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3] 건강한 급식조리 노동을 상상한다 / 유청희

by 철폐연대 posted Mar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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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건강한 급식조리 노동을 상상한다

 

 

유청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단체급식실에서 조리 노동을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초·중·고 학교, 공공기관, 병원 등에서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40~50대 여성들이 대다수인 사업장이 많다. 단체급식실 노동은 높은 노동강도와 그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급식실 노동자들에게서 폐암이 발생해 시급한 대책 마련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초·중·고 학교급식실의 위험노동 증언대회가 있었고 여러 단체급식실 노동강도 관련 연구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단체급식실 노동강도 개선이 이루어지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우리는 언제쯤 단체급식 노동자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개선 속도가 느린 단체급식실은 서울대학교에도 있었다. 급식조리 노동자들이 한 학기를 버티기 위해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아가며 일한다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호소했다. 건강하게 일하는 급식실을 만들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 작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실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건강 영향 실태를 조사했다.1)

 

건강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

 

우리는 누구나 일을 하면서 충분한 급여를 받고 여가 시간을 부여받기를 기대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아픈데도 쉬지 않고 병원에 다니면서 출근을 하고 있다.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실 노동자들은 아픈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서울대 생협 급식실 역시 76.2%가 여성으로, 평균 연령 50세인 현장이었다. 노동자들은 업무시간 내내 계속 서서 일을 하는데 이 자세는 급식실 노동의 기본 조건이지만 이미 피로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또 반복 동작을 근무시간 거의 내내 한다고 76.6%가 답해, 얼마나 여러 번 식재료를 써는지, 같은 부위를 반복해 쓰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에서 정한 근골격계 질환의 질병기준에 근거해 신체 여러 부위의 통증 정도를 확인했다. 노동자들은 어깨 부위 통증을 가장 많이 호소했는데, 69.1%는 어깨 부위에서 증상호소자로 드러났고, 64.2%가 관리대상자로 나타났다. 허리에 근골격계 증상호소자는 64.2%, 관리대상자는 63%, 팔/팔꿈치 증상호소자는 63%, 관리대상자는 61.7%로 나타났다. 쪼그려 앉아서 청소를 하고 17kg에 달하는 밥솥을 카트에 옮기는 일, 허리를 숙여 반찬을 볶고 섞는 일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질환이다.

 

노동자들은 눈을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식재료 썰기, 밥 짓기, 볶기, 튀기기, 조리도구 씻기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로, 노동자들은 이 모든 일을 쉴 틈 없이 하고 있었다. 튀김 요리를 마치기가 무섭게 조리도구 설거지에 돌입한다.

 

이렇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건강에 대해 물었다. 업무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14.6%뿐이었고, 79.3%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업무가 건강을 해치거나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그렇다는 응답이 86.7%로 높게 나왔다. 특히 연구를 시작할 때 노동조합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물리치료를 받고 통증 주사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일을 해도 되는 것일까? 노동자들에게 통증은 너무 익숙해서 자신과 한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5. 본문사진.jpg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급식실.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쉴 틈을 만드는 상상

 

급식실 현장은 ‘쉴 틈 없는 노동’이라는 표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식당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조리하거나 두 끼, 혹은 세 끼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조리하는 식당은 새벽 6시부터 출근을 했다. 출근 이후부터 한시도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오전에 식사를 하는데, 10분에서 15분, 아니 5분 동안 후다닥 해치운다.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12시에 이들의 노동강도는 최고치로 올라간다. 단순해 보이지만 반찬을 담는 위치와 내놓는 곳의 높이가 달라 반복해서 팔을 들어야 해 어깨에 부담을 주는 배식 업무는 노동자들이 꼽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배식을 시작한 다음에는 곧바로 부 노동자들이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 기계가 돌아가는 곳은 뜨거운 물과 열기 속에서 사람이 익는 느낌이 날 만큼 고온 다습한 환경이 된다. 출근한 이후 식사시간 10분 또는 15분을 제외하면 업무가 끝날 때까지 휴식시간은 고사하고 옆이나 뒤를 돌아볼 틈도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요구해 받아낸 휴식시간은 업무가 끝난 이후다.

 

정해진 식사시간에 맞춰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단체급식실에서 어떻게 하면 잠깐 잠깐 숨 쉴 틈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스트레칭 한 번 할 시간이라도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인력 충원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노동자가 더 많아져야 넘어지지 않고 무리해서 어깨와 허리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혹사하지 않는 노동을 상상한다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 노동자들을 만나본 결과 대부분이 아픈 상태로 일을 하고 있었고 병원 치료를 받으며 노동과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 정맥류를 앓고 있다는 면접 참여자, 10년째 상체 전반에 통증을 느낀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병원에 다녀야만 유지되는 상태인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는 삶이 기본이어야 한다. 지금보다 노동자 수가 더 많아진다면, 중량물 무게를 더 가벼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미끄러운 바닥에 미끄럼 방지 시설을 갖춘다면 노동자들은 덜 무리하며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덜 다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단체급식 노동자들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 사회의 기술이라는 것은 공평하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작년에 미국 어느 회사에서 개발한 춤추는 로봇을 보며 즐거워하지 않았던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이미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단체급식실의 설비는 왜 이토록 노후한 것일까? 왜 노동자들이 고되게 노동할 수준만큼만 설비 개발이 이루어진 것일까? 개발이 되었음에도 단체급식실에 들여오지 않은 것일까? 사실 미끄러운 바닥 문제는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예산만 들인다면 지금도 바꿀 수 있다. 그것만 바꿔도 넘어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급식실 환경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많은 싸움이 있었기에 조금씩 자동화 기계가 들어오고 환기 시설이 갖춰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단체급식실에서 근골격계질환으로 앓다가 산재신청을 했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업종에 조리 노동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노동자 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더 늘려야 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 급식실을 지하가 아닌 지상에 지어야 하고, 환기 시설을 완비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장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직접 위험성평가에 참여해 유해·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해 작업 방식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노동자들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오랫동안 외쳐왔다. 이제 이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단체급식실 노동환경의 새 판을 짜야 한다. 근거는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1)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및 건강 영향 실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관악구노동복지센터, 2021. http://kilsh.or.kr/?p=2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