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8] 내가 아프면 쉴 권리? 함께 사는 누구나 아파도 쉴 권리! / 최홍조

by 철폐연대 posted Aug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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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내가 아프면 쉴 권리?

함께 사는 누구나 아파도 쉴 권리!

 

 

최홍조 • 시민건강연구소

 

 

 

가난은 질병을, 질병은 더 큰 가난을

 

가난은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 오래전에는 가난만이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따져 보니 아프지 않으려면 - 혹은 덜 아프려면 - 교육 수준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돈도 좀 벌어야 하고, 노동환경도 안전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집의 환경도 중요하다. 내 마을의 주변 여건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나열하는 것도 숨이 찬데, 여기도 끝이 아니다. 우리가 받은 차별과 혐오는 우리 몸에 각인되어 질병의 원인이 된다. 민주주의의 정도도 내 건강에 영향을 미치니, 다른 사회정책, 환경정책, 경제정책, 교통정책…, 모두들 내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는 목표가 있다. 바로 보편적 건강보장이다.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도 공평하게 보건의료서비스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으면 좋고, 병원 이용에 드는 비용도 적거나 없으면 좋다. 쉽게 말해, 보편적 건강보장은 누구나 아프면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처럼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면 - 이미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지만 - 가난이 만드는 몸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다가 아니었다. 병원을 가까이 옮기고, 비용을 줄여 문턱을 낮추어도, 여전히 가난은 질병의 원인이다. 잘 살펴보니 그 순서가 뒤바뀌는 삶도 많았다. 다시 말해, 아파서 병치레하고 보니 우리 집의 경제가 더 나빠진 경우다. 이제는 가난에서 질병이, 그리고 질병이 다시 더 큰 가난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현실이 되었다.

 

왜, 이런 일 - 아프고 보니 더 가난해진 - 이 생겨나는 걸까? 한번 아파 본 사람은 아마도 쉽게 그 사연을 설명할 거다. 김창오(2021)1)는 그 이유를 학술적으로 증명해 보았다. 질병 치료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비용 - 혹은 의료비용 - 으로 본인부담금과 간병비 등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두 번째는 간접비용2)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치료와 돌봄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이다. 시간비용은 곧바로 (나 또는 나와 함께 사는 누군가가 아파서) 일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완전하게 일하지 못하는 - 실업 -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빈번하게 돌봄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노동시간을 줄이게 된다. 결국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게 된다. 치료와 돌봄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거나 전세에서 월세로 옮긴다. 저축은 언감생심, 버는 족족 생활비와 치료와 돌봄 비용으로 쓰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 혹은 나와 함께 사는 누군가의 질병은 다시 우리의 가난을 더 크게 만든다.

 

가난이 질병을 낳는 과정, 그 과정이 초래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보편적 건강보장이라는 꿈을 좇아 왔다. 이제 그 반대의 과정, 질병이 더 큰 가난을 초래하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내가 아프면 쉴 권리 혹은 함께 사는 누구나 아파도 쉴 권리다. 어려운 말로 사회적 보호라기도 하고, 제도의 이름으로는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주요 내용

 

아프면 쉴 권리를 이제 대중은 쉽게 받아들인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파 본 사람 혹은 아픈 이와 함께 살아 본 사람들만(!) 그 필요성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상병수당이라는 단어는 이제 온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프면 쉴 권리가 현실의 제도로 만들어지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은 잘 알고 있는 유급병가이고, 다른 하나는 상병수당이다. 유급병가는 아파서 쉬는 ‘병가’인데, 쉬는 날짜의 급여를 보장해 주는 것이고, 대개 일주일 이내의 치료로 회복이 가능한 상황에 대한 보호조치다. 그래서 국가마다 다르지만 3~7일 - 길게는 30일 - 정도 지원한다. 대부분의 질병은 2~3일이면 회복 가능하다. 하지만 길게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질병에 걸리면 유급병가로는 턱도 없다. 이를 보장하는 제도가 바로 상병수당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병수당 제도는 일정 기간 - 유급병가로 보장하는 기간 - 이 경과한 이후 계속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지원한다.3)

