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4] 프리랜서의 의미와 노동 특성 / 장귀연

by 철폐연대 posted Apr 05,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정책 포커스

 

 

프리랜서의 의미와 노동 특성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

 

 

 

프리랜서의 성격 정의

 

프리랜서라는 말을 일상에서는 흔히 쓰지만, 실제로 통계적으로나 법률적으로 프리랜서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학술적으로도 합의된 프리랜서의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특수고용, 미국에서는 독립계약자, 독일에서는 자유직업자, 프랑스의 독립노동자 등이 그나마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프리랜서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통상적으로 쓰이는 어법을 참고하여 프리랜서라는 용어를 규정하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란 일(노동)을 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통계상의 분류를 보면, 한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는 종사상 지위를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비임금근로자)로만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는 형식적으로 고용관계를 맺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통계상 자영업자에 속하게 된다. 자영업자의 종사상 지위는 다시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자영업자’(예전 분류로는 고용주)와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자영업자’, 그리고 ‘무급가족종사자’로 나뉜다. 프리랜서는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므로 무급가족종사자는 아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다(특히 팀 작업에서). 하지만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는 일단 일종의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할 수 있다. 혼자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프리랜서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도 그러하고, 여기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도 다른 사람(사업주)과의 계약에 의해 사용(使用)되는 노동자로서의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일단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경우를 프리랜서로 보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렇게 보면 프리랜서는 통계상의 종사상 지위 분류에서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자영업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영업자는 모두 프리랜서인가? 사실 위에서 부지불식간에 프리랜서에 대해 어느 정도 정의해 버렸다. 다른 사람(사업주)과의 계약에 따라서 사용(使用)되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고용된 임금노동자는 고용주나 고용주의 이익을 대리하는 관리자에 의해 사용된다. 말 그대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자인 것이다. 프리랜서는 고용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고용주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전통적인 계급론에서 노동자가 자영업자와 구분되는 지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이익을 낼 생산수단(자산)이 없어서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노동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의 결과물(로 인한 이익)이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며 생계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에 의존한다. 둘째, 노동과정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사용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노동하는 시간이나 일정, 일하는 방법 등이 노동자 마음대로가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 결정된다.

 

프리랜서가 통계적으로나 법적으로 자영업자로 간주된다는 것은 이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임금노동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선들은 정확히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흐릿한 스펙트럼이다. 프리랜서 학원 강사는 보수와 스케줄을 협상할 수는 있겠지만(사실은 고용된 노동자도 이를 협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을 함으로써 학원이라는 사업체의 이윤에 기여하면서 자기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수업시간 중 어느 정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강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스케줄뿐 아니라 수업 내용과 방식도 일정한 한계 내에서 제한된다.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IT 프로그램 개발자는 노동시간을 어느 정도 알아서 결정하고 작업 과정에서 일일이 지시를 받지는 않겠지만, 마감 기일이 있고 주문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을 하면서 주문자가 원하는 것들을 다 담아야 한다. 저작권이 있는 창작자들은 노동의 결과물에서 나오는 이윤을 가질 수 있으니 노동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 이 창작물을 출판해주는 회사가 없으면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주에 의존적이다.

 

말하자면 프리랜서는 ① 이윤을 낼 수 있는 자산도 없고 다른 사람의 노동을 사용함도 없이 자기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임금노동자와 동일하되,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자와 달리 고용관계를 맺지 않아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③ 스스로 사업을 하기보다 다른 사업주가 주는 일감에 의존하고, ④ 그렇기 때문에 자기 노동의 결과물(에서 나오는 수익)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점과 ⑤ 노동과정에서 고용된 노동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일감을 주문한 다른 사업주의 요구에 따라 통제받는다는 점에서 자영업자와도 다르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자영업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작은 소매점, 서비스점, 음식점 운영자들은 자영노동자이기는 할지언정 프리랜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업주가 주는 일감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정의한바 프리랜서는 고용된 임금노동자와 자영노동자를 구분하는 불분명한 경계의 구역에서 스펙트럼으로 위치하는 노동자들이다.

