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1] ‘노동해방의 불꽃’ 전규홍 동지! / 천연옥

by 철폐연대 posted Jan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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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노동해방의 불꽃’ 전규홍 동지!

 

천연옥 • 민주일반연맹 부산일반노동조합 교육위원장, 철폐연대 회원

 

 

8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2021.09.16. 부산일반노조 간부교육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한 인증샷 모습. [출처: 부산일반노조]

 

지난 11월 12일 부산일반노조 사무국장 전규홍 동지가 척추협착증 수술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노조 밴드에 올라온 것은 오후 2시 56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10월 말에 노조는 2개월의 병가를 주고 허리 치료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다. 2019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차원에서 진행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 노숙농성과 출근선전전’에 당시 부산일반노조 위원장으로 참여했던 전규홍 동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여러 차례의 수술, 장기간의 입원 및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허리 통증으로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위원장, 사무국장, 조직부장 이렇게 세 명의 상근집행부로 꾸려진 노조에서 사무국장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수술 잘 한다는 병원을 고르고 골라 서울까지 찾아간 끝에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다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라는 사실이 확연해지면서 ‘노동해방의 불꽃 전규홍동지 사망사건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지난 11월 16일부터 12월 1일까지 분향소가 운영되었다. 그리고 12월 2일에서 4일까지 장례가 ‘민주노총 부산본부 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인근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하고 행진을 하여 민주노총 부산본부 주차장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솥발산 열사묘역에 그를 묻었다. 그날은 무척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내가 전규홍 동지를 처음 만난 건 그가 구덕원 현장대표였던 2012년 동의대 파업 농성장이었던 것 같다.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이었던 나는 지역의 소수 활동가들과 ‘비정규실천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 경험에 의지하여 부산지역 대학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였고, 그 성과로 신라대와 동의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2012년 6월에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한바탕 총장실 점거농성을 한 끝에 임단협이 체결되자 9월에 동의대가 가입하고 바로 11월 말에 파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당시 전규홍 동지가 현장대표로 있었던 사회복지법인 ‘구덕원’은 어떤 곳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조에 보관된 자료(2011년 9월 27일자, 보도자료)를 보자.

 

   

구덕원 그동안의 경과보고

  

 

2007. 05. 부산구덕병원, 청도대남병원이 (주)한양약품으로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8억 8천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오성환 前대표이사 구속, 이후 위암 발병으로 사망.

 

2007. 07. 12. 오성환 前대표이사가 사망하자 부인인 김현숙씨가 대표이사로 취임.

 

2010. 05. 20. 구덕원 고질적인 횡령과 비리, 편법적인 이사회 개최를 통해 불법적으로 법인을 매각하려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껴 노동조합에 가입.

 

2010. 06. 01. 김문동 노인건강센터 시설장이 자신의 해임 위협 느껴 김현숙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 비리, 법인 기본재산 처분, 의약품 리베이트 건 등 횡령과 비리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보건복지부 감서관실,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제출함.

 

2010. 06. 07~10. 보건복지부 및 부산광역시 합동감사 실시.

 

2010. 07. 12. 보건복지부 감사결과 발표: 법인카드 무단사용, 법인 공금 횡령, 기본재산 처리 부적절, 이사회 파행운영 등을 이유로 김현숙 대표이사, 법인 감사를 직권 해임하고 이사회 교체를 요구하였으며 그 시정 결과를 07. 30.까지 보고하라고 함.

 

2010. 07. 15. 구덕원 이사회를 개최하여 보건복지부가 지적한 이사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오성환 前대표이사의 친구, 김현숙 前대표이사의 지인 등 ‘그 나물에 그 밥’인 이사들을 다시 임명함.

 

2010. 08. 06. 노동조합이 횡령과 비리에 책임 있는 이사진의 퇴진과 공정하고 객관성이 있는 인물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구덕원의 10년 비리를 척결하라고 요구하며 쟁의행위 돌입.

 

2010. 09. 13. 노동조합 기자회견: 구덕원 비리 해결과 정상화를 위해서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어야 함을 보건복지부와 부산시에 요구.

 

2010. 09. 09. ~ 09. 17. 구덕원의 비리와 횡령 등의 문제 언론 보도됨.

방송: KBS, MBC, KNN / 신문: 부산일보, 국제신문, 한겨레 등 / 기타 인터넷신문

 

2010. 09. 29. 現대표이사 김인숙 및 전 경찰서장 출신 박길수 상임이사가 취임함.

 

2011. 01. 14. 김현숙 前대표이사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추징금 3억 7천여만 원 선고.

 

2011. 01. 중순 부산시로부터 구덕원 산하 부산시노인건강센터 위탁해지 결정.

(2011. 02. 01. 위탁법인변경 사회복지법인 행복한오늘)

2011. 04. 13. 전 대표이사 김현숙 항소기각 판결.