 

올해 초부터 정부가 상병수당 제도화를 위한 시범사업 개시를 홍보했다. 그리고 얼마 전 7월 4일 보건복지부는 서울 종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 전남 순천시 등 6개 지역에서 아파서 쉬면 하루 4만 3,960원을 보장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 1단계를 시작했다. 2025년까지 총 3단계에 걸친 시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시작한 1단계 사업의 목표는 아픈 상태에 따라 상병수당의 지급 방식을 달리하여 그 효과를 살펴본다.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대기 기간이 가장 짧은 모형3(경남 창원, 전남 순천)은 3일 이후부터 지원을 하지만 ‘입원’을 하는 질병에 한하여 최대 90일까지 외래와 입원 기간을 지원한다. 모형1(경기 부천, 경북 포항)은 7일 이후부터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기간 최대 90일까지 외래와 입원 기간을 지원하고, 모형2(서울 종로, 충남 천안)는 대기 기간을 14일로 늘리는 대신 지원 기간도 120일로 늘려서 지원한다. 4만 3,960원은 2022년 기준 ‘최저임금’의 60%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국제노동기구의 상병수당협약은 ‘이전 소득’의 60%를 제시한다. 정부는 시범사업 2단계에서 국제노동기구 기준처럼 이전 소득에 연계한 정률 지급 방식을 평가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시범사업의 종합평가와 법제도적 여건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한다.

 

1단계 시범사업의 지원 대상 조건이 세부적으로 제시되었다. 우선, 해당 지자체에 거주하는 - 아마도 주민등록주소지 기준 - 취업자 또는 지자체 지정 협력사업장의 근로자이어야 한다. 여기서 취업자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및 고용보험 가입자로서 가입 기간 1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이 조건 - 보험 가입 기간 조건 - 을 만족하면 특수고용직, 예술인,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한다. 또한 일용직 근로자는 1개월 이내 10일 이상 보험에 가입한 경우에 한한다. 마지막으로 자영업자는 사업자등록을 3개월 이상 유지하고 동시에 월 매출이 191만 원 이상인 경우가 속한다. 이 기준에 더하여 만 15세 이상이고 65세 미만인 대한민국 국적자에 한하며, 공무원과 교직원은 제외한다. 또한 산재보험과 자동차보험 수급자도 제외한다.

 

두 개의 상자 채우기에 무엇이 부족한가?

 

대한민국에서 상병수당이라니, 대단한 발전이다. 이제 한국도 아프면 쉴 권리를 쟁취한 사회에 속하게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래 두 개의 상자 그림을 살펴보자.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두 가지 목표 -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적 보호 - 가 필요하다고 앞서 설명했다. 이 각각의 달성을 위해 고려할 내용은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아래 녹색 상자가 현재의 건강보장 범위이고, 이 상자를 더 키워서 전체 공간을 채운다면, 그것이 보편적 건강보장 실현이라 부를 만할 것이다. 위쪽 하늘색 상자는 현재의 사회적 보호 범위이고, 역시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상자의 크기를 더 채워야 한다. 각각의 상자를 키워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3가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로축의 확장을 위해서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로축의 비어 있는 크기가 바로 사각지대 혹은 제도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뒷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보장하는 서비스의 종류다. 간병비를 건강보험이 보장해 준다면 이 공간은 더 많이 채워질 수 있다. 상병수당과 유급병가가 특정 질병을 제외한다면 이 빈 공간은 넓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로축은 의료비용(아래 녹색 공간)과 소득손실과 간접비용(위 하늘색 공간)의 얼마까지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의 보편적 건강보장은 가로축의 대부분을 채운 상태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포함하면,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미등록 이주민, 주민등록말소자 등 비율로 따지면 상당히 낮다. 물론 여기서도 취약한 사람들의 권리 박탈과 차별 문제가 있지만, 일단 이 글의 주제인 상병수당 - 위쪽 하늘색 상자 - 에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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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권리 보장의 중요한 두 가지 구성요소로서 사회적 보호와 보편적 건강보장의 차원.4)

