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6] 작업중지권 / 권미정

by 철폐연대 posted Jun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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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작업중지권

- 산재예방을 위해, 노동자의 판단을 인정하는 온전한 작업중지권

- 살기 위해, 작업중지권을 쓰려면 징계와 해고를 감수해야 하는 모순

 

 

권미정 •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산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느껴지면 노동자는 작업 중지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고, 덧붙여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상급자의 조치가 있어야 했다.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나면 상급자는 그 상황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거꾸로 상급자가 인정 안 하면 대피를 한 것이 문제가 된다. 지난 2016년 콘티넨탈 사업장 인근 공장에서 가스가 누출된 사고가 있었고 소방서와 경찰서의 안내로 인근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피한 상태였다. 작업하던 콘티넨탈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를 맡았고 노동청에서는 회사를 찾아와 노동자들의 대피를 권고했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 누가 쓰러지지도 않았다며 대피 필요성을 거부했다. 현장에서는 회사의 판단과 달리 위험하다고 느껴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안내에 따라 대피했고 신체 이상까지 와서 병원 진료도 받았다. 이후 사측은 결과적으로 누구도 산재를 당하지 않았다며, 회사가 허락도 안 했는데 대피했다며 노조 지회장을 ‘사업장 무단이탈’로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징계했다.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작업중지는 권리! 의무!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었을 당시는 사업주는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들을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사업주의 의무로서 작업중지가 명시되었다. 이후 산안법이 몇 차례 개정되면서 사업주의 의무와 필요한 조치가 조금 더 보완되고 노동부 장관의 역할이 포함되었다. 노동자들의 작업중지 권리는 1995년 개정 산안법에 처음으로 포함되었고, 김용균투쟁 이후 2019년 1월 15일 산안법이 전부개정되면서 작업중지를 해야 하는 주체별(사업주, 노동자, 고용노동부장관)로 내용이 보완되었다.

 

<노동자에 의한 작업중지>

산안법 제52조 - 노동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또 산재가 발생한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노동자에게 사업주는 해고나 불이익한 처우를 할 수 없다.

 

<사업주에 의한 작업중지>

산안법 제51조(중대재해 발생 전), 산안법 제54조(중대재해 발생 후) - 사업주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장관에 의한 작업중지>

산안법 제55조 -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이거나 그 작업과 동일하여 그 사업장에 산재가 또 발생한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 또 재해가 발생한 장소 주변으로 산재가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재해 사업장의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

 

2020년 1월 16일부터 개정 산안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한 다음에 다시 작업할 권리가 작업중지권이라며 사용을 권했다. 작업중지권을 쓰는 주체가 누구이든 목적은 하나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작업중지는 산재가 발생하기 전에 막으려고 하거나, 산재가 발생한 후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노동자는 산재가 발생하기 전에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사업주는 산재 발생 전과 이후에 작업을 중지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정부는 산재 발생 이후 재발과 확대를 막을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이 제힘을 발휘하기엔 아직 걸림돌이 많다.

 

급박한 위험과 합리적 이유에 대한 결정권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고, 사업주는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 대해 회사는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법 조항으로만 보면 2016년 콘티넨탈 사업장에서 위험하다고 느끼고,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에 조치를 취한 노동자에게 징계한 것은 과거의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미끄러져서 다칠 가능성 때문에 라인을 긴급 정지시킨 노동자에게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노동자는 급박한 위험이라고 느꼈다. 안전조치를 취하고 난 후 작업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작업을 중지하면 사업주는 산재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작업을 중지했다며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산재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은 “안돼! 못해! 그만!”을 외칠 수 있어야 하고, 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 결정권이 기업에 있다. 징계와 손배청구로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기업에 대한 제재는 없다.

 

급박하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노동자들의 기준이 사업주의 기준과 같아야만 불이익 처우를 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소요비용이자 지출요소로만 인식하는 기업에서는 두 주체의 기준이 같을 수 없다.

 

2021년 6월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학동 건물철거현장 붕괴사고로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고 나서 내놓은 사고재발방지 대책 중 하나가 작업중지권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급박한 위험이 아니라도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위험신고센터를 개설하고 안전모에 부착된 QR코드로 위험신고센터에 접속하여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게 한다 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2022년 1월 현대산업개발 화정동 아파트가 붕괴했다.

 

건설노조 한 간부는 현장마다 실제로 작업중지권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변화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현장이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 권한, 산재를 막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대피할 권한이 노동자들에게 자유롭게 주어지지 않으면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사업주의 권한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한 현실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조치와 작업중지권

 

산재가 발생한 이후에는 노동자들에게 작업중지권이 주어지지 않는 지경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중지를 명하고 나면 사업주는 개선 조치를 해야 한다. 개선 조치 이후 작업을 재개하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작업중지 해제’ 과정이다.

 

산재가 발생한 이유를 확인하고 재해 원인을 없애거나 개선 조치를 해야 다시 산재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조차 잘되지 않는다. 김용균 노동자의 주검을 발견한 후에도 회사 측이 사고 현장의 옆 라인 작업을 요구했던 일은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져도 어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김용균 죽음에 대한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사업주들은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작업중지를 해제한다는 것은 재해가 발생한 작업현장이 안전해졌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산재를 발생시킨 유해위험요인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판단과 동의는 필요 없고, 의견만 들으면 된다. 그리고 노동부에 해제 신청을 하면 토요일과 공휴일도 포함한 4일 이내에 노동부는 심의 결과를 알려 준다. 허술한 작업중지 해제 과정은 산재 재발을 막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초청강연자였던 타칼라(전 EU 산업안전보건청장) 씨는 유럽의 작업중지 해제와 관련하여 유럽에서는 원칙적으로 산재사고 조사 후 사고 원인이 해결돼 산업안전보건 노동자 대표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작업중지 해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작업중지 기간은 또 다른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사하고 재해요인을 개선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기간이지만, 기업주들에게 그 기간은 수익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기간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5. 본문사진.jpg

 

2022.04.28.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작업중지권 보장하라”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작업중지권을 사용한다는 것

 

2014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가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 카드를 내주고, 안전총괄책임자의 급을 올리는 등 강력한 안전제일 실천에 나섰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사고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회사는 표준작업을 유도하지만 아직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가 많다며, 산재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산재 발생 이유를 여전히 노동자들이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기업주가 변화하지 않으면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넘어지는 사고를 만들어 내는 노동환경은 변할 수가 없다.

 

작업중지 시기와 범위를 끊임없이 줄이려는 자본은 여전히 목숨과 비용을 저울질하고 있다. 작업중지권을 지금 사용하면 당장의 재해는 막을 수 있지만,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조건인 비정규직에게 작업중지권은 더욱 먼 권리일 수밖에 없다. 모든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본에 맞선 싸움일 수밖에 없다. 현장통제권을 누가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힘의 문제이고 법은 그 힘에 의해 다시 변화될 것이다.

 

당장은 작업을 중지할 상황이라는 판단의 결정권을 노동자들이 가져야 하고 비정규직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불이익을 주었을 때 회사의 책임을 도리어 물어야 한다. 그럴 때 작업중지권은 산재 예방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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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산재공화국] 한국 노동자 10만명당 3.35명 산재사망, 영국의 4.5배, 매일노동뉴스, 2022.4.29.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