 

2011. 05. 초~8월 수차례에 걸쳐 부산시와 사상구청을 방문하여 김현숙 前대표이사가 과장금과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사실, 법인이사회가 과거와 똑같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 현재 법인 운영 또한 법인카드 개인적 사용 등 편법과 불법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리며 시정조치를 요구했으나 별다른 진행 사항이 없는 상태.

 

2011. 09. 26. 현재 20여 차례 집회시위 진행(부산시청, 사상구청, 청도대남병원 및 에덴원 산하기관 앞, 한소망교회, 경북도청, 학장동 소재 법인사무실 등) 중에 있으며, 여전히 법인에는 횡령과 비리에 연루되어 해임된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대표이사는 아무런 일조차 하고 있지 않고 상임이사 박길수에게 위임한 상태이다. 전 대표이사 김현숙의 불법행위와 비리로 인하여 구덕병원 및 법인에 부과된 과징금 등을 해결하지 않고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등 불법적인 법인 운영과 손을 끊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렇게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사회복지법인 구덕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전규홍 동지는 돌봄노동의 공공성 문제에 눈을 뜨고 노동조합에 가입, 현장대표가 되면서 점점 활동가로 성장해 왔다. 2012년 11일 동의대 농성장에서 만났을 때엔 ‘인간답게 사는 길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부산일반노조 정신에 부응하여, 구덕원 투쟁 과정에서도 동의대 투쟁에 열심히 연대하였다. 그리고 구덕원이 영업정지되고 대남병원으로 고용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그는 고용승계를 하지 않고 2013년 부산일반노조 조직부장으로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가 조직부장이었던 당시(2014년) 신라대에서 79일간의 투쟁이 있었고, 이 투쟁 과정에서 아내이자 동지를 만나게 되어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2015년 내가 부산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되었을 때, 전규홍 동지는 당시 위원장, 사무국장과 함께 상근하기 힘들어 조직부장을 그만두고 조합원의 위치에서 생탁노조 투쟁에 함께 했고, 2017년 일반노조 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역의 일반노조들이 민주노총 부산본부 직가입노조에서 민주일반연맹으로 가입하게 되자 민주일반연맹 부산본부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2017, 18년 위원장, 수석부위원장으로 함께한 전규홍 동지는 참 소박하고 정겨운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규홍 동지는 부산지역 동지들을 네 번이나 놀라게 했다. 2015년 초에 당시 변혁당 부산시당 집행위원장이었던 전국구 활동가 남 동지와 결혼을 한 것, 그리고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난 것. 여기까지는 기쁜 소식이라 좋았다. 다음엔 2021년 상반기에 남 동지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더니, 결국 전규홍 동지의 황망한 죽음으로 우리 모두를 깊은 슬픔에 빠뜨렸다. 참 많이도 울었다. 분향소에서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에서 하관식에서.

 

부산지역에서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들고도 바쁜 일이었다. 오랜 직가입노조 시절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지역본부 사업에 함께해야 했고,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변해서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야 했다. 추모문화제 영상들을 보면 각종 집회, 기자회견, 1인 시위, 선전전. 참 많이도 참석했다. 10년도 안 되는 활동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진자료를 남기는 활동가도 찾아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도 투병 중인 아내와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간 전규홍 동지! 남아 있는 동지들을 믿고 이제는 편히 눈감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장례위원회 호상 박문석 부산일반노조 위원장의 영결식 인사말이다.

 

“전규홍 동지를 추모하고 보내기 위한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동지들과 친구들을 비롯한 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11월 12일 황망한 소식을 접한 이후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동지가 살아온 삶을 기억하며, 슬퍼하고 그리워 합니다.

전규홍 동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 애정’ 그리고, 착취의 벼랑 끝에 내몰린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보다 더 아래로’라는 메시지, 나아가 ‘노동해방과 사회주의’라는 붉은 사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규홍 동지의 삶을 기억하며, 동지가 염원했던 ‘사회주의’ ‘평등세상’에 대해 살아남은 우리가 앞으로 많은 고민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규홍 동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자장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전국에서 달려와 주신 민주일반연맹 동지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하며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까지 해주실 대책위 동지들 감사합니다.

특히나, 누구보다도 슬픔이 클 유가족 분들에게….

감사와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규홍 사무국장 동지를 잃은 슬픔이 크지만, 우리 부산일반노조는, 지역과 전국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응원해 주시는 힘을 받아 안고서 더욱 힘차게, ‘착취 없는 세상’ ‘노동해방 평등세상’을 향해 투쟁하고 전진해 가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전규홍 동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해 주셔서, 전규홍 동지 또한 우리들 곁을 떠나는 마음이 가벼울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전규홍 동지 가시는 길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