 

1.jpg

 

 

프리랜서와 특수고용/플랫폼노동

 

프리랜서는 또 종종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와 혼용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개념들의 차이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이라는 말은, 기업들이 비정규직화를 진행하면서 예전에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던 것을 더이상 고용을 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개인 도급 형식으로 일하도록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특수고용’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특수고용이란 말은 형식적으로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고용된 것과 다름없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동계에서 만들어낸 용어가 대중화된 것이다. 결국 특수고용 문제가 사회화되면서 법률에도 이 용어가 반영되었다. 산재보험법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가 그것이다. ‘고용’이라는 단어를 피하였으나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특수형태근로’라는 용어는 이미 사회적으로 쓰이고 있던 ‘특수고용’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특수고용은 처음 이 용어가 만들어질 때,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일하지만 형식상으로만 고용계약이 아닌 개인사업자로서 도급계약을 맺은 경우, 즉 ‘위장된 자영업자’를 가리켰다. 그러므로 특수고용의 전통적인 의미는 고용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한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프리랜서는 통념상 한 곳에 전속되어 일하기보다 ‘자유롭게’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또 때로는 여러 의뢰를 동시에 받으며 일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른바 프리랜서 중에서도 한 기업에 소속되어서 고용된 노동자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무늬만 프리랜서’일 뿐 실제로 기업에 종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인 것이다.

 

다른 한편, 플랫폼노동이란 주로 노동중개 플랫폼을 통해서 일감을 구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실 플랫폼을 통해 소득을 얻는 것은 반드시 노동중개 플랫폼의 이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상품중개 플랫폼에서는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상품 주문을 받아 판매를 한다. 개인도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을 통해 물품을 팔아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에어비앤비처럼 숙소나 다른 자산을 대여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상품이나 자산이 중개되는 플랫폼으로 소득을 얻는 경우는 플랫폼노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플랫폼에 일감이 주어지고 그에 따라 노동을 해서 소득을 얻게 되는 것이 플랫폼노동이다. 앱으로 호출받아 운송을 하는 경우, 가사노동이나 방문수리 등의 사이트나 앱에 등록해 놓고 일감을 배정받는 경우, 이른바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의뢰인과 연결되어 일하는 경우 등이 플랫폼노동에 해당한다.1)

 

2.jpg

 

앞에서 말했듯이 특수고용은 기업들이 비정규직화의 일환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만들어 일을 시킴으로써 비용과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특수고용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이러한 기업들의 꼼수와 그에 기인한 노동 불안정화가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만큼 특수고용 문제에 대해서 노동계나 시민사회, 정부 등에서 논의들이 이루어져 왔다. 많은 한계가 있으나 산재보험법에 특례로 특수고용을 포함시킨 것도 이러한 논의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플랫폼노동이나 프리랜서라는 말이 전면에 나서면서 특수고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인다.2) 실제로 특수고용의 특징이었던 전속성이 옅어지는 경향도 존재하기는 한다. 2000년대부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용)근로자성을 다투는 소송이 종종 제기되면서 기업들이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피하기 위해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통제나 지시를 줄이고 다른 사업체와도 동시에 일할 수 있게 하거나 계약 내용 또는 기간을 한정해 전속적인 요소를 가능한 한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접적인 통제와 전속적 요소를 가진 특수고용 성격의 프리랜서들도 적지 않다.)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보면, ‘프리랜서’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특수고용 문제가 사회화되어 산재보험법의 특례처럼 제도 내로 들어와 사업주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방지하려는 자본과 정부의 의도도 반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수고용’이라는 단어가 사용자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단어라면, 반대로 프리랜서라는 말에는 고용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특수고용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진전되어 온 상태에서 플랫폼노동이나 프리랜서 담론이 확산되면서 특수고용 논의를 후퇴시키는 경향이 보이고 있다. 즉 특수고용을 플랫폼노동이나 프리랜서의 범주에 편입시키고 이들을 한꺼번에 묶어 얘기하는 방식을 통해 특수고용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특수고용, 즉 하나의 사업주 또는 주된 사업주에게 소속되어 있는 경우는 분명히 은폐된 고용관계로 봐야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고용관계를 명백하게 인정하고 무조건 임금노동자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즉 프리랜서에 대한 논의 속에서 이러한 은폐된 고용관계를 얼버무리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리랜서의 유형과 노동권의 보장

 

앞에서 말했듯이,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를 구분 짓는 기준은 노동의 결과물에 대해 소유할 수 있는가와 노동과정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프리랜서는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에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보통 프리랜서로 간주되는 일부 직종들의 예를 이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해서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3.jpg

 

 

