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1] ‘동네에서 노조하기’ 아랫마을 가장자리에서

by 철폐연대 posted Jan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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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동네에서 노조하기’ 아랫마을 가장자리에서

 

이은영 • 대덕유니온 대표

 

 

 

# 해 주는 것 하나 없는(?) 노동조합

 

모기만한 목소리로 목표 금액을 말했을 때 운영위원들이 좀 놀라워했다.

“그 금액을 모금하려고 이 큰 (‘크다’고 쓰고, ‘번거로운’이라고 들린다) 행사를 해요? 그냥 안하는 게 낫겠어요.”

해 주는 것도 하나 없는 노동조합인데, 조합원들에게 후원금을 모금하자고 제안하는 내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게 돈 문제(?)라 말하기 쑥스럽네요. 우선 친한 친구들에게만 말해 볼께요.”

“우리 조합을 설명하는 웹자보 좀 만들어 주세요. 카톡으로 보내 보게요.”

후원금 모금 방법을 조심스레, 그리고 걱정스레 문의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후원행사를 성대히 잘 치렀다.

“캠페인 한다고 하면 내가 좀 나가주고 그러면 되지 했는데, 후원금 받으러 다니다 보니까 내 단체구나 싶더라고…!”

“나 체험프로그램 하고 돌아오면서 관광버스 기사 분께 한 장 내밀었잖아~. 호호호~ 엄청 뻘쭘했어. 근데, 그분도 노동자인 거 같은 거야. 그래서 노동조합 없으면 가입하시라고 했지. 근데 대덕구 아니시래.”

“위원장님, 제가 진짜 후원해 줄 친구는 없고요. 제가 행사 일에 열일 하는 것으로 안 될까요?”

 

# 아, 그렇죠? 근데 우리 무슨 단체에요?

 

“위원장님, 우리 무슨 단체에요?”

매번 조합원들이 물어본다.

“우리 노동조합이에요.☺”

“아~~ 그렇죠? 근데 무슨 일 하는 단체에요?”

“조합원들의 일터에서의 이해와 요구를 현실로 만들어 가는 일을 하지요.”

“아~~ 그렇죠? 그런데 그럼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단체 교섭권이 없는 노동조합. 일하는 일터가 각자 다른 노동조합. 계약만료, 알바 끝, 잠깐 쉼이 너무 잦아 한곳에 정착할 수 없는 구성원들의 노동조합. 그래도 우리가 노동조합이다(아, 이거 정신승리인가?).

 

# 몰랐어요. 그러나 알게 되었어요.

 

2019년 창립 첫해,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조합원들이 한다는 첫 캠페인이라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나갔는데, 누가 나왔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다들 세상 가장 홀쭉한 자세로, 얼굴까지 전부 다 피켓 뒤에 숨어 있었다. 너는 누구? 나도 누구? 여긴 어디?

2020년 대전 노동권익센터에서 대덕구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노동환경 및 복지제도개선에 대한 요구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대덕유니온은 조사결과를 다시 주민들에게 설문조사했다. 대덕구에는 대전산업단지와 대덕산업단지, 2개의 산단이 있다. 그러다 보니, 대덕구는 50인 미만 사업장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주민 설문을 받기 위해 조합원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다들 이렇게 말하더라.

“아, 몰랐어요. 정말 바뀌어야 돼요. 근데 경기도 **시에는 필수노동자 지원조례 같은 것도 있다면서요? 그런 걸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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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대덕구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대덕구민 정책 토론회 모습. [출처: 대덕유니온]

 

# 어쨌거나 시작은 한 걸음씩

 

평소에 말이 없는 조합원이 있다. 심하게 각색하자면 질문형으로 말문을 터 보려고 하면, “(그런 걸) 왜 물어요?” 하고 입을 닫는 조합원. 2021년 <우리동네노동인권써포터즈>를 여느 때처럼 사람이 많이 오가는 네거리에서 진행하는데, 길 건너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열심히 주민들께 설명하고 있는 그 조합원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해.” 우리동네노동인권써포터즈 사전 기획안을 두고 회의할 때마다 사전, 사후 걱정을 도맡아 하던 조합원은 항상 저 멀리 있는 분들께도 “꼭 한번 서명을 받아 볼게.” 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이 조합원이 낸 구호와 아이디어를 보태어, 2021년 우리동네노동인권써포터즈를 진행했다.

 

# 감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동체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노동 이야기는 좀체 꺼내지 않는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기 위해, 존엄을 위해 싸우지만 사업장 밖에선 이야기 나눌 곳이 없다.

