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6] 노동운동과 언론운동의 진정한 콜라보가 필요한 때 / 권순택

by 철폐연대 posted Jun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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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 일기

 

 

노동운동과 언론운동의 진정한 콜라보가 필요한 때

-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하여

 

 

권순택 •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언론운동의 역사는 사실 ‘검열로부터의 저항’, ‘표현의 자유 보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도구화하려 했고, 그것은 1972년 언론통폐합과 긴급조치로 이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보도지침’을 통해 각 언론사에 정부가 원하는 기사를 쓰도록 강요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이에 저항한 언론인들의 구속과 연행이 이어졌다.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장악 기도로 인해 공영언론사들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언론인들은 또다시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MBC 구성원들이 이례적으로 170일을 넘도록 파업한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한 적이 없다.” 그리고 끝내 언론 노동자들에게 ‘공정성’이라는 건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법원 판결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언론운동에서 굉장한 의미가 담긴 판결이었다. 언론운동의 역사는 이랬다. 멋졌다. 그런 평가들이 현재도 변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각시탈> 보조출연자 박희석 씨의 사망

 

처음 그런 느낌을 받은 사건이 있다. 2012년 4월,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KBS 드라마 <각시탈>의 출연자들을 태운 버스가 전복되면서 보조출연자 박희석 씨가 사망했다. 당시 KBS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러나 같이 일하던 한 기자를 통해 유족들이 KBS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보도자료를 통해 한 ‘사과’, 그러나 유족들은 직접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를 기억한다. 유족들이 KBS에 요구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막’과 ‘보조출연자 대기실’이 그것이다. 당시 유족들은 ‘KBS가 돈 때문에 시위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갔다’고 분통을 터뜨렸었다. 유족들의 끈질긴 싸움 끝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각시탈> 마지막 회에서는 박희석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막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2월, KBS 별관에는 ‘출연자 대기실’이 마련됐다. 그동안 봐 왔던 ‘언론운동’과는 결이 다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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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KBS 드라마 <각시탈> 최종화에서

고 박희석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화면이 포함됐다. [출처: 권순택]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현재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 문제는 ‘언론·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이 됐다. 물론, 거저 얻어진 건 아니다. 박희석 씨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6년 12월, tvN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는 과도한 업무량과 부당 지시 등 괴롭힘으로 인해 고통받다 사망했다. 살인적인 드라마 제작 현장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스태프들의 고강도·장시간 노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2017년 7월에는 EBS <다큐프라임> ‘야수와 방주’ 편을 찍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난 박환성-김광일 독립PD가 사망했다. 빠듯한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스스로 운전대를 잡았다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자연 다큐멘터리의 독보적 존재로 불리던 독립PD 2명을 우리는 떠나보내야 했다. 2020년 2월에는 CJB청주방송 프리랜서 이재학 PD가 사측을 상대로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싸우다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사실이 깊게 각인됐던 사건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기간,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희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24시간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 수많은 사고가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멍들어가고 있었다.

 

언론운동, 노동운동과의 만남… 방송계갑질119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바꿔내고자 하는 운동이 진행됐다. 방송계갑질119가 그것이다. 직장에서 겪은 부당대우와 갑질을 상담해 주고 고발하는 ‘직장갑질119’의 출범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노동자들이 모이는 공간이 마련됐다. 방송계 노동자들도 그중 하나였고, 방송계갑질119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방송계갑질119를 통해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를 비롯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이전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내 다양한 그룹 중에 ‘언론위원회’와의 접점이 가장 컸다. 그러나 방송계갑질119를 통해 ‘노동위원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후,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방송법상 ‘시청자의 권익보호’, ‘방송의 공적책임’,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중심으로 운동을 해 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운동하며 근로기준법도 함께 찾아보며 활동을 전개하게 됐다.

 

방송계갑질119를 통해 본 방송계의 문제는 심각했다. 이른바 ‘상품권페이’ 사건이 터졌다. SBS <동상이몽>에서 스태프들에게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불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은 방송계 관행처럼 퍼져 있었다. 이를 고발한 방송 노동자들조차도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인지 몰랐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같은 상품권페이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그 같은 관행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SBS <뉴스토리> 작가들이 부당하게 해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또한 관행에 가까웠다. ‘편성’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은 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방송계갑질119를 통해 방송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렇듯, 그동안 쉽게 꺼내 놓지 못했던 것들이 오픈채팅방을 통해 분출됐다. 그리고 그는 방송스태프노동조합 설립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MBC <뉴스투데이>에서 해고된 방송작가들이 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후, KBS전주총국을 비롯한 방송작가들의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KBS와 MBC·SBS에서 일하는 시사교양 프리랜서 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 결과, 152명으로부터 노동자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방송작가 당사자들이 싸운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꾸준히 YTN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KBS 강릉춘천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스태프들의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싸움도 진행되고 있다. 2021년 9월,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KBS에서 방영 예정이던 드라마 <국가대표 와이프>, <꽃피면 달 생각하고>, <신사와 아가씨>, <연모>, <태종 이방원>, <학교2021>에서 벌어지고 있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고발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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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KBS 방영 예정 드라마 고발 기자회견. [출처: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

 

 

미디어노동, 노동운동과 언론운동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국회 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불편하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동안 언론운동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에만 주목하는 사이,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려 왔다. 방송 프로그램의 공익성 등 퀄리티에만 관심을 두는 사이, 그 콘텐츠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존재한다. ‘비정규직 노동’ 또한 중요한 이슈일 수 있다. 언론운동 진영에서도 이전보다는 중요성을 조금씩 인식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미디어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언론운동 그리고 노동운동, 양 진영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는 언론운동 진영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KBS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방송작가들에게 벌이고 있는 일을 보자. 업무를 전환해 ‘작가직’을 유지할 수 없도록 했다. 방송작가로 계속 일하고 싶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 프리랜서임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2년 이내 계약 종료되는 것이 그것이다. KBS는 편법을 택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불법이 아니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동안 KBS의 공적 책무를 요구하며 싸워 왔던 언론운동 진영에서 목소리를 함께 내준다면, 어쩌면 보다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텐데…. 요즘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