노동의 자율성은 근무지와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작업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고용된 임금노동자보다는 자유로운 경우가 많지만,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다. 근무지, 근무시간, 작업내용에 대해 (의뢰를 한 사업주와의 협의에 의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정도를 따져서 노동의 자율성이라고 보면, 이분법적이라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대개 개인 작업자는 팀 작업자보다 노동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결과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 작업결과의 수익 배분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권리를 갖는가의 문제이다. 역시 이것도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림에서 보듯이 같은 직종의 프리랜서라도 편차가 매우 심하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 PD나 아나운서 중에서는 누구나 이름을 다 아는 스타 PD, 스타 아나운서가 있다. 방송국과 고용관계에 있다가 인기를 얻게 되어 한 회사 소속으로 일하는 것보다 여러 회사와 계약을 하면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프리랜서로 전향한 경우이다. 그 반대편에는 고 이재학 PD 사건에서 보듯이 한 방송사에서 상시적으로 출퇴근하면서 계속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프리랜서인 경우가 존재한다. 소설,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창작가들은 노동 자율성이 높고 저작권도 인정받는 계약이 많지만, 학습서 등 출판사가 기획을 주도하는 경우에는 창작 과정과 작품에 일일이 지시를 받고 저작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존재한다. IT 개발자를 보면 프리랜서 개인이나 팀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프리랜서 개인이나 팀이 프로그램 개발 자체를 수주받아 자택이나 개인 사무실 등에서 일하면서 마감일과 기능에 대한 이런저런 요구 외에는 직접적인 통제는 받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 회사로 출퇴근하며 고용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특수고용형 IT 노동자들도 있다.

 

여기서 적어도 4/4분면(왼쪽 아래)은 ‘위장된 프리랜서’로 고용관계를 인정받아야 한다. 즉 사업주가 직접 고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하여 사용하는 직원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프리랜서로 위장하는 것은 노동시간, 사회보험 등 사용자가 지켜야 할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꼼수를 막기 위해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특수고용에 해당하는 4/4분면은 캘리포니아의 A5법처럼 계약의 형식과 상관없이 무조건 고용된 노동자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프로젝트형 업무인 경우에도 갱신권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적어도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해서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할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나머지 1/4, 2/4, 3/4 분면에 대해서도 이들의 노동을 사용하는 사업주가 일정 정도 책임을 지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계속 말한 것처럼 프리랜서는 노동의 결과에 대한 소유권이나 노동과정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한 자영업자와는 달리 다른 사업주에게 어느 정도 종속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동3권의 보장3), 사회보험의 분담4) 등은 보편적이고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직종별 표준계약서의 보급 등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방지할 필요도 있다. 특히 결과에 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1/4, 2/4 분면에서는 이른바 ‘대박’의 가능성을 미끼로 ‘열정페이’가 만연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박의 가능성과는 별개로 모든 노동자는 노동시간 및 보수, 안전 문제 등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현재 일부 직종들에서 제출되어 있는 표준계약서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여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일단 기준을 만들어 놓으면 심각하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야기하는 악성 계약을 판별하는 것이 더 수월할 수 있다.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미달하는 악성 계약에 대해서는 고용된 노동자의 노동청 진정처럼 간편하게 구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표준계약서의 강제력은 무엇보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교섭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다.

 

 

2. 본문사진.jpg

 

2021.04.27. 철폐연대 프리랜서노동권모임에서 진행한 ‘프리랜서 노동 뜯어보기’ 토론회 모습.

[출처: 철폐연대]

 

 

프리랜서 노동구조의 문제

 

(사실상 특정 사업체에 소속된 특수고용형 프리랜서를 제외하고) 일감을 계속 찾아야 하는 프리랜서들이 일을 구하는 경로는 주로 인맥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번역, 디자인, 편집, 강사 등 여러 프리랜서 직종에서 에이전시나 더 나아가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경향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이전시는 프리랜서들을 등록해 놓고 사업주들이 의뢰하는 일감을 소속 프리랜서들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에이전시 역시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감을 중개하고 배분하면서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이다. 인맥 중심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일감이 배분되는 것은 그 직종의 노동시장이 넓어지거나 체계화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결국 중간착취의 문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실 노동자를 직접 사용하는 사업주로부터 온전히 받아야 할 대가를 받지 못하고 중간업체에 일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임금노동자로 치면 파견 등 간접고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프리랜서를 사용하는 사업주뿐 아니라 에이전시와의 계약 조항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일감을 구해야 하는 약자인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하여 에이전시가 부당하게 높은 수수료나 수익 배분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는 프리랜서 일감을 중개하는 디지털 플랫폼도 늘어나고 있다. 에이전시는 그래도 등록된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숙련도 및 특성을 파악하고 관리하면서 의뢰받은 일감을 배분하는 반면, 디지털 플랫폼은 노동자나 의뢰자를 직접 관리하지는 않으므로 프리랜서 노동자를 사용하려는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좀 더 리스크가 크지만 플랫폼에서 공개적으로 노동자들이 일감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와중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할 유인을 갖는다.

