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6] 코로나19,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 / 랄라

by 철폐연대 posted Jun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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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코로나19,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

 

 

랄라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가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웃고 있을까. 무표정일까. 얼굴 표정으로 상대의 기분을 알 수 있었던 감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누군가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스크에 가려져 얼굴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탓이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위기는 일상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네는 것,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기분을 파악하는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사라지니 중요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했던 일상이 더 이상 친밀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타인과 연결이 끊어진 채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 듯했다.

 

그 세계는 냉혹하고 잔인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에게 더 피해가 집중되었고, 그들을 지켜 줄 안전장치도 없었다. 확진 환자, 사망자, 격리자 사람의 목숨과 삶이 숫자로 집계되었다. 그 숫자의 높고 낮음에 따라 위기를 판가름했다. 2만 명이 넘게 사망했지만, 애도와 추모도 없었다. 적절한 때에 진료·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감염병의 피해는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연결과 연대보다는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쉽사리 번지는 사회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주했던 세상은 ‘우리는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돌아보게 했다.

 

최근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영화관이 붐비고, 해외여행이 시작되고, 외식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는 일상을 회복하게 되는 걸까. 우리가 경유해 온 잔혹하고 냉정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둔 채 괜찮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급급한 사회에 질문을 던져 본다. 잠시 돌아보고, 숨을 고르자고,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자고.

 

방역 VS 인권?

 

감염병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다. 생명과 안전의 보장은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며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이라는 긴급성에 떠밀려 정부의 강력한 통제 정책이 호응을 얻고 인권과 방역이 대립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초기, 과도하게 개인 정보가 수집, 동선이 공개되고 전자 밴드, 구상권 청구 등 방역 정책을 위반한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졌다. 방역을 위해 공공기관의 일부 시설이 멈춰 서고, 집합 금지, 다중 시설 이용 제한, 집회 시위 금지 등 강력한 조치들이 이어졌다. 집단 감염된 대상을 특정해 코로나19 전수조사 행정명령을 시행하는 등 차별적 인식을 토대로 방역 정책이 시행되었다. 강력한 통제 정책을 따라 차별과 혐오는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오면서 정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은 개인에게 방역의 책임을 돌리거나,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시민들은 감염보다 감염 확진에 뒤따를 사회적 비난과 피해에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1)

 

일방적이고 통제 중심으로 흘러간 방역 정책은 방역과 인권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인권은 방역과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가치이다. 긴급하게 행해진 조치들로 인해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소외·배제되는 시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에 기반에 정책을 수립될 때에만 재난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재난은 사회가 가지는 복잡성 증대로 인하여 발생 빈도나 사회적 피해를 주는 정도가 심각하고 성격 역시 복합적이다. 최근 재난 경향은 피해가 재난 상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에 따라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치는 등 재난의 개념 및 속성이 변하고 있다.2) 코로나19 이후에도 반복해서 재난이 찾아올 것이라 예상된다. 재난을 미리 대응하고, 준비하기 위해 인권을 중심에 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7. 본문사진.jpg

 

2021.10.22. 인권중심의 일상회복 촉구 인권단체 기자회견,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는 인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재난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영원한 허상을 버려라. 그리고 재난은 모든 걸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쓸어간다는 생각도 버려라. 전염병은 쫓겨나서 위험 속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을 집중 공격한다.” - 하인 머레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하인 머레이는 재난이 불평등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며, 우리는 재난의 무게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치료받은 국민 10명 중 1명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는 것,3) 코로나19로 사망한 장애인의 비율이 비장애인보다 6.5% 높다는 것,4) 코로나19 확산 시기 영유아나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이 제때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숨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5)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6)을 겪고 있다는 통계수치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이 겪었던 문제를 평가해 보고, 대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문제가 된 집단,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또한 드러난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과 해결방안 모색은 부재했다. 확산세를 억제하기 위해 응급조치 식 대응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긴급 대책만이 아니다. 어떤 재난이 오더라도 누구도 남겨 두지 않고, 평등하게 넘어설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다. 이러한 역량을 만들어 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사회에 되물어 봐야 하는 시점이다.

 

애도하고, 기억하고, 추모해야

 

2020년 2월 19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한국 사회 첫 부고를 접한 이후 2022년 5월 현재까지 2만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감염 외에도 의료 공백, 백신 부작용, 필수노동에 종사하다 과로한 노동으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와 사회적 조건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어 가고 있다. 이들의 수는 집계조차 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인간의 존엄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2년여 시간 동안 감염에 대한 공포와 위기는 사람이라는 소중함보다 전파 가능성과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앞서게 했다. 서로를 연결하기보다는 차단하며 각자도생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확진 환자, 사망자의 숫자에 따라 코로나19 위기 정도가 결정되었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사람은 사라지고, 몇 명 사망, 몇 명 확진의 숫자만 남게 되었다. 숫자에 가려져 현재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은 잊혀 갔다. 누군가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 어떠한 상실을 경험했는지, 어떠한 아픔이 남았는지 타인에 대한 아픔과 공감은 사라지게 되었다. 재난을 단지 개인이 겪었던 아픔으로 기억할 때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곁에 있는 누군가가 지금 시기를 어떻게 버텨 왔는지, 어떠한 아픔과 상실을 겪어 왔는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애도와 기억, 사회적 추모가 중요한 이유다.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인류는 ‘지금까지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말해 왔다. 하지만 지금, 성찰과 전환의 이야기는 경제성장, 발전, 속도 경쟁의 미로 속에 갇혀 버렸다.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는 것, 우리가 겪었던 아픔을 토대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 드러난 고통과 상처에 주목하는 일이다. 차별 없이 평등한 치료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혐오와 낙인의 조장을 방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재난에 취약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 등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나중이 아닌 지금, 불평등과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함께 미래를 상상하고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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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이후 병원 찾는 환자 ‘뚝’…국민 57% “확진시 비난 두려워”, 뉴시스, 2021.12.10. https://newsis.com/view/?id=NISX20211210_0001683549&cID=10401&pID=10400

2) 최준규, 재난 이후 공동체 정책을 통한 지역사회 복원에 관한 연구, 경기연구원, 2021, 5쪽.

3) 경제 취약계층일수록 코로나19 사망률 높아, 메디컬투데이, 2020.12.24. 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410186

4) 코로나19 사망자 10명 중 2명은 장애인…일반인比 사망률 6.5배 높아, 메디컬투데이, 2021.1.13. 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411773

5) 코로나 확진 영유아·장애인·노인 사망 잇따라···관리 못 받는 고위험군·취약층, 경향신문, 2022.2.24. https://m.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202241641001#c2b

6) 코로나 취약계층에 직격탄..비정규직·5인미만 절반, 소득 줄었다, 이데일리, 2021.6.27.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912246629085984&mediaCodeNo=257&OutLnkChk=Y

7) 코로나19와 인권, 인간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