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0] 접속, 플랫폼월드~ 우리의 노동을 잇다 / 오민규

by 철폐연대 posted Oct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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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접속, 플랫폼월드~ 우리의 노동을 잇다

 

 

오민규 •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 노동문제연구소 해방(解放) 연구실장

 

 

 

9월 28일, 플랫폼노동자대회.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시 모빌리티 기사, 웹툰·웹소설 작가, 배달 라이더들이 공동의 요구를 갖고 한자리에 모인다. 업종과 하는 일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플랫폼노동자’라 부르고 있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얘기는 보이는 외관과 달리 이들에게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는 뜻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은 이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챙기는 플랫폼기업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플랫폼기업들은 이들을 모두 ‘프리랜서’, ‘자영업자’라 주장하며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행정관청으로부터 설립필증을 받아내고 나면 곧바로 태도를 바꿔 “어떻게 하지? 우리가 사용자가 아닌데”라며 자신의 사용자성을 부정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당연히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도 불응하고 사회보험 책임도 부정하려 한다.

 

그럼 정부는 무슨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지난해 연말 정기국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종사자법’이란 걸 만들어서 플랫폼기업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려는 방향을 잡은 바 있다. 겉으로는 ‘비정규직 보호’라 외치며 실제로는 비정규직 양산법을 만들었던 것처럼, 플랫폼종사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실제로는 이들을 프리랜서로 둔갑시켜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를 만들기까지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서 플랫폼종사자법 밀어붙이기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플랫폼노동희망찾기’라는 모임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업종과 하는 일이 모두 달랐을 뿐만 아니라 상급단체도 달랐던 플랫폼 노동조합들이 지난해 9월, 대리운전노조와 라이더유니온의 호소에 위기의식을 갖고 모여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사회노동단체들도 함께 모였다.

 

플랫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치진 못했지만, 최소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종사자법과 같은 악법은 막아야 한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집회, 국정감사 대응, 토론회 등을 통해 플랫폼노동 당사자들이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낸 결과, 온전히 우리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연말연초를 거치며 플랫폼종사자법 입법은 무산되었다.

 

악법 저지라는 단기적 목표를 위해 모였던 플랫폼노조·시민사회단체들은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라는 모임을 정식으로 출범시켜 악법 저지만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하나로 모아 내고 이를 실현시키는 권리찾기 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래서 올해 2월 대선 요구를 제시하는 토론회라는 형식으로 출발해 이제 조합원·시민단체회원 수백 명이 모이는 ‘플랫폼노동자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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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5.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출범 토론회. [출처: 매일노동뉴스]

 

 

공동의 요구를 모아 내기까지

 

웹툰작가부터 모빌리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에 포진되어 있는 플랫폼노동자들의 공동요구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힌트가 있었다. 해외에서 플랫폼기업들 하는 짓이 한국에서와 판박이였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조직화를 시도한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나침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 스페인의 라이더법(Ley Riders), 유럽연합의 플랫폼노동 관련 입법지침(Directive)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의 대법원(최고법원) 판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었다. 곳곳에서 플랫폼노조들이 결성되고 몇몇 곳에서는 플랫폼기업과 단체협약 체결에 성공하는 사례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실험적으로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에 내세울 플랫폼노동자들의 요구를 토론하고 모아 내는 시도를 해 보았다. 웹툰을 비롯한 큐레이션형 플랫폼, 택시·배달·배송 등 모빌리티 플랫폼에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했다. 정말 의외로 이들 사이에 수많은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플랫폼노동 대선 5대 요구’라는 형태로 공동요구를 모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입법 요구였다. 플랫폼노동은 ‘디지털 특고’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수고용과 유사점이 많아 노동조합법 관련 요구는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요구를 참조하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손댈 것인가, 그리고 다양한 업종에 산재한 특수한 요구들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일반법에 반영하는 문제는 쉽지 않았다.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아직 미답의 영역으로 남겨둔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길을 좀 돌아서 가기로 했다. 입법 요구를 모아 내기 전에 우선 행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요구, 즉 대정부 요구를 정식화해 보았다. 이는 대선 5대 요구를 참조하고 1년 가까이 진행된 플랫폼노동희망찾기의 투쟁과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정리된 요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토론되었다.

 

그간 쌓인 투쟁과 경험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 시절 라이더유니온을 중심으로 전개한 ‘산재보험 전속성 기준 폐지’ 투쟁의 성과이다. 솔직히 우리도 이 투쟁의 성공을 자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순히 몇몇 안타까운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수백만 플랫폼노동자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을 놀랍게도 대선을 거치며 보수적인 정치인들조차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그사이 주요 노조들과 플랫폼기업 사이 단체교섭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가 피상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쟁점이 노동과 자본의 격돌의 장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를테면 알고리즘 관련해 이를 ‘공개’하라는 얘기가 가진 추상성, 혹은 자본의 반격 논리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설명’하고 ‘검증’하며 노사 간 단체교섭 의제로 해야 한다는 요구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플랫폼노동자 대정부 5대 요구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플랫폼노동자 대정부 5대 요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플랫폼기업에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기업들은 “우리는 중개만 할 뿐”이라며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확실한 방법은 노조법 2조 사용자개념 확대이나 법 개정 이전이라도 ILO 결사의 협약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플랫폼기업과 노조 간 단체교섭을 촉진시킬 권한과 의무가 있다.

