다. 이제 공공기관 자회사 소속이 되었지만, 제게는 여전히 의자 하나 지급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너지고, 올해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저의 지난 일들을 다 밝히고 난 후 조합원들과 식사를 하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괴롭힘을 계속 당해야만 했던 흔한 이유는, 함께 맞서 싸울 생각이 없어서였단 걸요. 저는 계속 억압에 맞서고, 진실을 말하며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