노동자의 문제가 사업장 담벼락을 넘기를, 노동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일어난 뉴스 한 줄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가 되기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는 공동체들이 노동의 가치도 이야기하도록.

처음에는 “일하는 주민들의 노동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이 연대해 왔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위대하다고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많이도 말했던 것 같은데, 막상 내가 노동조합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감이 잘 안 잡혔다. 이게 되는 건감. 안 되는 건감. 이래도 되는 건감. 안 되는 건감. 도무지 감이 없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실천하면서 같이 깨달아 가는 길. 초단기도, 방역 일자리도, 잠깐 일하는 알바도, 투잡하는 프리랜서도, 어떠한가. 우리가 모두 노동자라는 걸 깨닫는 길. 나는 그걸 먼저 깨닫지는 못했고, 조합원들과 함께 깨닫고 있다.

 

# 밑도 끝도 없는 창대한 꿈이여.

 

투쟁과 교섭을 통해 지역사회 작은 사업장들이 조직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을 잘 모른다. 어느 직종을 해 보려고 해도, 동네 사업장을 해 보려고 해도, 교섭과 당장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우리 조합은 규모도 작고, 설득력도 작다. 조직화가 잘 안되니까 또 투쟁도 교섭도 해 낼 자신이 없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이 노동조합이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역 주민들이 보았을 때, 동네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를 바꾸는 조합이 되자. 그것이 규모라면 더 큰 동네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조합원들의 단결이라면 더 많이 공부하고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채찍도 좋고 당근도 좋다. 지자체를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주민 요구를 통해 노동자를 존중하는 지역사회를 만들고 싶다.

사실, 유니온이 있는 지역은 노동조례도 만들고, 감정노동자조례도 있고, 지자체가 이동노동자쉼터도 만들고, 노동권익보호증진센터도 직접 운영한다. 그래서 노동정책이 지자체의 시혜나 행정으로서의 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요구로 실현되도록 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존중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고, 일하는 지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제. 그런 과제를 하나씩 해 나가는 노동자들의 자주조직.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사회운동을 벌여 내자. 조합원들이 지역사회를 바꾸는 주인으로 우뚝 서고 움직이는 사회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의 14일 휴가 쟁취를 위한 시민 캠페인을 할 때, 5인 미만 사업장 차별폐지를 위한 숫자 5 인증하기 캠페인을 할 때, 직관적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제 조합원들은 열심히 한다. 노동기본조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조합원들이 나서서 친구들에게,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조례 제정 촉구 서명을 부탁했다.

 

# 위대하지 않아 보이는 일들이라도 오늘도 꾸준히.

 

일하면서 오는 애환을 달래려 시작했던 지역노동자 자조모임에서 ‘이게 내 권리이기도 하다고?’ 내심 놀라워하며 구호를 피켓에 써서 거리에 나갔던 날, “내가 바로 이 지역 주민이자, 노동자요.”라고 발표했던 날, “우리 지역에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더 많이 필요해.”라고 친구를 설득했던 모임, “더 많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겠습니다.”라고 후원을 부탁했던 오늘까지. 때론, 절실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우리들의 애씀이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일까봐 걱정이다. (기사를 이렇게 쓰고 잘 보이기를 바랍니까? 이 글을 먼저 읽어 준 후원조합원의 평가.) 대덕유니온의 부족한 사례가 누군가에겐 “아유, 이 정도면 골목마다 노동조합하겠다”라고 느껴졌으면 좋겠다! 아주 극한 바람.

어디서 언제, 다큐 프로를 보다가 ‘리히비의 최소량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나무물통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개의 나무판자를 삥~ 둘러대 만든 물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가장 높은 판자의 높이가 아니라 가장 낮은 높이의 판자에 달려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사회가 어느 면에선 뛰어나고 어느 측면으로는 많이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와 노동존중의 가치 판자는 가장 낮은 높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그럼 10인이나 20인 사업장은 수에 비례하여 노동조합 만들기가 2배, 4배로 쉬웠던가. 소속된 단체에 속한 동료들도 잘 모른 채, 흩어져 일을 하는 이동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말이 사장님이지 1인 자영업자들은. 우리 사회가 담아야 할 인간의 행복과 존엄의 양을 더 채우려면 가장 낮은 높이의 나무판자. 노동자의 권리에서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그 높이를 높여갈 때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로 대덕유니온에 대한 실망이 혹여 커지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지만, 가던 대로 한 발씩 가 보겠다는 성급한 결론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글에서 익명의 조합원 사례를 들었는데, 읽다 보면 자신인 줄 알 것 같은 우리 조합원들께도 사과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전국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도 끝까지 참고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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