 

둘째, 플랫폼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플랫폼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낮은 수수료·운반료·기본단가는 결국 플랫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생활을 강요한다. 특히 안전운임제가 ‘화물운송분야의 최저임금제’라 불리듯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 이상의 생활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헌법에 적정임금 보장의 책임을 국가에 지우고 있는바 역시 고용노동부가 이 방법을 찾아내고 집행할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셋째, 플랫폼노동자에게 알고리즘을 설명하고 노사 공동으로 검증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노동자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모든 것은 알고리즘이 알아서 결정한다.” 너무 뻔한 플랫폼기업들의 새빨간 거짓 변명이다.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에 다름 아니다. 취업규칙은 모든 노동자가 언제든 열람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알고리즘 역시 노동자가 알기 쉽게 설명되어야 한다. 아울러 알고리즘이 취업규칙이라면 이를 검증하는 것은 근로감독에 해당하는바, 고용노동부가 플랫폼기업 알고리즘을 검증하기 위한 전문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넷째, 플랫폼노동자에게 다른 노동자와 차별 없이 사회보험을 적용하라는 요구이다.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부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으나 업종별 선택적 적용, 자기 부담 50% 등 차별이 온존하고 있다. 플랫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전속성 기준은 내년 7월 1일 자로 폐지되지만, 여전히 평범한 노동자들과 차별하는 지점은 사라져야 한다. 고용보험위원회, 산재보험및예방위원회를 운용하는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나서야 한다.

 

다섯째, 플랫폼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가 플랫폼노동으로 오면 ‘쉴 권리’로 번역된다. 연간 유급휴가와 상병휴가가 보장되어야 하고, 웹툰작가들에게는 유급으로 연재를 쉴 권리인 ‘휴재권’을 부여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정에서 ‘상시근로자 수 산정’에 플랫폼노동을 배제하기로 한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폐기하고 플랫폼노동자에게 전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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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8일 플랫폼노동자대회 웹자보. [출처: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어디로 갈 것인가?

 

9월 22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산재신청과 산재승인이 가장 많은 기업은 배달의민족인 것으로 드러났다. 2위는 택배기사들이 몰려 있는 쿠팡 주식회사였고, 7위는 일당제·계약직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쿠팡풀필먼트, 9위에는 배달의민족과 경쟁하고 있는 쿠팡이츠가 이름을 올렸다. 산재신청·승인 Top 10 기업 안에 무려 4개의 플랫폼기업이 올라온 것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Top 10 안에 4~5개의 건설사가 몰려 있었으나 플랫폼기업들이 대형 건설사를 단숨에 제칠 정도로 우리 사회의 고용형태, 노동과 관련한 질서들은 요동을 치고 있다. 어쩌면 플랫폼노동희망찾기의 출발은 너무 늦은 것일지도 모르나, 따라잡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내 볼 계획이다.

 

아직 민주노조운동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플랫폼노동 관련 입법 요구를 정식화해 내는 작업, 이것은 법률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기는 해야겠으나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결국 플랫폼노동자와 노동조합들이 얼마나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자본과 댓거리를 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는가 하는 것으로부터 구체화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초보 단계인 노조운동의 힘을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노동운동과 함께하는 것, 이를 위해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노동조합만의 조직이 아니라 시민사회노동단체도 자유롭게 함께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앞으로 ‘플랫폼노동 포럼’을 통해 더 넓은 플랫폼노조, 시민사회단체와 정책적, 사안적 고민을 두루 나눠보려 한다.

 

9.28 대회의 이름은 ‘플랫폼노동자대회’이다. ‘제1회’ 혹은 ‘전국’이란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우리만이 유일한 플랫폼노동의 대표조직이라는 따위의 주장을 펼칠 생각이 없다. 누구나 플랫폼노동을 옹호하기 위한 단체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플랫폼노동자대회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노동’이란 단어 자체가 사실 난센스다. 뭔가 이런 노동자들을 통칭하는 개념이 필요해서 동원된 단어이지 사실 이런 단어는 사라져야 할 개념이다. 플랫폼이나 앱을 통하건 그렇지 않건 누구나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누려야 하고, 우리의 노동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

 

플랫폼노동자들은 스스로를 ‘플랫폼노동’이라 부르는 것을 통해 이익을 얻지 않는다. 사실 프로세스는 정반대이다. 플랫폼노동이 평범한 노동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를 특별한 노동으로 취급하지 말고 평범한 노동과 똑같이 취급해 달라는 것, 그러니 ‘플랫폼종사자법’ 따위의 특별법이 아니라 노조법·근기법이라는 일반법 적용의 길을 열자는 것이다. 아직 출발일 뿐이지만 관심을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리며 글을 맺는다.