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6] 살아 있는 자의 몫 / 함영주

by 철폐연대 posted Jun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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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 있는 자의 몫

 

 

함영주 •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영동지부 지부장

 

 

 

발전현장에 뿌린 내린 차별에서 노동조합을 지키는 것

 

기후 위기대응, 탄소 중립,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투쟁은 힘차게 진행되어야 하고, 또한 단위노조의 내실 강화를 위한 집중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가운데, 익히 전파된 이름 있는 투쟁 속에서 챙겨야 했을, 아니 챙기지 못한 ‘노노 차별’이 있습니다.

 

이전의 공공부문 노조 민주화 투쟁에서 치열하게 지켜 왔다면, 손안의 기회에서 놓쳐 버려 굳어지고 있는 ‘노노 차별’과 맞서며 조합원 중심의 눈높이에 적극 맞춰 나가야 합니다. 상대 노총에 비해 아직도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은 영원한 동지, 민주노조 건설에 앞장서고 현장을 지키고자 함께했던 동지, 발전 해고 동지, 종속적 사안의 흐름에서도 투쟁은 지속되어야 하는데 이젠 잊혀져 가는 현장의 분위기와 그 윤곽이 고체화되는 것을 체감할수록 씁쓸한 마음이 드네요.

 

이명박 정권 시절 현장에 정부와 사측의 개입으로 기업별 노조, 복수노조가 들어서고, 민주노조는 반토막이 났어요. 단일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인사 불이익의 표적이 되는 것은 물론 조합원을 사과, 배, 토마토로 분류한 리스트로 노동자를 못 박아 놓기도 하였지요.

 

굳이 세대를 나누고 싶지 않지만, 이전의 민영화 저지 투쟁에서 보여 줬던 단결 대오를 회상하게 만드는 지금의 투쟁은 전선으로 이끌기가 예전 같지 않아 조직력에 많은 현실적인 고민을 낳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낭떠러지 같은 극단적 생존에 직면해 오는 칼날에 나 역시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뒤돌아 점검해 보기도 합니다.

 

상임집행위원에서 지부장으로 직을 옮긴 활동에서 발전현장의 ‘노노 차별’이라는 벽을 넘지 않고서는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투쟁을 시도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하루하루 긴장감 있게 찾아오는 크고 작은 일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며, 지속된 조합원의 인사, 포상, 각종 불이익, 민주노조 탈퇴, 회복을 위한 조직확보 노력에 가입의 망설임과 두려움 가득한 눈빛을 마주하면서 필사적으로 창피함을 잊어야만 했어요.

 

단편적인 예로 사측이 주관하는 행사에 있어서 친회사적이지 않은 지부장의 인사말은 당연 허용하지 않고, 오직 대표노조 지부장에 대한 예우만 있을 뿐 말 한마디 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데, 대표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바라보는 인식 제고를 기대하는 건 과분한 생각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이익 과정을 함께 몸소 겪으며 올곧게 지켜와 준 조합원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불평등, 차별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주장해야만 했어요. 현장에 차별이 오랜 시간 쌓여 가면 차별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소수 노조 분위기는 절망에 사로잡히는 것 같아요.

 

먼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미친 존재감’을 보여 주기 위해 행사장에 찾아가고, 경영진과 약속된 일정이 없어도 불쑥 찾아가 면담을 주도해 나가며, 그들이 과거 우리에게 자행하던 행동이 습관이 되어 차별이라는 결과가 계속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식의 전환을 감행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또 마주하는 상대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쌓는 투쟁을 해야 그나마 추구하는 희망을 지켜갈 수 있어요. 진정성 있는 걸음이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동권역 산업재해예방 실천투쟁단’ 활동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 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십 몇 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동지들, 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 2003.10.04.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유서 중.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처음 활동할 때는 선배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제 스스로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선배님을 생각하면 열사는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믿음으로 투쟁하고, 단결 조직하고 훨씬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힘겨울 때 선배님의 유서를 봅니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치우침이 일어나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제가 자랑스러워하던 선배님은 한진중공업 초대 통합위원장이 되고, 죽어서 열사가 되었습니다. 그때도 보수언론은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이고 현재에도 난리입니다. 존중되어야 할 인간의 삶,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호를 외쳤던 현장 석탄가루가 날리던 태백 철암이 부산의 조선소가 김주익을 열사로 만들었다면, 저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합니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죽지 않아야 합니다. 작년 초에 친구가 일하다 질식으로 사망했습니다. 후배들이 생활고에 연이어 돌연사와 자살을 했습니다.

 

작년 연초부터 죽음 소식을 연달아 접하는 충격적인 한 해를 보냈습니다. 또, 잊히기만 기다리는 것은 무책임과 선택적 투쟁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크게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뜻이 같거나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이들, 또는 전선에서 분신하는 노동자를 지키려고 애쓴 동지들이 의기투합하여 ‘영동권역 산업재해예방 실천투쟁단’을 출범했습니다. 물론 진보정당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현장에서 일하면서 직접 신속히 싸운다는 것입니다.

 

현장의 다양한 업종, 다른 포지션이지만 노동조합 안에 투쟁단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사측도 인지하여 불편한 시선으로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6월이면 출범 1주년이 됩니다. 많은 활동들을 이어 오고 성과도 있었지만, 안타깝게 현장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돌아오는 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현장 안에서 더욱 조직하고 조직해야 하는 책임감이 급물살처럼 밀려옵니다.

 

 

8. 본문사진1.jpg

 

2021.06.21. 영동권역 산업재해예방 실천투쟁단 출범 기자회견. [출처: 함영주]

 

 

철폐연대 ‘작은사업장 조직활동가 모임’에 함께하는 이유

 

저는 비조직화 탈피 ‘비탈’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탈이라고 하면 강원도 산비탈이 생각나기도 하겠지요. 노동조합 간부, 조합원, 진보시민, 진보정당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라기보다 비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고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소그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모임이 조금 변형되어 속해 있는 분들이 전투적으로 각계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작은사업장 조직활동가 모임’과도 매칭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은사업장 관련해서는 권리찾기유니온 등 간담회도 있었고요. 지역 전역에 비정규직 센터 필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 활동하는 동지들의 짐을 덜어 주거나 공동으로 지향하는 것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투쟁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철폐연대가 걸어온 길, 활동에 공감하며, 계획적인 사이클 또한 분명해서 신뢰도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불평등은 내부에서 불러오기도 하는데 오래 철폐연대를 직간접적으로 눈여겨보았을 때 동지로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철폐연대와 함께 활동을 해 오신 분들의 추천들이 있었고요. 사회적 능력주의를 더욱 공평하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기도 하였고요. 또 지나온 시멘트 3사 외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 생활 경험도 공유할 수 있어서 기여될 수 있는 것 같네요.

 

능력주의가 빚어낸 폭정, 불평등, 혼란을 끊고,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이루어지길 희망하는 바람이 무엇보다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