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가사노동자법 제정 의미와 한계 / 윤지영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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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가사노동자법 제정 의미와 한계

 

윤지영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근로기준법에는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이 법은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 규정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지 못했습니다.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따르는 여타 노동법들도 적용 받지 못했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데, 이 글을 본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겁니다. 도대체 ‘가사사용인’이 누구야?

 

문언대로 해석하면 가사, 즉 집안일을 위해 사용한 사람이 가사사용인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파출부’, 보통 ‘가정부’, 요즘에는 ‘가사도우미’라 불리는 사람이 가사사용인입니다. 집안일을 하고 그에 대해 대가를 받는 사람이 가사사용인입니다. 그런데 사실 어디까지 가사사용인으로 볼 것인지는 만만치 않습니다. 예컨대 ‘기생충’의 송강호는 가사사용인일까요. 산모도우미나 베이비시터는 어떨까요. 어디까지 가사로 볼 것인지 불분명하다 보니 자의적인 기준으로 가사사용인에 포함되어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간병인이 그렇습니다. 간병뿐만 아니라 아이돌봄, 노인돌봄 등 각종 돌봄노동이 가사노동으로 분류되어 노동법 밖에 놓여 왔습니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상황에서, 결국 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가사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가구 내 고용이라는 점을 듭니다. 즉 가족 구성원들에게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고, 공간 특성상 노동법을 적용하는지 단속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 들여다보면 정부도 가사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가사노동자 역시 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 종속되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니까요.

 

정책적인 판단에서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인 이상, 시대 상황에 따라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히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의 증가, 고령화 현상으로 가사노동을 전업으로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맞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인으로서의 가사노동자가 늘어나고, 동시에 가사노동자의 인권 침해 문제도 늘어나면서 2011년 국제노동기구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합니다. 이후 국내에서도 가사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드디어 2021년 5월 21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노동자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가사노동자법은 근로계약서에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명시하도록 하고,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으로서 최소근로시간(주 15시간), 유급휴일 및 연차유급휴가, 입주가사노동자의 근무시간 산정에 관한 특례 등을 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제공기관에 대한 인증, 관리감독 및 지원방법(조세 감면, 사회보험료 지원)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간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힘을 쏟았던 한국YWCA, 한국여성노동자회 등과 연대조직인 한국노총도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습니다. “우리는 오늘 가결된 법이 중고령자들의 안정적 일자리뿐 아니라 비전형노동의 보호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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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30. ‘공짜, 헐값 노동 그만!’ 가사·돌봄 사회화 공동행동(준) 출범 기자회견 모습. [출처: 노동과세계]

 

그렇다면 가사노동자법은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적용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자법은 “이 법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가사근로자의 근로관계 및 가사근로자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가사서비스 이용에 관하여 적용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자 전체에 대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가사서비스 제공을 업으로 하여 인증을 받은 기관)과 근로계약을 맺은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사노동자법은 가사노동자를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의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용자에게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가사서비스 제공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가사노동자에게만 이 법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사노동자법이 아니더라도,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상으로도 근로자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가사노동자의 사용자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업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 가구 내 고용활동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지요.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사용자로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옳습니다. 요컨대 가사노동자법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만 노동자를 인정한 셈이니 그 실익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계의 논평처럼, 가사노동자법이 중고령자들의 안정적 일자리뿐 아니라 비전형노동의 보호에 커다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가사노동자,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정을 소개 받고 일을 하는 가사노동자, 기타 모든 가사노동자에게도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사노동자에 대한 적용 제외 규정인 근로기준법 제11조도 함께 개정되어야 하는데, 가사노동자법은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가사노동자법 제정으로 인해 오히려 근로기준법 제11조의 개정 논의는 더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법은 내버려 둔 채 특별법으로 일부 가사노동자에게만 법을 적용하는 것, 이런 식의 우회적인 노동관계법령의 적용은 고용노동부 인증 제공기관에 속하지 못한 가사노동자를 더욱 사각지대로 몰아넣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심지어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경우에도 인증을 받지 않으면 가사노동자법이 적용되지 않는데, 이런 경우까지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가사노동자법은 제공기관에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해서 근로기준법보다 못한 수준의 특례 조항을 적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휴게시간이 그러합니다. 연차휴가, 유급휴일, 근로시간에 대해서도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사노동의 특성을 고려해 현장 맞춤형으로 규정들을 정비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가사노동자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최저 노동시간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입주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가사노동자는 ‘호출형 시간제 노동’으로 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대부분의 가사노동자는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불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시간당 페이를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사노동자법은 가사노동자에게 주 15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을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주 15시간은 사회보험 및 유급휴일, 연차휴가, 퇴직급여를 인정받기 위한 최저한의 노동시간이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가사노동자의 동의가 있거나 경영상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주 15시간 밑으로 근로시간을 정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사노동자법의 취지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조세 감면과 사회보험료 지원이라는 당근을 통해 건강한 제공기관을 육성하고, 그러한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맺는 가사노동자들이 늘어난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선의의 제공기관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노동법을 적용해야 할 가사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으니까요. 현실을 고려한 차선책이 가사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기만을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