 

디지털 플랫폼은 인맥이 없거나 에이전시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프리랜서도 일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장점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프리랜서들이 플랫폼을 통해서 일감을 구하는 방식이 확산되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예전에는 고용관계에 있던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해체시키고 불안정한 프리랜서들을 양산해 낼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전통적으로 프리랜서가 많았던 직종 또는 플랫폼의 등장 이전부터 비정규직화나 외주화의 일환으로 프리랜서가 증가한 직종에서도 플랫폼으로 일감을 구하게 되면 경쟁이 가시화되어 보수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 디지털 플랫폼은 완전히 공개적이고 가시적으로 노동자들끼리 경쟁을 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고용된 임금노동자에게는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을 통해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법정 최저임금이 존재하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그러한 최소한의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리랜서의 노동구조에서 에이전시 및 플랫폼의 역할과 책임성에 대한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협동조합이나 공공 플랫폼이 대안으로 많이 얘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수수료를 낮출 수는 있을지언정 프리랜서 노동구조에서 에이전시와 플랫폼의 역할과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중간착취는 여전히 존재하며 공개된 플랫폼의 가시적인 경쟁 구조 또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리랜서 노동의 ‘결과’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업주와 더불어, 프리랜서 노동을 중개하고 관리하면서 이익을 얻는 사업주인 에이전시나 플랫폼에도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분담시켜 노동조건 기준과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책임을 지게 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1) 약간 애매한 것은 만화, 소설, 영상 등 창작물을 유통하는 플랫폼에 작품을 올려서 소득을 얻는 창작자들을 플랫폼노동자로 간주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창작자들은 예전부터 주로 프리랜서로 일해 온 전통이 있고, 다른 플랫폼노동과는 달리 이 분야에서의 플랫폼은 노동이 조직되는 형식(고용형태)을 바꾸기보다는 유통 채널이 달라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출판사나 제작사에 의해 창작물을 출간해야 했던 예전 시대보다 플랫폼을 통해 대중의 평가를 직접 받게 됨으로써 진입 장벽을 낮추고 ‘민주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쨌든 여기서는 플랫폼노동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플랫폼노동의 정의와 상관없이 이들이 프리랜서인 것은 사실이다.

 

2) 최근 정부 정책연구원인 한국노동원구원에서 “미래의 직업 프리랜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 시리즈를 내고 있고, 서울이나 경기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에서 프리랜서 관련 조례를 잇달아 제정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프리랜서 노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와중에 실제로는 고용관계이지만 프리랜서로 위장된 특수고용의 문제가 묻혀 버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노동연구원 프리랜서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프리랜서 IT 개발자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분명히 무늬만 프리랜서일 뿐 회사에 출퇴근해서 상시적으로 일하는 IT 개발자의 얘기가 나오지만, 이들을 직접 고용관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3) 프리랜서를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지만, 최근 노조법에서는 노조 결성을 인정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노조 설립 필증을 받는다 하더라도 임금노동자 노조의 경우와 달리 사업주가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프리랜서 노동의 특성상 한 사업주가 교섭 대상이 되기 어렵고 적어도 특정 산업의 사업자단체가 교섭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산별교섭이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업자단체와 교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동3권에는 결성의 권리뿐 아니라 단체교섭의 권리와 단체행동의 권리 또한 포함된다. 단지 노조 설립 허가를 하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교섭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 산재보험법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처럼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몇몇 직종들을 ‘특별히’ 포함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직종별로 특례를 제정하는 접근법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다른 사업주를 위해 노동하는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하여 사업주 책임을 규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요즘 전국민 사회보험을 위한 학계 논의에서는 ‘사용자 찾기’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미 고용관계가 매우 복잡해져서 사용자를 찾아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쉽지 않으니 아예 모든 개인에게는 소득에 따라 사회보험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모든 기업에는 매출액이나 이익 등에 따라 납부하도록 하여 그것을 재원으로 사회보험을 충당하자는 것이다. 현재 임금노동자의 사회보험 납부 방법과 자영업자 사회보험 납부 방법 및 부담이 매우 격차가 큰 상황에서, 소득에 따른 납부로 일원화하는 것은 이러한 격차를 없애기 위해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이 사용자 찾기를 그만하자는 접근법을 전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용관계가 복잡해져서 사용자 찾기가 어려워진 것은 노동자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다양한 꼼수를 써왔기 때문이다. 이를 규제하여 투명한 관계로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지 고용 및 사용관계가 복잡하니 사용자 찾기를 하지 말자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