 

 

국제노동기구가 무려 1969년 제정한 상병급여협약에서 모든 노동자의 75% 이상(가로축)에게 이전 소득의 60% 수준(세로축)에서 상병수당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상병급여권고에서는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가로축)이 아프면 이전 소득의 67% 수준(세로축)의 상병수당 보장을 제시한다. 북유럽의 어느 국가에서는 아이가 아파서 보호자가 돌봄을 위해 쉬어도 급여를 보장한다는 기사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기사들이 국제노동기구의 상병급여권고를 충족하는 제도의 현장을 보여 준다. 이는 위쪽 하늘색 상자의 가로축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의 문제와 이어진다. 한국의 시범사업은 취업자로 조건을 제한한다. 취업자는 모든 경제활동인구, 즉 노동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 무급가족 종사자나 가사노동자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전통적 분류에 따른 임금노동자들이 비임금노동자로 이동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이미 현실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 경향을 더 악화시켰다. 뿐만 아니다.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이들은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세상이다. 가족이 돌봄을 제공하면 또 어떤가. 폐지 줍는 노인은 노동자인가. 사각지대에 속한 노동자들이 더 불안정하고 덜 보호받으며 더 많이 질병에 걸리고, 결국 질병으로 인한 더 큰 가난의 고통을 마주한다. 현재의 시범사업은 이들을 손쉽게 제외하고 있다.

 

아래쪽 녹색 상자의 세로축도 살펴보자. 정부가 2단계 시범사업에서 이전 소득과 연계한 정률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지만, 1단계에서는 최저임금의 60%로 보호의 수준이 턱없이 낮다. 1단계 시범사업에서 노동자들은 최저 수준의 지원으로 마음 편히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 비용 지원이 적어서 아파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며 일하다가 병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1단계 시범사업의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한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정부는 녹색 상자의 뒷 공간 - 서비스 보장 범위 - 은 1단계 시범사업에서 결정하는 것을 목표한다. 그런데 이 범위는 결국 바로 앞서 설명한 세로축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아파도 낮은 상병수당으로 살기 버거운 노동자는 아픈 몸으로 노동을 이어갈 수 있다. 조건에 맞는 노동자들이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적용을 포기할 경우, 서비스의 보장 범위를 알아보려는 - 입원을 필요로 하는 정도의 무거운 질병만 보장할지, 그렇지 않더라도 장기간 외래 치료가 필요한 질병을 모두 보장할지 정하는 - 1단계 시범사업은 제대로 평가될 수 없다.

 

‘아프면 쉴’ 만큼 중요한 ‘권리’

 

우리는 권리로서 상병수당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지출(비용)로서 상병수당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쉽게 무시된다. 더 취약한 노동자 혹은 아직 공식적으로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적 보호인 상병수당이 정확히 이들을 배제하는 형태로 제도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노동자는 이미 이 제도의 외부로 밀려나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동자는 이 제도의 내부에 포함되더라도 이것이 자신의 권리 문제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이 간극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하고 마련하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채웠다가 지워지지만, 그것을 입 바깥으로 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일이다. ‘아프면 쉬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과정 모두와 그 결과물도 노동자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권리’가 되지 못한 제도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지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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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im C-O. Effect of Health Shocks on Poverty Status in South Korea: Exploring the Mechanism of Medical Impoverishment.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2021.

2) 일부 연구자는 이것이 간접비용이 아닌 비의료적 직접비용과 소득손실이라고 정의한다. 관련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길 바란다: Lönnroth K, Glaziou P, Weil D, Floyd K, Uplekar M, Raviglione M. Beyond UHC: Monitoring Health and Social Protection Coverage in the Context of Tuberculosis Care and Prevention. PLOS Medicine. 2014;11(9):e1001693.

3)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재훈. 외국의 유급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 아프면 충분히 쉬고, 회복할 권리 보장. 민주노동연구원/사회공공연구원. 2020.

4) 출처는 각주 2)의 뢴로스 등(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